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 기획
  • 2016/04 제15호

그날 우리는 왜 메탄올을 숨겨야 했나

스마트폰 공장 파견노동자의 일기

  • 박수경 OO공단 하청업체 파견노동자
우리의 몸은 추상화가 아니었다
우리는 내일이라도 이 삶을 집어치우며 
먼 바다로 가서 검은 그늘로 살 수도 있었다 
언제나 차마 그럴 수 없었다
- 허수경, 〈오렌지〉 중에서
 
작업장에 들어가기 십 분 전인 오전 8시 50분. 그날도 우리는 에어샤워를 했다. 혜숙 언니가 내게 몸을 꼭 붙인 채 속삭이듯 말했다. “오늘은 또 무슨 일이 벌어질까.” 최근 과장의 짜증이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섣부른 위로의 말 대신 눈으로만 희미한 공감의 표시를 보냈다. 방진복으로 온몸을 감쌌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특별히 할 말이 없었다.
 
께름칙한 기분으로 작업장에 들어서니 그날 아침도 역시나 하루 전까지 보이던 얼굴 몇몇이 보이지 않았다. 정이 막 붙을 만하면 사람들이 떠났다. “씨이팔, 이거 누가 이랬어! 어?” 전날 스마트워치에 들어갈 유리액정을 깨서 몸을 들썩이며 훌쩍이던 스무 살짜리 진영이도 없었다. 어제와 똑같은 익숙한 하루의 시작이다. 
 
그때 과장이 소리쳤다. “다 모이세요. 아우 씨, 좀 모이시라고요.” 조회다. 어제보다 나쁜 하루가 될 것이란 신호다. “물량이 없으니 퇴근하세요. 언제 다시 나오라고 말씀드리긴 어렵네요.” “여러분이 눈이 달려있기만 하다면 볼 수 있는 불량이었다고요. 내가 맨날 까인다고요. 정신머리 좀 똑바로 차리세요.” “요즘 이슈가 이물 불량인 거 알죠. 휴게실에서 방진복 입고 있지 마세요. 음식도 먹지 마세요. 과자에서 붙은 먼지 다 묻히고 작업장 들어오면 여러분이 또 청소해야 하잖아요. 바보예요, 네?” “내일 손님 오니까 화장하고 오지 마세요. 제품에 묻으면 어쩌려고 기초화장도 아니고 어떻게 분 날리는 화장을 할 생각을 합니까!” 경미 언니는 얼마 전 술자리에서 이렇게 중얼거렸었다. “우리는 ‘네, 네’ 밖에 못하는 내시야.”
 
우리는 잔뜩 얼어붙어 서로에게 불안한 시선을 보냈다. 옹기종기 모이니 조회가 시작되었다. “에- 최근 사고가 일어났대서 그러는데.” 그 한 마디 말로 갑자기 어제와 똑같은 하루도, 어제보다 더 나쁜 하루도 아닌, 조금 다른 하루가 시작되었다. 나는 귀를 기울였다. 
 
“오늘 우리 회사에도 환경 감사가 옵니다. 일단 지금 분홍색 통에 덜어 쓰고 있는 메탄올 다 감춰야 합니다. 이따 내가 한 바퀴 돌면서 수거할 거고, 오늘 메탄올로 뭐 닦지 마시고요. 아, 그리고 이따 감시하는 사람 와서 혹시 청소할 때 뭘로 하냐고 물어보면 이렇게 말하세요. ‘몰라요. 저희는 물로만 청소하는데요. 과장님한테 물어보세요.’ 이렇게. 설마하니 ‘몰라요’란 말도 기억 못하는 거 아니죠? 꼭 그렇게 대답해 주시고요. 그리고 지금 쓰고 있는 용제들. 아농(잉크희석제), BK도 각 팀별로 한 통씩만 가지고 있으세요. 이따 걷을 상황이 올지도 몰라요. 인쇄 기사들도 감시하는 사람이 인쇄기계 판 뭘로 닦느냐고 물으면 안 닦는다, 다 쓴 판은 그냥 폐기한다고 대답하시고요. 알겠죠? 이상.”
 
마스크를 썼기 때문에 입 모양은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조회가 끝나고 우리는 서로의 귀에 입을 바싹 대고 수근거렸다. “어떻게 인쇄 공장에서 용제를 안 써. 그걸 누가 몰라?” “이렇게 아농 냄새가 진동하는데 쓰레기통 열면 숨겨봤자 소용 없을 걸.” “아니야. 이건 그냥 눈 가리고 아웅이지. 이렇게 작은 공장은 걸려 봤자야.”
 
같은 라인에 있는 인쇄기사도 MIR 건조기의 소음 속에서 조용히 귀띔했다. “내 생각에는, 우리가 메탄올을 쓰면 설치해야 하는 장비가 있는데, 그걸 설치 안 해서 다 감추는 걸 거야. 나도 모르겠다. 예전 회사는 좋았는데. 환경수당이라는 것도 줬는데. 그땐 그 회사가 좋은 덴 줄 몰랐어.”
 
모두들 의문투성이의 불편한 마음으로 작업을 시작하려는데, 안전교육 서명 용지가 돌았다. “몰라요라고 대답하세요”라던 과장의 말이 귀에 아직 빙빙 울렸지만 서명을 할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건 안전교육이 아니었다. 하지만 서명 용지 가득 이름들이 채워졌다.
 
손에 충분히 축축하게 적시고 작업을 시작하라고 했던, 우리가 쓰는 알콜이 메탄올이었다니! 출근하면 나눠주는 라텍스 장갑은 방수가 되지 않았다. 물이나 용제 모두 장갑을 뚫고 맨손을 적실 수 있다. 메탄올은 호흡 뿐 아니라 피부로도 흡수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다시 조회시간으로 돌아간대도 입술을 달싹거리지조차 못할 것임을 안다. ‘몰라요’도 기억하지 못할 바보 취급을 받았지만, 우리는 이미 메탄올로 실명 위기에 놓인 삼성 공장 노동자의 소식을 알고 있었다. 휴식시간에 기사를 본 후, 소스라치게 놀라서 메탄올을 덜어 쓰던 핑크색 플라스틱 통을 최대한 멀찌감치 놓고, 더 이상 메탄올을 듬뿍 묻혀 꼼꼼히 청소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당장이라도 들이닥칠 것 같았던 감사는 점심시간이 지나고 느긋하게 왔다. 철저한 ‘안전교육’을 받은 우리는 당장 작업장의 모든 유기용제를 증발시켰다. “패스 박스에 담아 3층 사무실로 옮겼다던데?” 아까 용제를 걷어가던 윤정 언니가 말했다. 내 옆으로도 감사가 지나갔다. 남색 방진복을 입고 있는 우리와 달리 하늘색 방진복을 입고 뒷짐을 진 남자는 쓰레기통을 열어보지도, 나나 인쇄기사에게 질문을 던지지도 않았다. 온종일 어떤 대답을 해야 하나 고민했던, 우리의 조금 다른 하루는 그렇게 허무하게 끝나고 말았다.
 
감사가 오고 나서 며칠 후 어느 날, 잔업이 끝난 우리는 그만 둔 동료 한 사람과 함께 치킨을 먹으러 갔다. 뿔뿔이 흩어지게 되기 전에 속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시간을 갖기 위해서였다. 그만두면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인연이므로. 그때 선미 언니가 말했다. “야, 네가 며칠 전에 말해 준 메탄올 있잖아. 갑자기 생각났는데 작년에 일하던 언니가 메탄올로 청소하다 그 큰 병을 온몸에 다 쏟았어. 방진복 입고 있었는데 속옷까지 다 젖었을 정도로. 근데 그 담부터 그 언니가 좀 이상한 거야. 그날 내내 일도 못하고 주저앉아 술 취한 사람처럼 엉엉 울고, 욱, 욱하는 소리를 크게 냈어. 콧물도 막 나고 표정도 이상하게 찌푸리고. 근데 있잖아. 그때 있던 과장이 정신 나갔냐고 혼냈었어. 그리고 휴게실에 혼자 누워있다가 조퇴를 했었던가? 근데 아마 그게 메탄올 때문이었을 거야”
 
그 후로 그 언니는 딸의 결혼식을 준비한다고 며칠을 빠지고, 또 이후엔 몸이 아파 못 나오게 되었다는 소식만 들었다고 한다. 그 언니, 어떻게 되었을까. 혼자 끙끙 앓진 않았을까. 공단 괴담 같은 너무 끔찍한 그 얘기에 모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거 우리도 당할 수 있는 일 아냐?’ 한 마디 정도 나올 수 있었는데도, 스스로와 서로를 다독이면서 더 이상 얘기는 이어지지 못했다. “그 언니 너무 불쌍하다. 근데 우리는 메탄올을 쓰긴 해도 그나마 뜨거운 걸 닦는 데 쓰진 않으니까. 그나마 그 증기를 쐐는 일은 아니니까. 삼성 공장보다는 낫겠지. 우린 유리와 얼룩을 닦는 일 뿐이니까. 그것도 자주하진 않으니까. 괜찮을 거야.” 메탄올이 피부로도 흡수된다는 사실은 애써 외면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평소에도 스스로를 다독이는 일에 익숙했다. 관리자의 쌍욕이나 부당한 트집이 있으면, “어딜 가나 마음이 안 맞는 사람은 있어”라고 말했다. 이번 주에는 야근을 새벽 두 시까지 하고 그 다음 주에는 휴업을 하는 식으로 물량이 불안하면, “여기는 작은 회사라 어쩔 수 없어. 휴업 수당도 이렇게 작은 회사는 어려워서 주기 힘들 거야. 우리가 이해해야지” 하고 말했다. 몸이 아파도 “어차피 다 똑같아. 어디로 옮기든 똑같으니 그나마 집에서 가까운 곳 다니는 게 나은 거야.” “일이 어려운 건 아니니까 괜찮아. 이건 그나마 편한 편이야.” 정말 참을 수 없을 때도, “그나마 좋은 언니들이 같이 있으니까”, “그래도 내 담당 인쇄기사는 착한 편이니까” 하며 지친 마음을 다독였다.
 
“야,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몸이 덜 힘들어. 너무 신경 쓰지 마.” 잔업이 없으면 우리는 ‘반찬하고 쇼핑하고 머리하러 갈 여유가 있어 좋다’고 했다. 잔업이 늦게까지 있는 날이면 ‘돈을 많이 벌어 부자 돼서 좋다’고 했다. 이 착한 사람들은 “어차피 오래 다닐 것도 아닌데”라고 하며 언제든 이 삶을 때려치고 다른 삶을 꿈꿀 수 있을 것처럼 입버릇처럼 말해도, “에이, 뭘. 어딜 가도 다 똑같아” 하며 결론은 ‘조금만 참자’로 내렸다. 어느 것 하나 뻥을 보태지 않은 진심만 말했지만 우리의 말들은 서로 충돌하고 있었다.
 
우리에게, 우리 권리를 스스로 말할 수 있는 날이 언젠가는 올까. 애초에 권리라는 건 어디까지를 의미하는 걸까. 근로기준법에 적혀있는 것? 내 돈 떼먹히는 일만 없어진다면 권리를 찾아 헤매는 일은 끝나게 될 것 같지만, 정작 구체적인 우리의 오늘 속에는 ‘떼먹힌 돈’의 문제에는 포함되지 않는, 진하고 독한 잉크, 유기용제, 그리고 메탄올의 문제가 심각하다. 그렇다면 산업안전법을 기준으로 권리를 말해볼 수 있을까? 물질안전보건자료(MSDS)는 아무도 찾지 않는 공장의 안쪽 구석에 수줍게 꽂혀 있을 뿐이다. 결국 권리라는 것은 메탄올을 사용하는 사람이 메탄올이 무엇이며 어떻게 해로운지 알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보호구가 필요할지 대체 물질을 찾아야 할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대안을 제기할 수 있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닐까. 
 
그런데 우리는 벙어리다. 벙어리 아닌 사람들이 벙어리가 되어버린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이미 분석한 대로다. 스마트폰 시장은 모델 교체가 빠르고, 하청들은 제때 물량 수주를 받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하고, 따라서 탄력적인 노동이 필요하고, 노동자들의 근속 기간은 너무나 짧고, 언제 그만둘지도 모를 사람들이 뭉치기란 힘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제와 다른 하루를 만드는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스스로와 서로를 다독이기 위해 억지로 지워버렸던 오늘의 고민들이 입술을 통해 터져 나오고 공장 담벼락을 넘는 내일을 만들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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