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 오늘사회운동
  • 2015/10 제9호

쉬운 해고 낮은 임금 더 많은 비정규직을 위한 야합에 맞서 싸우자

  • 손승환 사회진보연대 서울지부 회원

노사정위원회의 추악한 야합

9월 13일 노사정위원회 역사상 ‘최악의 야합’인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노사정합의문’이 발표되었다. ‘건전한’ 노사관계를 형성하고 노동자들을 ‘보호’한다는 목적을 내세운 노사정위원회에는 어떻게 이런 결정을 내렸나? 노사정위원회의 실상은 정권의 입맛에 맞게 기업의 이익을 위한 합의를 강요하는 것이었다.

김대중 정권인 1998년 2월 노사정위원회 출범 직후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협약’이 발표되었다. 외환위기 상황에서 노동과 자본이 정부의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기업의 경영투명성 확보와 구조조정 추진, 고용안정 및 실업대책, 사회보장제도 확충, 노동기본권 보장, 노동시장의 유연화 제고 등 10대 의제를 합의했다. 그러나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제 등 자본이 원했던 내용은 곧바로 입법, 시행되었지만 노조의 정치활동 보장이나 사회보장제도 확충, 재벌과 기업 개혁 등에 관련된 사항들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특히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제의 도입은 비정규직을 급격히 증가시키며 노동시장의 양극화를 초래했다. 

노무현 정권인 2006년 9월에 노사정위원회는  ‘노사관계제도 선진화방안’을 발표했다. 공익사업장 직권중재를 폐기하는 대신 공익사업장 범위를 확대하고 최소업무유지 도입과 대체근로 전면 허용으로 단체행동권을 제한하는 것이었다. 반면 직장폐쇄 요건을 완화하고 쟁의행위 찬반투표 개입을 허용하는 등 (노동조합 활동에 맞설 수 있는) 사용자의 대항권은 강화시켰다.

이명박 정권인 2009년 2월 노사정위원회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민정 합의’를 발표했다.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와 전임자임금 지급금지, 전임자수 축소를 통해 산별노조의 투쟁과 교섭구조를 약화시키고 노조 활동의 상당 부분을 무력화할 수 있는 것이었다. 노동기본권을 제약하고 노사 간의 새로운 갈등 요인만 증가시킨 두 합의는 국제 노동기준은 물론 국내 노동현실과도 맞지 않는 결과물이었다. 이외에도 매 시기 노동권을 후퇴시키는 합의를 만들어내며 노동자들의 목을 옥죄는 역할을 해왔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노사정위원회는 정부 정책을 수행하는 기구였다. 노사정위원회는 지난해 11월 기획재정부의 ‘정규직의 일반 해고요건 완화 검토’, 12월 비정규 종합대책의 ‘기간제 근로기간 연장, 파견 업종 확대’, 올해 초 최경환 부총리의 ‘정규직 과보호 해소’,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최대과제로 노동시장 유연화’ 등 박근혜 정부가 주창해온 노동시장 개악을 주요 의제로 논의해왔다. 이런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해 정권과 자본이 지속적으로 추진해 온 노동시장 개악을 승인해준 한국노총의 야합을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쉬운 해고, 낮은 임금, 더 많은 비정규직

이번 합의는 쉬운 해고와 낮은 임금을 현장에 강요하기 위한 일반해고제와 취업규칙 변경 가이드라인을 제정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또 정부가 주장해 왔던 청년일자리 창출 대신 비정규직 확산의 길을 터 주었고, 일자리 양극화와 경제위기의 원인 제공자인 재벌의 책임은 면제해주고 정규직 노동자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쉬운 해고다. 일반해고 요건을 완화하기 위해 ‘근로계약 체결 및 해지의 기준과 절차를 법과 판례에 따라 명확히 한다’는 문구를 합의문에 넣어 정부의 애초 계획대로 ‘일반해고 가이드라인’ 발표를 강행할 근거를 마련했다. 또 제도개선 방안 마련까지 합의함으로써 장기적으로 채용, 인사평가, 임금, 승진, 해고 등 근로계약 전반에 대한 법제화 논의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사용자 마음대로 평가기준과 저성과자를 정해서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것이다. 이는 ‘정당한 이유없이 해고를 할 수 없다’라고 되어 있는 근로기준법의 정신과 취지를 무력화시킬 뿐 아니라 쉬운 해고, 집단 해고를 위한 근로기준법 개악까지 하겠다고 드러내고 선언한 것이다.

취업규칙도 문제다. 임금피크제 도입에 따른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와 관련해서도 ‘단체협약 및 취업규칙 개정을 위한 요건과 절차를 명확히 하고’라는 문구를 통해 정부가 추진해온 ‘취업규칙 가이드라인’ 발표 계획을 승인해 주었다. 노동자의 노동조건 보호를 위해 근로기준법상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시 사용자가 배제된 상태에서 집단적 동의방식으로 해야 한다는 최소한의 요건도 없애겠다는 것이다. 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한 것으로 포장을 했지만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이 완화되면 취업규칙이 단체협약과도 같은 효력을 발휘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중소영세사업장을 포함한 노동조합이 없는 90퍼센트 노동자들은 더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내몰리게 될 것이다.

비정규직도 더 늘어날 형편이다. 노사정위원회는 기간제 파견근로자 등의 고용안정 및 규제 합리화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정기국회 법안의결시 반영토록 한다고 합의했다. 정부가 주장하고 있는 기간제 사용기간을 현행 최장 2년에서 4년으로 늘리고, 32개로 제한되어 있는 파견허용 업종을 55세 이상 고령노동자와 고소득전문직에 대해서 전면 허용하여 파견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2년이 경과할 시 상시·지속업무로 간주하여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기간제법 입법취지에도 반하는 영구 비정규직화이며, 파견확대를 통해 평생을 비정규직으로 살아가라는 것으로 정부가 이야기하는 비정규직 보호와 양질의 일자리 창출은 허울뿐이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한 합의이다.

주구장창 주장하던 청년고용 대책은 생색내기에 불과했다. ‘제반 조치 강구’, ‘적극 노력’, ‘자율적’ 등 실효성 없는 문구만 나열했다. 기업에게는 신규 고용 창출과 관련하여 선의와 자율로 일임하며 의무를 면제해주고, 청년고용을 확대하는 기업에게 국민의 세금으로 기업을 지원하거나 세무조사 면제 우대 혜택을 주어 고용과 관련한 기업의 책임을 국민의 부담으로 돌렸다. 또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복지 격차를 축소하는 방안과 관련해서는 대기업의 책임을 부여하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가 이야기해 온 청년일자리 및 양극화 해소와 아무런 연관성도 없는 대책이며, 임금피크제를 통해 청년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근거도 없는 이야기로 세대 간의 갈등만 조장했다.
 

실질적 투쟁을 조직하자!

이번 노사정 합의는 노동자들의 대표성을 가지지도 못하는 한국노총을 들러리로 세운 야합이다.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한국노총 일부 집행부들이 정권의 압력에 굴복하여 상납한 것일 뿐이기에 어떤 효력도 가질 수 없다. 9월 13일 합의안 발표 후 한국노총 공공연맹과 금속노련, 화학노련이 속해 있는 제조공투본에서 규탄 성명을 냈다. 14일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승인이 되기는 했지만 금속노련 위원장이 분신을 시도하는 등 내부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야합의 책임을 면할 수는 없지만 16일 새누리당이 제시한 5대입법 중 파견확대 관련하여 합의정신을 위반할 시 무효를 선언하고 투쟁에 나서겠다고 경고하고 있다. 하지만 애당초 합의정신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했는지는 의심스럽다.

민주노총은 합의발표 즉시 성명을 내고 개악저지 투쟁을 선언했다. 이번 노사정 야합은 민주노총 조합원들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절대다수의 미조직된 2천만 노동자의 생존권을 빼앗는 살인만행’이기에 민중운동진영, 시민사회와 대책기구를 꾸려 야합을 막고 노동개악 저지, 재벌책임 노동개혁 쟁취를 위해 온 힘을 모아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조인식이 열리는 15일 중앙집행위원 삭발 투쟁을 시작으로 17일 전국단위사업장 대표자대회와 19일 민주노총 총파업 선포 결의대회를 거쳐 23일 상경 총파업을 투쟁을 예고했다. 민주노총은 내 사업장의 임금인상과 노동조건 향상에만 전념했다는 그간의 비판을 불식시킬 수 있는 전환점으로 삼고 내 사업장의 안전장치를 거는 수준을 넘어서는 전면적인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이번 합의로 재벌의 책임은 사라지고 모든 책임은 정규직 노동자가 지고, 노동조합이 없는 90퍼센트 노동자는 집중적인 피해를 입게 되었다. 노사정합의가 사회통합, 청년과 미래세대 일자리라는 정부·여당의 환호성이 속임수라는 것을 체험을 통해 알게 되는 것은 악몽이다.  

사용자에게 쉬운 해고와 취업규칙 변경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칼이 쥐어지면 혼자서는 절대 막아낼 수 없다. 따라서 야합에 맞서 모든 노동자들이 단결해서 싸우고,  나아가 더 많은 노동조합을 조직해야 한다.  또한 노동조합이 노동시장 개악을 막아내는 투쟁을 하는 것을 넘어 중장기적으로 재벌에 맞선 투쟁을 준비하고 노동자들의 삶을 향상시키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지금은 노동시장 개악저지를 위해 싸울 때이면서, 한편으로 한국사회를 바꾸기 위한 시작점이다. 더 많은 국민들과 함께 싸워나갈 수 있도록 힘을 기울이자. ●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향한 우리의 전망, 오늘보다
정기구독
주제어
태그
신자유주의 새누리당 의료영리화 국회법 개정안 시행령 시행규칙 가이드라인 행정권력 유승민 사퇴 공무원연금법 이명박근혜 취업규칙 변경 입법 독재 사법심사권 민생법안 월권 김무성 보수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