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2015/12 제11호
눈빛이 달라졌다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지난 10월 28일 교육청 정문을 지나 교육감실을 향해 당차게 구호와 함성을 내지르던 영양사 선생님들의 눈빛이 아직도 선명하다.
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 인천지부에서 활동한 지 이제 갓 9개월. 학교 현장의 문턱이 얼마나 높은지, 학교 비정규직 선생님들의 설움이 얼마나 깊은지 조금의 헤아림도 없이 나는 3월부터 무작정 영양사실 문을 두드렸다. 반겨줄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이리도 냉담할 줄은 몰랐다.
‘노동조합에서 왔습니다’라는 소개와 함께 호기심어린 눈빛과 밝은 미소는 삽시간에 얼어붙었다. 그리고 어느 학교에서도 같은 대답을 들었다. “할 말 없습니다. 바쁘니까 가주세요.” 나는 어쩔 줄 몰라 당황하다, 다음에 찾아오겠다는 말만 남긴 채 도망치듯 학교를 빠져나왔다. 그러기를 몇 주 지나, 조금 더 뻔뻔해지기로 마음먹고 다시 영양사실을 문을 두드렸다. 여전히 같은 대답을 들어야했지만, 짧게나마 대화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불만의 깊이는 생각보다 깊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노동조합은 열악한 학교비정규직 차별문제 해결을 위한 교육청 앞 철야노숙농성에 돌입했다. 나는 조합원 비조합원 가릴 것 없이 꾸준히 영양사 선생님들에게 문자로 상황을 전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영양사 선생님들이 매주 수요일 교육청 앞 피켓 선전전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얼어붙었던 영양사 선생님들의 마음은 그렇게 조금씩 풀어졌다. 20여 일 후 교육청은 영양사 위험수당 지급을 포함한 몇 가지 처우개선 안을 제시했다. 자주 연락하며 상황을 공유했던 영양사 선생님에게 가장 먼저 이 사실을 알렸다. 울컥하시던 목소리가 여전히 생생하다. 해도 안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보다 밝아져 있을 영양사 선생님들을 만날 기대에 잔뜩 부풀어있었다.
그러나 교육청은 추경으로 편성한 9월 처우개선 사항을 집행하지 않았다. 억장이 무너졌다. 또 어떻게 영양사 선생님들에게 이 사실을 전해야 하나. 다시 선생님들을 찾아가 우리의 분노를 교육청에 보여야 한다고 설득했다. 그리고 10월 28일 영양사 공동행동 개최가 결정되었다. 공동행동 전날까지도 걱정이 많았다.
그러나 그 모든 걱정은 부질없는 것이었다. 150여 명의 영양사 선생님들이 교육청 앞을 가득 메웠고, 경찰의 온갖 방해도 뿌리치며 교육청 안으로 들어가 당차게 우리의 목소리를 전했다. 그렇게 영양사 선생님들의 눈빛은 달라져있었다.
오랜 투쟁으로 학교비정규직노동자들의 처우는 많이 나아졌지만, 차별은 여전하다. 비정규직 차별도 서러운데, 명절상여금 차별로 조상님도 차별한다. 비정규직이라고 밥도 덜 먹어야 하는지, 밥값도 차별한다. 임금만 문제겠는가. 기본적인 인권조차 교문을 넘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인천시 교육청은 영양사 선생님들에게 위험수당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 공동행동을 마치고, 나의 쉰 목소리를 염려해주던 선생님들의 마음을 잊지 못한다. 나는 또 내일부터 조금 더 뻔뻔해진 얼굴로 학교를 방문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