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 노동보다
  • 2015/06 제5호

불법천지 공단에서 노조 하는 방법

  • 이유미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공단은 불법천지다. 제조업 파견은 불법이지만 공단 노동자의 다수는 파견업체를 통해 공장에 취업한다. 회사는 소사장제를 통해 파견을 도급으로 위장하거나 파견업체를 6개월 단위로 바꿔 눈속임을 하고 있다. 또한 노동비용 절감을 위해 무료노동을 시키기도 한다. 출근시간보다 30분 일찍 출근시킨다거나, 업무시간 종료 이후에도 청소를 시킨다거나 하면서 무급노동시간을 늘이는 것이다. 

전자제품 하청업체의 경우 물량쏠림이 심해 일이 많다가 없는 경우도 많은데, 노동자들에게 당연히 지급되어야 할 휴업수당은 거의 지급되지 않으며 오히려 연차를 강제로 소진하도록 강요한다. 임금 역시 최저임금을 위반하는 일도 발생한다. 특히 제조업에서는 허용되지 않는 포괄임금제를 연봉제라는 이름으로 도입하여 초과근로수당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아 최저임금을 위반하는 경우도 많다. 이처럼 공단에서 법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의미는 반대로 근로기준법이 준수만 되어도 노동조건을 전반적으로 개선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지역 차원의 접근이 필요해

불법천지 공단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도록 하려면 뭐가 필요할까? 질문을 달리하면 공단에서 노동자들 스스로가 노동조건을 개선할 방법, 노조 할 방법은 무엇일까? 

우선 조건부터 살펴보자. 공단에 밀집해 있는 업체들은 수직적 하청구조의 2차 3차 이하 밴더들로 상시적인 단가 인하 압력에 놓여있다. 노동자들을 싸고 유연하게 부리는 것이 유일한 수익 창출 경로인 회사들이다. 그 결과 공단제조업 노동자들은 임금이 낮고 고용도 불안해 공단을 전전하게 된다. 한마디로 회사들은 영세하고 노동자들은 유동하고 있어 사업장에 노조를 설립하기도 유지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사업장 하나를 개선하는 것을 넘어 공단 전반의 노동조건을 향상시키는 방법이 필요하다. 공단조직화를 지역 차원으로 접근하는 이유다. 

지역조직화는 여러 유형이 있는데, 일반적인 형태는 사업장을 기반으로 하여 지역차원의 공동 교섭이나 투쟁을 하는 것이다. 즉 작업장 교섭력을 중심으로 지역의 집단적 힘을 모으는 것이다. 1985년 구로동맹파업의 5개 사업장 공동 투쟁이나,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건설된 지역노조협의체 들이 대표적이다. 오늘날 일반노조와 금속노조 지역지회, 공공운수노조 지역지부들이 추진하고 있는 지역조직화도 유사하다. 

지역조직화의 다른 형태로는 노동시장 교섭력을 우위에 두는 건설노조의 사례를 들 수 있다. 건설노동자는 상시적 고용 없이 반실업 상태에 놓여있어 일을 찾아 돌아다닌다. 노동자들은 일을 찾기 위한 다양한 친목모임을 만드는데, 건설노조는 일감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인맥을 장악하면서 노동자를 조직했다. 그리고 이러한 노동시장 통제력을 바탕으로 조합원 우선 채용과 안전교육 이수 의무화 등을 사측에 관철시키고 있다. 유동하는 건설노동자를 사업장 단위로 조직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노동시장 자체를 조직하여 노동시장 교섭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악덕업체 ‘타깃’을 정해야

공단 노동자들도 유동하고 있으며 사업장별 조직화가 쉽지 않기 때문에 건설노조의 지역조직화 유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론 공단노동자들의 경우 건설노동자들처럼 동일업종에 종사한다는 동일성이 크지 않고, 인맥을 중심으로 구직하지 않는다는 차이점이 있다. 따라서 완전히 동일한 방식을 적용할 수는 없지만 사업장 중심이 아니라 노동시장을 조직하는 관점, 노동 공급을 통제하여 교섭력을 확보하는 관점을 공단에 적합한 방식으로 변형해 볼 수 있다. 

공단에서 근로기준법을 어기는 악덕업체가 있다고 해서 노조가 노동시장을 장악하여 노동 공급을 끊어버리는 방법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악덕업체와 거래하는 파견업체 타격을 통해 노동 공급을 방해할 수 있다. 특히 노조가 타깃으로 삼은 사업장의 물량이 몰리는 시점일수록, 이직이 잦아 안정적 노동력 공급이 중요한 업체일수록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파견업체를 타격하는 방법은 불법 사안을 찾아내 고소고발 하는 것과 공단에서 해당 파견업체의 문제점을 폭로하는 방법을 고려해 봐야 한다.  
공단 제조업체들은 사회적 이미지를 신경 쓰지 않는다. 대다수 업체들은 제품을 납품하는 원청의 눈치를 볼 뿐이다. 그러나 근로기준법을 위반하는 사업체와 그곳에 노동자를 공급하는 파견업체의 평판을 나쁘게 만드는 우회적인 방법을 통해 위반사업장을 압박할 수 있다. 특정 업체, 파견업체에 대해 ‘돈 떼먹고, 법도 지키지 않는 불법(파견)업체 가지말자’는 공단여론을 형성한다면 앞서 설명한 노동 공급을 방해하는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노동자들 입장에서도 어차피 공단 노동조건이 거기서 거기이기 때문에 굳이 악덕사업장으로 선정된 곳에 취업하지 않아도 된다. 노동조건이 별로라는 소문이 돌면 노동자들도 취업을 꺼려하기 때문이다.

사실 근로기준법 위반사업장이 공단에 널려있는 상황에서 하나의 업체를 문제 삼는 게 노동자들의 공감을 사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래서 관건은 공단노동자들이 만연해 있는 불법을 체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라도 본보기를 보여주자는 생각이 들도록 노동자들의 여론을 움직이는 것이다. 타격할 사업장을 정하는 것과 의제를 선정하는 작업부터 공단노동자의 관심을 끌 수 있어야 한다. 공단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근로기준법 위반사항,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가장 바꾸고 싶은 위반사항, 노동자들이 경험한 공단 악덕 사업장을 설문조사 등으로 파악해 손봐줄 대상을 선정하는 것이다. 
 

변할 수 있다는 전망을 보여야

결국 근로기준법 위반 업체로 찍한 회사가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해 노동조건을 일부 개선하여 구인하고자 한다면, 그것이 비록 노조의 시정 요구와 다른 것이라도 투쟁의 성과로 볼 수 있다. 당연히 위반사업장이 노조의 요구를 수용하는 것도 성과다. 노조는 이러한 결과를 공단에 선전하여 노동자에게 노조를 통한 집단행동으로 노동조건 개선이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던질 수 있다. 어차피 이직이 잦아 지금 속해있는 사업장만 바뀐다고 노동조건이 개선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시야를 공단으로 확대하고, 노동조합에 참여하는 것으로 공단의 노동조건이 향상될 수 있다는 전망을 제시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공단 사업주들에게는 근로기준법을 위반하면 타격당할 수 있음을 보여주며 압박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이처럼 근로기준법 위반 사업장을 타격해 공단노동자들 사이에 평판을 떨어뜨려 노동 공급을 방해하는 전술은, 건설노조가 지역협약을 불이행 사업장을 타격하며 협약의 효력을 유지하는 것에서 착안한 것이다. 건설노조의 협약유지의 핵심은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사업장을 강제하는 것인데, 공단 조직화 역시 이를 참조하여 공단의 사업장을 대상으로 근로기준법 준수를 강제하는 기획인 것이다. 공단에서 상징성 있는 근로기준법 위반업체를 선정해 휴업수당 지급과 같은 요구를 걸어 타격투쟁을 하고, 준수약속을 받아내는 투쟁을 공단 전반으로 확대하는 방법이다.

이러한 방법은 협약 없이 협약의 효과를 낳는다. 비록 사용자단체가 구성되지 않았고 노조와 직접 협약을 체결한 것은 아니지만,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의 집단행동으로 공단에서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에게는 노조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경험하게 되는 기회가 될 것이며, 성공적으로 확산된다면 집단투쟁과 조직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
 
올해 4월 인천지역 노동자 권리찾기 사업단이 공단에서 무료 상담과 실태조사를 하고 있는 모습. 사업단에는 금속노조 인천지부, 민주노총 인천본부, 건강한 노동세상, 노동당, 사회진보연대 등 노조와 지역사회단체들이 함께하고 있다.
 

감시단이자 상담소로 기능하는 노동조합

노조가 노동자들이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받도록 강제하는 공단 근로감독관이자 노동상담소로서 역할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노동자들에게 공단에서 최소한의 권리를 지키는 데 노동조합이 필요하며 함께하자고 제안하는 것을 과제로 삼아야 한다. 노동자들이 ‘최소한 법으로 보장된 권리는 보장 받자. 적어도 뭐가 불법이고 합법인지는 알아야 당하지 않는다. 더럽고 치사한 꼴을 보느니 싸워보고 딴 데 간다. 딴 데 가더라도 이것만은 꼭 손보고 간다’고 생각한다면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도록 조직하는 것이다. 

조합원들이 공단에서 일종의 노동자 근로감독관이자 근로기준법 준수 자경단으로서 정체성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과 활동방식 역시 개발해야 한다. 노조 체계가 사업장을 기반으로 구성되어있기 때문에 개별조합원을 위한 노조의 프로그램이 취약한 상황이라 공단조직화에 적합한 방식으로 기획될 필요가 있다. 

이런 활동은 당장에 다수 공단노동자를 노조로 가입시키기 어렵지만, 노동조합이 근로기준법 준수를 공단에 정착시키겠다는 신호를 노동자들에게 보내는 의미가 있다. 온갖 불법과 비인격적인 대우를 체념하고 있는 공단 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이 미조직 노동자들의 권리를 근로기준법 이하로 후퇴 시키는 것에 제동을 걸겠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노동자들도 불법에 맞설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자. 그 결과를 바탕으로 투쟁의 다른 국면을 열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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