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보다
- 2016/08 제19호
당신은 어떻게 더위를 피하십니까?
《여름전쟁: 우리가 몰랐던 에어컨의 진실》
살랑살랑 자연의 미풍을 잊은 사람들
이제 곧 많은 사람들이 여름휴가를 떠난다. 펜션 운영 3년째, 여름이면 피서 온 많은 도시 사람을 만난다. 도시의 열기를 피해 자연의 시원함을 즐기러 왔으리라. 그러나 도시 사람들은 숲속에 와서도 문이며 창문을 꽁꽁 닫고 에어컨을 켠다. 조금의 더위도, 추위도 견디기 어려워한다. 그래서인지 도시 사람들의 펜션 선택도 에어컨을 틀어 시원한 실내에서 스파나 수영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집중된다. 마당이며 계곡이며, 숲속의 시원함을 전하고 싶은 우리 펜션은 그리 인기를 끌지 못하는 형편이다.
미국 토지연구소의 선임연구원으로 일하는 스탠 콕스가 쓴 《여름전쟁: 우리가 몰랐던 에어컨의 진실》은 에어컨이 우리 삶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었는지 자세히 알려준다. 여름이면 너무나 당연하게 틀어놓는 에어컨이 사람이 사는 공간은 물론이고 정치, 경제에서부터 아이들의 교육까지 변화시켜왔다는 사실 말이다. 수많은 에어컨 자체가 지구를 뜨겁게 만들고 환경을 오염시키는 원인인 것은 물론이고, 이 에어컨을 돌리기 위해 무차별적으로 사용 중인 석탄에너지, 원자력에너지 등 각종 발전시설들이 지구를 죽이고 있다.
“엄마, 에어컨을 많이 틀고 냉장고 문을 많이 열면 지구가 아프대.” 이제 막 4년을 산 딸 유하도 아는 사실이다.
우리와 우리 아이들의 삶을 변화시킨 에어컨
에어컨은 사람이 살 수 없었던 곳을 삶의 공간으로 변화시켰다. 도시의 무차별적인 확장이다. 그리고 에어컨이 나오는 곳으로 사람의 공간을 제한했다. 여름의 뜨거운 열기를 느낄 수 있는 것은 이 건물에서 이 건물로 옮겨가는 잠깐 동안 뿐이다.
책은 에어컨이 이 모든 것의 원인이 아니라 2차 세계대전 이후 사생활과 가족 위주의 생활을 존중하는 사회분위기를 반영한 결과라 설명한다. 열대야가 찾아오면 TV뉴스에는 한강변이 더위를 피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고 떠들지만 사실 에어컨을 시원하게 틀어놓은 집안에서 치킨을 뜯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에어컨은 지금의 핵가족을 강화하는데 한몫했다.
아이들은 더 이상 바깥에서 뛰어놀지 않는다. 2005년 리처드 루브는 <자연에서 멀어진 아이들>에서 요즘 아이들이 심각한 ‘자연결핍장애’를 겪는다고 썼다. 자연과의 교감이나 자유분방한 야외활동은 스트레스를 제거해 주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지만 에어컨이 이를 가로막는다는 것이다. 에어컨뿐 아니다. 자본은 전자제품과 수많은 장난감을 아이의 손에서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아이들을 실내에 가둔다.
극우 성향 단체 미국기업연구소의 프레드릭 헤스는 에어컨으로 실내가 쾌적하게 유지되니 여름방학이 필요 없다고 말한다. “에어컨이 없던 시절에는 학생으로 바글거리는 학교가 학생의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소지가 있었다”며 “오늘날 여름방학은 감독받지 않는 생활에 말썽을 일으키고 학교에서 배운 것을 다 잊어버리게 될 뿐”이라는 것이다.
마이클 무어는 다큐멘터리 <다음 침공은 어디>에서 핀란드 교육이 좋은 이유 중 하나로 학교에서 머무는 시간을 최소한으로 줄인 것을 꼽기도 했다.
온도 조절의 권리는 누구에게?
공장과 사무실에서의 에어컨은 철저히 이윤에 따라 사용된다. 온도의 결정은 노동자들의 쾌적한 노동환경이 아니라 기업의 손익계산서에 달려있다. 광고물을 제작하는 미국의 플래스티라인 사의 경우, 정부에서 더위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한 노동자들에게 조금 가벼운 업무에 배치할 것과 시원한 장소에서 더 많은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조치하라는 권고를 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경영진이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100명의 노동자에게 하루 10분의 휴식시간을 줄 경우 여름동안 추가로 2만 달러가 든다는 결론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2만 달러는 임금 총액의 2퍼센트에 불과한 금액이었지만 경영진에게는 불필요하고 지나친 손실이었다. 결국 여름 동안 전기료 600달러를 추가로 지출해 선풍기를 다는 대신 작업속도를 늦추지 않기로 한다.
에어컨을 구입하고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온도조절의 권리를 갖는다. “죽은 새가 나무에서 떨어졌다”는 신문기사가 나올 정도로 뜨거운 인도에서 에어컨은 VIP라는 말과 같다. 음식점도 에어컨석과 비에어컨석으로 나뉘고 에어컨석 음식 가격이 더 비싸다. 소수의 쾌적함을 위해 모두의 식량을 생산할 농경지 양수기로 가야 할 전기가 부족한 실정이라고 한다.
어떻게 더위를 이겨볼까?
이렇게 문제가 많으니 우리 에어컨 없이 더위를 이겨볼까? 모두가 고개를 끄덕거릴 당연한 얘기다. 그러나 쉽지는 않다. 자연이 주는 시원함을 즐기고 있다는 나도 푹푹 찌는 날이면 에어컨 리모콘을 들고 망설이게 된다.
책에서는 에어컨 없이 더위를 이기는 방법을 몇 가지 제안한다. 열을 내는 전자제품을 최소로 줄이고, 창문과 선풍기를 이용해 공기를 순환시키고, 지붕에는 식물도 키워보고 각종 대체에너지를 활용한 에어컨 사용을 제안한다. 요즘 유행하는 미니멀리즘, 자연주의 등등과 부합하는 좋은 제안이다. 당연히 해야 하지만 쉽지 않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좋은 세상보다 지구의 종말이 가까워 보이는 요즘, 할 수 있는 것은 한 번쯤 해보자! 해야 한다!
1년 동안 에어컨을 사용하지 않기로 한 미국의 한 신혼부부는 결심을 잘 지킨 결과 과거에 비해 기온에 덜 민감해졌다고 한다. 아침 기온이 32도나 되는 더운 날 자전거로 출근하며 맞는 미풍의 좋은 느낌을 알게 되었다. 나무가 만든 그늘과 공기의 시원함을 알게 된 것이다. 책은 인류가 더운 기후대에서 출발해 진화한 종족이기 때문에 더위에 적응하는 체계가 몸 속에 갖춰져 있다는 점을 잊지 말자고 한다. 이 체계가 깨지니 면역력이 약해지고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그러다 영 참을 수 없는 상태가 되면 자연으로 가 보자. 산과 산 사이를 흐르는 계곡의 바람, 푸르른 나무가 주는 청량감을 느껴보자. 집 앞 놀이터면 어떠랴. 잠시라도 바깥으로 나와 보자. 정약용 선생이 제안한 여덟 가지 피서법이 있다. 이 중 오늘 밤에는 여덟 번째 월야탁족, 달빛 아래서 냇가에 발 담그기를 실천해 보려고 한다. 세숫대야에 얼음 동동 띄워 발 담그기도 좋다. 올 여름 휴가에는 할 수 있는 한 에어컨을 켜지 않는 것이 어떨까. 몸의 감각을 바꾸는 것도 사회적인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