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 오늘세계
  • 2015/03 제2호

시리자 집권 전과 후 : 그리스의 1단계

  • 인터뷰 세바스찬 버진 <역사유물론> 편집자 시리자 '좌파강령' 그룹 활동가
  • 만난사람 스타티스 쿠벨라키스 런던 킹스칼리지 정치이론과, 그리스
  • 번역 조은석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시리자(급진좌파연합)에 대해 말해 주세요. 시리자는 언제 어떻게 탄생하였습니까?
시리자는 2004년 서로 다른 조직들이 모여 세운 선거 연합입니다. 가장 큰 지분은 알렉시스 치프라스가 속한 시나스피스모스(좌파운동생태주의연합)가 가지고 있지요.
 
시리자가 거둔 성공은 처음에는 소박했어요. 하지만 의회에 진출했고 최소 득표선인 3퍼센트도 넘겼죠.
 
좌파운동생태주의연합은 시리자의 결성과 함께 등장했는데, 그 자체도 그리스 공산당에서 두 번에 걸쳐 떨어져 나온 분파를 한데 모은 것입니다. 1990년대 초에는 당내에 중도 좌파적인 성향이 주를 이뤘지만 심각한 내부 투쟁으로 당내 좌우파가 대립했고, 우파는 점차 통제권을 잃었죠. 시리자의 결성은 좌파운동생태주의연합이 왼쪽으로 선회했음을 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시리자의 노선을 뭐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요? 반자본주의 노선을 따른다고 할 수 있는지, 아니면 활동이 좀 더 점진적이고 개혁적인 방식으로 추진된다고 볼 수 있을까요?
강령,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정체성이라는 측면에서 시리자는 강력한 반자본주의 노선을 채택하고 있고, 사민주의와는 분명하게 선을 긋고 있습니다.
 
결국 시리자는 선거연합과 선거 승리, 그리고 아래로부터의 동원과 투쟁 사이의 변증법을 강조함으로써 권력이라는 문제에 접근하는 반자본주의 연합입니다. 시리자와 좌파운동생태주의연합은 스스로를 계급투쟁 정당, 특정한 계급의 이해를 대표하는 조직이라고 규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리자’, 즉 급진좌파연합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2012년 그리스 총선에서 시리자가 갑자기 큰 성공을 거뒀는데요. 그 이유가 뭘까요?
세 가지 요인을 고려해야 합니다. 첫 번째로 그리스의 사회 위기와 경제 위기라는 폭력, 그리고 2010년 이후 그 위기의 전개 과정이 있습니다. (그리스의 부채 상환 능력을 보장하기 위해 그리스 정부와 트로이카 사이에 체결된) 저 악명 높은 양허안 아래서 숙청처럼 긴축정책이 벌어졌다는 점도 그러한 요인입니다.
 
두 번째는 (지금은 스페인도 그렇지만) 그리스만이 사회·경제 위기가 정치 위기로 발전한 나라였다는 점입니다. 매우 안정된 과거의 양당 정치체계가 무너진 거죠.
 
마지막은 대중 동원입니다. 유럽에서 급진좌파가 부상한 두 나라가 그리스하고 스페인인 건 우연이 아녜요. 최근 강력한 대중 동원이 발생한 두 나라인 거죠. 스페인에서는 ‘분노한 사람들’(인디그나도스) 운동이 있었고, 그리스에서는 더 깊고 사회적으로 다양한 운동이 있었습니다.
 
대의제의 구속이라는 전통적 형태에서 벗어난 이러한 세력들은 대부분 급진좌파가 됐지만, 이러한 동학 바깥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정치적 무관심으로 나아갔어요. 이런 정치적 무관심도 위기 이후 매우 심각해졌고, 한편으론 네오-나치를 표방하는 황금새벽당 같은 극우로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리자의 선거 승리와 정치적 승리를 더 정확히 설명하는 것은 시리자가 처음부터 양허안과 긴축재정 충격요법을 반대해 왔다는 사실입니다.
 
그 ‘운동가적’ 감각 덕분에 시리자는 그리스에서 최근 몇 년간 벌어진 사회운동과 집단행동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운동들, 가장 새롭고 자발적인 대중동원의 형태들을 포함해 이런 운동들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가운데 함께 한 것이죠. 예를 들어 시리자는 2011년 시청광장 점거 운동을 지지했던 반면, 그리스 공산당은 이를 두고 ‘반정치적’이며 소부르주아적이고 반공적인 요소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운동이라 비판했었죠.
 
시리자는 충격적인 사회 위기가 민중들의 삶에 미치는 구체적 효과에 대응하기 위해 지역 차원에서 연대 네트워크를 만드는 데도 상당한 역할을 했습니다. 국내 정치 수준에서도 세력 균형을 변화시킬 역량을 갖고 있는 것으로 인식될 정도로 제도적으로도 존재감 있는 당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여론조사에서 시리자가 부상한 건 2012년 총선 마지막 몇 주 동안이었어요. 중요한 변화는 치프라스가 ‘긴축반대 좌파정부’를 구성하겠다는 이슈에 집중하면서부터 찾아왔습니다.
 
그것이 말 그대로 선거전의 향방을 바꾸고, 완전히 새로운 의제를 설정했습니다. 그 때는 판이 흔들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거의 물리적인 현상 같았어요. 그리고 시리자의 지지율도 급등했습니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다른 당들은 시리자의 제안에 일일이 대응해야 했고, 시리자의 제안은 구체적인 정치적 전망으로 부상했습니다. 그리스를 구제금융 양허안과 트로이카의 굴레로부터 벗어나게 할 수 있는, 실제로 닿을 수 있는 전망 말입니다.
 
 
좌파치고는 꽤 통합적이네요.
맞아요. 시리자는 사회운동에서의 실천 덕분에 이런 제안을 하기에는 특히 신뢰할 수 있는 상대방이고 내부 구성도 그렇습니다. 말하자면 시리자는 정치 전선이고 시리자 내부에도 서로 다른 정치 문화의 공존을 허용하는 실천적인 흐름이 있다는 것이죠. 한 발은 그리스 공산주의 운동에 담그고 다른 한 발은 현 시기 출현한 새로운 형태의 급진주의에 담그고 있는 하이브리드 정당이나 통합 정당이라고 할 수 있죠.
 
 
당원 수나 사회적 영향력에 있어 시리자가 2012년 이후 상대적으로 얼마나 강화되었는지 보여주는 수치를 제시할 수 있나요? 시리자의 내부 동학에 대해서도 궁금합니다.
2012년 선거 직후까지만 해도 정당연합이던 시리자가 통합 과정에 들어갔어요. 먼저 전국 대회를 통해 처음으로 지도부를 선출하고 2013년 7월에 시리자 창립총회를 가졌습니다. 우리가 정당의 꼴을 갖추게 된 것은 그 시기에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만, 당시에 우선순위는 빠르게 통합 절차를 밟는 것이었고 실제로 깊은 정치적 토론을 할 시간은 없었어요.
 
그 과정은 또한 개방의 과정이었습니다만, 어떤 특정한 사회구성원이나 사회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의존하지 않는 개방 과정이었죠. 그래서 활동가나 열성 당원의 당이라기보다는 당원의 당, 즉 전투적 당이라기보다는 지지자들의 당이 되는 과정이었던 것이죠.
 
새로운 구조의 안 좋은 측면 다른 한 가지는 시리자가 지도자 중심적인 정당이 되었다는 것인데요. 여기에 내부 조직의 수가 매우 많고, 이것이 역기능을 일으키는 가운데 정책 입안이나 결정의 진정한 중심으로서의 기능은 점점 축소되고 있다는 사실이 더해지면서 문제가 한층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의사결정 과정에 전반적으로 집단적 리더십보다는 지도부 내의 다양한 비공식 계파와 함께 지도자가 핵심적인 역할을 하면서 중앙 집중화되고, 더 불투명해졌습니다.
 
그 사이 시리자의 당원수는 대략 2배가 되었고 이후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약 1만 7000~1만 8000에서 3만 5000~3만 6000 사이가 된 거죠. 지역적으로도 큰 발전이 있었지만 선거 영향력과 조직된 힘 사이의 간극은 여전히 큽니다. 당과 당의 핵심 유권자, 즉 도시 노동계급 사이의 연계가 여전히 약하다는 말입니다. 시리자는 여전히 지식인 계층이 지도하는 당입니다. 높은 수준의 숙련과 교육 수준을 가진 공공부문 노동자들이죠. 나이대를 보면 상당히 문제가 있습니다. 젊은 층의 비율이 여전히 매우 제한적입니다.
 
이제 부채와 유로에 관한 문제로 넘어가 보죠. 이 문제를 두고 분열이 있고 급진 좌파에게는 핵심적인 문제일 텐데요. 이 문제의 상징적 중요성, 그리고 더 구체적으로 전략적 중요성에 대해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먼저 상징적 수준을 봅시다.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에서 그리스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가 유럽 통합 프로젝트에 기반을 두었던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요. 유럽 통합 과정에 참여함으로써 그리스가 ‘근대’ 국가, ‘선진 서유럽’ 국가가 되고 결정적이고 비가역적으로 가장 발전되고 선진적인 서유럽 사회로 편입된다는 구상입니다.
 
유로 가입 후 첫 10년 동안 이런 환상은 현실이 된 것처럼 보였죠. 물론 유로화의 상징적 힘에 대해서 과소평가해서는 안 돼요. 화폐와 통화, 그리고 이와 연관된 상징적 가치에 대한 마르크스의 분석을 생각해 볼 수 있어요. 실제로 이게 먹혔죠. 위기, 구제금융 양허안 이전에 유럽 주변부의 다른 나라들처럼 그리스도 유럽통합 프로젝트와 단일 통화에 대한 지지율이 높았습니다.
 
이러한 수준의 지지는 위기를 겪으면서 크게 감소하긴 하였지만 현실은 이보다는 훨씬 양가적입니다. 즉 한편에서는 EU에 대한 불신이 존재합니다. 이들이 양허안과 트로이카의 지배를 강제하였기 때문이죠. 다른 한편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리스 국민들은 마지막 남은 이전의 상징적 지위의 잔영에 집착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지위나 선진 유럽 국가 ‘클럽’의 일원으로서 주어진 지위를 잃는 데 대해 더욱 절망적이 됩니다. 따라서 상식의 수준에서 보면 사태는 상당히 복잡한 것입니다.
이제 정치 전략에 관해서 보죠. 시리자 내부의 경향, 그 중에서도 특히 특정 유로 코뮤니스트적인 배경을 가진 흐름(정도는 약하지만 더 활동가적인 배경을 가진 경향도 그렇습니다만)들은 유럽 통합 프로젝트를 그 자체로 더 강하게 지지하는 느낌이 있습니다.
 
이와 대비하여 그리스 공산당 좌파 출신의 경향들은 전통적으로 유럽 통합에 훨씬 더 적대적이었고 위기가 발생한 처음부터 유로와 그 전체 전략, 제도 혹은 어떤 제도의 집합으로서 EU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취해왔습니다.
 
시리자 내부에도 좌파강령에서는 현 상태의 EU를 차분하게 비판해 왔었고, 그리스가 유로존에 포함된 것이 핵심 문제라고 보는 편이에요. 유로존에서 탈퇴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데 키프로스식으로 트로이카에게 협박을 당하는 상황에게 유일하게 남은 선택지가 탈퇴 밖에 없다면, 뭘 해보기도 전에 두 손이 묶인 것이나 마찬가지이죠.
 
시리자의 다수는 이러한 방식을 강력하게 반대하며 매우 좌파적으로 들리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방식이 국가적 해법으로 후퇴할 뿐이라는 거에요. 이는 국제주의가 아닐 뿐 더러 반자본주의가 아니라는 측면에서도 비판을 하지요. 왜냐하면 이들은 그 기반이 되는 기획은 바로 국가 자본주의로의 복귀라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유럽의 다른 급진좌파가 하는 얘기와 꽤 일맥상통하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시리자가 총선에 승리하고, 좌파 강령의 입장이 승인되었으며, 유로존에서 그리스가 탈퇴하고, 양허안을 폐기한 후에 은행을 적어도 일부 국유화하고, 사유화를 중단하는 등의 조치가 있었다고 가정해 보죠. 그렇다면 2015년 7월의 그리스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요? 일국 사회주의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잖아요? 국제 대부에 의존할 수 없고, 유로존에서 배제된 가난하고 후진적인 유럽 국가에서 좌파 사회민주주의로 어느 정도 상황을 바꿀 수 있을까요?
일단 묘사해 주신 2015년 여름 상황이라면 그리스의 디폴트가 시작되겠지요. 왜냐하면 그리스의 채무 중에 상당량이 올 여름 만기가 돌아오기 때문이고, 디폴트와 그에 따른 유로존 탈퇴 혹은 추방이라는 상황에서 총체적인 어려움이 닥치겠죠.
하지만 지금까지 역사적으로 모든 사회 변혁은 적대적인 국제 환경 속에서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시간과 시간성이라는 개념이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정치는 특정한 순간에 개입하는 것이고, 지배적인 시간성을 대체하여 새로운 시간성을 발명하는 것입니다. 물론 전략적으로 일국 사회주의는 불가능하죠. 그리고 유럽에서 사회 변혁은 유럽 차원에서 확장해 나가는 동력이 있는 경우에만 가능할 것입니다.
 
그래서 제 대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리스에 있어서는 힘든 시간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정부와 정치적 차원에서 제기되는 목표들에 대한 강력한 수준의 사회적 지지가 있다면 충분히 극복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리스에서 좌익 정부가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유럽에서 이를 지지하는 거대한 공론의 물결이 일어날 것이고, 강력하게 개입할 여지가 있는 국가의 급진 좌파들에게 상상할 수 없는 정도로 활력을 불어넣을 것입니다.
 
스페인은 그리스와 같은 시나리오가 확장될 수 있는 가장 명백한 국가죠. 하지만 제 생각에는 지금 당장은 그렇게 보이지 않을지 몰라도 프랑스 역시 EU에서 약한 고리가 될 잠재성이 있어요. 남쪽에서 바람이 충분히 불어온다면 말이죠.
 
유럽에서 급진 좌파 세력이 국가 권력을 가지고 있지 못한 지금 상황에서 국제연대는 어떠한 구체적인 형태를 취할 수 있을까요? 계급투쟁을 벌이는 것 이상으로 유럽을 넘어 연대의 형태로 가능한 것이 무엇일까요?
세 가지 문제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먼저 연대가 필요합니다. 1월 25일 이후 시리자 정부가 집권한다고 하면 시리자의 고립을 깨고 유럽 정부들의 협박을 최대한 막아내기 위해 커다란 연대 운동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긴축 정책을 막아내기 위한 대책이나 부채 같은 구체적 사안들에 대한 지지가 필요합니다. 이게 한 측면입니다.
 
두 번째 수준에서는 정치적 고립을 끊어내기 위해 각자의 나라에서 정치적 성공을 거두고 세력 균형을 바꾸는 거예요. 물론 이 전선에서 그리스에 대한 많은, 어찌 보면 너무나 많은 기대가 있어요. 하지만 그런 과도함이 없다면 동원도 불가능할 것이고, 사람들의 상상력도 사로잡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실질적인 정치적 성공을 촉발시켜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포데모스의 부상은 시리자에게는 가장 좋은 소식입니다. 스페인의 정치 지형이 급변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스페인에서 그리스에 비견될 수 있는 것이 조만간 나타난다는 것만으로도 숨 쉴 틈이 생기는 거죠.
 
세 번째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국제적 수준의 새로운 정치적 수단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유럽 좌파당이 있고, 대안회의 캠페인 혹은 상급조직이 있으며, 사회포럼의 유산도 있습니다. 아예 없는 것보단 낫지만 여전히 불충분하며 현 상황에서 필요한 것엔 훨씬 못 미치죠.
 
견고한 국제 네트워크, 일종의 새로운 인터내셔널이 필요합니다. 과대망상이라거나 그리스 중심주의가 아니라 시리자 정부, 그리고 아테네가 유럽과 국제적 차원의 정치 중심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리자 정부에게 필요한 것은 아테네에서 주요 정치 회의를 여는 것입니다. 시리자에 대한 지지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보유한 많지 않은 정치적 수단을 넘어서기 위한 진지한 토론을 하는 정치 회의 말입니다. ●
 
 
원문 : www.jacobinmag.com/2015/01/phase-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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