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보다
- 2016/08 제19호
전략조직화 사업 한걸음 더
민주노총의 새로운 전략조직화
민주노총 전략조직화 사업이 체계화를 도모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2014년부터 전략조직화 예산 비중을 높이고 노조가입 캠페인·홍보사업을 꾸준히 진행했다. 오는 8월 정책대의원대회에서는 4대 주요 의제 중 하나로 전략조직화를 다룬다.
무엇보다 ‘총괄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것이 눈에 띈다. 사무총국 상근 역량을 충원해서, 노조 인식 제고 사업, 조직문화 혁신 사업, 법률 상담 사업, 정책 연구 사업, 조직활동가 교육 사업 들을 수행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제까지 미조직비정규 사업에 법률원, 선전실, 정책실, 교육실의 지원을 받았는데, 앞으로는 각 역량을 보강해서 미조직 비정규 사업에 맞춰 총괄적으로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정책·선전·조직 사업에 있어 사업의 중심을 신규 조직화 사업에 맞게 이동시키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그동안 정권의 노조 탄압, 노동유연화 공격에 맞선 투쟁에 집중하면서, 정책·선전·법률·교육·조직 사업이 그에 맞춰 운용되어왔던 게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노동시장의 변화에 맞춰, 미조직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적합한 조직·상담·선전 방식을 찾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전략조직위원회를 두고 각 사업들을 ‘총괄’하고, 이제까지 사업 관행을 바꿔보겠다는 것이다.
체계적인 전략조직화 사업 시스템이 없다는 문제는 반복적으로 지적되어왔다. 따라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 형태의 방안이 제시되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전략조직화 사업 방향(기조)과 계획(구상)이 함께 제시되어야 한다.
변화된 생산방식, 변화된 노동시장
1987년 당시의 환경과 지금은 완전히 다르다. 당시는 수출대기업이 성장했고, 정부는 완전고용을 정책 목표로 삼았다. 하지만 30년이 지난 지금 모든 것이 바뀌었다.
기업의 관리비용을 줄이고 생산성을 높이 위해 ‘수직적 하청계열화’ 방식이 확대되었다. 지금 자동차나 전자 산업을 중심으로 대기업을 정점으로 3~4차 하청까지 생산이 동기화되는 공급사슬이 구축되었다. 이런 흐름은 해외에 지사를 설립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현대차와 삼성은 해외공장을 설립할 때 주요 납품회사 및 공장을 함께 데려갔고, 그렇게 해서 해외지사에도 동일한 형태의 생산 연쇄사슬을 구축해 놓았다.
또한 이주노동자와 여성의 노동력을 활용하면서, 노동시장 유연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정리해고, 기간제 및 파견제, 변형근로제 등이 도입되었고, 근속과 연공급 임금체계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노동력 공급방안을 찾아냈다. 지금은 숙련이 필요한 공정·부서에서는 정규직을, 그렇지 않아도 되거나 업무의 종료가 있는 공정·부서에서는 비정규직을 고용한다.
새로운 조직화 방식이 필요해
① 공급 사슬 조직화
3~4차 하청까지 생산이 동기화되는 공급 사슬을 구축하려면, 적기 납품을 가능하게 하는 전산화와 납품 체계, 즉 통신과 운송이 발달해야 한다. 더불어 이런 기술적 배경 위에서 기업의 경계를 초과하는 지배구조, 전 방위적인 생산관리 체계가 구축되어야 한다.
공급사슬이 봉쇄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재벌들은 공급의 구조를 이원화, 삼원화 한다. 삼성 핸드폰 조립공정을 담당하는 업체가 3개이고, LG전자의 핵심자재 납품업체가 2개인 식이다. 그렇게 해서 한 공장의 제품 납품에 문제가 생길 경우, 바로 다른 공장의 생산라인이 가동된다. 노동법 규제를 받지 않고 대체인력을 투입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셈이다. 심지어 현대차와 삼성 등 재벌 대기업의 경우, 이러한 생산관리체계가 국가 간 경계를 넘어서까지 전개한 상태다.
사무직은 물론 자동차 핵심부품, 전자산업 자재 조립공정에 있는 제조업 반숙련직 노동자들의 경우 ‘정년 보장’ 정규직 근로계약을 맺은 경우가 많다. 실제 단기근속자 비율도 다른 직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 생산 공정에 대한 일정한 숙련이 필요하기 때문에 정규직으로 채용을 하는 경우다. 이 경우 전통적인 조직화 방식에 공정별로 집단 조직화를 도모하는 방식을 강구해 볼 수 있다. 예컨대 자동차 부품 1차 밴드 특정 공급 라인이나 전자 산업의 특정 자재 공급 라인에 포진된 업체들을 집중적으로 조직화하는 방식이다.
이런 조직화 방식이 실제 효과를 발휘하려면 공급 사슬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실행하려면 기존 산별노조의 경계와 국가 단위의 경계를 넘어서야 하는 상황에 맞부딪히고 말 것이다. 초국적화된 재벌에 맞서는 조직화이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의 전략조직화 사업은 이를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
② 노동시장 조직화
오늘날에는 취업과 실업을 반복하는 반(半)실업자들이 늘어났다. 특히 단순직과 숙련직, 서비스직과 판매직에서 비율이 높은데, 40퍼센트를 전후한다. 제조업과 서비스업에 많은 단순직은 단기근속자 비율이 53.9퍼센트로 절반을 웃돈다.
이들 비정규직의 경우 노동시장 진출입이 잦아, 사업장 차원에서 노조 설립이 거의 불가능하다. 숙련직을 제외하면 현장 장악력도 높지 않다. 미지급된 임금 돌려받는 일이나, 사회운동과 연대해 지역 노동시장에서 기본적인 노동권을 확립하는 일, 법·제도개선을 통한 지역 노동시장의 표준화를 도모하는 일들이 과제다.
비정규직을 대상으로 하는 노동조합은 안정적인 교섭력과 제도화된 투쟁 방식을 기대하며 활동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사회에서 제도화된 노동조합이나,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확립된 민주노조의 활동 방식은 상용직 노동자들에게 적합한 형태다. 하지만 IMF를 경과하면서 반실업·비정규직이 급격히 증가했고, 이들을 상대로 하는 새로운 노동조합 활동방식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정규직 중심의 노동운동이라는 수렁에서 헤어 나올 방법이 없다.
해명해야 할 쟁점은 세 가지다. 첫째, 임시·일용직, 반실업 비정규직이 어떻게 노동조합 조합원이 될 수 있을까. 둘째, 어떻게 ‘고용 안정’ 요구나 ‘노동조건 개선’ 요구를 제시하고, 쟁취하면서 동시에 지속시킬 수 있을까. 셋째, 이상을 가능하게 하는 노동자의 집단적 행동과 투쟁 방식은 무엇일까.
이런 노동자들을 조직해온 건설노조나 화물연대본부의 활동을 돌이켜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첫째, 사업장 단위의 노조 설립이 아닌 개별 가입 방식이어야 한다. 개별 가입이 가능한 단계와 절차가 있어야 할 것이다. 둘째, 반실업, 비정규직에게 고용안정 요구란 결국 ‘고용 승계’ 혹은 ‘채용’ 요구이다. 노동조건 방어란 결국 ‘노동조건 후퇴 없는 계약 갱신, 혹은 조합원 고용 보장’ 요구일 것이다. 셋째, 이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 방식으로서 ‘근로기준법 준수, 산업안전보건법 및 도로(교통)법 준수’ 등을 활용했다. 합법적인 쟁의권을 확보할 수 없는 상태에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투쟁 방식의 개발이 필요하다. 건설노조와 화물연대본부, 알바노조의 활동에서 보이듯,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비전형적인 투쟁 방식이 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민주노총이 노동자계급을 대표하는 조직화 사업을 하려면 이러한 시도를 해야 한다.
③ 법·제도 개선을 통한 조직화
노동조합에 대한 파상적인 공격, 노동시장 유연화는 결국 노동권의 후퇴와 함께 시민권의 후퇴로 이어지고 만다. 노동권이야말로 시민권 중의 시민권이기 때문이다.
외주화된 노동자들은 노동기본권은 물론이거니와 인권 유린, 폭력이 난무하는 상황으로까지 내몰리게 된다. 사회운동은 이를 의제화하면서 법제도 개선으로까지 나아가야 한다. 청소노동자, 콜센터 노동자의 노동인권 보장, 생명·안전 업무의 간접고용 및 외주화 금지, 가사·돌봄 노동자의 노동권 보장, 원청 기업의 하청업체 노동자에 대한 책임과 의무의 제도화 등이 대표적일 것이다.
1980년대 정치적 민주화와 함께 노동조합 건설투쟁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듯, 후퇴한 노동권·시민권의 회복 과정과 노동조합 조직화 사업은 함께 진전될 수밖에 없다. 바로 법·제도 개선을 통한 조직화 사업이다. 이런 과제들은 노동자계급을 대표하는 민주노총이, 노동자의 정치사회적 운동을 상징하는 민주노총이 해야 하는 핵심적인 역할이기도 하다. 사회운동을 하는 기관으로서 민주노총이 이와 같은 전략조직화 사업을 전진시킬 수 있어야 한다.
3기 전략조직화 사업과 민주노총 혁신을 함께
전략조직화 사업은 단순한 조직 확대 사업에 그쳐서는 안 된다. 가맹산별노조의 집중 조직화 사업과 구별되어야 한다. 교섭과 투쟁에 관한 권위가 취약한 상태에서 전략조직화 사업으로서 위상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불필요한 논란에 휩싸이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1기 전략조직화 사업은 비정규직 조직화를 목적으로 한 것이었다. 변화된 노동시장에 걸맞은 조직화 방법을 찾으려는 노력이었단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하지만 제한적이기도 했는데, 고용형태의 변화에만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조직화 방식을 결정적으로 구분 짓는, 노동력 특성과 근로계약양태, 평균 근속 등을 눈여겨보지 못했다.
2기 전략조직화 사업은 중소영세 조직화 사업이 목적이었다는 점에서 변화된 생산체제에 맞는 조직화 방법을 찾으려 했던 시도였다. 하지만 피상적이기도 했는데, 불평등한 관계로서 재벌-중소기업, 중소기업 지불능력의 취약성,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일하는 중소영세 노동자 권리찾기 사업의 필요성을 제시한 것 말고는 진척된 내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이번 「정책대의원대회 현장토론자료」에는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의지말고, 무엇을 위해서 전략조직화 사업을 하려는지 목표가 뚜렷이 제시되어 있지 않다. ‘100만 조직화’라는 양적 목표만 제시되어 있을 뿐이다. 물론 민주노총 혁신의 총체적 전망이 제시되어 있지 않은 탓이기도 할 것이다.
경제위기가 심화됨에 따라, 수출주도 재벌경제를 뒷받침하기 위한 구조조정이 재현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렇게 되면 재벌과 채권단의 손실을 국민경제 전체가 메워주고, 노동자들은 고용조정을 감당해야 한다. 노동자의 숙련과 기술축적보다는, 저임금 체계와 고도로 신축적인 노동시장을 기반으로 재벌체제의 수익성만 보장하는 행태가 재현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노동자운동이 제동을 걸어야 한다. 재벌체제에 맞서 싸워야 한다. 문제는 '현재 민주노총이 제동을 걸 수 있을 만큼, 생산에 직접적 타격을 미칠 수 있는 힘이 있는지', '지금과 같은 계급대표성으로 노동자계급을 대변한다고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지', 그리고 '노동자의 시민권을 회복시킬 만큼의 정치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느냐'이다.
오늘날 노동조합운동을 재벌체제에 맞서는 형태로 재건하고, 그것을 혁신의 방향으로 삼을 것이라면, 전략조직화 사업 역시 그에 맞게 설계되어야만 한다. 이는 곧 공급사슬 체계에 기반한 조직화, 지역노동시장 중심의 조직화, 법제도 개선을 통한 조직화일 것이다.
이는 산별노조와 지역본부 차원에서 개시할 수 있는 조직화 방안이 아니다. 노동자계급을 대표하는 민주노총이 설계하고 큰 그림을 그려야 가능하며, 무엇보다 노동자운동 주체들이 공히 힘을 모아서 설계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전략조직화 사업이 진정으로 실행력을 가져야, 사회운동의 혁신과 전진 역시 가능할 것이다.
오는 정책대의원대회를 전후로 한 논의가 그 시발점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