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
- 2015/11 제10호
[자본주의와 질병] 잠 못 자고 골병 들도록 일하는 사람들
‘<자본주의와 질병> 강의’ 연재를 시작합니다. 산업재해, 정신질환, 메르스, 만성질환, 제약산업, 신종질병, 진보적 보건의료운동의 대응 전략 등 다양한 주제들에 대해, 사회의학적 관점에서 쉽게 풀어나가려고 합니다. 이 연재는 사회진보연대에서 주최하는 사회운동학교 가을강좌의 강사들이 강연의 현장감을 살려 여섯 차례로 싣습니다. 보건의료 현장에서 활동하는 필자들과 함께 자본주의와 질병의 감춰진 관계를 하나씩 알아봅시다.
① 잠 못자고 골병 들도록 일하는 사람들 / ② 정신질환의 경제학 : 웃는 제약회사, 우는 환자들 / ③ 메르스 사태, 재발 가능하다 / ④ 만성질환,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병 / ⑤ 제약산업 파헤치기 / ⑥ 신종질병을 유발하는 자본주의, 그에 맞선 도전
① 잠 못자고 골병 들도록 일하는 사람들 / ② 정신질환의 경제학 : 웃는 제약회사, 우는 환자들 / ③ 메르스 사태, 재발 가능하다 / ④ 만성질환,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병 / ⑤ 제약산업 파헤치기 / ⑥ 신종질병을 유발하는 자본주의, 그에 맞선 도전
자본주의가 도래하고 인류의 삶은 거대한 변화를 겪었습니다. 인간의 노동을 측정하고 평가하는 기준도 달라집니다. 예컨대 자본주의 사회 이전의 노동은 하나의 생산물이 만들어지는 과정 전체를 장인이 통제했고, 그 결과물로 평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노동은 시간단위로 쪼개지고 임금노동으로 규정됩니다. 각각의 생산과정이나 생산물이 저마다의 고유한 성격을 상실했기 때문인데요. 이제 중요한 건 어떤 물건을 생산하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느냐가 된 거죠.
시간급과 성과급 딜레마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의 최대 목표는 가능한 한 이윤을 많이 내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이 만들고 많이 팔아야 합니다. 자신이 고용한 노동자의 노동시간이 길면 길수록 많은 생산물을 만들어 낼 수 있고, 자본가의 이윤도 늘어나겠죠? 돈이 필요한 건 자본가만이 아닙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선 노동자도 많이 벌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기계와 달라서 신체적 제약이 있고, 노동시간의 한계선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자본가는 더 많은 이윤을 위해 노동시간을 늘리거나 공장의 기계를 한시도 쉬지 않고 돌리는 방법을 고민하고, 같은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생산물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동강도를 통제합니다. 노동자도 더 많은 임금을 확보하고 싶지만, 하루종일 일할 순 없어서 딜레마에 빠집니다. 시간급이 낮으면 잔업이나 특근을 하면서 임금을 충당하기도 하고, 성과가 좋은 노동자에게 더 많은 임금을 주겠다고 하면 자발적으로 노동강도를 높이기도 하겠죠?
자본주의적 생산은 시간급과 성과급을 통해 저임금, 장시간, 고강도 노동의 악순환을 조장합니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는 교대제와 야간노동을 하면서 잠 못 자는 노동을 하게 되고, 골병이 들어 온몸이 망가지도록 일하기도 합니다.
노동시간과 노동강도를 결정하는 기준은 몸
흔히 직업성 근골격계 질환을 두고 골병이라고 하죠? ‘근골격계’에서 ‘근’은 근육이고, ‘골격’은 뼈라는 의미입니다. 일하면서 근육·신경·건·인대·관절·연골 등에 1주일 이상 혹은 1달에 한 번 이상 나타나는 만성적인 건강장해를 근골격계 질환(골병)이라고 합니다. 이 골병은 무리한 힘이 가해지거나, 헛디딤 등의 사고로 생기기도 하고, 염증이나 퇴행성 변화가 누적되어 발생하기도 합니다.
골병은 우선 죽을 병은 아닙니다. 근육이 지속적으로 긴장되어 있거나 손상이 된다고 해서, 인대나 힘줄이 늘어나거나 염증이 생겼다고 해서 당장 큰일 나는 게 아니니까요. 그래서 꾀병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합니다. 근육이나 힘줄의 병이기 때문에 엑스레이를 찍는다고 골절처럼 확연히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외관상으로도 큰 문제가 보이지 않으니까요.
게다가 운동 등의 취미생활 속에서 근육에 병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진짜 직업과 관련된 것인지 명확하게 알기 어렵고, 진단도 쉽지 않습니다. 이러한 특징들 때문에 악화와 호전이 반복되면서 심각해질 때까지 방치하기 쉽고, 완치가 어렵습니다. 치료한다고 해도 힘든 작업을 또다시 하게 되면 재발되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골병 2단계의 특징인, ‘작업 초기부터 통증 발생’, ‘하룻밤 지나도 통증 지속’, ‘작업능력 감소’ 등의 증상은 질환의 초기 신호이기 때문에 요양조치 등 의학적 관리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작업수행이 거의 불가능해진 골병 3단계가 되어야 산업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직업성 근골격계 질환이라는 것은 업무로 인해 골병이 조기에 생기거나, 퇴행성 변화가 악화될 때 모두를 지칭합니다.
골병에 들면서까지 일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아픈 만큼 자본은 더 많은 수익을 가져갑니다. 자본가와 임노동 계약을 맺을 때는 내 노동력에 대한 계약인 것이지, 내 몸이 망가지도록 일하겠다는 노예계약이 아니기 때문이죠. 내 몸이 아프다는 신호를 보내면 회복될 때까지 쉴 수 있거나, 노동강도를 줄이는 게 맞습니다. 노동시간과 노동강도를 결정하는 기준은 자본가가 아니라, 노동자의 몸입니다.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하기 위해서는 내 몸이 그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교대제의 천국, 대한민국
교대란 한 가지 일을 여럿이 바꾸어 가며 이어가는 것을 말하죠. 한 업무를 여러 명이 차례로 이어서 근무하는 체계를 우리는 교대제라고 불러왔습니다. 하지만 자본이 노동시간을 더 다양하고 복잡하게 짜면서 이전의 정의만으로는 포괄할 수 없는 비정형적 노동형태가 늘어났습니다. 이런 형태로 일하는 노동자들이 겪는 여러 가지 문제들은 교대제를 하던 노동자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도 밝혀졌습니다. 따라서 정상적인 낮 시간 이외에 행해지는 노동을 모두 교대제로 확장해서 정의하기도 합니다.
정상적인 노동이라 함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 사이의 1일 8시간 이하, 주당 40시간 이하의 노동을 말하고, 식사나 휴식 시간 말고는 연속적인 노동을 하는 것을 뜻합니다. 만약 너무 일찍 출근하거나 오후 7시가 넘어서까지 잔업을 하는 경우, 하루에 8시간 이상 일을 하거나 주말에도 일한다면, 꼭 밤낮을 나누어 교대제를 하지 않더라도 그와 다를 바 없는 건강 및 사회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는 겁니다.
한국이 세계 최고로 장시간 노동하는 나라라는 건 유명하죠? 그럼에도 우리의 교대제 사용은 15퍼센트 내외로 유럽보다 낮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비정형적 교대노동을 하는 노동자는 훨씬 많겠죠. 우리나라는 거의 대부분의 노동자가 교대노동을 하고, 그에 따르는 신체적·정신적·사회적 건강장해를 일상적으로 경험하고 있습니다.
교대제는 우리의 몸과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교대제는 생체리듬을 교란시킵니다. 생체리듬은 체온, 호르몬과 전해질, 심혈관과 소화 기능, 면역 기능, 근력, 감정, 기억력, 잠들고 깨는 기능 등 너무도 많은 것에 관여합니다. 교대제는 자연스러운 생체시계에 혼란을 주고, 새로운 시계에 몸이 적응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완벽한 순응이라는 것도 불가능하고요. 눈을 뜨고 있는 시간이 뒤엉키게 되면 수면장애가 발생하기 쉽습니다. 2010년에는 교대제 노동자의 수면장애가 일 때문이 맞다며 산업재해로 인정되기도 했습니다. 식사시간이 불규칙하고,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않고 대충 끼니를 때우는 경우가 많아져 소화불량이나 변비 설사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또한 심장박동을 조절하는 생체리듬 교란이나 스트레스, 업무에 대한 불만족, 만성 피로로 심장질환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여성의 경우 조산이나 자연유산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월경주기도 훨씬 불규칙해지고요. 최근 제주의료원에서는 간호사들에게 유산이나 이상 징후가 증가했었습니다. 임신한 간호사 27명 중 3분의 1이 유산을 경험했고, 출생한 태아 중 4명이 선천성 심장질환을 갖고 태어난 거죠. 유산과 업무 사이의 관련성을 조사한 결과, 집단 유산이 산업재해로 인정됐습니다. 이들은 평소에 3교대 노동을 하면서 많은 것들을 감내해 왔는데, 인원마저 축소되면서 노동강도와 노동시간이 매우 증가했다고 합니다.
국제암연구소에 따르면 교대제는 또한 2급 발암물질입니다. 납이나 자외선과 같은 등급인거죠. 최근 덴마크에선 유방암을 산업재해로 인정했었는데, 항공승무원, 간호사, 군인들에게 발생한 유방암이 교대제 때문이라는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여성의 경우는 유산이나 유방암의 위험까지 안고 일을 해야 하는 것이죠.
사실 교대제를 사용할 수 있는 경우는 공공서비스사업(전기, 가스, 수도, 통신, 병원)과 생산과정이 연속되어 작업을 중단할 수 없는 경우(철강, 석유화학)로 한정되어 있습니다. 기업의 채산성을 위해, 경영효율을 위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교대제를 하는 것은 바람하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입니다. 하지만 필수적이지 않은 야간노동은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그럴수록 이런 패턴에 맞추기 위한 야간노동이 더욱 증가해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심야버스나 편의점이 늘어나는 게 편의적 관점에서만 볼 수 없는 게 이 때문이죠. 보편화된 야간노동은 교대제 노동자의 노동이 평가절하 되는 상황까지 갈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이윤을 위해 교대제를 운영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일정 정도 지고 있는 자본의 의무조차 사라질지 모릅니다.
노동과 건강을 위협하는 자본주의
이처럼 자본은 노동자가 한시도 쉬지 않고, 높은 강도로 일하는 걸 원합니다. 수익이 나는 일이라면, 노동자의 건강 따위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인 셈이죠. 하지만 내 몸뚱이 하나로 임금 벌며 일하는 노동자에겐 건강이 무척 중요합니다. 저임금의 불안정한 일자리에서 자본가들이 원하는 대로 일하다보면 내 몸은 엉망진창이 되고 맙니다. 작업조건은 내 몸이 아프지 않을 정도라는 기준으로 세워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만큼 일하고도 생활이 가능할 만큼의 임금도 주어져야 하죠.
일터에서 노동자가 중심이 되어 근골격계 유해요인 조사를 꾸준히 시행해 작업장의 환경을 노동자의 몸에 맞추는가 하면, 노동시간과 노동강도를 늘리지 않으면서도 심야노동 철폐를 위해 힘을 모았던 사례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자본의 탐욕에 휘둘리지 않고, 내 몸을 살피면서 건강한 노동을 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이 힘을 모아 기준을 세우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