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12.7-8. 10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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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_기획연재_보건의료팀.pdf

보건의료운동의 이론과 역사

보건의료운동의 이념 역사 현실 -4

김태훈, 김동근, 이은주, 최윤정 | 보건의료팀
보건의료팀은 한국 보건의료운동의 과제와 전망을 밝히기 위한 보건의료팀의 입론을 마련하기 위해 2009년 세미나를 시작으로 2010년부터 교안을 작성하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교안의 구성은 크게 자본주의적 보건의료의 역사, 보건의료 분석의 이론, 한국 보건의료운동의 역사와 과제로 이루어진다.『사회운동』에서는 지난 1~2월호부터 총 4회에 걸쳐 그간 작성한 교안을 축약하여 연재한다(축약되지 않은 교안 원본은 사회진보연대 홈페이지 자료실에 게시함). 이번 호에는 네 번째 파트를 연재한다. III절 5장의 현 정세와 과제 부분은 일부 수정이 되었으며 보건의료팀의 자세한 입장에 대해서는 소책자 ‘무상의료에 대한 우리의 접근법’을 참조하라.

기획연재 1
I. 자본주의적 보건의료의 역사
1. 자본주의의 발전과 19세기 보건의료
2. 법인자본주의 발전과 20세기 보건의료
3. 한국보건의료체계의 역사 :1945년부터 1989년까지
기획연재 2
II. 보건의료 분석의 이론
1. 자본주의 사회에서 질병의 원인
2. 자본주의적 의료 분석
3. 생태학적 관점
4. 페미니즘적 관점

기획연재 3
III. 남한 보건의료운동의 역사
1. 보건의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과 대안세계화 운동
2. 남한 보건의료운동의 시작과 발전
3. 남한의 신자유주의적 재편과 보건의료운동의 한계

기획연재 4
4.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보건의료운동의 모색
5. 보건의료운동의 현 정세와 과제



4.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보건의료운동의 모색

개혁의 성격과 운동진영의 대응방안에 대해 많은 논쟁을 야기한 의료보험통합과 의약분업과정은 한국 의료체계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에 맞서기 위한 보건의료운동의 방향이 어떠해야하는지 보여준다. 개혁에 참여했던 보건의료운동진영은 의료재정체계의 확대와 의료제도의 합리화를 통해 의료 서비스 이용의 형평성을 확대하고, 의료공급체계에 대한 공적 통제를 확대하여 적은 비용으로 국민의 건강을 확보하는 거시적 효율성도 달성하려 했으나 제대로 이행되지 못했다. 이는 주로 보건의료부문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이라는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고 합리적 정책개혁의 의미를 과대평가한 점과 민족국가의 통제를 벗어나 의료공급체계를 왜곡하는 초민족적 자본의 활동에 대한 맹목 때문이었다.


민중의료연합의 활동과 해소 : 1997-2003

민중의료연합(이하 민의련)은 기존의 정책개혁운동과 산재추방운동이라는 양대 편향을 비판하고 보건의료운동을 변혁운동의 일환으로 사고할 것을 주장하며 출범했다. 민의련은 공공의료 구조조정을 비판하면서 보건의료의 공공성 강화를 이념으로 제시한다. 또한 글리벡 약가인하투쟁을 통한 의약품접근권운동으로 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TRIPs)과 초국적제약자본의 문제를 제기하였다. 이런 활동은 김대중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성격을 인식하고 비판했다는 측면에서 기존의 보건의료운동과 차이를 갖지만 문민화 이후 변혁운동의 전반적인 퇴조 속에서 제대로 정착되지 못한다. 또 공공성 강화는 상대적으로 급진적인 성향의 정책운동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1997년 이후 민의련은 보건의료운동의 주체에 대한 실천적 인식의 부재를 자기비판한다. 민의련은 공공의료기관의 개혁과 공공의료 강화를 대안으로 제시하면서, 보건의료노조와 함께 주축이 되어 구축한 <공공의료대책회의>를 통해 보건의료노동자운동을 혁신하여 이들을 보건의료운동의 주체로 세우려는 시도를 한다. 그러나 공공의료대책회의의 활동은 크게 확대되지 못한다. 내부역량의 한계, 정책운동을 중심으로 했던 보건의료운동진영이 김대중 정부의 공공부문 구조조정에 대한 대응에 소극적이었던 점, 코퍼러티즘 지향의 노동자운동이 가진 한계와 공공병원 구조조정에 대한 보건의료노동자운동의 수세적 대응 등이 그 이유였다.
2003년을 경과하며 노동자건강사업단이 현장성과 정파성을 강조하면서 노동보건연대회의와 함께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를 결성함으로써 민의련에서 이탈한다. 이후 민의련은 <방지거병원 공공화를 위한 시민대책위원회> 활동을 통한 공공성 강화운동, 활동을 통한 의약품접근권 문제 제기 등을 통해 활로를 모색한다. 그러나 결국 변혁적 보건의료운동의 전략을 재구성하는 데 실패하고, 2006년 초 자진 해산하고 만다.


의료민영화 저지투쟁과 건강보험 보장성강화운동 : 2003년 - 현재

1) 의료민영화 경과
노무현 정부는 의료서비스제약의료기기생물공학의 4대 분야를 중심으로 한 ‘의료산업화’를 추진하면서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더욱 가속화한다. 특히 영리법인병원의 허용과 민간의료보험의 확대를 추진하였다. 병원경영지원회사(MSO), 병원간 인수합병, 유인알선행위를 허용하고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을 허용, 활성화하는 등 의료산업화와 관련한 종합 계획을 제안하였다. 2007년 정부는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를 제외하고 그간 추진해 온 의료민영화정책을 거의 망라한 의료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한다. 그러나 의료법 개정은 결국 의사협회까지 반대하면서 무산되었다.
이후 이명박 정부는 영리법인병원 허용, 당연지정제 폐지를 포함한 민간의료보험 활성화를 공언하였으나 촛불집회 등 대중의 반발로 인해 ‘의료민영화는 없다’고 선언하였다. 이후 노무현,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일련의 ‘의료산업화’, ‘서비스산업 선진화’ 정책들은 대중적으로 ‘의료민영화’로 불리게 된다. 그러나 반발이 줄어들자 이명박 정부는 다시 의료민영화를 추진한다. 2008년 보험업법 개정안을 통해서 금융자본 중심의 보건의료산업 재편의 기반을 마련하였고, 2009년 서비스산업선진화방안을 통해서 병원경영지원회사(MSO)의 법적 근거 마련, 의료채권 발행 허용, 투자개방형의료법인(영리병원의 다른 표현) 도입 추진, 건강관리서비스 시장화,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의료기관 유치 등 의료민영화 전략을 포괄적으로 제시하였다. 현재 이와 관련된 각종 법안들이 발의되어 있으며, 최근 이에 더해 원격진료를 포함한 U-Health 산업이 의료민영화 추진의 새로운 매개가 되고 있다. 한편 경제자유구역을 매개로 한 영리법인병원 허용은 2008년부터 제주도를 중심으로 추진되었는데, 제주도 내에서 영리법인병원 설립을 허용하는 내용이 포함된 제주특별자치도법 개정안이 국회에 상정되어 있다.
정부의 의료민영화 추진은 민간보험자본, 제약자본, 대형병원자본 등 보건의료부문 자본의 이해를 반영하고 있다. 보건의료시장의 중요한 행위자로 등장한 민간보험자본은 건강보험을 무력화시키고 보건의료체계를 스스로 통제하려 한다. 민간중심적인 의료공급체계 하에서 병원은 이윤을 확보하기 위해 대형화, 고급화하는 전략을 택하였다. 재벌 병원들이 이런 추세를 주도하면서 의료비는 지속적으로 상승하였다. 대형화, 고급화를 위한 종합병원의 투자 경쟁은 의료산업화의 핵심적 쟁점 중 하나인 영리법인병원 도입의 동기가 되고 있다. 의약분업 이후 한국 제약시장을 장악한 초국적제약자본 역시 약가에 대한 독점적 결정권을 가지기 위해 보건의료의 시장화를 원한다. 이와 같이 자본의 이해가 정부의 정책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현재의 상황은 민간중심 의료공급체계의 형성이라는 경로를 밟아온 국가 전략에 그 원인이 있다.

2) 의료민영화 저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운동의 등장
노무현 정부가 노골적으로 의료민영화를 추구하면서 보건의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이라는 국면이 명확해졌다. 보건의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의료민영화 저지운동’이 보건의료운동의 중심적 의제로 등장하였으며, 건강보험에 관련한 의제는 건강보험통합 이후 보장성강화운동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또한 글리벡 약가인하투쟁을 계기로 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과 초국적제약자본의 문제를 인식하면서 의약품접근권운동이 보건의료운동의 의제로 등장한다.
2004년 <의료의 공공성과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한 연대회의>(이하 의료연대회의)가 출범하였다. 의료연대회의는 ⑴의료시장 개방 및 영리법인화 저지, ⑵의료의 공공성 강화, ⑶건강보험보장성 강화의 3대 개혁과제를 제안한다. 의료연대회의는 2008년에 <건강권 보장과 의료 공공성 강화를 위한 희망연대>(이하 건강연대)로 명칭을 변경하였고, 2009년 10월에는 보건의료부문과 노동조합, 시민운동, 농민단체, 지역단체 79개로 이루어진 <의료민영화 저지 및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한 범국민운동본부>(이하 범국본)가 결성되었다. 상기 연대체의 운동은 정책운동진영의 주도성이 관철되는 형태였으며, 선전전서명운동성명서발표 등을 통한 여론 조직화와 국회 대응을 통한 의료산업화관련법안저지대안입법추진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2000년대 보건의료운동의 핵심적 실천이었던 의료민영화 저지투쟁은 의료연대회의, 건강연대, 범국본으로 이어지는 연대체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연대체들은 대형병원자본과 민간보험자본의 성장이 보건의료체계에 미치는 악영향을 지속적으로 폭로하였으며, 보건의료 관련한 정부의 실천과 관련 법안들을 의료민영화의 맥락으로 해석하며 비판하였다. 세계무역기구(WTO)와 자유무역협정(FTA)을 매개로 한 의료시장 개방을 의료산업화의 관점에서 해석하며 신자유주의 비판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또한 지역에서의 실천을 통해서 2008년 제주도에서 시도되었던 영리법인병원 허용을 무산시키는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한편 의료보험통합일원화 이후 직종별 보건의료단체들을 중심으로 한 정책운동 진영은 건강보험보장성강화와 의료공공성강화를 주요한 과제로 내걸었지만 구체적인 실천을 만들어내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2004년 건강보험 재정에서 1조 5,000억 원 규모의 흑자가 발생하였고 이를 급여확대에 사용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의료보험통합일원화 이후 처음으로 건강보험 보장성강화를 논의할 수 있는 장이 열렸다. 의료연대회의는 2005년 1월 토론회를 통해 중장기적으로 모든 건강보험 비급여를 급여화하고 급여율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급여율 조정방식’을, 단기적으로는 중증질환에 대해 우선적으로 건강보험 급여를 확대하는 방안을 제안하였다. 이후 보건의료운동진영은 ‘암부터 무상의료’라는 슬로건을 통해 사회적지지를 획득해 나갔고, 2005년 4월 보건복지부는 암 등 중증질환에 대해 보장성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게 된다. 이후 쟁점은 3대 비급여(상급병실료, 선택진료비, 식대)의 급여화를 통한 실질적 보장성강화 여부로 좁혀졌다. 2005년 5월 의료연대회의 산하에 <암부터 무상의료 실천운동본부>가 설치되어 3대 비급여 급여화를 포함한 보장성강화를 주장하였지만 이는 성취되지 못하였고, ‘암부터 무상의료’ 운동은 중증질환에 대한 부분적인 보장성 강화라는 성과를 남기고 마무리되었다.
의료민영화 저지투쟁은 영리법인병원 도입, 민간의료보험 활성화와 같은 구체적인 시장화 정책을 제어하는 동시에 이미 충분히 시장적인 한국 보건의료체계의 모순도 드러내는 역할을 했다. 또한 총체적 관점에서 의료민영화와 동일선상에 있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야만성을 폭로하면서 보건의료운동진영 내에서 반신자유주의 전선의 주체를 형성했다는 점에서 건강을 둘러싼 계급적 대립을 명확히 드러낼 수 있는 중요한 운동이었다. 그러나 보건의료체계 전반의 개혁에 대한 대안이 제시되고 대중주체가 형성되지 않는다면 저지 투쟁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의료비용의 상승이 대중건강의 증진을 가져오지 못하는 상황에서 민간자본 중심의 공급구조는 끊임없이 의료산업화를 추동하기 때문이다. 정부와 자본의 의료산업화 전략이 대체로 관철되는 과정에서 의료민영화 저지투쟁이 그 추진 속도를 늦추는 역할 이상을 하지 못했던 최근 10여 년의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한국 보건의료체계의 주요한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다. 최초의 요구였던 건강보험통합일원화 실현 이후 보장성을 강화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졌다고 판단하고 다음 과제로 설정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상은 2000년 건강보험 재정위기를 겪으면서 정부의 재정안정화 논리를 극복하지 못하였고 2001년부터 매년 9~11%에 달하는 보험료 인상이 이루어졌다. ‘암부터 무상의료’ 운동은 그 결과 생긴 건강보험 재정흑자 국면에 수동적으로 대응하였던 측면이 있다. 건강보험 보장성강화운동은 정세에 따른 일회적 실천에 그치면서 발전적인 전략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한계지점에 대한 단편적 평가를 넘어 그 원인에 대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1988년 건강보험통합일원화가 처음 제기 될 때 운동의 목표는 제도적 변화에 국한 되지 않았다. 민중 건강에 대한 실질적 보장을 달성하고 국가의 책임을 높이려는 것이 그 본질이었으며, 통합일원화는 그 계기이자 지렛대였다. 운동의 동력은 대중운동에 기반을 두고 있었는데, 과도하게 비싼 보험료와 진료권 제한 등에 대한 민중에 불만에서 시작된 운동이 보건의료체계에 대한 문제제기로 드러난 것이 건강보험통합일원화라는 슬로건이었다.
그러나 2000년에 이루어진 건강보험통합은 관리 및 제정체계에 국한된 것이었다. 이는 10여 년이 경과하면서 대중적 동력이 저하되고 전문가 중심의 제도적 설계와 정치권과의 상호작용을 중심으로 운동의 방식이 변화된 것을 반영한다. 2000년 이후 보장성강화를 위한 논의와 실천 역시 이러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면서 재원마련과 수가 결정구조라는 제도적 제약과 건강보험 재정안정화라는 담론을 극복하기 힘들었으며 대중적 동력을 만들어 내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2000년대 초 보장성강화의 전략이 보험료 부과를 높여서 건강보험 재정을 안정화한 후 보장성을 강화하려는 것이었다는 점, 그리고 보장성 강화운동이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는 때가 건강보험 재정 흑자가 발생했던 때였던 것은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다.
의료민영화 저지운동은 대체로 문제가 되는 법안이 있을 때마다 사안별로 반대여론을 형성하고 정치권을 활용하는 방식이 중심이었다. 이 또한 보건의료운동의 대중적 동력이 미약해지고 시야가 제도적 변화를 중심으로 옮겨간 것이 중요한 원인이며, 보건의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이라는 정세에 대한 인식이 늦었기 때문이었다.
의료민영화 저지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라는 보건의료운동에서 중심적인 두 의제가 통합되기보다 별개의 의제로 사고된 것을 핵심적으로 지적해야한다. 건강보험 재정문제는 단순히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보건의료체계 전반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의료비 상승과 건강보험 재정 악화의 주범은 이윤추구적 보건의료체계에 있으며, 건강보험 재원 마련의 문제는 보험료 부과의 누진성, 기업과 국가부담의 비율 등 계급적 이해관계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의료민영화가 이윤추구적 보건의료체계라는 문제를 심화시키고 의료비 상승과 건강보험 재정악화를 야기하는 중요한 요인이라는 점에서 의료민영화 저지는 건강보험 보장성강화의 필요조건이다. 보건의료체계의 문제 전반에 대한 통합적 분석과 운동전략 마련을 통해서만 의료민영화 저지투쟁과 건강보험 보장성강화라는 목표에 다가갈 수 있는 이유다.


의약품접근권운동: 2001년 - 현재

2001년 난치, 불치병으로 여겨졌던 백혈병을 치료하는 획기적 신약인 글리벡이 출시되었으나 사먹을 수 없는 약이 되었다. 환자들은 보험적용 받아도 한달에 최소한 90만 원 이상을 부담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에 환자들은 적극적으로 서명운동을 벌여, 노바티스가 신청한 글리벡 약가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였고, 보건의료단체와 환자들이 모여 ‘글리벡 문제해결과 의약품 공공성 확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글리벡 공대위)가 결성되기에 이르렀다.
공대위에서는 정부와 노바티스 양자를 압박하면서 보험약가 결정과정에 개입했다. 한편 공대위 내에서 3개 단체는 글리벡에 대한 강제실시를 청구했다. TRIPs 협정 제 31조의 강제실시조항과 우리나라 특허법 제107조에 ‘공공의 비상업적 이익을 위하여 비상업적으로 특허발명을 실시할 필요가 있는 경우’ 통상 실시를 허용하고 있는 것에 근거하여 이루어졌다. 그러나 강제실시 청구양식도 없는 특허청에서 강제실시를 집행하는 것은 난항을 겪다가 기각되고 만다. 또한 환자비대위에서는 만성기 보험적용고시안의 변경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출하였으며, 가격으로 인한 차별, 만성기 환자에 대한 차별, 연령에 의한 본인부담 차별, 희귀난치성질환 본인부담금에 대한 차별에 대해 2002년 3월 18일 인권위에 진정하였다.
보험 약가를 둘러싼 계속된 공방 끝에 2003년 복지부는 약값을 23,045원, 본인부담률 30~50%에서 20%로 인하, 노바티스가 10% 지원으로 결론을 내린다. 공대위는 복지부의 생색내기용 발표를 비판하면서 국가인권위 점거농성에 돌입했고, 강제실시와 약값인하를 요구했다. 그러나 특허청은 강제실시를 기각하고 투쟁은 일단락된다.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던 이 투쟁은 2003년 세계사회포럼에서 투쟁사례로 발표되기도 했다.
투쟁과정에서 쟁점이 된 것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초국적제약자본의 독점이윤과 지적재산권, 둘째, 국내 약가산정체계의 허술함과 낮은 보장성 등 보건의료체계의 문제다. 글리벡 투쟁은 국내에서 의약품의 상품성에 맞서 실물화 된 투쟁을 벌인 첫 투쟁이란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의약품을 둘러싸고 제약자본의 독점적 권리와 이로 인해 파괴되는 민중의 건강권에 대한 논의가 이토록 광범위하게 일어난 적이 없었다. 또한 제 3세계로의 기술 이전 및 확산을 봉쇄하고 초국적 제약자본의 독점성을 보호, 강화시켜주는 핵심적 기전이며, 공적으로 연구개발된 성과물을 자본이 독점적으로 장악할 수 있는 매개 고리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특허, 지적재산권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TRIPs협정에 있으나 선진국의 무역보복, 소송분쟁으로 인해 실시되지 못한 강제실시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였다. 한국의 의약품 정책의 부실함, ‘환자’라는 의약품 공공성을 요구할 주체의 발견, 국제연대의 필요성을 인식했다는 점도 글리벡 투쟁의 의미라 볼 수 있다.
이후 백혈병 치료제 스프라이셀, 에이즈 치료제 푸제온의 접근권을 둘러싼 투쟁들이 있었다. 하지만 환자 당사자의 개별 약품에 대한 권리를 넘어 의약품에 대한 민중의 통제권을 확립하기 위한 종합적 전략과 투쟁으로 발전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의약품 접근권 운동만의 문제가 아니라 새롭게 등장한 의제를 발전적으로 전화하고 엄호하지 못하는 전체 보건의료운동의 한계와 과제로 보아야 한다.


노동안전보건운동: 1997년 - 현재

외환위기와 김대중 정부의 출범을 계기로 본격화된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 공세는 노동자들의 건강을 위협하였다. 정부는 기업경쟁력 회복을 위한 기업규제 완화의 일환으로 1997년 산업안전보건법상의 안전보건규정을 완화하였으며, 근로복지공단은 고통분담대책이라는 명목으로 강제 치료종결, 재요양 억제, 입원환자 통원조치, 장기요양환자 집중관리, 진료비심사 강화, 재가요양 및 취업치료 적극유도 등 노동자건강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게다가 외환위기를 거치며 고용과 임금보전 문제가 가장 절박한 문제로 대두되면서 노동자건강 문제는 노동자들 스스로에게도 우선순위에서 뒤처지게 된다. 그 결과 1990년대 초중반 투쟁의 성과로 획득했던 노동조건 개선사항과 각종 수당 등의 성과를 고용 유지와 맞바꾸는 경우가 늘어나고, 단체협약에 보장명시된 노동조건 관련 내용들은 거의 유명무실화되는 상황이 초래되었다.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노동강도가 더욱 강화됨에 따라 1990년대 후반 산재추방운동이 다시 활성화된다. 산재추방운동단체들은 지역별로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기 시작하였고, 1999년 현장, 단체, 전문역량이 통합하는 형태로서 <산재추방운동연합>(이하 산추련)을 결성한다. 그러나 산추련으로의 통합은 내용적운동적 통합이 아니라 기술적형식적 통합에 가까웠으며, 이상관 투쟁을 계기로 노선 갈등이 드러나면서 2000년에 <노동보건연대회의>와 <노동건강연대>로 분화된다.
노동보건연대회의는 전문주의에 기반을 둔 운동방식을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현장의 노동보건운동을 통해 노동조합운동을 강화할 것을 주장한다. 이들이 주목한 대우조선에서 시작된 근골격계질환 직업병 인정 투쟁은 집단 요양을 통해 자본을 압박하면서 사회적 의제가 된다. 전국적인 집단 요양투쟁은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를 포함한 사업주의 예방의무를 법제화하는 성과를 얻었다. 또한 노동안전보건운동의 내용이 과거 ‘산재추방과 보상’을 넘어 ‘노동강도 저하’로 발전하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결과보상담당자 중심으로 대응해 온 과거의 한계를 실천적으로 극복할 가능성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2004년을 경과하면서 근골격계 인정 투쟁의 성과는 더이상 확산되지 못하고, 급속한 제도화와 관리로 수렴된다. 대공장을 중심으로 노사합동의 근골격계질환 예방관리 프로그램이 도입되면서, 문제의 성격이 치료 중심으로 협소화된다. 노동부는 경총의 기획을 받아들여 근골격계 인정기준과 요양처리지침을 도입하고, 요양기간 축소의 도구로 사용하기 위한 적정요양기간 설정 프로젝트, 근골격계 질환의 예방관리 프로그램에 대한 대규모의 프로젝트 등을 진행하였다. 이는 사회적 합의주의가 확산되고 ‘집단요양투쟁’이라는 전술이 한계에 봉착하면서 더욱 촉진되었다.
이에 맞서 노동안전보건운동진영은 집단요양투쟁의 한계를 넘어선 현장의 일상실천을 조직하기 위해 마산창원, 대전충북 등 지역차원에서 근골격계유해요인조사에 대한 대응 활동을 시도하였다. 이는 유해요인조사가 자본의 면죄부로 전락하는 것을 막고 현장의 요구와 실천을 조직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전선형성에 실패하였다. 결국 노동안전보건운동은 노사협조주의와 포섭배제의 이중 전략을 극복하지 못하면서 2005년 들어 근로복지공단을 중심으로 한 자본의 압박에 밀려 전반적인 후퇴를 겪었다. 노동안전보건운동은 대기업 단사 노동조합 중심의 운동방식이라는 한계를 뛰어넘는 것과, 노동자건강이라는 의제를 노동자 대중의 조직화를 통한 현장 통제권 확보로 전화시키는 것을 과제로 남겨두고 있다.



5. 보건의료운동의 현 정세와 과제

가속화되는 의료민영화와 무상의료 공약의 한계

의료공급체계를 구성하고, 그 속에서 이윤을 추구하는 민간보험자본, 병원자본, 제약자본은 2000년대를 경과하며 변화하고 있다. 2006년 실손형 의료보험 상품이 허용된 이후 민간의료보험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대형병원자본은 지속적인 투자와 병상확충을 통해 시장 지배력을 높이고 중소병원, 의원과의 연계를 통해 독립적 의료전달체계를 구축하려 시도하고 있다. 초국적제약자본은 지적재산권과 독점적 지위를 통해 막대한 이윤을 거두고 있고, 특허의약품으로 인한 약가부담은 건강보험재정을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양상을 요약하면 시장의 확대와 그로 인한 자본간 경쟁의 심화라고 볼 수 있다.
보건의료자본의 성장과 경쟁은 보건의료체계의 모순을 심화시킨다. 민간 병원들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신약과 신의료기기 등 비급여 진료를 확대하고 의료비를 더욱 상승시킨다. 그래서 보험료가 올라도 보장성은 제자리에 머물고 있다. 정부는 의료비 상승을 억제하는 명분으로 약가인하 정책, 포괄수가제 도입 등의 조치를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단편적이고 부분적인 제도 변화는 의료보험통합과 마찬가지로 건강보험 운영의 합리성과 효율성의 맥락에서 이뤄지고 있고, 공급자의 반발로 인해 지속적으로 추진하기도 힘들다.
정부와 자본이 추구하는 개혁의 핵심은 의료민영화를 향해 있다. 정부는 보건의료를 ‘산업’으로 보고 의료관광을 활성화한다는 명분하에 제3자 지불제도를 도입해 민간의료보험과 병원이 직접적으로 거래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도 하고,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지 않는 영리병원을 허용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추진한다. 영리병원이 허용되고 성장하게 되면, 의료비를 상승시켜 공적보험 재정을 부실하게 만들고, 민간보험은 성장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2012년 한미FTA 발효는 민간 보험자본, 초국적 제약자본, 거대 병원자본의 특권을 보호하고, 보건의료의 민영화를 가속화시킬 것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민영화는 재벌 대기업의 미래 생존 전략에 종속되고 있다. 재벌 대기업은 민간보험, 병원, 제약, 의료기기 등 관련 산업을 포괄하는 의산복합체를 형성하기 위한 전략을 추진해왔다. 삼성이 대표적이다. 이미 삼성은 삼성생명과 삼성병원이라는 국내 최대수준의 민간의료보험자본과 병원자본을 소유하고 있다. 게다가 이건희 회장이 경영에 복귀하면서 5대 신수종사업을 발표했고, 그 중 2개 분야가 제약과 의료기기다. 삼성은 의료사업일류화 추진단을 구성하고 삼성바이오로직스라는 제약회사를 설립했으며, 삼성메디슨, 삼성전자 의료기기팀 등 의료기기산업에 진출하고 있다. 또한 영리병원을 추진하고 있는 인천 경제자유구역 송도국제병원의 주요 투자자다.
자본이 보건의료체계를 장악하기 위해서는 보건의료체계의 공적 속성이 축소되고, 이윤추구에 대한 규제가 완화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2005년 삼성생명 내부보고서는 국민건강보험 단일체계를 무너뜨리고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한 독립적 보건의료체계를 만들 계획을 제출한 바 있다. 삼성그룹이 자본을 투자하고, 삼성병원은 삼성생명과 계약을 맺은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삼성이 만든 약과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삼성에 의한, 삼성을 위한 보건의료체계가 점점 현실화되고 있다.
보건의료운동도 자본의 보건의료체계 개편에 맞서 민중의 건강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을 모색해왔다. 2004년부터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산업화의 문제를 인식하고 의료민영화 저지투쟁을 본격화했으며, 이를 통해 보건의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이라는 인식이 운동진영 내에서 일반화되었다. 의약품접근권운동을 통해서 초국적제약자본의 횡포와 지적재산권의 문제가 제기되었고, 의약품 문제가 보건의료운동에서 고민되기 시작한 점 역시 고무적이다. 노동안전보건운동도 근골격계 집단 산재인정 투쟁 등을 통해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내는 노동권, 노동안전보건의 후퇴와 노동강도 강화 문제를 인식하게 했다.
그러나 정부와 자본이 구체적이고 포괄적으로 의료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는데 비해 보건의료운동의 요구와 실천은 여전히 통합적 전략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의료민영화 저지투쟁은 보건의료체계의 공공성 확보와 의료자본 통제를 위한 전망 없이 반대투쟁에 그치고 있으며, 무상의료운동은 2005년 단발적 실천을 한 후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에서 제출한 무상의료계획은 선거를 위한 정책안에 그치면서 구체적인 실천을 만들어내지 못하였다.
이명박 정부 집권 중반기에 범국본을 탈퇴한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가 대안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 하에 보험료 인상을 통한 건강보험보장성 강화를 제안했다. 범국본과 시민회의는 보험료 인상이 운동적 요구가 될 수 있는지, 보험료를 인상하면 보장성이 정말 상승할 것인지, 시장적 성격의 보건의료체계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등을 논의하였으나 의견을 합의하지는 못했다. 범국본, 시민회의 등으로 각자 대안을 제출하고, 진보정당, 민주노총이 개별적으로 사업 진행하는 것을 정리하기 위해 민주노총은 ‘건강보험 대개혁을 위한 연석회의’를 소집하고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를 2012년 출범 해 다시 보건의료운동의 연대체를 형성할 예정이다.
이렇게 대안을 두고 운동사회 내 의견이 분분하던 2011년에 민주당이 ‘실질적 무상의료’를 당론으로 정했다. 기존 보건의료운동의 요구를 상당 부분 수용한 내용이지만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는 의료공급체계의 통제 없이는 불가능하다. 공공의료 확대 방안도 구체적이지 못하고 의료공급체계 통제방안도 빠져있는 민주당의 정책은 보건의료체계 전반의 질적 변화를 만들 수 없다. 또한 최근 송도 영리병원 추진 흐름에 민주통합당이 침묵하고 있는 것을 보면 민주통합당이 무상의료 공약을 진정 실현시킬 의지가 있는지 의심하게 만든다.


보건의료운동의 현 과제

이러한 정세를 돌파하기 위한 보건의료운동의 과제는 엄중하다. 보건의료체계를 장악하고 이윤을 창출하려는 자본의 전략을 비판하는 것은 구체적이고 포괄적인 운동 전략을 구성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민주통합당의 모호하고 허울뿐인 선거 전략과 구분되는 보건의료운동의 독자적 전략과 주체 형성을 위한 실천 계획이 필요하다. 의료자본 통제와 의료민영화 저지가 없다면 ‘무상의료’는 결코 실현할 수 없다. 보건의료운동은 보건의료체계의 민간중심성을 비판하고, 보건의료체계를 민중이 통제할 권리를 요구해야 한다. 보장성 강화가 ‘의료기관의 영리추구 통제’를 통해 ‘의료민영화 저지’라는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가질 수 있도록 통합적으로 기획되어야 한다.
김대중 정부 시기 보건의료운동이 제도개혁을 운동의 핵심 과제로 사고한 것은 자본주의적 보건의료체계에 대한 문제의식이 부재하고 대안을 만들고 요구해야 할 대중적 주체가 미약했기 때문이다. 교안 I절에서 살펴봤듯이 질병과 그 질병을 해결하기 위한 보건의료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의해 결정된다. 보건의료의 위기는 단지 제도적 문제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의 위기를 반영한다. 보건의료운동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노동신축화에 맞서는 노동자 민중들의 현장 투쟁에 결합하면서 ‘질병의 사회경제적 원인’에 대한 폭로와 비판을 수행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자본의 이윤이 아니라 노동자민중의 건강을 요구하는 주체를 형성해야한다. 대중의 건강문제를 유발하는 원인과 보건의료체계의 모순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이를 바탕으로 노동자운동을 포함하는 전체 사회운동과 보건의료운동의 의제를 결합해 연대를 구축해야 한다.
현 시기 보건의료체계의 대안에 대해서는 아래의 고민이 포함되어야 한다. (1) 재원 마련 방안에 있어서 ‘자진 보험료 인상’은 운동의 요구가 될 수 없다. 정률적인 보험료 부과체계, 보험료 상한제는 조세에 비해 역진적이기 때문에 누진적 부담을 요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재원 마련에 있어 국가자본의 책임을 요구해야 한다. (2) 병원통제 방안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는 해법이 아니다. 비급여 중 상당 부분은 필수 의료가 아닌 이윤 확대 목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비급여가 발생하지 않도록 통제해야 하고, 혼합진료 금지를 통해 환자와 공급자의 비급여 진료 유인을 차단해야 한다. 포괄수가제, 총액예산제와 같은 수가제 개혁은 완결적 해결책이 아니다. 정책 도입은 병원의 이윤 통제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제도 도입의 정치적 의미를 환기시키는 계기로 작용해야 한다. (3) 공공병원을 확충하고, 병원의 이익감소분에는 공적 의료서비스 확충을 조건으로 한 정부보조금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병원에 대한 공적 통제력을 높여가야 한다. 이러한 ‘병원 통제, 공공성 강화 방안’은 보장성 확대운동과 의료민영화 저지 투쟁을 연결시킬 수 있는 유효한 요구안으로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4) 약제비 적정화 방안, 특허의약품 강제실시와 같은 의약품에 대한 공적 통제를 확대해 초국적 제약기업의 이윤을 제어해야 한다. (5) 병원자본, 제약, 의료기기자본의 통제를 통한 의료서비스 제공은 의료비를 절감하는 문제가 아니라 건강불평등의 감소를 통한 민중의 건강 확보를 목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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