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 특집
  • 2016/05 제16호

미국 연방노동위원회 '원청 진짜 사장' 판결이 말해주는 것

  • 윤애림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강의교수
 
지난해 8월 27일, 미국 연방노동관계위원회(NLRB)*는 원청 기업이 간접고용 하청 노동자들과의 단체교섭에 참여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종래의 판단기준을 뒤집은 것이다. NLRB는 이번 결정이 “오늘날의 경제 현실 속에서 연방노동관계법의 목적을 더욱 실효성 있게 달성하기 위한 것”**이라 밝히고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사건은 청소관리업체 브라우닝 페리스가 용역업체와 계약을 맺고, 노동자들이 쓰레기재활용 선별장에서 일하도록 한 사례다. 노조는 원청인 브라우닝 페리스가 ‘공동사용자(Joint Employer)’ 에 해당하기 때문에 단체교섭에 임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미국에서도 원청 기업이 자신은 파견·하청노동자의 사용자가 아니라며 단체교섭을 거부하거나 용역업체와의 계약을 해지하는 식의 부당노동행위를 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 30여 년 동안 NLRB는 원청이 공동사용자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근로조건에 관한 통제권을 ‘직접적으로 행사’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런 협소한 시각으로 인해, 원청이 용역업체를 통해 용역노동자를 간접적으로 통제하거나, 용역업체와의 계약이나 지침 등을 통해 근로조건을 통제하는 경우 공동사용자로 인정되지 않았다.
 

NLRB의 바뀐 입장

NLRB의 이번 결정은 종래의 판단을 명시적으로 뒤집고 있다. 원청이 용역노동자의 노동조건을 간접적·최종적으로 통제하거나, 계약·지침 등을 통해 통제권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공동사용자로 인정할 수 있다고 밝힌 셈이다. 

브라우닝 페리스 사건에서도 채용면접은 용역업체가 봤지만 채용의 규모와 기준은 원청이 정했다.  특정 노동자의 취업을 거부할 권한도 원청이 갖고 있었다. 원청이 작업속도, 교대제, 업무의 내용, 업무처리의 기준을 정하면, 용역업체는 노동자를 실제 어디에 배치할 것인지를 정했다. 또 구체적 임금액은 용역업체가 정했지만 임금의 한도는 원청이 정했다.

이처럼 형식적으론 용역업체가 노동자를 채용하고 업무를 지시하고 징계를 했더라도, 원청이 용역업체와의 계약을 통해 근로조건의 틀을 정하고, 제재를 가하거나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면, 공동사용자로서의 통제권을 가진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NLRB의 바뀐 입장이다. 이러한 통제권을 가진 원청을 상대로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단체교섭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연방노동관계법의 취지에 부합한다고도 밝혔다.
 

사라진 사용자 책임

간접고용의 현실과 노동기본권 보장이라는 법의 취지에 비추어 구태의연한 법리를 반성하고 변화시킨 이번 결정을 보면서, 자꾸만 우리 법원과 노동위원회의 태도를 비교하게 된다. 우리 법원 역시 2000년대 초반까지 근로계약상 고용주만이 노동법상 사용자이며, 원청은  사용자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2000년대 초부터 방송사비정규노조, SK인사이트코리아노조, 한진관광노조 면세점지부, 캐리어사내하청지회, 대성산소용역기사노조, 대송텍노조 등 파견·용역·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하여 원청을 상대로 투쟁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원청을 상대로 단체교섭을 할 수 있는지, 원청이 업체와의 계약해지나 업체폐업의 방식으로 노조를 무력화시키려 하는 것을 부당노동행위로 규제할 수 있는지 등이 법적 쟁점으로 떠올랐다. 

원청을 상대로 단체협약 체결을 요구하며 투쟁한 지역건설노조는 2003년부터 ‘공갈·협박범’으로 공안탄압을 받았지만, 끈질긴 투쟁을 벌여 2007년 원청이 단체교섭의 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라는 판결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사내하청 노동자의 조직과 투쟁이 이어지면서 마침내 2010년 대법원은 “근로자의 기본적인 노동조건 등에 관해사업주로서의 권한과 책임을 일정 부분 담당하고 있다고 볼 정도로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 역시 노조법상 사용자라고 확인했다.
 

‘진짜 사장이 책임져’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보수적인 판례의 변화를 이끌어내긴 했지만, 우리 법원과 노동위원회는 여전히 원청이 직접적으로 하청노동자의 근로조건을 지배·결정한 경우에만 ‘매우 제한적으로’ 원청의 사용자책임을 인정하고 있다. 반면 NLRB의 이번 결정은 원청이 간접적·포괄적으로 하청을 지배한 경우에도 노조법상 사용자가 될 수 있음을 밝힌 것이다.

NLRB의 견해가 극적으로 바뀐 배경엔 노동법의 한계를 뛰어넘어 진화하고 있는 기업 간 관계의 변모, 무권리의 간접고용의 증가, 이에 따른 노동기본권의 형식화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다.

민주노총의 간접고용 노조 조직들이 ‘노조법 2조 개정(노조법상 사용자 정의의 확장)’, ‘진짜 사장이 책임져’를 공동의 요구로 제기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의 시대인식이자 요구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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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중앙노동위원회와 유사한 역할을 하는 미국의 연방기관
**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좌우하는 문제를 고용주와 공동으로 결정하거나 공유하는 사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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