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
- 2016/01 제12호
무엇이 메르스 대란을 낳았나?
이윤에 미쳐 전염병에 취약한 한국 의료
보호복 착용법도 몰랐던 메르스병동?
2015년 5월 28일 서울대병원에도 메르스 환자가 들이닥쳤습니다. 당시 간호사의 절반은 보호복도 입어보지 못한 상태였죠. 비상연락망도 없었고, 입·퇴원 수속 방법, 인력 운영방식, 환자식의 신청과 제공방법, 청소방법과 관리, 쓰레기와 세탁물 등의 처리, 외부인 관리와 언론대응 등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갑작스레 입원한 환자는 ‘물 좀 달라’, ‘휴대폰 배터리 달라’, ‘충전기가 필요하다’, ‘외부와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달라’ 등 다양한 요구를 했습니다. 심지어 아기 환자의 엄마는 기저귀에 젖병까지 다양한 요구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죠. 각종 장비도 구비되어 있지 않아서 환자병실에 모니터를 넣어 놓고 간호사실로 연동된 모니터에서 산소포화도가 빨간색인지 파란색인지로 상태를 가늠하는 정도였으니까요.
병원 측의 대책을 요구하는 간호사들에게 돌아온 답은 고작 ‘다 괜찮다’는 말 뿐이었습니다. “마스크만 착용하면 된다”, “덧신도 안 신어도 된다”, “3차, 4차 감염 절대 없다. 있다면 학계에 보고해야 할 정도다”, “나 봐. 마스크도 안 쓰고 다니지 않냐”, “의료인이 일반인처럼 굴지 마라”, “오버하지 마라”, “닥치지도 않은 일 미리 걱정하지 마라”, “옷 입는 법? 그림 보고 입어라” 등 대책 없는 안이함이 병동을 지배했습니다.
대책없는 메르스병동 운영
병동운영 첫날 간호사들은 선잠으로 하루를 지새웠습니다. 업무에 필요한 정보는 제공받지도 못했습니다. 이틀째 되는 날, 방법을 찾고자 했으나 무시됐고, 결국 사흘째 되어서야 매뉴얼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음압실 출입경로, 의료진 관리, 비상연락망, 검체 채취 및 전달방법, 이송, 엘리베이터 작동법, 재고 물품 확인 및 청구, 전동식 호흡장치(PAPR)관리와 세척방법, 근무조별 업무 분장 등이 그 내용이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호사들은 눈치를 보며 일했습니다. 병원 측에 장갑이 잘 찢어져서 질긴 장갑을 달라고 하니 ‘1800원짜리’라며 생색을 냈고, 보호복 한 벌이 6만원이라는 둥 ‘일 못하는 사람이 연장 탓한다’는 둥 간호사들을 투덜이 취급만 했습니다. 인공호흡기, 에크모. 사용 등 능숙한 중환자 인력이 필요하다고 하자 ‘알아서 할테니 신경 쓰지 말라’는 답만 돌아올 뿐이었습니다.
결국 뒤치다꺼리는 병동 간호사들이 떠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PAPR 후드는 국내에 없으니 마스크와 고글만 쓰라고 했고, 다시 소독해 틀어진 후드를 착용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는 음압병실의 공기 흐름에 따라 의료진이 어떤 자세로 일을 해야 하는지 단 한번도 배우지 못한 상태에서 환자의 호흡기 처치를 할 때, 간호사는 과연 일하다 죽어도 누구 하나 관심도 없겠다는 두려움으로 울분이 터지기도 했습니다. 일하다가 평생 후유증이 남을 경우 삶은 어떻게 되는지, 설사 산재가 인정된다 해도 비급여 부분은 누가 책임을 질 건지, 나로 인해 내 가족이 감염되면 그 책임을 누가 지는지, 그 어떤 답도 듣지 못한 상태에서 우리는 일을 했습니다.
이런 조건에서 우리는 노동조합을 통해 방법을 찾아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병원장이 참석하는 노사협의회를 통해 국내에 없다는 후드와 각종 보호장구들을 제대로 갖춰 줄 것을 요구했고, 감염의 전파요인이 될 수 있는 의료진을 위한 숙소, 증상이 있을 때의 검사와 머무를 수 있는 공간과 안전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비록 샤워시설도 없는데다 사무공간의 집기를 들어내고 고장 난 라꾸라꾸와 은박지를 깔았을 뿐이지만, 그나마 얻어낸 것은 노동조합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자고 나면 흠씬 두들겨 맞은 듯했지만 환자들을 돌보면서 영화 속에서나 보던 진짜 간호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대한민국 의료의 민낯
병원은 하루하루가 전쟁이었습니다. 그러나 의료인이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었죠. 우스갯소리로 “에볼라였으면 우린 이미 다 죽었어, 메르스인 게 천만 다행이야”라는 소리를 할 정도였습니다. 자칭 의료선진국이라는 우리나라의 의료는 감염병에 정말 취약한 상태였던 거죠. 앞으로 제2, 제3의 메르스가 닥친다면 달라질까요? 이번과 같이 우왕좌왕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별로 확신이 들지 않는게 사실입니다.
메르스가 확산되고 확진환자가 증가하면서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6월 초 감염자가 100명을 넘어서고 격리자는 수천 명에 달하면서 국가가 지정한 음압격리병실은 거의 다 찬 상태였죠. 우리나라는 중동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세계 2위의 메르스 국가가 되었습니다. 음압격리병실이 17개 병원에 105개 병상에 불과하고 다인용 병실이 많아 제대로 환자를 치료하기 어려운 조건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의 공공병원 수는 전체의 6퍼센트, 병상 비율은 10퍼센트정도에 불과한데요. OECD 평균이 73퍼센트임을 감안할 때 ‘민간병원의 나라’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그것도 모자라 음압격리병상이 있던 진주의료원은 적자를 핑계로 폐쇄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정작 국민들이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 됐을 때 입원할 곳조차 없는 게 우리의 자화상인 것이죠.
지난해 6월 한국-WHO 합동 평가단은 기자회견을 열어 한국의 의료 쇼핑, 간병제도, 문병문화가 메르스를 확대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지금도 지하철이나 버스 등 대중교통을 보면 각종 병원 광고가 그득합니다. 지나친 검사와 수술, 시술로 남아나는 갑상선과 허리가 없을 정도라는 우리나라가 의료광고를 포기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의료쇼핑을 조장하는 것은 아닐까요?
간병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1인가구가 늘고 핵가족화되면서 스스로를 간병할 수 없는 집이 대다수인 한국에서 가족 간병이 어려울 때 간병노동자를 고용해야 하는 상황임은 자명합니다. 그러나 간호 인력은 OECD의 3분의 1도 안 되죠. 이런 조건에서 정부가 간병제도를 개선할 수 있을까요? 정부는 병원 안에서 커피숍과 베이커리, 심지어는 온천장과 헬스장, 숙박업, 쇼핑사업까지 할 수 있도록 부대사업 가능범위를 확대하려는데, 그런 상황에서 감염예방통제가 가능하기나 한 걸까요? 절대 불가능하겠죠. 감염병 관리와 통제는 정부 정책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메르스의 슈퍼전파자는 국가’란 말이 나오는 거겠죠.
메르스가 남긴 교훈
2014년 12월 1일 서울에는 첫눈이 내렸습니다. 이날 서울대병원에서는 국립대병원에 대한 경영평가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는데요. 새누리당의 주장에 의하면(2014년 10월 토론회) 5년간 수익이 없는 공공기관은 퇴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기준으로 보면 14개 공공기관 중 국립대병원이 6개나 되고, 여기엔 서울대병원과 분당 서울대병원, 서울대치과 병원, 제주도내 유일한 대학병원인 제주대병원, 충북에서 유일한 3차 병원인 충북대병원도 해당됩니다.
2013년 새로 취임한 서울대병원장은 취임과 즉시 비상경영을 선포하고는 수개월 만에 80억 원의 비용을 줄이고 70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며 자랑했습니다. 공공의 병원이 아니라 돈 버는 병원이 되는 것이 병원장의 지상과제인 모양입니다.
이에 맞서 서울대병원 노동자들은 무분별한 검사 확대와 저질 재료 사용을 비판하며 파업 투쟁을 펼쳤습니다. 우리는 그때 알았습니다. 결국 ‘경영평가’란 얼마 없는 공공기관마저 돈벌이에 내놓으려고 하는 행태라는 것을. 감염병을 관리하기 위해선 현재 정부가 우측으로 급선회하려고 하는 정책을 바꾸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감염병 관리와 통제는 공짜가 아니니까요. 우리는 잊지 않고 되물어야 합니다. 무엇이 한국을 떠들썩하게 만들며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내몬 메르스 대란을 낳았는지 말입니다. ●
- 덧붙이는 말
<자본주의와 질병> 강의 연재 ① 잠 못자고 골병 들도록 일하는 사람들 ② 정신질환의 경제학 : 웃는 제약회사, 우는 환자들 ③ 무엇이 메르스 대란을 낳았나? ④ 만성질환,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병 ⑤ 제약산업 파헤치기 ⑥ 신종질병을 유발하는 자본주의, 그에 맞선 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