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2016/07 제18호
집배원 민주노조 첫 삽을 뜨다
20대 총선일인 지난 4월 13일 대전에서 100여 명의 집배노동자들이 모였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를 상급단체로 하는 전국집배노동조합을 설립하기 위해서였다. 작년 9월 이후 재개된 토요근무 때문에 노조설립총회를 토요일에 하지 못하고 임시공휴일에 진행한 것이다.
작년 9월 우체국 내 대표교섭노조인 우정노조는 조합원의 압도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토요근무폐지 1년 2개월 만에 토요근무 재개를 직권조인했다. 게다가 올 3월 전국대의원대회에서는 조합원 98퍼센트가 찬성한 위원장직선제 규약개정 안건이 참가대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지 못해 부결되고 말았다. 노조 민주화에 역행하는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수십 년간 우체국 현장노동자들의 인권과 노동기본권은 철저히 유린당했다. 집배원들은 장시간중노동에 시달렸고, 안전사고와 생명을 담보한 노동을 강요당했다. 우정사업본부는 지난 10년간 75명의 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해 지난해 최악의 살인기업으로도 선정되었다. 노동조합이 없는 것도 아니고 절대다수가 노동조합에 가입된 사업장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더욱 놀랍고 안타까울 뿐이다.
암울했던 우체국 현장을 바꾸기 위해서는 고되고 서럽게 일하는 노동자가 당당히 일어나야 한다. 우리는 지난 3년 동안 현업 집배원으로 일하면서 ‘집배원 장시간중노동 없애기 운동본부’라는 조직을 통해 집배노동자의 장시간노동을 사회적으로 알리는 투쟁, 토요근무폐지투쟁, 비정규직철폐투쟁, 연가보상비소송투쟁 등을 지속적으로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현장민주화를 고민하고 투쟁하는 전국의 동지들을 만날 수 있었다.
설립총회 후 두 달이 지난 지금 전국 곳곳에서 아침 6시30분부터 출근선전전을 진행하고, 저녁에는 조합가입을 위한 간담회를 하며 노동자들을 만나고 있다. 많은 현장노동자들이 집배노조에 호의를 갖고 있지만 탄압과 불이익이 두려워 가입하기를 주저한다. 하지만 투쟁의 과정에서 현장이 변하면 더 많은 노동자들이 집배노조와 함께할 거라고 생각한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매년 적자 타령하던 우정사업본부는 집배원 사기진작을 위한다며 25억의 예산을 배정하였다. 올해 초과근무수당 예산도 50억 원 증액했다. 집배노조지부가 만들어진 현장에서는 사측의 일방적이고 위법적인 노무관리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집배노조지부가 설립된 한 우체국에선 그동안 무차별적으로 삭감되어 30~40시간만 인정받던 초과근무시간이 월 90시간 이상 정상적으로 인정받게 되기도 했다.
최근 집배노조는 집배노동자 근무실태를 조사하고 있다. 집배원들의 연간 총노동시간, 인정받지 못하는 초과근무시간 등을 조사해서 장시간노동의 문제점을 알리고, 무료노동을 강요하는 사측의 행태에 철퇴를 가하려고 한다. 그밖에도 비정규직 철폐투쟁, 구조조정 저지 공공성 강화투쟁, 노동개악저지 성과연봉제 반대투쟁 등 집배노조가 할 일은 무궁무진하다.
아직은 작아 힘이 좀 부족할지라도 일당백의 정신으로 이겨내고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와 함께 투쟁한다면 집배노조가 우체국을 민주적인 현장으로 바꾸고 멀지 않은 날에 제1노조로 우뚝 설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