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16/06 제17호
구조조정 드라이브의 내막은?
구조조정 안 하면 죽는다?
“수술 무섭다고 안 하고 있다간 죽음에 이를 수도 있으므로 구조조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지난 4월 22일 박근혜 대통령이 구조조정의 시급성을 강조하며 한 말이다. 부실이 심각한 조선해운업체의 노동자를 감원하고 비용절감 방안을 수립하는 것, 이로 인해 야기되는 실업문제를 ‘파견업종 확대’로 해결하는 것, 그리고 국책은행의 자본확충을 통해 재원을 마련하는 것이 정부가 말하는 구조조정의 구체적 내용이다. 종합하면 부실기업 노동자를 해고하고, 실업을 빌미로 비정규직을 확대하며, 재벌의 경영실패 비용을 국민세금으로 메우자는 주장이다. 한마디로 노동자들이 경제위기의 고통을 감내하라는 협박인 셈이다. 한국경제가 중병에 걸렸다면 원인을 진단하고 치료해야 하는데, 거꾸로 가는 형국이다.
정부가 제시하는 해법은 석연치 않다. 과연 노동자들 때문에 위기가 도래했는가, 노동자에게 고통을 전가하면 위기가 해결되는가. 병의 원인과 처방이 적절한지 따져봐야 할 것이다.
위기의 대우조선, 책임자는 정부
조선업 위기의 핵심은 대우조선해양이다.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은 대우조선해양과 동급으로 묶여 구조조정 대상에 오른 것에 반발하고 있다.
물론 조선사 빅3 모두 세계 조선업 위기에 타격을 받았으며, 특히 유가 하락으로 인해 해양플랜트 사업에서의 손실이 컸다. 작년 조선업 빅3의 영업적자는 6조원에 육박했다. 이에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 모두 지난 4월 주채권은행에 자구계획을 제출했다. 한편 대우조선해양은 가장 심각한 상태다. 작년 영업손실이 빅3 영업손실 합계의 절반인 3조에 달한다. 부채도 마찬가지인데 작년 말 기준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 부채비율은 각각 220퍼센트, 306퍼센트인 반면 대우조선해양은 4266퍼센트다.
이처럼 재무상태가 심각하다보니 대우조선해양의 최대주주이자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을 비롯한 국책은행도 난관에 봉착했다. 산업은행의 대출액은 6조 3000억 원, 수출입은행의 대출액은 12조 7000억 원으로 국책은행이 대우조선에 지원한 자금이 19조 이상이다. 국책은행 자본확충이 필요하게 된 원인제공을 대우조선해양이 했다는 것으로, 사실상 국책은행 자본확충이 대우조선에 대한 구제금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우조선해양이 이 지경이 된 책임은 정부에 있다. 최대주주 산업은행의 최고재무책임자(CFO) 및 사외이사는 정부가 선임한다. 정부는 경영진에 조선분야의 전문성이 없는 인사를 낙하산으로 앉혀 논란을 야기했고, 이는 단기실적 부풀리기에 치중하는 경영행태를 낳았다. 대우조선에서 수조원의 적자를 감춘 분식회계가 발생한 원인이기도 하다. 게다가 정부가 경영을 책임지는 만큼 장기적 안목으로 조선 산업정책을 펴기보다 단기수익을 추구하면서 다른 조선소들과 해양플랜트 저단가 수주경쟁에 앞장섰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대우조선이 노르웨이 시추업체인 송가오프쇼어로부터 2조 4000억 원에 수주한 ‘송가프로젝트’다. 건조 과정에서 약 1조원의 손실을 기록해 대우조선 역사상 가장 큰 손실을 낸 프로젝트로, 과도한 경쟁에 따른 저가 수주가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대우조선을 비롯한 빅3가 2010년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한 해양플랜트 사업에 사내하청을 대거 동원하면서 사내하청이 급증하는 고용구조를 만들었다.
소위 ‘주인 없는 기업’이라 방만하게 경영했고 그래서 민간이 소유하도록 매각이 해법이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부가 책임지는 기업으로서 적합한 경영진을 선임하여 관리감독하면서 단기수익성 추구보다는 장기적인 산업정책을 추진하고, 좋은 일자리를 양산하려는 노력이 부재했던 것이 문제다.
재벌의 집착과 무능이 야기한 해운업 위기
조선과 함께 거론되는 해운업체 부실 책임은 재벌에게 있다. 부적절한 시기에 투자해 대규모 손실이 발생한 전형적 경영실패이기 때문이다. 해운업은 서비스 매개물인 선반을 건조하는 데 2년이 넘는 시간이 걸려 공급이 비탄력적이지만 수요는 시장상황에 따라 변동하는 특성을 지닌다. 따라서 호황기에 재무여력을 축적하고 불황기에 투자를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호황기에는 선박조달비용, 용선료가 높아지기 때문에 투자보단 재무여력을 확보하고, 불황기에는 호황기에 비축해둔 여력으로 투자해야 한다.
해운시장 침체기였던 2001~2002년 사이에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경영권 분쟁 등으로 분란이 발생했고, 재무구조 개선작업에 몰두하느라 투자에 나설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2003년에 중국경제 성장으로 해운시황이 반전됐다. 한진과 현대는 뒤늦게 발주를 시작해 2006~2011년 동안 총 53척의 사선을 확충했다. 사선(해운사 자체보유 선박)은 발주에서 인도까지 시간이 2년 가까이 소요 되지만, 용선(선박 임대차)은 곧바로 운임에 나설 수 있다. 2006~2008년 사이 사선확충만이 아니라 용선계약도 확대해 한진과 현대는 벌크 용선(비포장화물 전용선)을 총 75 척 증가시켰다. 그러나 금융위기 이후 해운시장이 급격히 침체됐으며 두 선박회사는 호황기에 발주한 선박의 높은 가격과 용선료 계약에 발목 잡히게 된 것이다.
한진해운은 경영지식이나 경험이 없는 재벌총수일가가 경영권을 세습했고 그 결과 경영에 실패해 심각한 기업부실을 야기했다. 게다가 기업 실적이 악화되자 경영권을 채권단에게 넘기기 직전에 총수일가가 보유한 주식을 전부 매각하는 파렴치한 행태를 보였다. 현대상선도 재벌일가가 2013년에 경영권 방어에 골몰하느라 기업회생에 집중하지 못해 중요한 타이밍을 놓쳤다는 평가가 있다.
왜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는가?
현재 조선해양업의 위기는 정부와 재벌의 경영실패에서 비롯되었다. 한국경제에 수술이 다급할 정도의 큰 병을 유발한 것은 정부와 재벌이다. 그럼에도 박근혜정부는 뻔뻔하게 노동자들의 고통 감내가 불가피하다며 구조조정을 몰아붙이고 있다. 진단도 처방도 모두 틀렸다.
조선업은 과잉설비 처분이나 매각이 바람직한 상황이 아니다. 금융위기 이후 28개에 육박하던 중소 조선사들이 대거 몰락해 7개만 남아 시장원리에 따른 구조조정은 한차례 끝났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위기는 2010년부터 유가가 상승하면서 조선사 빅3가 해양플랜트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최근 유가가 급락하면서 발생했다. 과잉설비 조정은 어느 정도 끝났으며, 일부 사업영역에 대한 정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또한 현재 국내 조선업의 위기는 재무적 위기이지 중국·일본과 비교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사양사업이라 보기도 어렵다. 따라서 정부의 기조처럼 인력감축과 매각일변도의 구조조정이 아니라 숙련 노동력을 유지하고 장기적인 산업정책의 구축이 필요하다. 해운업체 위기도 2013년부터 가시화되었으며 자구계획을 실행하다 채권단과 자율협약을 신청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위기의 심각성을 조장하고 감원과 매각을 운운하며 시급하게 구조조정을 몰아붙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로 정부와 재벌의 실책을 은폐하기 위함이다. 위기의 원인을 찾기보다,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다그치며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전가하기 위해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다. 둘째는 총선실패로 상실한 국정운영 동력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박근혜 정부는 재벌들이 기업활력제고를위한특별법(4월호, ‘구조조정은 더 쉽게, 손실은 나 몰라라’ 참고)으로 선제적으로 구조조정하고, 기업구조조정촉진법으로 경영실패에도 경영권을 보장받으며, 상시적 구조조정이 가능하도록 노동시장 구조개악을 마무리지으려 한다. 이는 경영권에 대한 집착, 무능한 운용으로 한국경제에 암운을 드리운 재벌 체계를 강화하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다. 구조조정 드라이브의 실체를 폭로해 경제위기의 책임을 노동자가 아니라 정부와 재벌이 지도록 투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