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 특집
  • 2014/12 창간준비2호

2015년 여섯 가지 노동 쟁점

  • 이유미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수출 재벌 성장 둔화로 인한 경제침체: 또 다시 스텔스 구조조정인가?

2015년 노동자들에게 가장 크게 체감되는 정세 중 하나는 수출 재벌의 성장 둔화일 것이다. 한국 재벌들의 2000년대 급성장이 한계에 부딪히고 중국 경제성장 속도가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재벌들의 성장이 고용을 늘리지 않은 만큼 대기업 노동자들의 고용 조정이 심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 재벌의 특징은 성장의 열매는 나누지 않아도, 침체의 고통은 철저하게 전가하는 것이다. 대기업은 수직적인 하청구조를 통한 비용절감으로 경쟁력을 확보하고, 하청업체들은 간접고용 노동자에게 단가 인하 압력을 떠넘긴다. 하청업체들은 일부는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대신 잔업특근을 마음껏 활용하고, 간접고용 노동자는 고용과 해고를 반복하며 생산 유연성을 높인다. 

전자산업의 예를 들면, 월 300시간을 200명이 일하다가도 그 다음 달에 150시간 이하로 50명이 일하는 식으로 공장이 돌아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삼성전자 생산량 감소로 전자산업의 경우 1차 부품사부터 말단 하청까지 매우 큰 수준의 고용 조정이 이미 진행되었다.

그러나 간접고용의 확대로 구조조정이 진행되어도 잘 표시가 나지 않는 것이 최근의 특징이다. 간접고용 노동자 중심으로 고용조정을 먼저 하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제조업 대기업의 간접고용 노동자는 정규직의 40퍼센트에 달하는 약 40만 명에 달한다. 
 

임금체계 개편: 노동운동은 노동귀족론을 넘어설 수 있을까?

정부는 임금체계 개편을 본격적으로 빼어들었다. 선거가 없는 내년에는 더 과감하게 밀어붙일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연공급을 줄이고 성과급을 늘리는 데 초점을 두고, 공공기관 2차 정상화의 일환으로 내년에 추진할 계획이다. 현대중공업은 얼마 전 기습적으로 전 직원 연봉제 도입을 발표하기도 했다. 
 
 
정부가 주장하는 연공급 폐지의 첫번째 근거는 연공급으로 인해 임금격차가 커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궤변이다. 임금격차가 큰 것은 연공급 유무 때문이 아니라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액급여 자체가 절대적으로 작기 때문이다. 

이들 노동자들의 정액급여는 보통 최저임금+α 기본급에 정기상여금 100~200퍼센트가 전부다. 심지어 최근에는 포괄임금제로 인해 연단위로 초과근로까지 계약해 아예 잔업특근도 무료로 부리는 사업주들이 많다. 최저임금 미만 노동자가 200만이 넘는다는 건 유명한 이야기다. 

둘째는 연공급으로 임금이 부담돼 정년연장이 어렵다는 것이다. 이 또한 궤변이다. 보통 연공급은 설계 자체가 입사 초기 임금을 적게 받고, 그 부분을 나중에 보상받는 체계다. 나중에 많이 받는 게 아니라 입사 초기에 적게 받는 게 오히려 진실에 가깝다. 몇 년 정년연장을 위해 전체 호봉체계를 없애면 그만큼 입사 초기에 임금을 높이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정부 주장은 입사 초기 임금은 그대로 두고 호봉제를 없애는, 그냥 임금을 삭감하겠다는 주장이다.

그럼에도 정부 주장이 먹히는 것은 임금격차가 워낙 커서다. 다른 말 필요 없이 노동귀족론이면 다 통한다. 호봉제를 받는 노동자들이 저임금 노동자와의 상향평준화를 위해 싸우지 않으면, 자본이 바라는 하향평준화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통상임금도 마찬가지다.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는 통상임금 포함 수당이나 정기상여가 거의 없다. 일부 정규직에게만 있는 수당들을 가지고 갑론을박하기보다는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 인상 수단을 함께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
 

연금 개악: 고령화 시대의 또 다른 계급투쟁, 어떻게 전체 노동자 문제로 다가설 것인가?

정부의 공무원연금 개악이 시작되었다. 노동시장이 고령화 된 곳에서는 가장 첨예한 갈등이 연금문제다. 최근 유럽에서 가장 뜨겁게 진행된 총파업 대부분은 연금 문제에 관한 것들이었다. 재정적자를 우선에 둔 정부는 더 걷고 덜 주려하고, 연금수령 노동자들은 현 상태를 지키려 한다. 베이비붐 세대의 정년퇴직이 본격화되는 향후 10년간 이 문제는 계속 쟁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공무원연금에서 시작했지만 결국 국민연금으로 확대될 수밖에 없는 문제다.

한국의 연금 문제는 노동자들에게 다소 왜곡되어 있다. 아직 본격적인 연금수령자들이 나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연금은 나의 미래 소득보다는 내가 현재 부담해야 할 지출로 인식된다. 이미 오랫동안 지급이 이뤄진 공무원연금과 달리 국민연금에 대한 체감도가 낮다보니 공무원연금 문제가 연금 전체 문제로 확장되기 어려운 조건이기도 하다. 
 
공무원연금 개악은 고령화 시대 본격화 될 연금 개악의 서막이다. 연금 문제가 전체 노동자의 계급적 이해가 걸린 문제로 설정될 수 있도록 민주노총 차원의 전략을 만들 수 있느냐가 관건으로 보인다.
 

휴일근로 관련 근로기준법 개정: 노동시간 단축인가, 노동시간 유연화인가?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을 근기법 개악으로 뒤집으려는 정부와 여당의 기만책이 구체화되고 있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주 52시간까지로 노동시간을 제한하고 있으나 노동부가 휴일근로는 연장근로가 아니라는 행정해석으로 이를 무력화시켜 놓은 상태다. 노동부 해석은 주 노동시간을 68시간까지 허용한다. 1심과 2심을 승리한 성남시 환경미화원들의 휴일근로 중복수당 재판이 곧 대법원에서 판결날 것으로 보여 내년에는 어떤 식으로든지 법 개정이 있을 전망이다.
 
이에 대해 여당이 내놓은 근기법 개정안은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것이 아니라 휴일근로수당을 없애 사용자의 부담을 덜어주고, 현행 최장 3개월로 제한되어 있는 탄력적 근로시간제도 최장 1년으로 늘리자는 황당한 안이다. 이 경우 초과근로시간을 연 단위로 포괄적으로 계약해 사실상 초과, 휴일 근로수당 없이 잔업특근을 시킬 수 있는 포괄임금제가 법적으로 보장된다. 

한국의 고용제도는 여러 방식의 기간제고용과 간접고용으로 인해 OECD에서도 상당히 유연성이 높은 편이다. 노동시간도 사실은 잔업특근이 무제한으로 허용돼 현장에서 운영은 무규제에 가깝다. 노동전문가들은 한국 노동시장의 특징은 비(非)규제이기 때문에 탈규제를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역설적인 상황이라고도 비판한다. 노동조합이 있어 단체협약으로 규제하지 않으면, 현장은 고용과 노동시간에 관한 규제가 없다. 정부의 법 개악에 대해 조직노동자가 나서지 않는다면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최악의 임금체계와 임금손실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정리해고 완화: 법 개정 없는 정리해고 일반화를 막을 수 있을까?

정부는 비정규직 종합 대책을 세운다며, 정규직 해고요건 완화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규직 고용 때문에 비정규직 처우가 악화된다는 식상한 레퍼토리다. 하지만 최근 대법원의 정리해고 관련 판결로 이게 실제 정책으로 구현될 가능성이 커졌다. 

대법원은 11월 초에 있었던 쌍용차 정리해고 무효 소송에서 경영상의 사유가 경영자에 의해 포괄적으로 판단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앞서 고등법원은 회계조작으로 인해 경영부실이 과장되었고, 해고 인원 산출도 근거 없이 이뤄졌다고 판결했는데, 대법원은 회계도 해고 인원 산출도 경영자가 알아서 판단할 일이라는 식으로 판결했다. 해고에 관해서는 법 위에 경영자가 있다는 거다.
 
 
정부의 해고요건 완화는 대법 판결을 일반화하는 방식으로 굳이 근로기준법을 손대지 않고도 가능할 수 있다. 쌍용차는 미래 매출 예상을 부정적으로 한 후 이를 회계에 반영해 손실을 발생시키고, 매출이 없고 손실이 크니 한 개 교대조를 통째로 없애야 한다는 논리로 정리해고를 했다. 이게 일반화 되면 사용자가 매출 계획만 바꾸면 정리해고가 가능하다.

노동운동이 이 대법원 판례를 뒤집기 위해서는 정리해고에 대한 포괄적 규제를 법제화해야 한다. 정부가 비정규직 종합 대책에 이걸 넣는 만큼, 이미 해고가 자유로운 비정규직과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을 어떻게 조직할지가 관건이다.
 

민주노총 직선 1기 집행부: 민주노총이 노동자들에게 신뢰를 얻을 수 있을까?

민주노총 20주년은 최초의 민주노총 직선 1기 집행부로 시작한다. 민주노총 임원 직접투표는 민주노총을 70만 조합원의 대표기관으로 만들자는 취지로 치러진다. 그러나 직선 1기 집행부가 어떻게 하냐에 따라 기대는 더 큰 실망으로 바뀔 수도 있다. 

직선 1기 집행부가 맞닥뜨린 상황은 녹록치 않다. 민주노총 조합원 간에도 임금과 노동조건 격차가 크고, 전체 노동자와 민주노총 조합원 사이도 격차가 크다. 이른바 총노동 의제라고 불릴 수 있는 통일된 이해관계가 크지 않다. 박근혜 정부가 내년 초점을 두는 것은 임금과 노동시간 유연화다. 조직 노동의 이해관계와 직접 결부되지만, 동시에 조직노동이 사회적으로 고립되기 가장 좋은 의제기도 하다. 민주노총의 대공장 노동조합들은 조합원 고령화로 인해 투쟁력이 하락해 있어, 이해관계가 걸려있어도 예전처럼 투쟁에 나서는 것이 부담스럽다. 기간제, 간접고용,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임금과 노동시간 유연화보다도 경기침체로 인한 고용불안과 일감부족이 더 일차적 관심사다. 

따라서 직선제 1기 집행부는 산적한 문제가 일점돌파 방식으로 해결되기 어려운 현실을 감안하여, 조직 노동자와 미조직 노동자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충실히 반영하기 위한 노력에 힘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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