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16/09 제20호
용산역 홈리스 집단촌을 아시나요?
노숙인 아닌 홈리스라 부르는 이유
용산역 이야기를 하기 앞서 홈리스행동이 왜 일반적으로 널리 쓰이는 ‘노숙인’이라는 표현 대신 ‘홈리스(homeless)’라는 다소 생소한 영어 표현을 고집하는지를 간단히 설명하겠습니다. ‘노숙(露宿)’의 사전적 의미는 ‘한데에서 자는 잠’입니다. 이러한 의미만 놓고 보면, 무전여행 중 길바닥에서 잠을 청하는 사람이나 명절에 기차표를 예매하기 위해 대합실에서 자리를 깔고 자는 사람들은 모두 ‘노숙인’이 되는 셈이죠.
이렇게 노숙이라는 용어는 단지 특정 상황에서의 피상적 현상만을 묘사할 뿐입니다. 반면, 홈리스라는 용어에는 그 같은 현상이 나타나게 된 구체적인 맥락, 곧 ‘집(home)’의 ‘결핍(less)’이라는 맥락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때의 집은 ‘물리적인 공간’으로서의 집(house)이라는 의미를 넘어, 이러저러한 사회적 관계의 배경이 되는 ‘삶의 공간’으로서의 집(home)이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따라서 홈리스란, 온전한 삶의 공간을 상실한 채 늘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사용할 ‘홈리스’라는 표현에 이와 같은 의미가 담겨 있다는 걸 미리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용산역 뒤편의 작은 공원
용산역과 전자상가 사이에 위치한 작은 공원에 홈리스들이 모여살고 있습니다. 편의상 그곳을 ‘집단촌’이라 하고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을 ‘주민’이라 부르겠습니다. 집단촌에는 캠핑용 텐트, 박스로 엮어 비닐을 덧씌운 박스집, 합판으로 짜 만든 집 등 다양한 형태의 집들이 있습니다. 이 집들은 비를 피하기 용이한 차도 아래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데, 어떤 집은 그냥 맨바닥 위에 지어져 있기도 하고 또 어떤 집은 벤치 위에 지어져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공원 내부에는 작은 길이 나있는데, 길 주변으로 소나무가 빽빽이 들어차 있는데다, 공원 외곽은 철조망이 둘러싸고 있어 외부에서는 집단촌을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용산역을 자주 이용하는 사람이라도 집단촌이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집단촌에 사는 사람들
계절별로 차이는 있지만 현재 집단촌에는 약 30여 개의 집에 20~25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주민들은 전부 남성으로, 3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올해 1월부터 현재까지 매주 금요일마다 집단촌에 찾아가 주민들을 만나면서 들었던 이야기를 토대로 이 분들의 생활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집단촌 주민들의 주요 수입 수단은 특별자활근로, 건설일용직(노가다), 재활용품 수집, 짤짜리(종교단체에서 주는 구제금) 등 매우 다양합니다. 식사는 대부분 주변이나 먼 지역의 봉사단체에서 제공하는 무료급식을 이용하며 하루 평균 두 끼 정도를 해결하는데, 일부 주민의 경우 이따금씩 공원에서 밥을 지어 먹기도 합니다. 씻는 것과 간단한 세탁은 용산역 내 화장실에서 해결하고 있습니다. 아플 때는 서울역 주변에 위치한 무료진료소를 이용하거나 약국에서 약을 지어먹기도 하지만 그냥 참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집단촌 생활에서 불편은 많겠지만, 그중에서도 전기 사용과 마실 물 문제가 큰 불편함이라고 주민들은 말합니다. 가령, 핸드폰을 충전해야 할 경우, 용산역 곳곳의 콘센트를 이용하기는 하지만 ‘몰래’할 수 있는 시간은 별로 없답니다. 물은 생수통을 가지고 다니면서 용산역에서 가까운 대형마트 정수기나 공공장소에 있는 정수기를 이용하지만, 돈을 주고 생수를 사는 경우도 있으며 간간히 봉사단체에서 제공하는 물을 마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요즘같이 시원한 물이 절실해 생수를 구입해야 되는 상황이면 여기에 들어가는 돈 때문에 부담이 된다고 합니다.
이렇듯 열악하지만, 집단촌은 과거 ‘홈’을 ‘박탈’당했던 이들이 모여 다시금 나름의 홈을 만들고 하나의 마을을 구성해 살아가고 있는 공동체이기도 합니다. 물론 주거 환경으로 보나 집의 형태로 보나 이곳이 좋은 주거지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집단촌은 주민들에게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함부로 막 박스집 입구 열어보고 그러면 싫어. 남들이 봤을 때 집 같지 않은 집이라도, 난 이걸 집이라고 생각하거든. (주민 A, 약 10년 거주)
폐지 수집 마치고 나면 여기 와서 쉬는 거지. (주민 B, 약 10년 거주)
이처럼 주민들에게 집단촌은 일을 마치거나 또는 놀러갔다가 언제나 ‘돌아오는 곳 혹은 돌아올 수 있는 곳’이자 ‘오래 머무를 수 있는 곳 혹은 오래 머물렀던 곳’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집단촌의 형성과 유지
집단촌은 약 10년 전부터 홈리스상태에 직면한 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살아가고 있는 곳입니다. 집단촌이 언제부터 자리 잡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주민들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큰 줄기는 정리할 수 있습니다.
과거 용산역 인근의 거리홈리스를 대상으로 무료급식을 제공했던 한 종교단체가 2005년 말 쯤 급식 장소를 현재의 집단촌이 자리한 공원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공원에 박스를 깔고 자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이후 이곳에다 텐트를 치거나 박스집을 지어 거주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오늘날의 집단촌이 형성된 것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이곳이 유지될 수 있었을까요? 사실 이 집단촌의 부지는 일제강점기 이후로 줄곧 ‘나라 땅’이었습니다. 현재도 이곳 부지는 국가기관인 국토교통부의 소유이며 그 용도 또한 ‘철도용지’로 되어 있습니다. 다만 딱히 쓰임새가 없어 내버려두고 있던 땅, 곧 유휴지였기 때문에 관리주체인 국가가 지금껏 집단촌 주민들의 행위(무단점유)를 일정 정도 묵인해 왔던 것입니다.
아마 집단촌 부지가 개인이나 기업의 소유였다면 이야기가 달라졌을 겁니다. 수익이 발생하는 땅도 아니고 딱히 쓸 구석도 없는 땅이기에 집단촌은 유지될 수 있었고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아마도 앞으로 이런 형태의 집단촌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을 것이고 만들어지는 것 또한 어려울 겁니다.
쫓겨날 위기에 놓인 사람들
그런데 최근 용산에 ‘개발’ 바람이 불면서 용산역에는 면세점이 들어섰고 건너편에는 호텔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물건을 사거나 호텔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몰릴 것이고, 역 주변에 투자를 하려는 사람들 또한 많아질 것입니다. 즉, 지금까지 별 가치가 없어 ‘내버려두었던’ 집단촌 땅에 어떤 ‘쓰임새’가 생겨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쓰임새로 인해 현재 집단촌 주민들은 다시 한 번 홈을 박탈당할 위기에 놓여버렸습니다.
과거에도 그랬듯, 어떤 방식이건 간에 주민들을 내쫓을 때 가장 먼저 내세우는 것은 ‘법’입니다. 즉, 집단촌에 머무르고 있는 것 자체가 불법적인 행위임을 주장하면서 주민들을 내쫓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과연 국가가 이러한 ‘불법 행위’를 여태 몰라서 내버려 두었던 것일까요? 아닙니다. 대책 마련에 관심도 없는데다, 별 가치도 없는 땅이라 지금까지 그냥 ‘살게 내버려 둔’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 땅이 쓰임새가 생기기 시작하니까, 다시 말해 그 땅에서 돈을 쓸 사람과 돈을 벌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니까 그제야 불법 합법 운운하며 개입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돈을 쓰는 사람, 돈을 버는 사람만이 중요할 뿐, 돈을 쓰지도 벌지도 못하는 집단촌 주민들은 국가로부터 사실상 국민 취급도 받지 못합니다. 앞으로 주민들이 쫓겨나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고, 현재 어떠한 퇴거의 움직임도 눈에 띄지는 않지만 퇴거는 확실히 진행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홈리스행동은 서두르지 않으려 합니다. 더디지만 주민들과 더 자주 만나고, 더 친해지는 활동을 하려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함께 요구하고 쟁취해나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