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 기획
  • 2015/12 제11호

[자본주의와 질병] 정신질환 조장하는 사회

웃는 제약회사, 우는 환자들

  • 정재오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사회진보연대 회원
‘<자본주의와 질병> 강의’ 연재를 시작합니다. 산업재해, 정신질환, 메르스, 만성질환, 제약산업, 신종질병, 진보적 보건의료운동의 대응 전략 등 다양한 주제들에 대해, 사회의학적 관점에서 쉽게 풀어나가려고 합니다. 이 연재는 사회진보연대에서 주최하는 사회운동학교 가을강좌의 강사들이 강연의 현장감을 살려 여섯 차례로 싣습니다. 보건의료 현장에서 활동하는 필자들과 함께 자본주의와 질병의 감춰진 관계를 하나씩 알아봅시다.
① 잠 못자고 골병 들도록 일하는 사람들 / ② 정신질환의 경제학 : 웃는 제약회사, 우는 환자들 / ③ 메르스 사태, 재발 가능하다 / ④ 만성질환,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병 / ⑤ 제약산업 파헤치기 / ⑥ 신종질병을 유발하는 자본주의, 그에 맞선 도전
 
 
 
올 여름 인기를 끌었던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엔 기쁨, 슬픔, 화, 짜증, 공포 이렇게 다섯 가지 감정이 등장합니다. 뇌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시각적이고 이야기적으로 잘 풀어내는데요. 우리의 감정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에겐 흥미로운 영화입니다.
 
하지만 정신과에서 다루는 질병들은 보통 사람들에겐 아직 미지의 영역일지 모릅니다. 정신과 의사가 어떤 모임에 나가면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저는 정상인가요?”입니다. 아주 극단적인 경우라면 판단하기 쉽겠지만, 사실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기준은 애매한 경우가 많습니다.
 

정신질환이란?

미국 정신과 의사협회는 “개인의 생각, 감정, 행동 등에 문제가 생기고 이 때문에 사회적·직업적 활동이나 대인관계에 문제가 있거나 혹은 정신적으로 고통을 겪는 것”(《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 제5판)으로 정신질환을 규정합니다. 이 책에 따르면 정신질환으로 분류되는 병들은 세상에 너무도 많습니다. 병이 아닌 게 없다고 느낄 정도죠. 어디까지를 병이라고 부를 것인가에 대한 기준은 주로 전문가 집단에서 의견을 모아 정하게 되는데요. 그 때문에 사회·문화적 요인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이 정하는 거니까요. 예전엔 동성애가 병으로 분류되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병과 병이 아닌 것은 시대에 따라 바뀌기도 합니다.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광인들의 배>
1500년, 패널에 유채, 58 x 32cm
 
원시 시대에는 정신과적인 병을 신이 벌을 주는 것, 혹은 악령이 씌인 것이라고 여긴 나머지 종교적인 의식으로 해결을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중세 유럽에선 정신질환자를 마녀로 몰기도 했죠. 주로 가족에 의해 관리·보호받던 환자들은 18세기 사회의 여러 소수자들과 함께 격리와 수용의 대상이 됩니다. 그러다가 19세기가 되어서야 점차 체계적인 치료의 대상으로 편입되고, 1950년대부터는 약물이 발전하기 시작하며 정신질환의 원인에 대한 연구들이 활발해졌고, 그에 따른 치료법들도 개발됩니다. 예전에는 정신병이 왜 생기고 증상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잘 몰랐기에 치료법도 명확하지 않았고, 효과가 있는 치료법이 있는가 하면 효과가 없는 치료법도 있었죠.
 
아직도 정신질환의 원인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가설들이 있고, 이를 기반으로 해서 약물치료를 하고 있죠. 약물치료는 적은 비용을 들이면서도 효과가 좋기 때문에 현대에는 주된 치료법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이윤을 쫓는 제약회사와 약물치료

원래 정신과 환자들이 돈이 되는 환자들은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다르죠. 그들은 이제 제약회사의 고객입니다. 심지어 제약회사들은 병이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약을 팔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죠.
 
정신과에서 약물치료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 정신치료를 병행하지만, 시간과 노력이 드는, 사람이 직접 해야 하는 방식의 상담과 치료는 보험에서도 외면받기 십상입니다. 짧게 해도 길게 하는 것과 비슷한 성과가 난다는 등의 연구 결과도 자꾸 발표되곤 하죠.
 
미국에서 매출이 가장 높은 약들 중에도 정신과 약물이 있고, 많이 처방된 약 중에서도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조현병(정신분열증. 망상, 환청, 와해된 언어, 정서적 둔감 등의 증상과 더불어 사회적 기능에 장애를 일으킬 수도 있는 질환), 치매, 우울증 등에 쓰이는 약들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정신질환 중에는 만성적인 성격을 띠는 것들이 많고 오랜 기간의 약물치료를 하는 경우도 자주 있기 때문입니다. 
 
신경쇠약의 도시를 살아가는 ‘미친’ 남녀의 사랑을 다룬, 영화 <실버라이닝 플래닝북> 중
 
새로운 약이 무조건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은 아닙니다. 개개인에게 맞는 약물이 따로 있음에도, 새로운 약이 개발되면 잘 팔리는 일이 많습니다. 이게 정말 신약이 좋은 효과를 내기 때문일지, 마케팅의 힘일지는 고민해봐야 합니다.
 
과연 어떤 치료를 받는 게 옳은 것일까요? 약물은 나쁘니 상담만 받는 게 좋은 걸까요? 아니면 상담은 비싸니까 약만 받아가는 게 좋은 걸까요? 약물치료와 정신치료 모두 중요한 치료법이고, 함께 하면 더 도움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최선의 치료를 해야 하고 받아야 하지만, 자본주의 체제에선 치료의 트렌드나 가이드라인도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자본주의가 잉태한 정신질환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어떤 병들이 늘어났을까요? 식이장애라고 부르는 거식증, 폭식증 등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좀 더 심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몸에 대한 이미지에 이상이 생기는 것이 특징인데, TV 등의 매스미디어에서 날씬한 것을 선호하게 부추기는 것과도 관련이 깊습니다. 거식증이 있는 모델들이 패션쇼에 등장해서 논란이 되기도 했었죠. 
 
또 물질 관련 및 중독 장애도 있습니다. 의존성이 있는 물질이 없을 땐 이러한 것 때문에 병이 생기지도 않겠지만, 현대에는 너무나 많은 물질들이 있습니다. 술, 담배, 대마, 각성제, 환각제, 진정제, 각종 약물 등등 …. 쉽게 구할 수 있는데다 또 이를 통해 이익을 보는 자본이 있는 한 이를 완전히 통제하기 어렵기 때문에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는 병 중 하나죠.
 
셋째로 직업과 관련된 정신질환도 있습니다. 수면장애, 우울장애, 불안장애 같은 병들은 비록 예전부터 있었지만, 하루하루 힘들게 노동하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스템이나 관리자, 경쟁구조가 너무 스트레스를 주기 때문에 이런 병들에 더 심하게 노출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현대인에게 수면장애는 피할 수 없는 병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원래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자야 하는데 지금은 24시간 불빛 속에서 살고 있으니까요. 교대제 근무자라면 더 심하겠죠?
 
 

정신질환자에 대한 차별

정신질환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어디에 있을까요? 또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사실 주변에서 정신과에 다닌다거나 정신질환이 앓고있다고 말하는 사람을 거의 만날 수 없습니다. 왜일까요? 사회적으로 낙인이 찍혀 있기 때문에, 섣불리 이러한 말을 하기 어려워서입니다. 보험 가입에도 차별이 있고, 공무원 임용 등에도 질병자료 조회를 의무화한다고 해서 크게 논란이 됐었죠. 사회적인 시선뿐 아니라 실질적으로도 차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돈이 없는 환자들은 더 힘듭니다. 의료급여를 받는 환자들은 정액제 안에서 진료를 받아야 하고, 결국 특정비용 내에서만 진료를 받다 보니 의료의 질도 떨어지게 됩니다. 미국에서는 홈리스의 15~45퍼센트가 조현병 환자라는 통계도 있을 만큼,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험난하기만 합니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환자를 어떻게 다룰까요? 정신보건법에서는 입원 형태를 법으로 정하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이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합니다.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은 비자발적 입원이기 때문에, 원치 않지만 입원해 있는 사람들이 다수라는 것입니다. 6만여 명이 병원이나 요양원, 시설에 수용되어 있죠. 효율적 관리가 우선시되는 겁니다.
 
치료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지역사회에 많다면 그로 인한 비용을 감당해야 하고, 그 때문에 가장 손쉬운 방법 중 하나가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서 관리를 하는 것이죠. 그래서 한국에서는 가족들이 환자의 증상 및 행동을 감내해야 하는 경우가 많고, 이는 보호자에 의한 입원이 많아지게 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장애등급, 근로능력 평가 등으로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들의 능력도 평가하게 합니다. 등급 판정을 통과하면 정부에서 장애수당을 주긴 하지만 금액이 독립적인 생활을 하기엔 턱없이 모자란 경우가 많습니다. 정신과 환자들, 특히 기능이 떨어져 있는 환자들에 쓰이는 돈은 턱없이 적은 거죠.
 
 

자살 부추기는 사회

자살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입니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2011년 기준 인구 10만 명당 33.3명으로 OECD 국가 중 독보적인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비록 최근에는 자살에 의한 사망률이 약간 줄어들었지만 역시 비슷한 수준입니다. 80세 이상 자살률은 10만 명당 94.7명으로 매우 높은 수준이고, 외환위기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 추세입니다.
 
왜 이렇게 자살을 많이 할까요? 사실 아직 잘 모르는 부분이 많습니다. 자살예방의 날 학술포럼에선 이런저런 연구 결과가 발표되지만, 핵심적인 이유는 이야기하지 않죠. 아직은 잘 모르고 해결하지도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이유들 중 몇 가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한국의 정신건강 서비스는 대부분 시설 중심입니다. 지역사회의 자원은 부족하고 정신건강 서비스가 분절되어 있죠. 마포대교에서 자살을 하겠다고 하면 병원에 데리고 오고, 본인이 원하지 않더라도 자살 위험성 때문에 입원을 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비자발적 입원이라도 비용은 본인이 지불해야 합니다. 자살예방센터에서 지원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이 역시 심사를 거쳐야 하죠. 경제적 사정 때문에 자살을 생각했던 사람이라면 정말 억울한 일일지 모르겠습니다. 보다 유기적인 해결책을 찾아 나가야 하는 이유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정신질환은 너무나 큰 사회적 낙인이기에 필요한 진료를 받지 못해 증상이 점차 악화되는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또 개인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너무나 큰 스트레스를 주는 상황들이 자본주의 안에서는 언제나 일어날 수 있고, 내가 죽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식을 상상하기 힘들 때 자살을 떠올리게 됩니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잘 모를 정도로 주위를 둘러보지 못하고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누군가의 죽음을 미리 알고 예방하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겠죠. 하지만 우리가 노력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정신질환, 혹은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을 다루는 방식은 사회와 문화에 따라 달라집니다. 오늘날 자본주의는 역시 정신질환을 만들고,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 있어서 광범위한 영향을 끼치고 있죠.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 자본주의 체제는 사람들의 정신건강에 크나큰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시야로 사고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어떤 사회가 건강한 사회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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