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14/11 창간준비1호
직선제, 변화의 계기가 될 것인가?
민주노총 서울본부에서 활동한 지 7년이 되었다.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한 곳이 바로 이곳이다. 많은 활동가들이 힘들지만 매력 있는 곳이 지역본부라고 말한다. 하지만 7년이 지난 지금 지역본부의 활동방향에 대해 답을 찾기가 쉽지 않다. 어쩌면 민주노총의 활동방향이 어때야 하는지 쉽게 답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지역본부는 지역의 단위사업장들 간의 연대투쟁과 함께 민주노총의 주요한 의제들을 지역에서 실천하기 위한 활동을 많이 한다. 철도·의료민영화 저지,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 사업, 생활임금 쟁취 투쟁 등을 위해 지역의 해당사업장, 여러 단체·정당과 함께 대응기구를 구성하여 선전전이나 서명운동과 같은 대국민 홍보활동을 많이 한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민주노총이 대다수 노동자들과 많이 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번 민주노총 직선제는 전체 노동자들에게 인정받는 선거가 될 수 있을까.
직선제와 민주노총
민주노총 직선제는 1990년대 말부터 필요성이 제기되었던 오래된 조직적 과제이다. 애초에는 직선제를 통해 조직 내 민주주의를 한 단계 발전시키고 조직을 혁신하여 민주노총을 강화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나 모두가 알고 있듯이 단순히 직선제를 치루는 과정을 통해서, 또 성공적으로 치루어 낸다고 해서 저절로 혁신이 되지는 않는다. 한 달밖에 남지 않은 지금도 조합원들에게 직선제를 제대로 홍보하지 못했고, 그 의미도 심어주지 못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무관심과 냉소가 일반적인 정서다. 2만여 개의 투표소를 관리하는 것만큼이나 직선제를 통한 혁신은 더더욱 어려운 일인 것이다.
민주노총은 노동조합의 연합체이면서 전체 노동자 계급을 대표하는 조직이다. 또한 민주노총은 총노동전선의 지휘부 역할을 맡고 있다. 전체 노동자 중에서 민주노총으로 조직된 노동자가 5퍼센트도 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이 정부와 자본에 맞서 싸우는 유일한 대중조직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노총은 소속 조합원의 임단협을 위한 싸움을 넘어 최저임금 인상·생활임금 쟁취 투쟁, 노동법 개악 저지, 공공부문 민영화 저지 등 전체 노동자와 국민을 위한 조직으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민주노총은 계급대표성의 상실로 인한 사회적 위상 하락, 정체된 조직화, 고령화로 인한 보수화와 활력 상실 등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총노동 전선의 투쟁지휘부의 역할은 무너지고 있는 반면 우리사회는 재벌 영향력 급증, 금융시장 확대, 소득 격차 증가로 노동자 서민의 삶은 더욱 팍팍해지고 있다.
직선제를 어떻게 치를 것인가?
첫째, 박근혜 정권과 자본에 당당하게 맞서 싸울 힘을 모으는 직선제가 되어야 한다. 이번 직선제를 통해 선출되는 민주노총 집행부는 전체 조합원이 직접 뽑은 대표라는 위상을 갖게 된다. 핵심 공약과 사업에 대한 조합원들의 동의와 지지를 선거 과정에서 얻는다면 말이다. 새롭게 선출된 지도부를 모두가 인정하고 존중하는 성숙된 모습을 보이고, 자신의 의견과 다르다 해도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직선 지도부가 공약을 실현해나갈 수 있는 힘을 부여해 주어야 한다. 직선제를 결의한 만큼 더 많은 토론이 이뤄져야 한다. 무책임한 모습과 패권주의가 아니라 다양성이 인정되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조직의 민주적 질서가 공고해질 때 민주노총이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직선제는 그 과정과 결과가 박근혜 정권과 자본에 대한 전선을 공고하게 세우는 계기가 돼야 한다. 선거 과정이 민주노총의 힘을 집결시켜나가는 과정이어야 한다. 모든 후보들이 전국노동자대회를 힘 있게 조직하고 그 힘을 바탕으로 새롭게 선출된 지도부는 박근혜 정권과 자본에 당당하게 맞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진보진영의 모든 투쟁이 민주노총으로 집약되는만큼 민주노총이 투쟁 지휘부로서의 역할을 해나가야 한다.
둘째, 전체 노동자들을 위한 직선제가 되어야 한다. 민주노총 직선제가 민주노총만을 위한 직선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직선제를 통해서 전체 노동자들의 보편적 권리를 위한 투쟁을 해나가겠다고 선포해야 한다. 조합원의 이익을 대변하고, 민주노총 소속 사업장의 투쟁을 열심히 하겠다는 것만으로는 직선제의 의미를 살릴 수 없다.
또한 조합원과 국민이 듣기에 생소한 단어, 아무런 의미도 못 느끼는 단어를 내세워 선거에 임해서도 안 된다. 국민들의 눈에 민주노총 직선제가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서는 안 되고, 조합원들에게는 정파 혹은 상층 운동세력들의 권력잡기 게임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하는 선거, 조합원들이 동의할 수 있는 내용을 이야기하는 선거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직선제의 혁신 과제이면서 민주노총이 전체 노동자와 함께할 수 있는 혁신 과제이기도 하다.
셋째, 조직되지 않은 노동자들을 위한 민주노총을 만드는 직선제가 되어야 한다. 1800만 노동자 중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200만 명이 넘고 그중 4인 이하 사업장의 노동자가 약 30퍼센트를 차지한다. 19세 이하 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또 법정근로시간이라는 개념조차 없는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는 350만 명에 달한다. 다섯 명 중 한 명의 노동자가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민주노총은 과연 이들 노동자들을 위한 대책이 있는지 자문해보아야 한다. 이전과 같이 전체 노동자 임금의 50퍼센트 수준으로 최저임금을 정하자는 주장을 당위적으로 외치는 것만으로는 전체노동자들을 대변할 수 없다. 월 평균임금이 민주노총의 조합원 평균임금보다 적은 130만 원, 그중 최저임금도 못 받는 30퍼센트의 노동자들을 위한 공약이 이번 직선제를 준비하는 후보들의 핵심 공약이 되어야 한다.
올해 지속적으로 논의되어 온 전략조직화 사업은 차기 집행부의 과제로 넘겨졌다. 모든 이들이 비정규직 문제가 중요하다고 말하고, 비정규직 사업을 전략조직화 사업으로 설정하였으나 아직까지 크게 진척되지 못했다.
전략조직화 사업은 자연발생적인 조직화가 아니라 의식적으로 대상을 설정하고 조직하는 것이다. 그만큼 예산, 사람, 조직의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 전략조직화 사업은 민주노총과 노동자 운동에 새로운 주체와 새로운 표상을 만들어가는 차기 집행부의 과제가 되어야 한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에게 긍지를 심어주자
조합원들이 주체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민주노총의 직선제가 정파나 조합원만의 선거가 아닌 전체 노동자를 위한 선거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조합원들에게 민주노총의 조합원이라는 긍지를 심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민주노총 조합원이라서 ‘특혜‘를 얻어가는 것이 아니라, 민주노총 조합원이기에 할 수 있는 일들을 같이 고민해나가야 한다. 직선제 완수와 민주노총의 혁신을 위해서 나부터 선거에 참여해야 민주노총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자긍심도 강해질 수 있다.
민주노총이 추구하고 있는 기본 정신과 한국 사회에 외쳐야 할 가치를 실현하는 직선제가 되어야 한다. 평등한 사회, 생명과 인권이 존중받는 사회를 위해 민주노총 스스로 질적 변화를 시도해나가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민주노총 전체 조합원이 단위 노조의 현안이 아닌, 한국 사회가 추구해야 하는 가치를 토론하고 교육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세월호와 관련된 안전사회를 위한 교육, 반핵·반전평화, 국제연대, 페미니즘, 인권과 같은 교육으로 민주노총의 질적 발전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조직된 노동자들이 이 사회를 바꾸기 위해 노력해 나갈 때만이 미조직된 노동자들도 함께 할 수 있다.
내가 곧 민주노총! 세상을 바꾸는 민주노총! 이라는 말에 조합원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직선제와 민주노총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