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1.9.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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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부국가에서 노동조합에 대한 페미니즘의 도전: 가능성과 모순들

로즈마리 와스켓 | 번역 : 박주영(편집부장)
대부분의 선진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조합에 대한 페미니즘적 도전은 25년도 훨씬 이전부터 시작되었다. 이 글은 여성과 노동조합사이의 양가적인 관계의 역사를 검토하고, 노동조합의 역할과 목표, 구조와 관습, 그리고 전반적인 관점에서 페미니즘이 만들어온 중요한 변화에 대해 평가하는 것이다. 과연 페미니즘은 자본주의 세계에서 노조운동을 혁신하고 사회주의적 방향으로 이끄는데 기여했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매우 복잡하다. 여기에 대해서는 페미니즘의 내부에 존재했던 다양한 스펙트럼들의 영향과, 1980년대부터 1990년대에 걸쳐 노동조합과 노동대중에 대한 공격과 이들 스펙트럼들이 맞물리게 되는 방식들을 동시에 검토해야 한다.
20세기말 현재까지 노동조합 페미니즘의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세 가지 흐름들이 존재한다. 하나는 1970년대에 발전했던 사회주의 페미니즘이며, 다른 하나는 여성조합원의 광범위한 경제투쟁 속에서 출현한 것으로 몇몇 나라들에서는 1960년대에 시작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노동계급 페미니즘이고, 마지막 하나는 1970년대와 80년대에 자유민주주의 이념에서 기원하여 '기회균등'이라는 이름하에 발전한 주류 여성정치운동이다. 이 세 가지 흐름 모두는 오늘날의 노동운동 내부에서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종종 중요한 변화를 낳기도 하면서 노동운동과 팽팽한 긴장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 글에서 논의될 전반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법률적인 협상이나 단체 교섭에서 성과를 얻는 데 있어 페미니즘은 실질적이고 상당한 기여를 했다. 둘째, 가정과 직장 사이의 이데올로기적 분리는 페미니즘적 통찰에 의해 효과적으로 도전받아 왔다. 셋째, 몇몇 노조들에서 민주적인 운영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하는 것은 페미니즘적인 민주적 논의의 영향에 따라 변화되어왔다. 넷째, 여성들이 더 많이 지도적인 위치에 설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작업장, 공동체, 그리고 사회 전체가 어떻게 변화될 수 있는가에 대한 노동조합의 전망을 근본적인 방식으로 변화시키지는 못해왔다. 사실 노동조합 페미니스트들은 남성동료들처럼 경제주의적이고 개량주의적인 의제들을 추진해왔으며, 그 근저에 남성 지배적인 비즈니스 노조주의 만큼이나 주류적인 페미니즘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전망은, 페미니즘과 노조주의의 결합에 의해 형성되어온 긍정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노동운동을 변화시키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이 글은 주로 캐나다 페미니즘의 사례들을 배경으로 서술될 것이다. 이들이 페미니즘을 대표한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지난 50여년 간의 발전양상에 대한 지표를 제공해주고 있다.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출현

페미니즘은 자본주의적-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사회주의 운동의 결정적인 순간에 재출현했다. 대부분의 사회들에서 1960년대 말에 이르러 국가는 노동자, 학생들의 진보적인 운동에 의해 도전받았다. 이들은 정치, 사회 그리고 작업장에서의 급진적인 변화를 요구했다. 이와 맥락에서 페미니즘은 이 시기 정치적, 사회적 헤게모니에 대한 광범위한 도전의 한 부분으로 재출현하였다. 이는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예컨대 학생소요와 전통적 권위에 대한 과감한 도전 속에서, 몇몇 지역에서 급진적 학생들과 결합된 노동조합의 전투성 속에서, 발전주의자들의 권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신좌파적 공동체 활동과 정치 속에서, 전세계적인 연대 투쟁 속에서, 그리고 '여성 권력에 대한 주장과 변형된 개인적, 성적 성향에 대한 정치의 요구' 속에서 스스로를 분명하게 드러냈다.1) 그 당시까지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은 일반적으로 여성의 종속과 억압을 변화시키는 것과 거의 관계가 없었다. 이는 사회 전반적인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주의적 조직 내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들 운동내부에서 여성들은 활동적이었지만 대체로 주목받지 못했으며, 비서진, 조직책, 커피 타주는 사람 등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는 데에 국한되어 있었다. 1960년대의 인간해방에 대한 이념들도 이를 크게 변화시키지 못했다. 대부분의 경우 여성은 좌파 내에서도 종속적인 역할을 부여받았을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사회주의 운동 내에서의 가부장성은 보수주의적인 기관들 못지 않게 강력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사회주의 여성들은 그들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동시에 그들과 관련된 정당과 집단들을 변화시키기 위한 조직화를 시작했다.2)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에 좌파 진영 내부의 여성들에게는 몇 가지 가능성들이 개방되어 있었다. 어떤 이들은 자신들이 이미 속해있던 사회주의 집단 내에서의 변화를 시도했다. 분파적 집단들의 가부장적인 관계와 권위주의적 과정을 변화시키는 데 지쳐버린 어떤 이들은, 그곳을 떠나 여성해방운동의 주축이 된 다른 여성소규모그룹에 참여하기도 했다. 다른 이들은 양쪽 모두에 관계하기도 했고, 또 다른 이들은 노동운동을 정치활동의 중심으로 삼기도 했다. 쉴라 로보쌈(Sheila Rowbotham), 린 시걸(Lynne Segal), 힐러리 웨인라이트(Hilary Wainwright)가 함께 쓴 {분열을 넘어서(Beyond the Fragments)}에서는, 영국에서 이러한 토론들이 1970년대 후반 노동당과 다른 좌파정당 그리고 그룹들에 대한 환멸감으로 드러난다고 정의했다.3) 그들의 견해에 따르면, 여성해방운동의 경험은 '이전까지 가능했던 어떤 것보다 더 민주적이고 보다 민중적이며 보다 효율적인 사회주의 운동'을 창출하는데 걸림돌이 되었던 문제들을 극복하는데 많은 기여를 했다.4)
스스로를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라고 인식했던 여성들은 다른 여성들 ― 좌파그룹, 노조운동, 그리고 일반적인 여성운동의 여성들 ― 과 함께 일하는 과정에서 그녀들이 민주적 참여를 요구하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과정은 전위주의와 분파주의적 좌파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비판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나아가 이러한 경험들이 이후의 저작들 속에 반영되는 과정에서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일상적인 경험을 민주적으로 바꾸고 급진적 변화를 위한 투쟁을 위해 함께 일하는 여성들이 집단적 역량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5) 페미니즘의 '제2의 물결'에서 가장 중요한 통찰들 중 하나는 여성들이 자주적 활동성(self-activity)을 발전시키고, 그들이 경험해왔던 종속에서 스스로를 해방시키며, 수동성과 복종, 자신감의 결여를 극복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노동계급의 남성들은 여성해방운동의 교훈을 적극적으로 흡수함으로써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물론 그 당시에 그들이 이러한 메시지에 귀기울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여성의 자주적 활동성의 발전은 분석과 토론을 통한 의식의 성장을 필요로 했다. 이 속에는 민주적인 의사소통을 위한 논의방식을 발전시키는 것과 위계적이고 관료적인 구조를 거부하는 것이 포함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요한나 브레너(Johanna Brenner)는 페미니즘이 '급진적으로 민주적인 해방적 전망을 재포착하고 발전시키기 때문에 마르크스주의의 갱신을 위한 풍부한 자원'이 된다고 주장한다.6) 이러한 주장은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의 기본적인 시각을 정확하게 포착한 것이다. 그녀들은 여성운동이 좌파가 기반을 두어야만 하는 어떤 완벽한 모델이라고 결코 주장하지 않았다. 힐러리 웨인라이트(Hilary Wainwright)가 말하는 것처럼 '여성운동은 어떤 사회주의자들도 무시하지 말아야할 절대적으로 긴급한 요구와 성과물들 ― 혹은 그러한 성과물들을 위한 출발점 ―을 구축해왔을 뿐이다'.7)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은 또한 페미니즘이 노동조합 내에서 전통적으로 종속적인 위치를 자치했던 이들을 교육하고 참여하도록 독려함으로써, 권위주의적이고 관료주의적인 구조와 관행을 바꿈으로써, 그리고 위계를 줄이고 평등주의를 확산시킴으로써, 노동조합을 민주화시킬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다.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이러한 관념을 노동운동 내부로 가지고 들어왔으며, 저임금과 작업장에서의 낮은 지위라는 현실에 맞서고 있던 노조 내 여성들, 나아가 그들을 대표하는 노조 내에서 종속성과 비가시성을 느끼고 있던 노조 내 여성들과 결합했다.8)

노동계급 페미니즘의 등장과 성장

지배계급 여성들의 쟁점은 계급 자체의 변형 없이 계급의 내부적인 성적 관계의 변형 가능성 주변을 맴돈다. 분명히 노동계급 여성들의 쟁점은, 특히 가족의 모호한 국지적 가부장제 형태가 가족 경제의 기반 변화에 의해 침식되면서, 보다 근본적인 모순들과 대면하게 된다.9)

노동계급 여성의 삶의 물질적인 조건 변화는 많은 자본주의 경제에서 여성 조합원의 점증하는 전투성의 원인이 되었다. 196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까지 대부분의 국가에서 여성 ― 특히 기혼여성 ― 들이 노동시장에 유입되었지만, 사실 상당수의 노동계급 여성들은 이전부터 항상 노동에 종사해왔다.10) 그녀들은 자녀를 가진 이후에도 임금 노동력으로 남았지만, 그녀들의 일은 남성들의 일과 엄격하게 분리된 상황을 유지해왔다. 이러한 사례는 특히 20세기 초에 노동계급 여성의 상당수가 제조업에 고용되었던 프랑스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따라서 프랑스에서 여성 조합원들의 전투성이 여성운동의 재출현 보다 선행했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11)
영국, 캐나다, 미국에서 노동계급 여성의 경험은 다소 상이하다. 1960년대에서 1980년대 사이에,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는 급속도로 증가했으며, 그 결과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여성들의 수도 증가하였다. 주로 공공부문에서 이와 같은 현상은 분명했다. 이들 나라들에서 노동계급 페미니즘은 1970년대에서 1980년대의 노조화된 여성들이 주도한 파업과 전투적 투쟁 속에서 성장했다.12) 그 당시 이 투쟁들은 여성들의 파업으로 간주되지 않았다. 노동조합내의 여성들이 페미니즘의 언어에 익숙해지면서 이러한 파업들이 평등을 위한 투쟁의 시작으로서 인식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거의 모든 사례에서 주요 쟁점은 저임금에 대한 문제제기나 동일임금의 필요성이었다.(이후에 이는 값싼 노동력의 원천으로서 여성이라는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관점을 구성했다)13) 그러나 더 높은 임금에 대한 요구와 더불어, 작업장에서의 여성의 지위, 그리고 직장에서의 존중과 존엄에 대한 요구도 중요한 관심사가 되었다.
노동계급적 경험을 가진 여성들에게 여성해방운동은 그녀들로써는 누릴 여유가 없는 사치품으로 보였다. 브래지어를 태우면서 성적 해방을 요구하는 북미 여성들에 대한 과잉 포장된 이미지는, 기본적인 생계를 충족하기 위해 매주 가족임금을 쪼개 쓸 걱정을 하는 여성들에게 어린아이의 응석처럼 보였다. 도로시 스미스(Dorothy Smith)가 지적하는 것처럼, '노동계급 여성들에게 가부장제는 중산층 여성들에게 경험되는 것과 같이 가시적인 형태로 나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계급 헤게모니를 조직하는 일련의 제도적 과정들 속에서 발견되며 이러한 이유로 인해 계급적인 가부장적 관행들은 계급적 지배와 쉽게 구별되지 않기 때문이다'.14)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은 그녀들이 노조에 적용했던 분석을 통해 노동조합 여성들의 변화된 물질적 현실을 알게 되었다. 비공식적인 집단들 내에서 그리고 이후에는 공식적인 교육과정과 워크숍에서, 여성억압의 물질적, 이데올로기적 기초가 논쟁되었다. 많은 나라들에서 노동조합운동 외부에 있던 페미니스트들이 파업 행동에 돌입한 여성들을 지원하고 노동조합 자매들과의 연대하기 위해 피켓 라인으로 달려갔다.15) 1970년대에는 프랑스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에서도 신좌파의 주도하에 여성 노조주의자들의 '집합체들'이 형성되었다. 그녀들은 노동조합 내부에서 자율적인 여성의 영역을 요구했고 쟁취해냈다.16) 이들 네트워크는 고용에 대한 요구보다는 정치적인 행동에 강조점을 두었다. 이는 1970년대 중반 미국과 캐나다에서 형성되기 시작했던 비공식적 여성위원회와는 대조적인 것이었다. 미국과 캐나다의 경우 대부분 남성지배적인 단체교섭과 노동조합 내부의 정치를 변화시키는 데 강조를 두었다.17)
노동조합에서 가장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쟁점들 중 하나는 노조 내부에서 여성들이 독자적으로 조직화를 진행하는 것에 대한 것이었다. 캐나다와 미국에서 1970년대 중반에 비공식 여성위원회가 시작되었으며, 이후 공식적인 여성위원회, 교육과정, 워크숍과 회의들로 계승되었다. 앞에서 서술한 것처럼, 페미니즘의 가장 중요한 통찰 중 하나는 여성들이 수동적이고 종속적인 위치에 직면하여 적극적인 참여자가 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조용히 있거나 눈에 띄지 않으려는 여성들의 성향 때문에, 그 결과 남성의 지배를 막을 수 없게 되거나 남성들의 일방적 주도권을 허용하기 때문에, 노조의 여성들은 그녀들의 종속에 대해 토론하고 논쟁하며 분석하기 위해 남성들이 끼지 않는 독자적인 포럼을 요구했다. 의식성 고양이라는 초기의 관념들로부터 발전한 이러한 종류의 분리는 여성들에게 그녀들의 노조 내에서 온전한 위치를 획득하는 데 필요한 기술, 지식, 자신감을 획득할 수 있게 해주었다. 나아가 이러한 포럼들 내부에서는 전통적인 노조 회의에서 발견되는 권위주의적고 위계적인 과정을 거부하고 민주적인 페미니즘적 과정을 발전시키려는 시도들이 이루어졌다. 독자적인 여성위원회는 또한 노동조합의 여성들이 교섭안이나 노조총회에서 자신들의 요구를 포함시키는 것에 대한 전략을 구상하는 토론장이 되었다.18)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을 위한 분리된 조직화가 최종적으로는 노조를 전반적으로 강화시킨다고 주장했던 반면, 조직화의 과정이나 그들의 요구 양 측면에서 여성의 주변화가 낳을 수 있는 문제들도 존재한다.19) 제인 젠슨(Jane Jenson)은 프랑스의 사례를 들면서 노동조합 내에 여성의 자율적인 기구를 설립하는 것이 여성노동자들을 노동조합의 주된 사업에 포함되지 않는 주변적 노동자들로 보이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지적한다. 그 결과 여성노동자들은 노동조합 내부에서 그리고 노동시장에서 보통노동자와 같이 동등하게 대우받지 못할 수 있는 것이다.20) 노조내부에서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자율성과 통합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은 명백한 사실이다. 여성과 다른 주변적 집단들이 몇 개로 나뉘어 개별적인 위원회로 독립해나간 사례는 많다. 이 위원회들은 노조의 '핵심적인' 사업들과 분리되고 그 결과 주변화되었다.
게다가 여성들은 자신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노조정책에 개입하려는 시도에서 '주부'로 규정되면서 주변화되기도 했다. 즉 노조들이 노조의 의사결정과는 분리된 주변적 단체로 노조 주부들의 모임을 만들었던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두 가지 사례를 들 수 있다: 1984년 영국의 '폐광을 반대하는 부인들', 1978년 캐나다의 '파업을 지지하는 부인들'. 두 단체들 모두 노조와 지역 공동체간 사이의 연대를 증진시키기 위해 구성되었다. 이들의 조직적 활동은 가정이라는 사적 영역을 노동이라는 영역과 결합시켜 방어와 직접 행동의 지역적 공동체를 형성하고 작업장과 지역 공동체의 분리에 대한 결정적 문제를 제기하고자 했다. 탄광에서 일하는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지역 공동체는 그들 삶의 많은 부분을 탄광과 결부되어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지역 주민들은 탄광과 관련된 의사결정권이나 심지어 투표권을 행사할 수 없는가? 이러한 맥락에서 두 단체는 노동계급 민주주의에 대해, 나아가 전체 노동계급 공동체에 영향을 미칠 결정에 대해 토론하고 기여하는 생산자와 노동력의 재생산자의 권리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21)
1980년대 초반에 이르러 노동조합의 페미니스트들은 작업장, 노동조합, 그리고 가정에서 여성의 종속적 위치를 변형하려는 목적하에 일련의 전략과 정책을 토론하고 발전시키기 시작했다.22) 이는 여성의 '삼중고'(노동자로서, 부모로서, 노조활동가로서)에 대한 항의하고 그것에 대한 대안으로 노조의 주요 활동을 위한 육아보조 등과 같이 가사의 의무로부터 여성의 해방을 위한 정책을 고안하는 활동을 포괄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또한 가정과 작업장과의 관계, 그리고 두 영역에서의 여성의 종속을 동시에 강조함으로써 이들은 전통적인 노동조합주의에 문제를 제기했다. 노동조합은 오직 작업장 내의 문제만을 다루어야 하는가, 아니면 일반적으로 사회적 쟁점에도 관여해야 하는가? 1980년대 말에 캐나다에서 노동계급 페미니즘은 낙태, 육아, 성적·인종적 학대와 여타 평등관련 쟁점들에 대한 정책을 포괄하기 위하여 기존 산업 노조주의(industrial unionism)의 협소한 전망에 도전하였다.23) 현재 캐나다에서는 단체협약요구가 여성과 다른 주변 집단들을 대변해야 하며 작업장의 쟁점을 넘어서 보다 일반적인 작업장과 지역 공동체 사이의 전반적인 관계를 반영하는 사회적 관심사를 다루어야 한다.
노동계급 페미니즘은 이러한 과정에서 지불노동과 부불노동, 가정과 직장, 경제활동과 지역 공동체 사이의 이데올로기적 분리를 극복하는 데 근본적인 역할을 수행해왔다. 지역 공동체와 분리된 영역으로 노동을 사고하는 거셍 도전하면서,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의 분리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었으며, 노동과 사회 사이의 관계까지 고민하는 관점이 제기되면서 노조운동의 잠재력이 증가되었다. 예를 들어, 노동시간단축과 같은 쟁점은 페미니스트들에 의해 재개념화되었다. 그것은 가정과 지역 공동체 사이의 관계에 대한 쟁점들과 연결되어 보다 확장된 요구로 변형되었고, 노동력 재생산과 공동체적 문화활동의 발전을 위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으로 재구성되었다.24)

경제적 구조조정과 페미니즘의 제도화

여성해방운동 운동,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발전, 그리고 노동계급 페미니즘 분출 등과 같은 의 흥분된 어려운 시기가 지나면서, 1980년대와 1990년대 선진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운동은 안정되고 제도화되기 시작했다. 사실 이들의 제도화는 페미니즘의 제2의 물결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 되기도 했다. 1970년대 후반에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정부에 의해 기회의 균등, 차별반대 프로그램이 제시되면서 이들의 운동은 대체로 공인되기 시작했다. '여성의 지위'와 관련된 정부 부서들이 설립되어 기회균등 운동과 관련된 경력을 가진 '페모크라트(femocrats)' 여성들에 의해 운영되었다.25) 그러한 여성들의 주도성은 1975년 세계여성의 해 행사에서 기원한 것인데, 그것은 회원국가들이 각국 여성의 평등을 증진시키기 위한 UN의 상징적 시도였다. 다양한 국가들에서 페미니즘이 제도화되면서, 주류 페미니즘은 노동조합내에서 더욱 허용할만한 수준의 운동이 되었다. 이러한 위원회에서 주요한 직책은 노조의 남성지배적인 집행부에게 '배를 부수지 않을' 여성으로 믿어진 여성들에게 제공되었다.
기회균등 정책에서 주요한 강조점은 성평등을 선언하고 남녀를 차별없이 대우할 것을 보장하면서 작업장과 여타 정치 및 경제 기구들에서 여성들의 승진을 가로막는 장벽을 제거하는 것에 두어졌다. 이는 그 자체로 모두 훌륭한 정책들이었다. 그러나 고립적인 저임금직업이라는 좁은 선택을 강요받는 노동계급 여성들에게 '기회균등'이란 매일 가정에서의 부불노동과 직장에서의 저임금이라는 이중고를 겪는 와중에서 거의 효과를 갖지 않는 것이었다. 노동조합에서 기회균등 정책이란 결과적으로, 더많은 여성들에게 지도부의 역할을 배분하는 것이었다. 이와 함께 여성 관련 쟁점들와 관련하여 성차별적인 관행들에 대한 이의 제기와 노동의 전통적 의제에 대한 보완 정책이 실행되었다. 즉 기회균등 정책으로 인해 노동조합의 구조와 관행이 변화하면서 동시에 여성들의 요구도 노동조합이 받아들여질 수 있게 변형되고 노조는 이를 수용한 것이다. 사실 여성들은 관료적이고 위계적인 의사결정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또한 기회균등 정책들은 집합적이고 전투적인 행동보다는 (준)법률적인 과정에 의존하는 경향들을 만들었다. 기회평등적 접근은 또한 집단적이고 투쟁적인 행동보다는 법적 방법에 대한 의존심을 증가시킨다.26) 평등균등은 노조 운동과 작업장에서 여성의 종속적 지위를 인정하지만, 그 자체로는 그것을 변화시킬 수 없었던 것이다.
기회균등이라는 개념은 임금과 고용평등의 개념들을 확장하고 발전시켰다. 여성, 특히 노동조합 내부의 여성들은 그들의 저임금과 지위들이 다루어질 것을 요구했지만 평등균등 프로그램은 이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균등이라는 개념은 백인남성들이 이미 누리고 있는 혜택, 지위, 위상들을 종속적인 집단들 ― 여기에는 여성들도 포함된다 ― 이 분배받는 것으로 해석되어왔다. 이는 균등에 대한 보다 급진적인 개념, 즉 임금과 지위의 전반적 불평등의 감소라는 의미에서의 균등 ― 이는 불평등한 위계 내에서 자리들을 분배하는 것으로 결코 충족될 수 없는 목표이다 ― 과 보다 근본적으로 모순되는 것이었다.27)
역설적으로 기회균등 정책이 자리를 잡는 시기에 경제적 구조조정과 사회전반적인 우경화가 발생하고 있었다. 1990년대에 이르러 모든 자유민주주의 경제와 사회민주주의 경제는 결국 자본, 작업장, 사회복지급여에 대한 구조조정에 심각한 영향을 받게 되었다. 경제적 구조조정으로 인해 비정규직과 불안정 노동형태 ― 이는 역사적으로 여성과 관련되어 왔다 ― 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많은 나라의 노동운동에서 주로 남성들이 지배적인 일자리가 사라지고 서비스 부문이 팽창함에 따라, 페미니즘의 주도성에 대한 개방성이 형성되었다. 왜냐하면 이제 여성 노동자들이 '전형적인 노동조합원'들이 되었기 때문이다.28) 노동조합은 남성조합원의 극적인 손실을 경험하였기 때문에, 서비스부문에서 여성들을 조직화할 필요성과 단체협약 테이블에서 그들의 특별한 요구를 제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필요성도 명백해졌다.
사회전반적인 우경화는 페미니즘과 관련된 것이었으며, 국가의 사회복지와 국가기능의 시장화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요한나 브레너는 '신우익은 페미니즘을 성공적으로 받아쳤다'고 지적했다. 왜냐하면 '개인적 딜레마를 정치적으로 구성하는 능력이 없다면 페미니즘은 필연적으로 방어적인 성격을 띨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29) 물론 주류 페미니즘은 여전히 건재하다. 미국에서 그것은 광범위한 조직들의 네트워크로 제도화되어 정치가들에게 입법적, 사법적 개혁을 요구하는 압력단체로 기능하고 있다.30) 캐나다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또한 입법적, 사법적 절차를 통해 성평등의 쟁점을 해결하고자 하는 경향둘이 증가한다.31) 이는 심지어 신자유주의 시대에조차도 여성의 임금안정에 관해 몇가지 괄목할만한 성공으로 드러났다. 예를 들어, 1999년 캐나다에서 ― 노조의 법적 대표성에 대해 아주 오랜 비싸게 치른 후에 ― 여성 노동자가 대다수인 공공부문 노동자들을 대변하는 캐나다공공서비스연맹(PSAC)이 동일/유사 임금을 둘러싼 전 역사에 걸쳐 가장 많은 액수(45억불)을 얻어내었다.
스웨덴 여성들 또한, 동일임금을 요구해왔다. 1930년대 스웨덴 노동조합들은 임금 노동자로서 여성의 권리를 수용했으며 전후에 여성들을 노조의 적극적인 조합원으로 만들기 위한 특별조치를 마련했다. 여성들 또한 일반적으로 노동운동의 임금 연대전략으로 이익을 얻었다. 그러나 1990년대에 이르러 단체협약이 쇠퇴하면서, 연대임금은 붕괴하고 여성과 남성간 임금격차도 커지기 시작했다. 이는 노조에서 동일노동에 대한 동일임금을 요구하는 페미니즘의 시작을 낳았다. 노총(LO)에서는, 남성과 여성에 관계없이 지불되었던 저임금노동자 특별기금 대신, 여성들을 위한 특별기금을 만들게 되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여성들이 나머지 노동계급으로부터 분리되고 있다는 것이며, 그 특별기금 또한 현재 고임금여성들에게 이익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한편 노총은 여성특별기금에 동의했지만, 일반적인 중앙교섭의 전통으로 인해 평등 관련쟁점에 대한 사법적 제도화에 대해 저항해왔다.32)
이러한 저항들에 대해서는 많은 논거들이 존재한다. 무엇보다도 노동조합의 사법적 투쟁은 필연적으로 법적 전문가들과 법적 논쟁들보다는 집단행동과 신뢰가 손실되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항상 맞는 것은 아니며, 캐나다에서 동일임금을 위한 PSAC의 투쟁사례는 이와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16년간의 기나긴 법정투쟁 과정에서 파업, 연좌시위, 시위와 교육활동이 병행되었다. 노동조합은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평등 임금의 원리를 지지하는 교육과 집회에 상당한 재원을 제공했고, 그리하여 이들의 투쟁은 법률 전문가들에 의해 완전하게 통제되는 단순한 법률적 투쟁을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노동조합으로서는 갈등이 해결된 주된 광장이 법정임을 받아들여야하는 모순된 결과가 발생했다. PSAC의 경우, 평등 임금이라는 화두를 중심으로 조합원들을 동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주요한 전투가 법정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그러한 쟁점이 노동조합의 단체협약 경험과 관행에 통합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앞으로의 단체협상은 노조전체가 이 쟁점에 대해 동원되고 파업했어야만 했던 과거의 경험과 교훈에 기반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의 단체 교섭은 남성을 위해 더높은 임금을 요구했던 과거의 관행으로 복귀할 것인가? 피켓 라인에서 동일임금을 위해 투쟁하는 경험 없이, 이 쟁점들이 노동조합의 '핵심 사업'의 하나로 진정으로 각인될 수 있을 것인가? 노동조합의 페미니스트들이 법률에 대해 보다 분명한 시각을 발전시키고 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33) 이는 종종 모순적인 결과들을 낳을 수도 있다.
동일임금 실현을 위한 접근에서 또다른 문제는 이것이 남성의 임금과 역할이 궁극적으로 성취해야 할 목표와 동일하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작업장에서 남성의 일반적인 고임금과 높은 지위는 위계적인 직종과 임금에서 평등하게 대우받고자 하던 여성들의 투쟁 목표였던 것이 사실이다. 이는 작업장의 위계적 특성과 권위주의적인 직무 분할, 그리고 지식노동과 육체노동의 분리를 변형시키고자 하는 시각과 완벽한 대조를 이룬다. 자기 결정권과 인간해방의 관점에서 모든 인간의 노동의 가치를 증진시키기 위해 노조 조직을 변형시키고자 했던 초창기 사회주이 페미니스트들의 관점은 의제에서 사라지고 백인 남성이 가지고 있는 만큼이라는 의미의 평등이 궁극적 목표가 되고 잇는 것이다. 나아가 최근 구조조정의 시기 동안 몇몇 부문들에서는 남성과 여성사이의 임금격차가 감소되고 있지만, 이는 여성의 임금이 늘어난 결과가 아니라 남성의 임금이 줄어든 사정에 기인한 것이다. 몇몇 경우 동일임금에 강조는 노조 활동가들로 하여금 최고임금수령자와 최저임금수령자사이의 임금격차를 인식하지 않게 만들었다. 심지어 생계 수준 이하의 임금조차, 그 수준이 적합하다는 직종평가가 이루어지면 메우 정당한 것으로 간주된다.34)
그러나 이러한 동일임금의 함의가 노동조합원들에 의해 거부되었던 사례들이 있다. 이들은 기술과 노동시장의 가치에 대한 부르조아의 인식을 거부하고 대신 임금정의개념을 발전시켰다. 캐나다의 어떤 다른 주보다 '최고'의 동일임금제도를 갖고있으며 민간부문, 공적부문 모두에 적용되는 온타리오에서, 캐나다공공부문노동조합(CUPE)의 지역조직들은 경영진의 개념을 수용하기를 거부했다. 경영진의 개념은 동일임금 적용과정의 성과를 보호하는 기술적 숙련의 가치에 대한 것이었다. 많은 경우 노동조합대표는 정의에 대한 그들 스스로의 개념을 운용하며, 심지어 직종평가계획이 그 임금증가분을 정당화하지 못할지라도 동일임금은 최저임금노동자의 임금인상을 의미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기술의 점차적 변화를 평가하는 요인의 유용성범위 때문에, 직종평가 방법론은 균일하거나 비슷한 임금선상의 노동자들을 모아두기보다는, 노동자들사이의 기술적 차이를 강조하고 역설하게 된다.35) 따라서 동일임금과 직종평가에 따른 그것의 적용은 종종 직무 위계의 최저부문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릴 필요성과 모순되는 상황에 처한하게 된다. 이러한 모순은 종종 많은 노동조합 페미니스트들에게 ― 이들은 대체적으로 실업자를 포함한 최저생계비이하의 수입을 받는 노동자들의 파격적인 (임금)증가를 옹호한다 ― 잘 인식되지 못한다.
요컨대 이 모든 상황에서 전반적인 기회균등과 평등 정책은 여전히 개인화 경향을 띠고 있다. 이 경향은 노동조합의 여성들이 집단적으로 동일임금을 지원해왔으며 여성의 저임금에 대한 체계적, 집단적 성격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인 여성들이 직무 위계과 임금에서 더 높은 지위를 쟁취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동일 임금은 모순적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중요한 기치가 되었으며, 그 이면에서는 남녀조합원들이 페미니스트집단과 결집하고 협조해왔다.36)

결론

노동조합에 대한 페미니즘의 도전은 나라마다, 노동조합마다 매우 다양하며, 그 영향력과 충격도 매우 다양하다. 어떤 노동조합은 필수적이고 중요한 페미니즘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고 있는 반면 다른 노동조합들에서는 남성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여성 노동자들과 공유하는 것에 대해 강력하게 저항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체로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많은 여성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해 있으며, 그들 스스로 그들의 요구에 귀기울이도록 만들어왔다. 여성조합원들은 운동의 모든 차원에서 자신들의 대표를 얻어냈고, 점차 더많은 조합 집행부의 역할을 하고 있다. 노동조합과 노동계급연대의 새로운 형태는 페미니즘의 영향 아래 꾸준히 진전되어, 이제는 여성뿐만 아니라 다른 주변적 집단들도 노종조합과 노동계급 연대의 새로운 형태를 형성하고 있다. 페미니즘은 노동계급과 작업장 투쟁의 정의를 확장시키는데 중요한 영향을 미쳤으며, 여기에는 의심할 여지없이 여성의 대표에 관한 두드러진 변화, 여성들의 요구를 포함하는 공통의 단체협상 쟁점들이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경제적 구조조정과 사회적 우경화는 페미니스트들의 도전에 모순적인 효과를 가져다 주었다. 경제적 구조의 변화는 한편으로 여성들을 조직하고 그들의 요구에 반응하는 개방성을 낳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노동계급 페미니즘의 경제주의적 경향을 강화하고 내적 잠재력을 제한시켰다. 여성들과 여타의 저임금 계층, 그리고 노동계급 전반의 경제적 지위를 향상시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성과였고, 노동운동을 전반적으로 강화시키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생계 수준 이하의 노동자들의 노동시장요인에 대한 검토없이, 그리고이들의 정치경제적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노동조합 조직화는 필연적으로 개량적 경향을 낳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노동조합 페미니즘은 비즈니스 노동조합처럼 똑같은 경제적 한계를 수반한다. 일반적으로 페미니즘은 노동조합 내에서 공식화되었지만, 여전히 경제주의적이고 개량주의적인 경향이 우세를 점하고 있다. 반면 1970년대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노동계급과 비백인여성들의 부재로 인해 한계에 부딪혔다. 여성 조합원들의 참여로 그 한계는 극복되었지만 동시에,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에너지는 그날 그날의 노동자 투쟁들로 집중되었고, 사회적 변혁에 대한 그들의 전망은 희미해졌다.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의 경향은 현재에도 여전히 존재하지만,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변혁전망은 여전히 주류에서 벗어난 채 주변에서 투쟁하고 있다.

1) Lynne Segal, Is the Future Female, London: Virago Press, 1987, p.206.
2) 이는 공산주의 체제에서의 성과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프리거 하우그(Frigga Haug)는 통일이전에 서독여성보다 동독여성들이 훨씬 독립적이었다고 지적한다. 이는 동독에서 여성에 대한 국가의 사회적 지원이 훨씬 잘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자세한 것은 그녀의 저서를 참조하라. Beyond Female Masochism: Memory-Work and Politics, London: Verso 1992, pp. 185-217.
3) 로보쌈은 1960년대에 헤크니 노동당의 청년 사회주의자 그룹에서 활동하면서 트로츠키주의자들과 조우했던 경험에 대해 서술한 바 있다. 그녀는 이후 1960년대 국제사회주의자조직(IS)에 잠깐 참여했었다. 그녀는 '1968년 분출된 에너지'에 압도되었으나 광범위한 좌파운동이 지속되지 못하고 곧바로 실패한 것을 목격했다. 그러나 68년의 급진적 운동들은 그녀에게 '정치적 시각과 귀'를 갖게 해주었다. 68년 투쟁에서 강조되었던 인간해방과 자본주의의 은밀한 지배에 대한 거부는 그녀에게 민주집중제의 한계를 일깨워 주었고, 혁명적 지도부의 지식이 우월하기에 인민들을 조종할 수 있다는 전제의 한계를 가르쳐주었다. 1970년대 초 그녀는 '구좌파'의 일원이 되었으나, 바로 새로이 출현한 여성해방운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Lynne Segal과 Hilary Wainwright, Beyond the Fragment: Feminism and the Making of Socialism, London: The Merlin Press Ltd., 1979, pp. 26-39.
4) Rowbotham et al., Beyond the Fragments, p. 14; 또한 다음을 참조. Hilary Wainwright's argument in ibid., pp. 231, 252 and in Arguments for a New Left, Oxford: Blackwell, 1994.
5) 다음을 참조. Rowbotham et al., Beyond the Fragment, pp. 211-53; Carolyn Egan, 'Toronto's International Women's Day Committee'; Heather Jon Maroney and Meg Luxton (eds.), Feminism and Political Economy: Women's Work, Women's Struggles, Agincourt: Methuen Publications, 1987, pp. 109-18; and Johanna Brenner, 'Feminism's Revolutionary Promise: Finding Hope in Hard Times', Socialist Register, 1989, pp. 245-63.
6) 미국적 상황을 고려하면서 요한나 브레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페미니스트의 이론은 마르크스주의 이론이 구축해온 체계를 약화시키는데 도움을 주었다. 그러한 경직된 체계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존재한다. 경제환원론, 생산력주의, 기술에 대한 무비판적 접근; 노동, 노동자, 노동계급에 대한 협소한 정의;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에 대한 자본주의적 분석의 물신화와 이에 따른 이론적 분석과 정치적 조직화를 위한 전장으로서 공적 영역의 특권화; 의식성에 대한 빈곤한 이해, 특히 정서적 요구들이 정치적 이해를 형성하고 방식, 나아가 성적 정체성들과 정치적, 경제적 이해(interest)의 구성 사이의 관계에 대한 무관심.' Brenner 'Feminism's Revolutionary Promise', pp. 245-6.
7) Rowbotham et al., Beyond the Fragments, p. 250.을 참조. 이러한 일부의 사상들은 노동계급을 교육하고, 지도자와 피지도자들 사이의 관계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그람시적 관점의 일부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중요성은 대중을 교육하고 배치하는 방법이 여성그룹내부의 토론과 실천 속에서 이루어졌던 독특한 방식에 있다.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에 의해 접합된 쟁점들을 포함하여, 일상 생활, 경제, 시민사회 그리고 국가를 민주적으로 통치할 역량을 구축함으로써 '자본주의 내에서 생산력'을 발전시키는 것에 대한 최근의 논의는 Leo Panitch and Sam Gindin, 'Transcending Pessimism: Rekindling Socialist Imagination', Socialist Register, 2000, pp. 1-29.을 참조.
8) 이에 대해서는 히더 존 머로니(Heather Jon Maroney)의 중요한 글, 'Feminism at Work', New Left Review, 141, Sept-Oct 1983.을 참조.
9) Dorothy Smith, 'Women, Class and Family', Women, Class, Family and The State, Toronto: Garamond Press, 1985, p. 40.
10) 중요한 예외로 프랑스와 독일의 사례가 있다. 1950년대 프랑스의 노동시장의 여성점유율은 35.9%였으며 독일은 35.1%였다. 이러한 비율은 1982년까지 매우 완만하게 증가해왔다. 1950년 캐나다와 미국의 여성점유율은 각각 21.3%, 28.9%였으며 1982년에는 40.9%, 42.8%로 아주 현저하게 증가했다. 다음을 참조하라. Isabella Baker, 'Women's Employment in Comparative Perspective', Feminization of the Labour Force, Jane Jenson et al.(eds.), Oxford: Polity Press, 1988, pp. 17-44.
11) 제인 젠슨(Jane Jenson)은 1960년대 중반, '제조업이 강화되면서 단순작업에 고용되었던 많은 여성들이 전투적인 투쟁의 최전선에 서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Legacies of the French Women's Movement: Mobilization of "Diffrence" in the Labour Movement', Prepared for the Annual Meeting of the Canadian Political Science Association, Winnipeg, June 1986, p. 15. 또한 영국과 프랑스의 여성 임노동자의 차이점과 양국의 탁아정책을 비교한 Jane Jenson, 'Gender and Reproduction: Or Babies and the State', Studies in Political Economy, 20, Summer 1986, pp. 9-46.을 참조하라.
12) Rosemary Warskett, 'The Politics of Diffrence and Inclusiveness within the Canadian Labour Movement', Economic and Industrial Democracy, vol. 17, no.4(November) 1996.를 참조.1990년대 중반, 미국에서 노동조합의 조합원 수가 급감하면서 다른 형태의 노조주의가 새롭게 출현했다. 캐나다에서는 노동운동이 똑같은 결론에 이르지는 않았으며, 노동조합의 여성들이 1950년대와 60년대의 구체제 비즈니스 노조주의를 변화시키기 위한 책무를 떠맡아왔다. Julie White, Sisters in Solidarity: Women and Unions in Canada, Toronto: Thompson Educational Publishing, Inc., 1993.를 참조.
13) 히더 존 머로니는 {작업장에서의 페미니즘}(Feminism at Work)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나 노동계급페미니즘의 등장이 순수하게 축복만을 받아오지는 않았다'. 그녀는 계속해서 '노동계급 여성의 전투적 투쟁이 '좌파 내부에서 경제주의를 향한 일반적 경향을 강화해왔다'고 지적한다.
14) Smith, 'Women, Class and Family', p. 40.
15) 프랑스의 사례는 다음을 참조하라. Jane Jenson, 'The Limits of "and the" Discourse: French women as marginal workers', Feminization of the Labour Force, Jane Jenson, et al.(eds.), Oxford: Polity Press, 1988, p. 17: 캐나다의 경우는 다음을 참조하라. Carolyn Egan, 'Toronto's International Women's Day Committee', p. 114; for Britain, Sheila Rowbotham, The Past is Before Us: Feminism in Action since the 1960s, London: Unwin Hyman Ltd., 1989, pp.225-226.
16) 이탈리아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라. Bianca Beccalli and Guglielmo Meardi, 'When Equal oppurtunities is not enough: The ambiguous and changing relations between women and unions in Italy', Prepared for the Twelfth International Conference of Europeanists, Chicago, March 30-April 1, 2000.
17) 캐나다의 온타리오에서는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이 여성조직노동자(OWW)를 결성했다. 노조의 노선과 노동중앙조직을 넘어 조직된 OWW는 온타리오노동연맹(OFL)로부터 승인을 받지는 못했지만, 낙태를 포함한 광범위한 쟁점들로 OFL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분리조직화에 대한 토론은 다음을 참조하라. Linda Briskin, 'Union Women and Separate Organizing', Women Challenging Unions: Feminism, Democracy and Militancy, Linda Briskin and Patricia McDermott (eds.), Toronto: University of Toronto Press, 1993, pp. 89-108. 페미니즘과 노조민주주의에 대해서는 Miriam Edelson, 'Challenging Unions: Feminist Process and Democracy in the Labour Movement', Canadian Research Institute for the Advancement of Women, 1987.을 참조하라.
18)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라. Debbie Field, 'The Dilemma Facing Women's Committees', Union Sisters: Women in the Labour Movement, Linda Briskin and Lynda Yanz (eds.), Toronto: The Women's Press, 1983, pp. 293-303; Julie White, Sisters in Solidarity, pp. 123-24.
19) 이러한 맥락에서 계급적 연대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스웨덴의 노총(LO) 내에서 여성의 분리조직화가 금지되어 왔다는 점은 흥미롭다. Rianne Mahon, 'Learning to Embrace the Diffrences Within: Toward the Renewal of Swedish Unions', Prepared for the Twelfth International Conference of Europeanists, Chicago, March 30-April 1, 2000.을 참조.
20) Jane Jenson, 'The Limits'.
21) Heather Jon Maroney, 'Feminism at Work'; Lynne Segal, Is the Future Female, pp. 202, 233; Rosemary Warskett, 'The Politics of Diffrence and Inclusiveness'.을 참조하라.
22) Julie White, Sisters in Solidarity; Janet Routledge 'Women and Social Unionism' Resources for Feminist Research, vol. 10, no.2, 1981; Debbie Field 'The Dilemma Facing Women's Committees'.
23) 다음을 참조하라. Jane Stinson, 'Window on the North: Women's Issue and Labour in Canada', Labour Research Review, no. 11(Spring, 1988).
24)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Rivalta FIOM 여성들의 활동을 논의하고 있는 Bianca Becalli and Gugliemo Meardi 'When Equal opportunities is not enough'을 참조하라.
25) 여성프로그램의 구축과 차별반대 입법화에 대한 논의는 다음을 참조하라. Suzanne Findlay, 'Facing the State: The Politics do the Women's Movement Reconsidered', Maroney and Luxton (eds.), Feminism and Political Economy, pp.31-50.
26)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Dorothy Sue Cobble(ed.), Women and Unions: Forging a Partnership, Ithaca, NY:ILR Press, 1993.
27) Jan Kainer, 'Pay Equity Strategy and Feminist Legal Theory: Challenging the Bounds of Liberalism', Canadian Journal of Women and the Law, vol.8, no.2, 1985, pp.440-69.를 참조. 캐나다와 유럽에서 동일임금이란 동일한 노동가치에 대한 동일임금을 의미한다. 이는 동종노동에 대한 동일 임금이라는 미국적 용어과 비교해볼만하다.
28)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라. Chris Howell, 'Women as the Paradigmatic Trade Unionists? New York, New Workers and New Trade Unions in Conservative Britain', Economic and Industrial Democracy, vol. 17, no.4(November) 1996, pp.511-43.
29) Johanna Brenner, 'Feminism's Revolutionary Promise', p.251.
30) 1974년에 설립된 여성조합원연합(CLUW)은 이 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초기에 여성 조합원을 위한 교육적 자료를 생산했고, 여성조합원을 동원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다. Diane Balser, Sisterhood and Solidarity, Boston: South End Press, 1987. 그러나 이들은 현재 미국의 제도화된 여성운동의 일부가 되어 과거의 평조합원 운동의 행동주의를 더 이상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31) 프랑스의 노동운동은 이에 대한 중요한 예외들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Jeanne Gregory, Rosemary Sales and Ariane Hegewisch(eds.), Women, Work and Inequality: The Challenge of Equal Pay in a Deregulated Labour Market, London: Macmillan Press, 1999.
32) Rianne's Mahon 'Learning to Embrace the Diffrences Within: Toward the Renewal od Swedish Unions'. 여성들은 월차(day care)이나 육아휴가, 이주민들의 변화에 대한 대응, 노동시간에 대한 스웨덴의 지침에서 평등조치와 권리를 보호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조치들은 평등이라기보다는, 노동계급 가족들의 이름을 지켜냈다. Rianne Mahon, Economic and Industrial democracy, vol. 17, no.4(November) 1996, pp. 545-86.
33)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Carol Smith, Feminism and the Power of Law, London: Routledge, 1989. 그녀는 법률의 종합적 이론에 반대하면서, 법의 관점이은 통합되기보다는 굴절되며, 모순된 결과를 낳는다는 점을 간략히 설명하고 있다. '법률적인 해결의 유혹, 더 자세히 말하자면 해결의 약속에 저항하는 것이 중요하다', p. 165.
34) Gillian Cresse, Contracting Masculinity: Gender, Class, and Race in a White-Collar Union, 1944-1994, Toronto: Oxford University Press, 1999. 그녀는 British Columbia Hydro에서의 사무기술노동조합(OTEU)의 역사에 대해 설명한다. 그녀는 남성들이 직종등급화와 시스템평가과정에서 '생활임금'을 어떻게 새겨두었는지를 드러내면서, 완전한 노동자 조직화과 위계화를 논하지는 않는 동일임금전략에서의 모순을 말한다.
35) Jane Stinson, 'Ontario Pay Equity Results For CUPE Service Workers in Ontario Hospitals: A Study of Uneven Benefits', Master's Thesis, Carleton University, Ontario, Canada, 1999. p.84.참조
36) Michael McCann, Rights at Work: Pay Equality Reform and the Politics of Legal Mobilization,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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