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2016/04 제15호
보수 본고장의 진짜 정치
용산참사 진압작전을 지시한 김석기가 결국 새누리당 공천을 받았다. 그가 공천을 받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앞으로도 더 낮은 자세로 임하겠다’는 얼토당토 않는 문자를 날리는 거였다. 기다렸다는 듯이 숫자 1을 박은 명함이 나왔고, 중앙시장 네거리에 위치한 김석기 선거사무소 앞에는 고급세단이 즐비했다. “아이고 당선을 축하드린다”며 벌써부터 호들갑을 떠는 간신배들의 꼬락서니가 눈에 훤했다. 그렇다. 이곳 경주는 어떤 시정잡배라도 ‘1번’ 깃발만 꽂으면 당선이 확실시되는 TK의 심장부가 아니던가.
지난 1월 용산참사 7주기를 맞아 유가족과 대책위 분들이 경주로 내려왔었다. 유가족들은 비를 맞으며 경주시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김석기가 가야할 곳은 국회가 아닌 감옥입니다”라고 호소했다. 죄송했다. ‘경주라면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며 당당히 출마표를 던졌을 김석기의 오만이 용인되는 이 땅에 단지 26년간 살아왔다는 이유만으로도 죄의식이 들었다. 그러면서 김석기를 반드시 낙선시키자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당장 경주에서는 ‘김석기, 새누리는 안 돼!’라고 말하는 것 외에 구체적인 대안이 없었다. 그 와중에 온갖 ‘갑’들의 횡포와 국가폭력에 맞서 싸워온 권영국 변호사가 김석기의 출마에 맞불을 놓았다. “서민을 우습게 아는 자가 국회의원이 되면 얼마나 더 많은 권력으로 군림할 것인가. 가만히 두고 볼 수만은 없다”고 나타난 권영국의 등장에 김석기는 아마 다된 밥에 재가 뿌려진 기분이었을 거다.
나는 민주노총 경주지부 조직부장으로 있으면서 3월초부터 권영국 후보 선거운동에 일손을 보태게 되었다. 그동안 권영국 후보가 경주시민들을 만나러 부단히 뛰어다닌 덕분에 용산참사의 진상과 김석기의 악행이 조금씩 경주에 알려지고 있는 것 같다. 물론 경주를 포함한 대구·경북은 수도권과 다르게 철거민 투쟁에 대한 사회적 경험이 거의 없다보니, 경주 어르신들 사이에서는 ‘김석기가 참전용사들 죽였다매’라는 식으로 소문이 돌아 속상하기도 했다.
반응은 생각보다 폭발적이다. 거리를 돌면 매일 몇 명씩은 연령대를 불문한 열혈 지지자들이 나타났다. 80대 할아버지가 선거사무소로 전화를 해서 “재수 없는 것들 되면 안 되는데 잘 왔다”고 하고, 노트북을 수리하러 간 AS센터에서 “권영국 폴더를 봤어요. 우리 도와주시는 분이네요”하며 후한 서비스를 받기도 했다(참고로 그곳에는 노동조합이 없다). 장사를 하다말고 권영국 후보와 악수를 하기 위해 뛰쳐나오는 상인들도 제법 있었다. 여기가 정녕 새누리당 지지율 85퍼센트의 경주가 맞는 걸까, 싶을 정도다.
한편으로는 이런 고민도 든다. 정치란 누군가 잘난 사람이 좌지우지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라는 당연한 이야기. 권영국 후보 역시 ‘빼앗긴 권력을 되찾아오자. 정치는 우리 모두의 것’이라 말하며 험지에 뛰어들었다. 그렇다면 여러 현실적인 한계 속에서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기대나 의탁을 넘어서 ‘내가 정치의 주인공’이라는 용기를 가질 수 있을까? 이러한 고민은 내가 현재 몸담고 있는 민주노총의 고민이기도 하다.
경주에서 총선은 하나의 투쟁이 되고 있고, 난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선거 투쟁 하루하루 마음이 설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