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조 할 권리
- 2015/11 제10호
위선 기업 풀무원을 바꾸는 노동자들
화물연대 풀무원분회 윤종수 분회장 인터뷰
그 옆이 <단결툰>의 주인공 김홍렬 조합원이다.
잠이 쏟아져도, 다쳐도 운전을 멈출 수 없는 사람들
풀무원 화물노동자들은 전국 곳곳에 위치한 공장과 센터를 오가며 제품을 수송한다. 센터란 콩나물, 두부, 계란 같은 풀무원 제품을 한 곳에 모은 곳으로, 이곳에서 분류한 제품은 1톤, 1.5톤 등 더 작은 화물차에 실려 거래처로 배송된다.
신선 식품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풀무원은 ‘당일 생산, 당일 배송’이 목표이기 때문에 화물노동자들의 스케줄은 보관이 가능한 제품군을 취급하는 일보다 더 힘들게 돌아간다. 윤종수 분회장이 설명하는 이틀간의 스케줄은 다음과 같다.
“공장에서 콩나물을 싣고 음성 센터에 날라요. 그걸 내려놓고 다시 물건 싣고 용인 센터, 양지 센터에 차례로 들르고요. 그 다음엔 경남 양산 센터에 새벽에 도착해서 차에서 잠을 자요. 다음날 일어나서 박스를 싣고 의령 공장에 가요. 거기서 두부를 싣고 다시 음성 센터로 올라와요. 두부를 내리고, 시화 센터를 가요. 거기서 일이 끝나서, 음성에 있는 집으로 돌아옵니다.”
윤 분회장은 “이렇게 일하다가 진짜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라며 풀무원 화물노동자들의 노동 시간이 너무 길다고 말했다. 새벽에 두세 시간 잠깐 자고 운전대를 잡아야 하는 스케줄로 짜여 있어 정신을 차리려 애써도 졸음이 쏟아지는 순간이 많다는 것이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대형 화물차가 조금만 삐끗해도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아찔한 일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통상적으로 10톤 이상의 화물차에 물건을 싣고 내리는 ‘상하차 작업’은 따로 담당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그러나 몇 년 전 풀무원 측에서 ‘회사가 어렵다’며 상하차 노동자들을 해고한 이후, 제품의 상하차까지 모두 화물노동자들의 몫이 됐다. 화물노동자들이 상하차 작업을 하다가 다치는 일도 잦았지만, 부상으로 하루 일을 나가지 못했을 경우 월대(월급과 같은 개념으로 매달 받는 운송비용)가 깎일 뿐 아니라 대체 차량을 마련하는 비용도 자신이 지불해야 했다. 그러다보니 다치거나 몸이 아파도 쉴 수 없었다.
노동자가 아니라 사장님?
풀무원 화물노동자들이 이런 비상식적인 조건에서 일을 하도록 만든 근본적인 원인은 이들의 계약 형태다. 화물차 운전기사는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되는 직군이다. 다른 화물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풀무원 화물노동자 역시 법적으로는 노동자가 아니라 자기 차를 가지고 사업을 하는 사업주로 분류된다.
윤 분회장은 “차를 사고 회사와 계약을 해서 들어간 거예요. 번호판 등록은 운수사 이름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그 차는 내 것이 아니에요. 금융실명제, 부동산실명제가 다 됐지만 여긴 계속 이런 구조예요”라며 ‘지입’이라 불리는 화물노동자들의 계약 관계를 설명했다. 풀무원과 직접 계약을 하는 것도 아니다. 풀무원의 아래에 엑소후레쉬라는 물류 자회사가 있고, 또 그 아래에 운수사가 있다. 화물노동자들은 이 운수사와 매년 계약을 갱신하는 ‘다단계 하청’ 구조 아래 있다. 빚내서 화물차를 사고, 매달 받는 돈의 많은 부분을 차량구입 비용으로 지불해야 하는 화물노동자들은 스스로의 처지를 ‘할부 인생’이라 부른다.
노동자가 아니다보니 회사로서는 노동시간, 임금 등 법에 명시된 기본적인 노동권을 보장할 의무가 없다. 그래서 일을 하다 다쳐도 산재보험의 혜택을 받기는커녕 자신이 돈을 물어내야 하는 부당한 일이 아무렇지 않게 행해졌던 것이다.
매년 계약을 갱신하기 때문에 고용불안도 심했다. 윤 분회장은 “일이 힘들어 개선해 달라 요구했다가 찍혀서 1년 후에 계약을 안 해버리면 끝이잖아요”라고 말했는데,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계약서에 존재하는 ‘외부단체 가입 시 계약 해지’ 조항이다. 이 조항 때문에 노동조합 가입은 꿈도 못 꿨던 풀무원 노동자들이 용기를 낸 건, 그만큼 절박했다는 의미일 게다.
화물차량 아래 쇠사슬로 몸을 묶고 농성을 하기도 했다.
감차 발표와 혼란
풀무원 화물노동자들이 뭉치기 시작한 시점은 2013년, 회사가 갑작스럽게 10명을 계약해지하겠다고 발표하면서였다.
“회사가 트레일러 차량을 7대 새로 뽑겠대요. 11톤 화물 차량에는 파레트(화물 운반대) 기준으로 16개를 실어요. 근데 트레일러(속칭 ‘추레라’) 차량은 훨씬 더 커서, 28개가 들어가요. 원래보다 12개가 더 들어가잖아요. 이런 차를 7대를 뽑으면서 11톤 차량을 10대를 감차하겠대요. 계약 해지 대상인 10대 차량의 명단을 딱 대기실에 붙였어요. 기준은 차량이 오래된 순서였는데 뽑은 지 겨우 7년 된 차도 거기 들어가요. 7년이면 차 할부도 다 갚을 수 없는 기간이에요. 기사들이 이걸 보고 뭉칠 수밖에 없었어요.”
이 감차 계획은 결과적으로 무산이 됐다. 그러나 이후 회사의 횡포는 심해졌다. “언제든 잘릴 수 있다는 게 확인되고 나니까 더 막 하더라고요. 풀무원이 학교 급식에도 납품을 많이 하거든요. 그러니까 방학을 하면 조금 일이 줄잖아요? 갑자기 또 방학 동안은 두 대를 빼겠다고 얘기를 하는 거예요.” 노동자들은 머리를 모았다. 평소에 각자 업무 외 추가 배송을 하던 물량을 방학 기간 동안 일손이 남는 두 대가 맡아서 하기로 한 것이다. 추가 배송 일은 중구난방으로 있기 때문에 노동 시간이 일정하지 못하지만 누군가 생계의 어려움을 겪는 것보다는 낫다고 판단했다.
‘노조 없인 안 되겠다’
두 경우 모두 극단적인 상황은 막았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니 자연히 사람들이 불만이 높아졌다. 게다가 나중에 보니 차량이 전반적으로 늘어나고, 일도 많아져 굳이 감차를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다. 회사와 화물노동자들이 서로 의견을 조율하며 대화할 수 있는 창구가 필요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3개월에 한 번 열리는 간담회였다.
“업체에 수송 담당 관리자가 새로 왔는데 일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생판 모르더라고요. 그 사람한테 3개월에 한 번씩 간담회를 하자고 했더니 알겠대요. 그 사람은 ‘풀무원이 어떤 회사인데, 간담회 해도 꿀릴 거 없다’고 생각을 했나 봐요.”
윤 분회장은 당시 풀무원 일을 하는 70여 명의 화물차주들끼리 만든 상조회에서 총무를 맡고 있었다. 그는 얘기를 잘 하면 뭔가 바뀔 수 있을 거라 생각해 간담회에 빠짐없이 참석했다.
“그때 저희가 타 업체 조건을 다 조사했어요. 어디는 월대가 얼마고 몇 시간 몇 킬로 일하는지, 부모님 상을 당하면 어떤 게 보장되는지. 근데 자료를 만들어보니 우리가 업무 시간이 너무 길고 다른 조건도 형편없는 거예요.”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여러 모로 조사하고 준비하던 윤 분회장은 2013년 말에 상조회 회장으로 당선되었다. 그런데 회사는 윤 분회장이 상조회 회장이 되고부터는 3개월마다 열리던 간담회 자체를 못 하겠다고 나왔다. 그때 윤 분회장은 노조 가입밖에는 방법이 없겠다 생각했다고 한다.
“감차 일이 있었을 때, 어떤 기사가 화물연대 가입해서 대응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저는 화물 일을 풀무원 와서 처음 해봤어요. 그래서 화물연대라는 게 있다는 것도 잘 몰랐죠. 그리고 1년이 지났는데, 회사가 간담회도 못 하겠다고 하니까 어떻게 할 수가 없잖아요. 진짜 노조에 가입을 해야겠다고 맘을 먹고 사람들을 설득하기 시작했어요.”
노조 인정을 위한 첫 번째 파업
회사는 화물연대에 가입한 30여 명의 조합원들에게 계약을 해지하겠다는 협박과 함께 법적인 대응에 들어갔다. 윤종수 분회장은 “단체에 가입했다고 계약을 해지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죠. 우리가 불법 단체에 가입한 게 아니잖아요. 화물연대가 불법 단체면 정부에서 TF팀을 꾸려서 화물연대랑 교섭을 하고, 국토부와 같이 운수법 개정을 하겠어요?”라고 말했다. 화물연대 풀무원 분회는 회사에 이와 같은 내용의 내용증명을 제출했다.
그리고 2014년 11월, 분회는 충북 음성에 위치한 회사 앞에 텐트를 치고 노조를 인정받기 위한 첫 번째 파업에 들어갔다. 다행히 회사는 하루 만에 노동조합의 요구를 들어주겠다고 나섰다. 당시 합의서에는 많은 내용이 있지 않았다. 첫째, 한 달에 한 번씩 화주사(엑소후레쉬), 운수사, 화물연대가 협의를 한다. 둘째, 위탁계약서 독소조항(외부단체 가입 불가)을 지운다. 셋째, 화물차 기사 앞의 통장으로 나온 부가세를 운수사가 갈취해 왔던 것을 돌려준다.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었다.
투쟁 없인 바뀌지 않아
독소조항이 사라지자 노동자들은 마음 놓고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었다. 윤 분회장은 “그 이후로 100명이 넘게 가입했어요. 큰 수송차는 100퍼센트 가입한 거예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분위기는 좋았다. 노동자들은 이제는 뭔가 바뀔 것 같다는 기대감을 가졌다.
첫 번째 파업으로 만들어진 대화(한 달에 한 번 협의) 자리에서 풀무원분회가 요구했던 것은 크게 세 가지, ‘노선 변경’, ‘월대 인상’, ‘패널티 제도 폐지’로 요약할 수 있다.
너무 빡빡하게 짜인 기존의 운행 노선을 조정해달라는 것, 20년 동안 오르지 않았던 월대를 인상해달라는 것은 기본적인 요구였다. 그 외에 패널티 제도는 풀무원에 있는 특이한 제도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
“물건을 싣고 가다가 언덕을 올라간다든지 차가 흔들려서 제품이 파손되면, 제품 파손 비용을 물어줘야 하거든요. 근데 파손비만 무는 게 아니라 벌금을 추가로 또 내야 돼요. 또 아파서 일을 못하면 내가 일을 안 한 만큼 덜 받는 게 아니라 대체 차량을 구하는 비용까지 지불해야 하게 되어 있었거든요. 이런 것도 개선해 달라고 요구했죠.”
그러나 말뿐이었다. 바뀐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윤 분회장은 “대화할 땐 서로 좋다, 그렇게 하자, 하고 마무리가 됐어요. 근데 11월에도 12월에도 노선을 안 바꿔줘요. 월대도 그대로고요. 1월부턴 바꿔주겠다고 장담해 놓고 1월 1일이 되고 10일이 돼도 바뀌는 건 없었어요”라며 당시 답답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결국 풀무원분회는 다시 파업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파업 날짜는 올해 1월 17일이었다. 첫 번째 파업과 달리 화물차 전체가 멈추니 회사로서는 방법이 없었다. 이번 파업도 하루 만에 마무리되었다. 요구사항은 이전에 다 전달이 되었던 것이고, 회사도 말로는 다 해주겠다고 약속했던 부분이니 만큼 길게 협의할 내용도 없었다.
회사가 끝까지 버텼던 건, 패널티 제도의 폐지였다. “아무래도 벌이 있어야 통제가 된다고 우겨요. 패널티는 절대 못 없애겠대요. 그래서 패널티를 없애는 대신, 한 달 동안 아무 문제없이 운행했을 때 상징적으로 1만원을 주는 걸로 합의를 했어요. 채찍보단 당근으로 하자고 우리가 제시한 거죠.”
노조 파괴 시도에 맞서 세 번째 파업을 시작하다
풀무원 회사 측은 현재 화물연대 풀무원분회를 ‘노조 설립 후 1년도 안 됐는데 세 번이나 파업을 하는 비상식적인 이들’로 몰아가고 있다. 그러나 파업을 유도한 것은 바로 풀무원이었다.
회사가 지속적으로 노조에 요구한 것은 단 하나였다. 분회 이름에 ‘풀무원’을 빼라는 것이다. ‘바른먹거리’라는 문구로 유명한 풀무원은 ‘믿을 수 있는, 건강한 신선식품’이라는 회사 이미지에 노조니 투쟁이니 하는 문제가 섞이는 것을 끔찍하리만큼 싫어했다.
1월의 파업이 끝나고 2주 정도가 지난 2월 2일, 회사는 느닷없이 ‘도색유지서약서’를 들고 나왔다. 노동자들에게 제시된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차량에 있는 풀무원 로고를 지우고 ‘백색’으로 새로 도색을 하라는 것, 아니면 풀무원 로고가 있는 차량에 화물연대 스티커를 붙이거나 요구사항을 걸지 않겠다는 ‘도색유지서약’을 하라는 것. 도색유지 서약서에는 차량의 풀무원 로고를 현수막, 스티커 부착 등으로 훼손 시 ‘월 운송료 2배의 금액을 즉시 지급’, ‘3일 이내 원상복구하지 않을 경우 3일 초과일부터 월 운송료의 1/30씩 과징금 배상’, ‘계약해지 시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을 서약’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관리자는 이 지침이 풀무원의 ‘전략기획실’에서 나온 것이라 말했다. 도색유지서약서를 둘러싼 공방이 오가는 과정에서 일부 노동자들은 화물연대를 탈퇴하고 ‘바른먹거리사단법인’을 만들어 가입했다. 윤 분회장은 “이건 회사에서 노조파괴 시나리오를 쓰고 준비했다는 게 너무 명확한 거죠”라며 분개했다. 도색유지서약서가 나오고 6개월 동안 진행된 정례협의회에서 회사는 노동조합의 말을 조금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윤 분회장은 ‘벽을 보고 얘기하는 줄 알았다’고 회상했다. 결국 9월 4일, 화물연대 풀무원분회는 세 번째 파업에 들어간다.
풀무원의 만행에 분노하는 사람들
파업 농성이 진행되며 그동안 수면 아래에 감춰져 있던 풀무원이라는 기업의 만행이 세상에 알려졌다. ‘바른’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기업이 화물노동자들을 노예처럼 부리고 노조 파괴 공작을 한다는 사실에 많은 이들이 놀라움을 표했다. 노동조합의 활동으로 불법 차량 개조, 신선식품 상온 방치 등 풀무원의 잘못된 행위들도 알려졌다.
파업이 한 달 넘게 진행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풀무원분회는 흔들림이 없다. 윤 분회장은 “저희 기사들이 다 전국 각지에 살아요. 한데 모일 수 있는 계기가 많지 않았어요. 이탈하거나 탈퇴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쩌나, 불안한 맘으로 농성을 시작했죠. 그런데 농성을 하면서 더 친해지고, 왜 노조를 해야 하는지 분명해지고, 더 굳건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라는 소감을 밝혔다.
풀무원분회의 파업에는 다양한 이들의 연대 선언이 이어졌다. 풀무원 사태가 남 일 같지 않았던 화물연대 소속 화물노동자들이 함께했던 것은 물론이다. ‘백날 유기농 농사 하면 무엇 하나, 이런 놈들 배불리자고?’라고 분노하며 풀무원 납품을 거부하자고 제안하던 농민도 있었고, ‘풀무원의 나쁜 먹거리, 우리 아이들에게 먹일 수 없다’며 영양사들이 학교급식에 풀무원 제품을 쓰는 것을 거부하겠다고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마음을 모았다. 10월 8일에는 음성지역 종교 및 시민단체들이 풀무원 측이 화물노동자들과 직접 대화에 나서고, 인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벌였다. 미국, 호주, 네덜란드, 벨기에 등의 운수노동조합에서도 파업 지지 메시지가 이어지고 있다.
풀무원분회는 얼마 전부터 ‘전국 순회 투쟁’을 시작했다. 풀무원 불매 운동이 확산될 때, 파업이 승리할 수 있으리라 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바라는 건 다른 게 아니에요. 탄압을 멈추고 정상적인 노조 활동을 보장하라는 거예요. 그러려면 연대의 확산이 필요한데, 그걸 우리가 만들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