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
- 2015/04 제3호
세월호 이후의 세월호
1년간의 참사를 돌아보며, 안전 사회를 생각한다
“환풍구에 올라간 게 잘못이다.” 지난해 10월 17일 일어난 판교 환풍구 참사에 대한 차가운 반응은 생각보다 광범위했다. 유가족들은 사고가 일어난 지 3일 만에 주최 측인 이데일리, 경기과학진흥원과 합의했다. 일부 언론들은 이것이 성숙한 자세라며 세월호 참사의 유가족들을 비난했다. 세달 뒤, 사고를 조사한 경찰은 판교 환풍구 참사는 부실시공과 행사 안전관리의 방기로 인한 총체적인 인재라며 공사관계자 및 공연 주최·주관사 관계자 등 17명을 기소했다. ‘총체적인 인재’라는 조사결과에 유가족들이 어떤 울음을 삼켰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세월호 때문에 이슈가 된 것이지 예전같았으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60명의 탑승인원 중 27명이 사망하고 26명이 실종된 오룡호 유가족에게 사조산업이 한 말이다. 사조산업은 한국인 유가족들에게 3000만~5000만 원의 위로금을 제안하면서 관행상 2000만 원이지만 많이 신경 쓴 금액이라 생색냈다. 외국인 유가족에게는 1000만 원에 합의하지 않으면 시신을 안주겠다고 협박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지금도 오룡호 유가족 중 다섯 가족은 사조산업 앞에서 책임자 처벌과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농성하고 있다. 외국인 유가족 중 아홉 가족은 부당합의에 대한 소송을 진행 중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1년, 참사는 유난히도 많이 반복되었다. 그 양태는 모두 달랐지만, 원인은 놀랄 만큼 이전 참사들과 겹쳤다. 비난하는 여론도, 해결하려는 방식도 비슷하게 반복되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잊혀진, 세월호 이후의 세월호를 돌아봐야 하는 이유다.
장성 요양병원 화재, 그 이후
2014년 5월 28일 전라남도 장성에 있는 효실천 사랑나눔 요양병원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매트리스에서 나온 유독가스가 빠르게 번졌지만, 입원해 있던 고령 환자들의 대피를 도울 인원은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환자 20명과 간호조무사 1명, 총 21명이 사망했다.
급증하고 있는 요양병원의 안전기준이 제대로 정비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사고 후에야 알려졌다. 사고 당시에는 의료기관용 재난대응매뉴얼도 없었다. 보건복지부는 매뉴얼을 만들어 6월에 배포할 예정이었는데 사고가 났다고 했다. (의료기관 화재에 대한 매뉴얼은 2014년 12월 마련되었다) 요양병원의 의료인 기준도 일반병원보다 느슨했다. 일반병원은 입원환자 20명마다 의사 1명, 간호사는 2.5명마다 1명이지만, 요양병원은 의사는 환자 40명당 1명, 간호사는 6명당 1명을 두면 된다. 위급상황 시 대피를 도울 인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야간 당직에 대한 감독도 이루어지지 않아 기준보다 적은 당직인원이 일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도 사고 후에 알려졌다. 전남 장성의 요양병원도 규정 상 필요한 간호사는 24명이었지만, 화재가 난 사고 당일에는 16명만 일했음이 알려져 논란이 되었다.
지난해 11월에 사고 관련자에 대한 1심 선고가 있었다. 불을 지른 치매노인에게는 징역 20년이 선고된 한편, 책임자인 이사장에게는 징역 5년 4개월이 선고되었다. 안전관리를 부실하게 한 이사장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는데 치매노인인 방화범에게만 책임을 돌렸다는 유가족들의 발언은 묻혀버렸다.
막을 수 있었던 판교 환풍구 붕괴 사고
환풍구에 올라간 사람들이 문제라는 비난 여론이 한바탕 인터넷을 휩쓸고 난 뒤에야 부실시공 문제가 밝혀지기 시작했다. 시공사는 환풍구 공사를 철물공사업체에 맡겼지만, 이 업체는 다시 공사 면허도 없는 자재납품업체에 재하도급을 줬다. 결국 도면과 다른 엉터리 시공이 이루어졌다. 용접은 불량했고, 앵커볼트도 불량에 제대로 고정되지 않았고, 덮개 지지대도 지지능력이 없는 모델로 사용되었다. 부실시공의 원인을 찾을 때마다 등장하는 건설업의 불법하도급 문제는 판교 환풍구 참사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공연 기획 과정에서 안전대책은 아예 세워지지 않았다. 주최 측도 대행사도 안전대책을 세우지 않아 안전요원은 한 명도 배치되지 않았다. 소방관들은 안전점검을 실시하지 않고도 소방점검표에 허위로 기록했다.
이 사고에서도 문제는 규제 완화였다. 2014년 2월 안전행정부가 ‘재난안전관리법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지역축제 중 ‘예상관람객 3000명 이상’ 규모만 공연법의 관리 대상이 된 것이다. 판교 행사의 불과 1년 전인 2013년 7월 인천에서 열린 한 축제에는 관람객 1천여 명에 안전요원 10여 명이 배치됐지만, 규제가 완화되면서 사고가 났던 판교에서의 행사는 안전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었다. 사고 직후 일부에서는 이를 지적했지만, 규제가 다시 강화될 전망은 아직까지 없어 보인다.
세월호와 판박이, 오룡호 침몰 사고
2014년 12월 2일에 발생한 명태잡이 트롤선인 오룡호 침몰 사고는 한국의 원양어선 사고 사상 가장 큰 인명피해를 낸 사고다. 기상 악화로 다른 선박들은 죄다 피항한 상황에서도 오룡호는 홀로 바다에 남아 조업을 했다. 배에 이상이 생긴 직후부터 침몰까지는 4시간의 기회가 있었지만 퇴선명령은 내려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선사인 사조산업과 사고를 수사하고 있는 해경은 살아 돌아오지 못한 선장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고 있다.
그러나 근본 원인은 따로 있다. 우선 오룡호는 36년이나 된 노후 선박이었음에도 제대로 된 유지보수나 안전점검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여객선과 달리 원양어선은 선령제한이 없어 사조산업 트롤선박 9척 모두는 선령 30년 이상의 노후선박이었다. 안전점검도 엉망이었다. 2013년 9월에 파손된 오물배출구를 2014년 7월 출항 전까지 수리하지 않았음에도 오룡호는 2014년 2월 한국선급의 중간검사에 합격했다.
기상악화 상태에서의 무리한 조업은 사조산업의 과도한 할당량 때문이었다. 오룡호는 본래 배정되었던 4400톤의 할당량에 3500톤이나 추가로 배정받았고, 이 때문에 무리한 조업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뿐만 아니라 오룡호에는 선장과 기관장 등 핵심선원 4명이 기준에 미달하는 자격증을 갖고 있었고, 반드시 승선하도록 정해져 있는 2,3등 기관사는 배에 오르지도 않았다. 선원 임금에 대한 지출을 줄이기 위해 필수 승무 선원조차 태우지 않은 것이다.
유가족들을 가장 분통터지게 만드는 것은 앞서 지적한 원인들이 법정에서 사실로 인정되더라도 선박직원법 상으로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 선원법 상으로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이 최고형이라는 점이다. 대기업인 사조산업의 직원 한두 명에 이런 처벌을 내린들, 기업 전체의 안전 정책이 변화할 리 만무하다.
진짜 바꿔야 하는 것들
세월호 참사 이후 지적되었던 많은 문제들과 최근 일어난 참사에서 보이는 문제들은 동일하다. 안전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책임선상에서 숨을 수 있다. 운 나쁘게(?) 기소되더라도 방화범보다는, 말단 직원보다는, 훨씬 더 적은 책임만을 지게 된다. 안전에 대한 국가 정책이 강화될 것이라는 믿음은 항상 배신당한다. 참사는 더 자주 반복되고 불안은 심해지는데 점검 대상은 더 줄어들고 있다. 종합적인 대책이 아니라 주로 지적받은 한 두 부분만 고치다보니 그 다음 참사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게다가 이러한 약간의 진전도 곧 다시 역전되기 마련이다. 비용절감과 기업경쟁력강화라는 기조는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1995년 삼풍백화점 사고 직후 구성된 건교부 산하 건설제도개혁기획단은 ‘부실방지 및 건설산업 경쟁력 강화 대책’이라는 형용모순적인 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대한건축학회마저 “제도적 대책의 기반이 건설산업 경쟁력 강화에 맞춰져 구조적 안전성 제고라는 근본적 문제 해결에 미흡했으며 세부 내용 다수가 부실공사 방지와 무관”하다고 평가한 이 대책은 정부와 기업이 참사를 어떻게 자신들의 정책기조에 맞게 활용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세월호 참사 이후 진행되고 있는 안전대책도 마찬가지다. 2015년 3월 19일 산업통상자원부는 ‘안전사회 확보와 안전산업 성장’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며 안전산업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안전대진단을 안전산업 도약의 계기로 적극 활용하고, 민간중심의 자생적 안전산업 성장여건을 마련에 주력하겠다는 것이 핵심 골자다. ‘규제 선진화’라는 이름으로 중복규제 문제를 해결하고, 재난의무보험과 위험관리 컨설팅을 보험사 부수업무로 허용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결국 국가가 안전에 대한 책임을 민간기업에 넘기고, 세월호 참사 이후 대두된 안전에 대한 관심과 국가 투자 역시 기업의 이익을 위해 돌리겠다는 이야기이다.
진짜 바뀌어야 할 것들은 따로 있다. 규제를 완화하며 기업이윤을 보장하는 데만 앞장서는 정부가 변화해야 하고, 안전보다 이윤을 우선시하는 기업이 바뀌어야 한다. 또한 사고를 예방하고 위험상황을 해결하는 가장 직접적인 주체인 노동자들의 안전에 대한 권한도 높아져야 한다. 그리고 참사가 일어날 경우 가장 큰 희생자가 되는 시민들이 위험에 대해 미리 알고 대비하는 시스템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 참사의 역사는 국가와 기업이 사고를 통해 위험을 인지했다고 하더라도 자연스럽게 자신의 의무를 강화하지 않는다는 점을 증명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운동이 필요하다. 정부와 자본이 더 이상 자신의 책무를 방기하지 않도록 사회적 힘을 모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