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 노조 할 권리
  • 2015/09 제8호

서러움 떨치고 민주노조 택한 금호타이어 비정규직노동자들

금호타이어 비정규직지회 이경진 대의원 인터뷰

  • 인터뷰, 정리 김유미 편집실 기획국장
 
금호타이어는 지난해 12월 워크아웃을 졸업했다. 5년 만이었다. 2010년 워크아웃에 돌입하면서 금호타이어 노사는 기존 정규직이 하던 공정 중 597개 직무(명)를 순차적으로 도급화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현재 광주·곡성에 위치한 금호타이어 공장에는 워크아웃 이후 신규로 도급화된 6개 업체를 포함해 20여 개의 도급 업체가 들어와 있으며, 1000여 명의 사내하청 노동자가 고용되어 있다. 광주·곡성 공장을 합해 정규직 노동자가 3000여 명임을 생각하면 적지 않은 숫자다.

지난 8월 13일 금호타이어 광주공장을 찾았다. 금호타이어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올해 민주노총에 대거 가입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노조 할 권리>와 <단결툰> 인터뷰에 응한 이경진 금호타이어비정규직지회 대의원과 장천수 조합원은 올해 4월 함께 민주노총 금속노조에 가입했다. 

회사는 경영상의 이유로 도급화를 요구했고, 노동자의 저항은 역부족이었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하던 일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차례차례 넘겨받았다. 2~3년 안에 끝날 거라던 워크아웃은 기약 없이 길어져 결국 5년까지 갔다. 그 5년 동안 금호타이어 현장은 어떻게 변했을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어떻게 일해 왔으며, 어떤 이유에서 민주노총에 집단 가입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을까?
 

입사와 동시에 한국노총 가입

이경진 대의원은 2011년 봄, 금호타이어 도급업체에 입사했다. 그가 일하는 라인은 워크아웃 이후 가장 먼저 도급이 된 공정이었다. 입사해보니 정규직 노동자들은 도급화에 반대하는 파업 투쟁을 진행 중이었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도급화 반대’를 외치며 드러누워 있는 현장에 들어와 일을 배웠다. 이들을 바라보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시선은 고울 수가 없었다. 내 동료를 내쫓고 들어온 노동자들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입사 후 며칠은 뒷문으로 출퇴근을 하고 눈치를 보며 일해야 했다. 일주일쯤 뒤에 두 번째 도급업체 노동자들이 현장에 들어왔을 때에는 이미 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이 끝난 후였다. 

도급업체 사장은 자신의 업체만이라도 ‘노조 청정 구역’으로 만들고 싶어 했다. 아마 그것은 원청인 금호타이어가 요구한 업체의 계약 조건이었을 것이다. 이경진 대의원은 “입사 면접이 딴 거 없었어요. 노동조합에 관심 있냐, 노동조합 가입할 거냐, 이런 걸 물었어요. 입사할 때니까 저도 그렇고 다들 관심 없다, 안 한다고 대답했죠”라고 그때를 회상했다. 

노동조합은 절대 안 된다던 회사는 3개월 후 입장을 바꿔 노동자들에게 ‘한국노총 가입’을 강요했다. “3개월의 수습기간이 끝나고 정식 근로계약서를 쓸 때가 됐는데, 사장이 출근한 우리를 다 불러 모아 놓고 우리 회사는 유니온숍(취업 후 자동적으로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제도)이다. 한국노총 가입 안하면 근로계약을 할 수 없다. 이렇게 말했어요. 심지어 한 명을 세워놓고는 그 사람이 분회장이라고 통보했어요.” 노동자들은 황당했지만 아무 소리 못하고 가입서를 썼다. 
 

관리자 역할을 하는 노조

처음에 조합원들은 노조가 생겼다는 생각에, 작업 과정에서 불만 사항이 있으면 노동조합 대의원에게 가서 얘기를 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사장의 잔소리였다. 

“대의원들이 반장이나 관리자처럼 통제하려고 했어요. 근무 중에 핸드폰 보지 말아라, 뭐 하지 말고 뭐도 하지 말아라. 하지 말란 것만 잔뜩이에요. 어떻게 같이 해 보자는 건 없고. 맨날 회사 사정이 이러니 이해하라는 얘기뿐이에요.”

이경진 대의원이 입사한 도급업체는 소위 ‘스프레이(도포)’라 불리는 하나의 공정을 통째로 맡고 있는 회사였다. 본래 정규직이 하던 일을 넘겨받은 것이지만 정규직이 해오던 것과는 다른 규율을 적용받았다. 생산 속도가 빨라졌을 뿐 아니라 각종 지침도 더욱 엄격해졌다. 심지어 정규직의 실수로 생긴 불량도 스프레이 공정의 책임으로 돌렸다. 

누가 봐도 부당한 일이 계속되니 현장에서 자잘한 충돌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타이어를 운반하러 왔다 갔다 하는 정규직 반장이 ‘너희들이 호구가 아닌데 왜 그렇게 일하냐’고 안쓰러워할 정도였다. 곁에서 보면 민주노총 금속노조에 가입된 정규직 노동자들은 반장한테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하고 살았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도급업체 노동자들은 그것을 내심 부러워했다. 
 

처음으로 느낀 고용불안

그렇게 몇 년을 참고 살던 이들이 ‘정말 안 되겠다’고 결심을 한 계기는 작년에 있었다. 발단은 타이어 품질개선으로 인해 12명의 일자리가 사라진 것이었다. 

“금호타이어 원청의 공정계획에 따라 일부 스프레이 기계를 철거했는데, 이 때문에 12명의 여유인원이 생겼어요. 이 인원들을 정리하려면 한국노총 단체협약에 따라 우선 퇴사 희망자를 모집하고, 뭐 이런저런 절차들을 진행해야 하는데 이걸 깡그리 안 했어요. 대신에 12명을 찍어서 ‘사직서 쓰고 자진 퇴사 형식으로 나가면 다른 도급회사를 소개해 주겠다’고 말했어요.”

그런데 사직서를 쓴 12명의 명단이 의아했다. 도급업체는 평소에 불량이나 지각 등을 체크하여 노동자 각각에게 ‘근태 점수’를 매겨 왔다. 노동자들은 경영상의 해고가 닥친다면 근태 점수가 낮은 순서로 해고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선정된 12명은 점수가 낮은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평소에 한국노총이나 회사에 불만이 많았던 사람들이었다. 명단의 기준이 무엇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렇다 해도 노동자들은 ‘기계가 없어졌는데도 해고하지 않고 다른 업체를 소개해주다니 그래도 사장이 좋은 사람이구나’ 생각했다고 한다. 문제는 3개월 후에 발생했다. 옮겨간 도급업체에서 수습기간 3개월이 지난 후 이들 중 일부를 채용하지 않기로 밝힌 것이다. 뿐만 아니라 12명 명단 선정에 영향을 미친 것이 한국노총 분회장과 일부 대의원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노동자들은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대의원들이 ‘내가 찍은 사람이 나간 거다’ 자랑스럽게 얘길 하더라고요. 나 이렇게 힘 있다, 나한테 잘 보이라고요.”
 
8월 21일 파업에 참여한 금호타이어비정규직지회 노동자들
 

비밀리에 사람을 모으다

12명이 떠난 후 관리자들의 목소리는 더 커졌다. 음료수 자판기에만 다녀와도 근무지 이탈이라는 식으로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다. 

그때쯤부터였다. 이경진 대의원을 포함한 몇몇 노동자들은 본격적으로 노조 민주화(민주노총으로의 전환)를 위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민주노총이 실질적으로 역할을 하려면 한두 명이 가입해서 되는 게 아니라 과반수가 넘어와야 했기 때문에 치밀하게 계획을 짰다. 4조 3교대로 A, B, C, D 교대조가 있는데 각 교대조마다 같이 준비할 사람이 필요했다. 아는 사람을 건너 건너서 각 조에서 믿을 만한 사람, 리더십이 있고, 준비 과정에서 비밀을 지킬 수 있을 사람을 소개받았다. 

그렇게 비밀리에 준비를 이어가던 올해 2월 어느 날, 금호타이어 곡성공장의 정규직 노동자가 분신해 숨지는 일이 벌어졌다. 워크아웃이 끝났는데도 도급화를 이어가려던 회사에 항의하는 것이었고 그가 일하던 업무는 조만간 도급화가 예정되어 있었다. 이 일이 있고 나서 금호타이어는 추가 도급화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이경진 대의원은 함께 민주노총 가입 사업을 하던 사람들과 돈을 모아 장례위원에 이름을 올렸다고 한다. “조금이지만 몇 만 원씩 돈을 모아가지고 장례위원을 했어요. 이름을 쓸 수는 없어서 ‘스프레이’라는 이름으로 장례위원을 등록했죠.” 
 

너도나도 민주노총으로

디데이를 잡는 데에 중요한 기준이 됐던 것은 고등법원 판결이었다. 금호타이어 곡성공장에서 스프레이 공정을 포함한 도급 공정들이 불법 파견 소지가 있다는 소송을 내 올해 4월 고등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었다. 소송이 승리한다면 광주공장의 스프레이 공정 역시 정규직화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난다. 판결이 유리하게 나올 것이라 예측했던 이경진 대의원은 소송의 결과가 나오고 3일 뒤쯤을 디데이로 잡았다. 그런데 판결이 미뤄지며 변수가 생겼다. 

“원래 판결이 4월 17일쯤에 나는 거였는데 갑자기 일주일이 미뤄졌어요. 24일로. 우리 디데이는 20일이었는데요. 그래서 어떻게 하나 난감해하고 있었는데, 같이 준비해 왔던 사람들이 그러더라고요. ‘그냥 예정대로 20일에 하자’고요.”

결과적으로 이 결정은 회사를 당황시켰다. 회사는 불법 파견 판결이 나고 나면 일부 노동자들이 동요할 거라 예상은 했지만, 판결이 나오기 전에 집단적인 움직임이 있을 줄은 미처 몰랐기 때문이다. 관리자들은 우왕좌왕하며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했다. 

한 업체가 민주노총으로 넘어갔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도미노처럼 다른 업체들도 속속 민주노총으로 옮겨오기 시작했다. 결국 한국노총보다 훨씬 많은 숫자의 노동자가 ‘민주노총 금호타이어 비정규직지회’에 가입했다. 

“광주에서 저희가 민주노총으로 넘어가니까 곡성에 있는 회사도 하나 넘어오고, 그 다음에는 무노조로 있던 업체도 하나씩 넘어오기 시작했죠. 일단 조직화에 탄력이 붙자 비정규직지회가 적극적으로 가입 사업을 진행하면서 상당수의 한국노총 조합원이 민주노총 금속노조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고등법원 판결의 의미

다시 고등법원 판결로 돌아와 보자. 4월 24일 고등법원은 금호타이어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모든 공정의 도급이 불법 파견이라는 판정이 난 것이다.

금호타이어 사내하청에 대한 고등법원의 불법 판결은 현대자동차와는 또 다른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대법원의 현대차 불법파견 판결은 ‘혼재 생산’에 대한 불법 선언이었다. 유명한 표현대로 ‘오른쪽 바퀴는 정규직이, 왼쪽 바퀴는 비정규직이’ 조립하는 등 현대차 공장에서는 동일한 공정에 정규직 비정규직이 섞여 있었다. 이 판결 이후 대부분의 기업은 특정 업무를 블록화해서 도급을 주는 방식으로 비정규직을 채용했다. 그런데 이번 금호타이어 판결은 ‘블록화 도급’ 자체도 불법이라는 최초의 판결이다.

이경진 대의원은 “제가 일하는 공정을 보면 금호타이어의 생산계획에 따라 움직이고, 컨베이어벨트가 다 연결되어 있다보니 도급업체 관리자나 사장이 아무런 권한이 없어요. 검사 과정에서 불량이라고 판명이 나면 다음 공정의 관리자가 우리 반장한테 얘기를 하지만 사실상 우리한테 작업 지시를 하는 셈이죠. 그러다보니 불법파견이 확실해서 [대법원에 가더라도] 소송에선 이길 거예요”라며 승리를 확신했다.

물론 판결이 언제 날지, 대법원 판결 이후 금호타이어가 어떤 태도를 취할지는 미지수이긴 하지만 말이다. 현대차를 보면 대법원 판결이 난다 해도 그것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는 “판결이 났을 때 노조가 어떻게 대응할지는 우리의 중요한 과제이지요. 아직까지는 고민이 많아요”라고 말했다. 
 

달라진 관리자들의 태도

민주노총에 가입하고 당장 피부로 느껴지는 다른 점은, 관리자들이 노동자들을 대하는 태도가 확 달라졌다는 것이다. 이경진 대의원은 자신이 민주노총 대의원이 되고 나서 있었던 에피소드 하나를 들려주었다. 

“이곳이 분진과 소음 때문에 특수건강검진 사업장이에요. 저희가 쓰는 용액도 마스크를 반드시 쓰라고 되어 있고요. 근데 처음에 입사했을 때 일회용 방진 마스크를 한 달에 네 개 줬어요. 정규직들은 하루에 하나씩 주면서요. 한 달 근무일수가 대략 22일이니까, 하나에 5일 정도를 써야 하잖아요. 사용설명서에 ‘10시간 넘으면 폐기하시오’라고 되어 있는 거를요. 일을 하면 침 냄새나 땀이 배기 때문에 이틀 삼일이 지나면 그걸 쓸 수가 없어요. 그러다보니까 안 쓰거나 정규직한테 얻어 써요. 저도 그렇게 얻어 가면서 이틀에 하나씩 썼어요.”

몇몇 사람이 한국노총 대의원에게 새까매진 마스크를 보여주며 추가 지급을 요구했지만 입사 후 2년이 흐른 뒤에야 고작 두 개 늘어 한 달에 여섯 개가 되었다. 그런데 노동자들이 금속노조에 가입해 요구하자 회사는 당연한 듯이 마스크를 하루 한 개 지급하기 시작했다. 

“금속노조 딱 가입한 다음에 제가 대의원이 되고 나서 전화를 했어요. ‘사장님. 일회용 마스크 일회용인 거 아시죠?’ 했더니 ‘네’ 그러더라고요. ‘그럼 하루에 하나씩 주셔야하는 거 맞죠? 내일부터 주세요.’ 그랬더니 바로 다음날부터 하루에 하나씩 줘요.”

하루에 하나씩 마스크가 지급되기 시작했지만 마스크 없이 일하는 데에 익숙해진 일부 조합원들이 귀찮아서 여전히 안 쓰기도 한다. 하지만 이경진 대의원은 그런 사람들에게 마스크 꼭 써야 한다고 얘기하고 다닌다.

“보이지 않는 위험에 사람들이 너무 둔감해요. 법에 따르면 작업장 내 위험물질에 대한 교육을 반드시 해야 하는데 저흰 한 번도 안 받아봤어요. 저희가 쓰는 용액을 보면 흡입하지 마시오, 피부에 닿으면 바로 물로 씻어내시오, 이렇게 되어 있고요. 해골 표시가 있는 용액도 있어요. 그만큼 인체에 유해하다는 거죠. 민주노조가 생겼으니 그런 부분에 관한 교육도 이제 해야죠.”
 
<파업가>에 맞춘 몸짓을 배우는 조합원들 모습
 

첫 파업과 지회의 미래

워크아웃은 끝났지만 아직까지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워크아웃 기간 동안은 정규직도, 비정규직도 모두 임금 동결이었다. 작년 말 워크아웃이 끝나면서 드디어 임금을 3퍼센트 인상했지만 최저임금이 그 이상으로 오르면서 3퍼센트 인상은 의미가 없어졌다. 5년 전 입사할 때 워크아웃만 끝나면 정규직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지만 지금 금호타이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과는 무관한 신규채용만을 일부 했을 뿐이다. 

지난 8월 21일 금속노조 금호타이어 비정규직지회는 하루 파업을 했다. 올해 새로 지회에 가입한 조합원들에겐 첫 파업이었다. 함께 파업가를 부르고. 구호를 외쳤다. 언론은 금호타이어 워크아웃이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파업이냐고 일제히 노조 때리기에 나섰다. 그러나 정규직 비정규직 할 것 없이 워크아웃과 도급화 과정에서 겪었던 설움들을 생각한다면 노동자들이 ‘이제는 좀 달라지고 싶다’는 바람을 갖는 것이 무리는 아니다.

이경진 대의원은 “이번 파업은 제 생애 첫 파업입니다. 다른 동료들도 마찬가지이고요. 어떤 동료가 살다보니 금속노조에 가입도 하고 파업도 해본다면서, 후회는 없고 잘한 선택이었다고 말하더라고요. 대의원으로서 이탈자 없이 적극적으로 파업투쟁에 참여해 준 조합원들이 고맙고,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가려는 모습을 보며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라며 앞으로도 헌신적으로 비정규직지회에서 역할을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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