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14/11 창간준비1호
미래 전략에 대한 세 가지 제안
냉소를 깰 현실적 비전과 전략 제시가 필요
민주노총은 창립 20주년을 한 해 앞둔 2014년 대의원대회에서 새로운 20년의 전략을 수립하기 위하여 미래전략위원회를 구성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위원회의 활동은 지지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창립 이후부터 끊임없이 조직혁신안, 조직 발전 전략을 논의해왔다. 2000년에는 노동운동발전전략위원회, 2004년과 2009년에는 노동운동혁신위원회를 구성하여 미래 전략과 혁신방안에 대한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 모두 조직적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중단되거나 구체적이고 현실성 있는 전략 수립으로 이어지지 못해 탁상공론에 그쳤다. 그러다보니 비슷한 방식으로 추진된 미래전략위원회에 기대보다는 냉소가 앞설 만도 하다.
12월 민주노총 임원 선거에 따라 어떠한 집행부가 당선되든 20주년을 맞는 민주노총의 새로운 비전과 전략을 제시하는 일은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현장의 냉소를 걷어 내고 제대로 된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첫째, 현실에 대한 정확한 진단에 기반하여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그동안 민주노총 내에서는 자기 역량에 대한 진단 없이 당위에만 입각하여 계획을 수립하는 풍토가 만연해왔다. 목표의 설정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 수립에 이르기까지 실행가능성이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한다. 둘째,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한정된 자원을 파급 효과가 큰 목표 달성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셋째, 결국 전략의 실행이 관건이다. 전략 수립 과정은 미래 전략에 대한 조직 내 합의를 이끌어 내고 전략을 실행할 주체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어야 한다. 충분한 토론과 의견 수렴, 민주적 합의 절차를 통해 전략에 대한 조직 내 동의를 높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수세적 방어를 넘어 전진을 위한 진지 구축에 나서야
민주노총은 그 동안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 추진을 저지하는 데 집중해왔다. 하지만 이렇다 할 성공을 거두지 못하면서 현장에서의 신자유주의 재편은 상당히 진행되어 투쟁의 대중적 토대를 잠식했다. 신자유주의의 폐해에 대한 공감대가 확대되었지만 민주노총은 자신의 대안을 세력화하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 보궐 선거 이후 ‘경제 살리기’를 명분으로 친기업 행보를 노골화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공세를 사력을 다해 방어해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이겨 낼 수 없다. 자본의 힘의 우위 속에 진행되는 파상 공격에 무너지는 진지를 정비하면서도, 있는 자원을 끌어 모아 전략적 요충지를 하나 둘 점령하며 진지를 쌓아 나가며 제대로 된 싸움을 준비해야 한다. 주체 역량에 대한 냉정한 진단 없이 무작정 진군을 해서도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무너지는 진지에 몸을 움츠리고만 있어서도 안 될 것이다.
불평등 심화나 고용 불안 등 신자유주의의 모순이 집약되고 있는 부분에서부터 반격을 위한 진지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 최근 신자유주의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조세 제도의 개혁이나 복지 확충 등 재분배 영역의 정책 대안이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재분배 영역에서의 해결책은 한계적이며 생산-분배 영역에서 해결책이 필요하다. 임금, 고용, 노동시간 등의 노동조건이나 재벌에 대한 통제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영역에 대해 민주노총의 요구는 늘 있어왔다. 하지만 이를 사회적 이슈로 만들고 이에 대한 지지를 넓혀나가며 현장의 운동과 결합하는 입체적이고 전략적인 투쟁은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다.
집단교섭을 통한 아래로부터의 연대임금 전략
먼저 임금투쟁 전략을 예로 들어 보겠다. 한국 사회의 저임금과 임금 불평등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소득분배 자체가 낮고 저임금 노동자 비율도 높다. 정부는 노동자 내에서의 임금격차를 부각시키면서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대기업-정규직 노동자들이 과도한 임금을 누리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연공급(호봉제)을 성과급이나 직무급으로 바꾸는 것이 마치 임금격차를 줄이고 공정한 임금 체계를 도입하는 것인양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오래 반복된 것이다. 그런데 통상임금 범위가 확대되는 것이 불가피함에 따라 경영계는 이번만은 반드시 임금체계를 성과주의 임금체계로 바꾸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고 정부는 이에 적극 호응하고 있다.
그러나 임금격차를 줄이는 가장 유력한 방도는 노동조합의 영향력 확대다. 실증 연구에 따르면 노조 가입률 및 조직률이 높은 산업에서 오히려 조직-비조직부문간 격차나 사업체 규모 간 임금격차가 적다. 국제적으로 비교해도 단체협약 적용률이 높은 나라일수록 임금격차는 적다.
한국의 경우 노동조합 조직율도 낮고 기업별 교섭이 주된 교섭 형태이며 단체협약의 적용 확장 제도가 없어 단체협약 적용률이 매우 낮다. 노동조합의 영향력이 너무 적어서 문제인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집중화된 산별교섭을 통해 임금격차의 축소와 임금 표준을 높이는 연대임금 정책이 추진되어야 한다. 하지만 민주노총의 조직력이 취약하고 제도가 불리하여 당분간 산별교섭의 달성은 어려울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시장 임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규모의 집단교섭이나 패턴교섭 등을 통해 저임금 업종의 임금 표준을 올려 나가는 전략이 당분간 유효할 수 있다.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는 대학 청소노동자 집단교섭을 통해 매년 높은 수준의 임금인상을 쟁취해왔다. 이는 노조가 조직되지 않은 사업장에도 영향을 미쳐 업종 전체의 임금이 인상되는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민주노총 차원에서 몇 가지 전략적 업종을 선정하여 산별 조직이 함께하는 공통의 집단교섭과 패턴교섭을 추진해 볼 수 있겠다.
민주노총 차원에서 ①저임금 노동자의 대대적인 임금 인상에 대한 사회적 캠페인 ②단체협약 효력 확장 제도 등 관련 법·제도의 개선 운동 ③ 저임금 업종에 대한 공동 임금 투쟁의 조직 등을 입체적으로 추진해보자.
‘전략적’ 전략 조직화를 위해
2000년 초반부터 미조직 노동자에 대한 대대적인 조직화가 민주노총의 전략 과제로 제기되고 실행되어 왔다. 조직화 사업의 결과 건설, 민간·공공 서비스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조직이 확대되었지만 기존 노조의 탈퇴나 조합원 수의 감소로 민주노총의 전체 조합원 수는 2000년 초반 이후 60만 명 후반대에 정체되어 있다.
민주노총 전략 조직화 사업은 여러 가지 면에서 한계를 보이고 있다. 일단 민주노총 자체가 산별 조직의 연합체로서 강력한 지도력을 가지고 조직의 자원을 집중하여 전략 조직화 사업을 직접 수행하기 어렵다. 결국 전략 조직화 사업이 취지대로 ‘전략적’으로 진행되지 못하고 산별의 사업을 균형있게 지원하는 ‘비전략적’ 사업이 되고 있다.
그런데 각 산별연맹이 주도하고 있는 전략 조직화 사업 역시 조직화 성과가 그리 크지 않다. 전략 조직화 사업 자체의 개선점에 대해서는 그 동안 많은 평가가 있었기에 여기서는 다소 다른 시각 - 노동조합에 대한 미조직 노동자의 수요라는 측면 - 에서 문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한 연구(김유선, 「노동조합 가입성향 결정요인」)에 따르면 비조합원들 중 조합 가입에 적극적 의사가 있는 사람이 7퍼센트, 소극적 의사가 있는 사람이 25.6퍼센트다. 한국의 경우 미국 등에 비해 노동조합이 개별 기업의 근로조건 개선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가입하겠다는 대답이 노동조합의 사회적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가입하겠다는 대답보다 월등히 많은데, 이는 한국의 노동조합이 강한 노조(Big Labor)가 아니라 약한 노조(Small Labor)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런데 노동조합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부정적 시각과 긍정적 시각 역시 노동조합 가입 의사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노동조합이 기업의 성장, 생산성, 경제성장에 부정적이라고 생각할수록 노조 가입을 꺼리고, 분배 구조 개선이나 민주화에 노동조합이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수록 노조 가입 의사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홍석범, 「노동조합 가입의사의 영향요인에 관한 연구」).
따라서 전략 조직화 사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노동조합이 조합원의 실질적 경제적 이익과 전체 노동자를 대표하는 사회적 운동을 동시에 전개해야 한다. 또한 비조합원들의 가입 의사를 높이기 위해서는 정부의 노동 탄압 정책을 바꿔내고 노동조합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
총연맹이 직접적으로 전략 조직화의 주체가 되는 것은 현재 쉽지 않아 보인다. 따라서 당분간 실질적인 조직화 사업은 조직화의 경험이 축적되어 있고 실제 조직화를 하고 있는 산별노조에서 추진하되, 총연맹은 노동3권 보장을 위한 사회적 캠페인과 같은 지원 사업에 집중하는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 또한 총연맹은 전체 노동자의 조직화를 위한 분석과 전략을 수립하며 산별 간 조직화 영역의 조정 또는 새로운 영역에 대한 실행 계획의 수립 등을 담당하며 전략 조직화의 ‘전략 본부’로서 역할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산별노조, 정치세력화 전략
: 연대 강화로 통합의 토대를 구축해야
민주노총은 설립 초기부터 산하 전 조직이 조속한 시일 내에 산별노조로 전환할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그 결과 현재 약 85퍼센트의 조직이 형식적으로는 산별 전환을 완료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산별노조는 산별교섭을 못하고 있을뿐더러 대부분의 조직이 ‘무늬만 산별’에 머물러 있으며 기업별 노조로의 회귀 경향은 더욱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산별 구획에 대한 조직 내 갈등도 커지고 있다.
산별운동의 토대 없는 조직 형식적 산별 통합은 결국 산별 운동의 형식화로 귀결된다. 더구나 현재 상황에서 산별 구획 정리 시도는 오히려 기존 산별 조직의 해체와 기업별 노조로의 회귀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따라서 당분간 산별 조직에 대한 조직 형식적 개편보다는 산별 내에서 또는 산별을 넘나들며 내실을 다지는 초기업적 운동을 전개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치세력화 운동 역시 마찬가지다. 당 통합을 중심에 두는 진보정치 재편 전략은 현재로서는 불가능에 가깝다. 민주노총은 무리하게 당 통합 운동을 주도하기보다는, 반신자유주의 연대 운동을 복구하고 이를 중심으로 한 당들과 대중조직들의 공동 활동을 통해 통합을 위한 토대 구축 역할에 집중해야 한다.
이상 몇 가지 영역에서 민주노총 미래 전략의 과제들에 대한 의견을 제시해보았다. 이번 선거에서 어떤 집행부가 당선되더라도 반드시 당선 직후 민주노총 내 의견 그룹과 가맹산하 조직들이 광범위하게 참여하는 미래전략위원회를 구성하여 민주노총의 새로운 미래를 위한 지혜와 의지를 모아 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