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평화
- 2016/10 제21호
“시장님, 의원님! 고마 새누리당 탈당하이소”
경북 김천에서의 사드 배치 반대운동
김천이라는 동네
시내 한복판에는 ‘박정희 대통령 향수관’이 버젓이 자리잡고 있다. ‘점방’이라 부르는 작은 상점에 들어가면 박정희 박근혜 부녀의 존영(?)부터 눈에 띈다. 시장도 지역구 국회의원도, 17명 있는 시의원 중 13명이 죄다 빨간색(새누리당)이다. 이것 말고도 다양한 수식어를 가진다. 1번밖에 모르는 동네, 1번 아니면 정치를 말할 수 없는 동네, 80퍼센트가 넘는 득표율로 지역 국회의원과 박근혜 대통령을 당선시켜준 동네, 새누리당의 텃밭! 바로 이곳이 내가 사는 경상북도 김천이다. 그런 곳에서 지금 나는, 아니 우리 김천시민들은 “새누리당 탈당!”을 목청껏 외치고 있다.
김천에도 정의로운 단체 하나쯤은 있다. 내가 속한 전교조와 화물연대, 철도노조, 금속노조 같은 노동조합, 그리고 농민회와 지역인사들로 이뤄진 ‘김천민주시민단체협의회’다. 줄여서 민단협이라 부른다. 8월초까지 개별적으로 성주지역 집회를 오가다가 “우리 김천에서도 촛불 한 번 켭시다”고 했다. 그래서 촛불문화제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사드 배치 제3 후보지로 롯데스카이힐 성주CC가 논의되면서 초에 불이 확 옮겨붙었다.
첫 집회를 열다
첫 집회는 시내와는 조금 떨어진 강변공원에서 8월 20일 개최되었다. 누군가 말했다. “300명만 모여도 마이 온 기다.” 넉 달 전 있었던 세월호 2주기 추모문화제 때 참가자가 그 정도였기 때문이다. “근데 초는 와 이리 마이 샀노?” 그래도 초는 넉넉하게 500개나 준비했다.
주부들의 ‘김천맘’, 혁신도시 주부들의 ‘혁신맘’과 ‘김천혁신마녀들의 수다방’ 회원인 20~40대 여성들이 아이들까지 대동해서 몰려들며 푸른 잔디밭에 넓게 퍼졌다. 성주CC와 가장 인접한 농소면에서 오신 60~70대 어르신들은 그 사이 곳곳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으셨다. 집회시간이 가까워지자 초가 동이 났다. 부랴부랴 2백 개를 더 사왔지만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렇게 세 명에 하나꼴로 촛불을 든 채 김천의 첫 촛불집회는 지칠 줄 모르고 이어졌다.
어를 아로 바꾸다
첫 촛불의 온기가 식을 새 없이, 8월 22일 ‘김천지역사드배치반대투쟁위원회’가 만들어졌다. 명칭 문제가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아 다르고 어 다르기 때문이다. 라이온스클럽, 청년회의소, 자유총연맹 등 지역유지들의 사교모임들과 시의원들이 투쟁위원회를 주도했다. 이들은 ‘김천지역만 아니면 아무 상관없다’는 냄새를 풀풀 풍겨댔다.
24일 우리는 다시 한 번 촛불을 들기 위해 모였다. 그런데 우리는 촛불을 밝힐 수 없었다. 박보생 김천시장은 자기 마음대로 장소를 공설운동장 안으로 옮겼고, 잔디가 훼손된다며 촛불을 전면 금지시켰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날 집회에서 시장은 공동투쟁위원장 5인과 함께 삭발했다. 시장이 앞장서서 반대의지를 보이라며 지난 첫 집회 때부터 열화와 같이 “삭발하라!” 요구해서 만들어낸 그림이다. 그 꼿꼿해보이던 국정원 출신의 안보전문 국회의원 이철우는 ‘지역주민들과 의논할 필요 없다’던 자신의 말을 단 하루 만에 번복했다. 이 또한 엄청난 야유와 비난을 쏟아낸 1만 김천시민의 힘 때문이다.
다음날, 투쟁위원회의 명패를 깎기도 전에 우리 김천시민들은 그걸 갈아치워 버렸다. 이제 김천지역사드배치반대투쟁위원회가 아니라 ‘사드배치반대 김천투쟁위원회’다. 아 다르고 어 다르기 때문이다.
“시장님, 의원님, 고마 탈당하이소!” 8월 29일 김천시청 앞 집회에서 우리 김천시민들은 새누리당 시장과 시의원들에게 탈당을 요구한다. 2천여 명의 외침은 하늘을 찔렀고, 연이은 자유발언자들도 수차례 반복하여 탈당을 요구했다. 대답을 회피하려는 시장과 시의원들을 향해 탈당의 구호를 연신 외쳤다. 다시 말하지만, 이곳이 내가 사는 경상북도 김천이다.
싹이 튼다
나는 오늘도 집회 장소의 입구에 선다. 저녁이면 몰려드는 우리 김천시민에게 서명을 받겠다는 게 핑계지만, 사실 여기서는 집회 구석구석이 잘 보인다. 카페회원들은 모여서 만든 파란 리본을 나눠준다. 어떤 이는 자비를 털어 전자촛불을 사들고 와 아이들에게 건넨다. 또 누군가는 김천지역에만 사드배치 안하면 된다는 편협한 사람들에게 야유를 보낸다. 동네에서 가장 높은 줄 알았던 시장과 국회의원에게 삿대질을 하며 사이다 같은 호통을 치기도 한다.
정치에 대해서만큼은 유난히 침묵했던 동네가 사드 문제로 그 어느 때보다 시끄럽고 혼란스럽다. 역설적이게도 이곳에도 비로소 진정한 민주주의와 평화가 싹트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