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 건강과 사회
  • 2016/07 제18호

임상시험 규제 완화 누구를 위한 것인가

  • 김태훈 사회진보연대 정책교육국장
영화 <콘스탄트 가드너> 스틸컷
 

마루타가 된 아프리카 어린이

“아프리카에 살인은 없습니다. 안타까운 죽음만 있을 뿐. 우린 그런 죽음 위에서 문명의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벌어지는 초국적 제약회사의 비윤리적 임상시험을 다룬 영화 〈콘스탄트 가드너〉. 주인공의 아내는 활동가로서 이 사실을 알리려다 의문의 살해를 당하고 주인공은 진실을 쫓다가 아내 곁으로 간다. 

이 영화는 실화에 기반하고 있다. 1996년 나이지리아에서 뇌수막염이 유행할 때 세계 최대 제약회사 화이자(Pfizer)는 의료 구호의 이름으로 아이들에게 자신의 신약 트로반(Trovan)을 임상시험했다. 이 시험으로 11명의 어린이가 사망했고, 수십 명의 어린이가 시력을 잃거나, 뇌나 폐 같은 장기에 손상을 입었다. 환자들은 새로운 치료제의 특성을 사전에 전혀 전달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같은 시설 내 이웃한 ‘국경없는의사회’에서 다른 효과적인 치료제를 이용할 수 있다는 설명도 듣지 못했다. 이후 소송에서 화이자는 “아프리카에서 임상시험을 실시하기 위해 참가동의서를 받을 때 따라야 할 국제적 기준이 없다”고 주장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화이자는 나이지리아 보건부가 이 임상시험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한 2006년에서야 제재를 받았다. 

제약회사의 비윤리적 돈벌이는 잘 알려져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리베이트다. 제약회사 영업직원들은 의사들에게 자신의 약품을 처방하도록 홍보하면서 약 처방 건수에 따라 보상을 해주는 ‘리베이트 계약’을 맺는다. 그러나 비전문가의 입장에서 약을 개발하고 의학 지식을 만들어가는 과정의 문제를 이해하기란 어렵다. 전문가들의 자기검열(동료 평가)과 양심, 정부의 정책적 규제가 작동하겠거니 생각하는 정도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실은 우리의 믿음을 배반한다.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르는 문제, 막을 수 있었던 ‘살인’인지, 그저 운명적인 ‘안타까운 죽음’인지 규명하지도 못한 문제가 신약 개발과 의학 지식의 형성 과정에 존재한다. 
 

제약회사의 연구 조작

제약회사는 특허권을 통해 신약을 독점 판매한다. 선진국에서는 매우 높은 가격에 약을 팔고, 후진국에는 환자들이 죽어가도 약을 공급하지 않는 식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이러한 제약자본의 독점권을 세계적으로 더욱 강화하고 있다. 

한미FTA 발효 이후 한국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정작 많은 신약들은 제약회사가 아니라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이나 학술기관이 개발한다. 제약회사는 새로운 물질이 ‘신약’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 마지막 단계에 개입해 특허권을 얻고 이윤을 가져간다. 

의약품 특허권 문제는 그나마 조금 알려져 있다(《오늘보다》 2016년 3월호, 〈제약산업의 거짓말〉 참조). 그러나 제약회사가 지식 생산에 개입하는 문제는 전문가도 경각심을 가지기 어렵다. 《불량 제약회사》를 쓴 영국 의사 벤 골드에이커에 따르면, 이러한 문제는 뉴스 기사나 요약된 보고서로 파악할 수 없고 공적 감시에서 벗어나 있다. 베일에 가려졌던 신약 개발과 의학 연구의 실체를 추적하는 책의 내용은 충격적이다. 

제약회사가 후원하는 연구에는 후원사의 약에 유리한 결과가 더 많이 나온다. 이것은 의혹의 수준을 넘어서, 연구를 통해 입증된 사실이다. 어떻게 결과를 조작하는가? 가장 간단한 방식은 자료 누락이다. 불리한 결과는 그냥 발표를 하지 않는다. 대표적인 사례가 신종독감 유행 때 사용된 타미플루다. 신종독감 유행으로 전세계가 이 약을 사기 위해 수십억 달러를 지출했다. 그러나 이 약이 독감으로 인한 폐렴 유병률(특정 시점에 특정 지역에서 나타나는 인구 대비 환자 수)과 사망률을 낮춘다는 근거를 제약회사는 아직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즉 효과가 없다는 연구 결과가 있더라도 발표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임상시험 과정에서 다양한 속임수로 치료제의 효과를 과장한다. 서울대 교수가 돈을 받고 가습기 살균제의 위험성을 조작한 것 같은 명백한 사기 외에도 합법적인, 정확히 말해 정부가 규제하지 않는 교묘한 조작들이 있다. 임상시험의 대상 평가집단을 왜곡하거나, 평가변수를 왜곡하거나, 평가기간을 조작한다. 이런 과장은 순전한 실수가 아니다. 연구윤리위원회부터 학술지까지 그 기법을 훤히 아는 사람들이 이런 관행을 용납하고 있다. 
 
 

임상시험의 비극과 외주화

자료 은폐는 비극을 낳기도 했다. 2006년 영국에서는 TGN1412라는 신약 후보 물질을 인체에 처음 투여하는 시험에 6명의 건강한 피험자들이 2000파운드를 받고 참가했다. 그러나 1시간도 지나지 않아 두통, 근육통, 불안이 나타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열이 나고 정신이 혼미해졌다. 하루도 되기 전에 6명은 폐에 물이 차고 호흡곤란이 심해져 인공호흡을 하게 되었고, 말초 혈액 공급이 차단되어 손가락과 발가락이 괴사되었다. 이후에 유사한 물질이 과거에도 시험되었고 비슷한 부작용이 있었으나 자료를 발표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물론 임상시험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을 가지고 약의 효능과 부작용을 알아내는 임상시험 일반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TGN1412의 사례처럼 그러한 부작용이 피할 수 있었던 것이라면 문제다. 약은 실험실과 동물 실험을 거쳐 최초로 인체에 적용되는데, 이러한 최초 인체 적용 시험 결과는 4년 동안 10퍼센트만 공개되고, 8년이 지나도 20퍼센트밖에 공개되지 않는다.

최초 인체 적용 시험의 위험을 감수하는 피험자들의 대부분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청년이라는 것도 문제다. 심지어 미국에서는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가난한 이들이 무료로 진료, 검사,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수단으로 임상시험에 참가하기도 한다. 21세기판 매혈이다. 임상시험 참가에 금전적 보상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현실을 생각하면 오히려 보상이 충분하지 못하다는 것이 문제다. 해외에서는 임상시험 참가자들 스스로 노동조합 결성을 논의하기도 한다. 

또 임상시험이 민간 임상연구기관에 의해 외주화되고 있는 문제도 있다. 민간 임상연구기관은 비용이 적게 들고, 규제가 허술한 개발도상국에서 임상시험을 확대하고 있다. 외주화된 임상연구기관은 고객, 즉 제약회사의 입맛에 맞는 연구결과를 낼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연구 자료 은폐가 쉬워지고, 연구 결과의 신뢰도도 떨어진다. 약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는 루마니아나 인도에서 수집한 자료를 온갖 약에 노출된 미국의 환자들에게 적용하는 문제도 생긴다.
 

임상시험 규제 완화, 누구를 위한 것인가

민간 임상연구기관이 주도하는 임상시험의 상업화에 가장 적극적인 국가가 바로 한국이다. 한국은 임상시험 유치를 위해 2002년부터 규제를 완화하고, 한국임상시험산업본부 설립 등 정부 차원에서 지원을 했다. 실제 한국은 지난 10년간 임상시험이 연평균 17.0퍼센트씩 증가했다. 서울은 임상시험이 가장 많은 도시 세계 1위다(국가 기준 한국 세계 7위). 시장규모도 2010년 5740억 원에서 2014년 9919억 원으로 증가했다(보건복지부, 〈임상시험 글로벌 경쟁력 강화방안〉, 2015..).

임상시험 경쟁력 강화는 제약산업 정책의 일부다. 보건복지부는 2016년 바이오헬스 7대 강국을 목표로 제시하면서 임상시험 산업 발전과 제약산업 발전을 위한 방안을 지속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그중에는 임상시험을 하지 않고도 조기에 약을 판매할 수 있는 조치도 있고, 임상시험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조치도 있다. 여러 조건을 달고 있고 ‘임상시험경쟁력강화위원회’ 같은 검토기구도 설치하지만, 제약-임상시험회사를 지원하기 위한 명백한 특혜 조치이다. 나아가 감세 혜택에 정부 조세를 통한 지원에다 건강보험 재정까지 쓰려고 한다. 그러나 정작 ‘임상시험경쟁력강화위원회’는 건강보험 가입자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않는다. 
 
 

이윤보다 사람

최근에는 갈 곳 잃은 유동 자본이 바이오제약 관련 주식에 몰리고 있다. 2014년 7~8만 원이었던 한미약품 주가는 지난해 말 86만 원까지 올랐고, 현재도 70만 원 전후다. 코스닥 시가총액 1위인 셀트리온의 주가는 2배 가까이 올랐다. 이 두 제약회사는 바이오의약품의 수출에 성공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현재 삼성은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설립해 세계 최대의 바이오 의약품 생산 능력을 갖출 계획이다. (제약·바이오 주의 버블 가능성을 둘러싼 상반된 전망이 있다. 제약·바이오 주의 주가수익비율이 30배인데, 2015년 코스피의 평균 주가수익비율은 7~11배 정도였다. 한국도 미국처럼 바이오 버블로 간다는 주장과 향후 더욱 성장할 것이라 고평가는 아니라는 주장이 맞선다.)

경제위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시장은 더 높은 이윤을 욕망하고, 정부는 바이오 7대 강국, 글로벌 제약기업 육성, 임상시험 경쟁력 강화 등 장밋빛 청사진을 내놓기 바쁘다. 정작 이 논의에 과학 발전의 방향, 시민의 건강과 안전을 위한 규제, 평등한 의료에 대한 고민은 없다. 

지난 3년간 한국에서 임상시험 부작용으로 49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이 사망은 그저 ‘안타까운 죽음’일 뿐일까? 정부가 관심 가지지 않는 이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어떤 실천이 필요한지 고민해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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