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 특집
  • 2016/11 제22호

남한 핵무장론이 그리는 위험천만한 미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까?"

  • 김진영 사회진보연대 정책교육국장
 
10월 18일, 새누리당 원유철 전 원내대표는 남한도 북한 핵에 대처하는 ‘공포의 균형’을 갖추기 위해 핵에는 핵으로 맞서는 독자적 핵무장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핵우산에 기대고만 있을 수 없기에 우리만의 ‘핵 우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남한이 핵무장에 돌입하면 북한보다 빠른 시간 안에 더 강력하고 많은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다는 호언장담까지 빼놓지 않았다. 

이러한 주장은 원유철 의원 개인의 유별난 견해가 아니다. 보수 세력 다수가 유사한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 이들은 북한의 군사적 행동이 있을 때마다 핵무장론을 물 위로 끌어올리려 노력해 왔다. 지난 8월 24일 북한의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시험 발사 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원자력추진 잠수함(핵잠수함)’ 도입 검토 가능성을 밝혔다. 원유철 의원을 비롯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새누리당 의원 모임(핵포럼)’은 28일 “핵잠수함을 배치해 북한의 SLBM 도발을 원천봉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 역시 29일 국회 최고위원회의에서 “군 당국은 핵잠수함 도입 등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했다.
 
9월 9일 북한의 5차 핵실험 직후에도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핵무장을 시사하는 ‘강력한 조치’를 공론화할 의지를 밝혔고, 김무성 전 대표도 미국의 전략 핵무기 배치를 동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차기 대선주자 중 한 명인 남경필 경기지사도 핵무장 준비론을 지금부터라도 논의해야 한다고 직접 언급했다. 

중앙일보, 뉴데일리 등 언론도 실질적 핵무장에 대한 여론화에 나서며 가능한 옵션들을 진지하게 검토하는 모습이다. 현 상황에서 북한을 압박하고 대외 외교력을 높일 수 있는 방안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10월 20일 진행된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는 당초 언론보도와는 다르게 전략폭격기 등 미국의 전략 자산을 한반도에 상시 순환 배치한다는 내용이 양국 공동성명에 빠지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이는 남한 보수 세력의 핵무장에 대한 설레발이 미국이 수용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섰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때로는 미국의 의중조차 뛰어넘는, 남한 보수 세력의 핵무장 집착은 그 기원이 깊으며 시대를 넘어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동명 소설로 잘 알려진 암호명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1970년대 박정희 전 대통령의 핵무기 개발 비밀 프로젝트를 가리킨다. 

평화를 염원하는 베트남과 전 세계 민중들의 저항으로 베트남 전쟁의 명분도 실리도 흔들리자, 1968년 ‘베트남 전쟁의 명예로운 종식’을 핵심 대선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된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베트남전의 조속한 종결과 중국, 소련과의 관계 개선(데탕트)에 나섰다. 또한 1969년 7월 25일 발표한 ‘닉슨 독트린’에서 “아시아는 아시아인들의 것”이라고 말하며 동맹국과 맺은 안보조약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위협에 직면한 해당 당사국이 자국의 안보를 위한 병력 동원에 우선적인 책임을 가져야 한다”고 밝혔다. 나아가 아시아 주둔 미군의 대대적 감축은 1969년 초까지 72만 7000명에 달했던 베트남 주둔 병력 수가 1973년 이후 거의 철수 수준으로 감소하는 결과를 낳았다. 주한 미군을 6만 명에서 4만 명으로 감축하는 계획 역시 박정희 정권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추진되었다. 

이러한 정세 변화는 박정희가 미국에 대한 불신과 불안감을 느끼고 1974년부터 비밀리에 핵 개발을 시작하게 했다. 1978년 6월 CIA가 작성했고 2005년 미국의 정보공개법에 따라 비밀 해제된 <한국: 핵 개발과 전략적 의사결정> 보고서에 따르면, 박정희는 국방과학연구소(ADD) 산하에 ‘백곰’ 미사일 개발팀·핵무기 개발팀·화학무기 개발팀을 두고, 무기 개발에 참여시켰다. 또한 해외로부터 중수로와 재처리 시설을 수입해 핵무장에 필요한 시설을 갖추려 했다.

그러나 프로젝트는 미국의 개입으로 무산됐다. 미국의 은근한 압박 하에 결국 박정희 정권은 핵 개발 계획을 취소하고 핵확산 금지 조약(NPT)에 가입했다. 박정희 정권은 1960년대 후반 미국이 이스라엘의 핵무장을 용인했던 선례에 기대를 품었지만, 미국의 태도가 이번에는 크게 달랐던 것이다. 
 
 

“핵에는 핵으로”

좌절됐던 핵무장론은 북한이 첫 핵실험을 단행한 2006년 10월 9일 다시 고개를 들어올렸다. 북한의 첫 핵실험 직후 월간 《신동아》가 특별부록으로 발행한 〈한국의 핵주권〉은 당시 보수 세력의 주장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의 부제는 “비핵화선언은 파기됐다, 우리도 농축하자”였다. 그 내용은 첫째, “한국의 ‘핵주권’을 제약하는 세 요소는 1956년 한미원자력협정, 1975년 한국이 가입한 NPT, 1991년 한반도비핵화선언이다. 이 중 한반도 비핵화선언은 북한의 NPT 탈퇴, 우라늄농축 계획, 핵실험을 통해서 파기되었다. 따라서 미국과 맺은 한미원자력협정만 개정하면 우리도 우라늄 농축과 핵재처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일본은 1988년 미일원자력협정을 개정해서 핵무기를 갖지 않고도 플루토늄을 보유한 유일한 국가가 되었다. 1988년 일본은 로카쇼무라 재처리시설 허가를 받으며 핵연료주기를 완성했다. 일본만이 수십 톤의 플루토늄을 축적하는 것은 심각한 위험이며, 따라서 한국도 최소 일본 수준의 핵개발을 달성해야 한다. 미일원자력협정 개정은 한미원자력협정의 미래”라는 것이다. 박정희 정권 당시 이스라엘의 사례를 근거로 미국이 남한의 핵무장을 용인할 것이라 기대했듯이, 일본의 핵개발 역시 남한에게 한편으로는 현실적인 핵무장 준비의 선례이자 빌미로 여겨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셋째, “부시 대통령은 원자력 이용 확대 정책을 천명했다. 미국은 4세대 원자로와 첨단 핵연료주기 개발을 추진할 것이다. 한국도 원자력 핵심기술을 확보하여 세계적인 원자력 재확산 추세에 적극 편승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한국 보수 세력의 논리 구조를 정확히 반영한다. 북한의 직접적인 위협과 일본의 잠재적 위협을 강조하며, 미국과의 굳건한 동맹관계의 틀 내에서 한국의 군사력을 증강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핵주권’이라는 호전적이며 국수주의적인 이데올로기를 활용하는 점이 사실상 그들이 비판하는 북한의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한반도 비핵화선언은 북한이 먼저 폐기한 것이므로 일본의 사례처럼 미국과의 원자력협정을 개정하여 실질적으로 핵무장 능력을 갖춰야한다”는 주장은 이후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과 사드 한반도 배치 논쟁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되풀이되는 핵무장론의 핵심이다. 지난 10년 간 핵무기 개발 의도를 핵의 평화적 이용, 즉 원자력 발전이라는 명분으로 숨기려는 노력이라도 했던 것과 달리, 오늘날에는 “핵에는 핵으로”라는 무장 논리를 고스란히 표출하고 있다는 점이 달라졌다.

중앙일보의 <핵무장 하려면 NPT·원자력협정 깨야…미·중과 등질 우려>(2016.10.4.)라는 기사에 따르면, 현재 정치권과 외교가에서 나오는 북핵 대응 핵 옵션은 다음 다섯 가지다. ①핵무장 준비 선언 ②핵 탑재 미 전략폭격기의 한반도 전개 ③역외 미군 전술핵 한·미 공동운영 ④핵 무장론 ⑤미국 전술 핵무기 재배치. 이 중 핵무장 준비 선언과 미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는 NPT 탈퇴와 한미원자력협정 개정과 같이 큰 부담을 지지 않아도 추진할 수 있다. 자국 밖 핵 확산을 꺼리는 미국과 최대한 마찰을 덜 빚고, 실질적 핵무장 효과를 낼 수 있는 방안이라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SCM 결과는 보수 세력의 그러한 의도가 그리 쉽게 현실화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 하지만 이들은 핵 문제가 민중들의 개입 없이 양국 정부 간에서만 결정되는 사항으로 남아 있는 한, 계속 미국 정부를 상대로 한 협상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반전반핵 원칙

평화운동은 핵무기가 절대적 파괴, 상호 절멸을 낳으며 때문에 ‘정의로운 핵이란 없다’고 외쳐왔다. 그러나 오늘날 남한의 여론을 볼 때, 보수 세력의 핵 선동을 제외하고라도 우려를 감추기 어려운 현실이다. 

2005년 8월 미국의 핵폭격 50주년을 맞아 진행된 여론조사를 살펴보면, 일본의 86퍼센트, 독일의 93퍼센트가 핵보유에 대해 반대 의견을 피력했지만, 남한은 52퍼센트가 핵보유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6년 현재도 한국갤럽이 지난달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58퍼센트가 핵무장에 찬성했다. 분단과 대립이 낳은 이데올로기를 넘어, 핵무기에 대한 숭배나 무감각을 깨는 운동을 대중적으로 벌여나가야 할 필요가 크다.  

특히 반전반핵 운동을 벌여 나가야 할 운동 진영 내부에서의 성찰이 선행되어야 한다. 북한의 핵보유는 “미국의 핵독점, 핵패권주의와 다르며, 미국의 대북 핵전쟁 계획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군사적 억지력이자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위한 협상용 수단”이라는 식의 옹호로는 대중을 ‛반전반핵 운동’으로 설득할 수 없다. 동아시아 정세가 갈수록 위기일발로 치닫고 남한에서 사드 배치·핵무장의 필요성 주장이 계속 부상하는 배경에는, 보수 세력이 구실로 삼는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 정황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자주적 핵무장’은 남에서도 북에서도 민중들이 외쳐야 할 구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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