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 오늘세계
  • 2017/01 제24호

충격에서 벗어나 트럼프 시대를 준비하자

트럼프 시대를 맞는 미국 노동운동의 과제

  • 임월산 공공운수노조 국제국장
 
2016년 11월 8일, 거의 모든 사람의 예상과 달리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차기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이 결과는 미국 노동운동과 진보운동을 큰 혼란과 충격에 빠뜨렸다. 특히 클린턴 선거운동에 막대한 인적·재정적 자원을 투여한 미국 주요 노동조합들은 정치 전략의 실패를 뼈아프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조사에 따르면 노조 조합원이 한 명 이상 있는 가구의 투표에서 클린턴에 투표한 비율이 51퍼센트, 트럼프에 투표한 비율이 43퍼센트로 드러났다. 클린턴이 앞서기는 했지만 트럼프에 투표한 조합원과 조합원 가족은 상당히 많았던 것이다. 미국 노동운동과 진보운동 활동가들은 트럼프 당선의 원인을 분석하고 새로운 정세의 대응방향을 찾기 위해 애쓰고 있다.  
 

왜 트럼프가 당선됐나

현재 미국의 노동운동과 진보진영은 트럼프가 당선된 이유에 대해 대략적인 합의에 이르렀다. 선거인단 제도나 클린턴의 전술적 실패에 집중하는 일부 시민단체와 민주당 활동가 외에 대부분 활동가는 수십 년 동안 진행된 규제완화·노동유연화·탈산업화의 폐해, 이를 악화시킨 최근 경제위기에서 원인을 찾는다.

특히 탈산업화 과정에서 가장 큰 피해를 받은 소위 ‘러스트 벨트(아이오와, 미시간,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 주 등)’에 사는 백인 노동자들의 좌절감과 분노에 직접 호소했기 때문에 트럼프가 승리할 수 있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주민이 당신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 ‘세계화가 당신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라는 트럼프의 일관된 메시지는 이 유권자들에게 상당한 호소력이 있었다. 이에 더해 반인종주의, 유색인 활동가들은 경제위기와 ‘대테러 전쟁’으로 심해지고 있는 이슬람혐오주의와 이민자·유색인에 대한 폭력이 인종차별 담론이 광범한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형성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백인 노동자들이 트럼프를 적극적으로 지지한 만큼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층인 여성과 유색인, 그리고 과거 민주당을 지지하던 많은 노동자(인종이나 젠더와 상관없이)들이 클린턴을 외면한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흑인, 라티노, 아시아계 미국인, 여성, 청년 등 모든 범주에서 클린턴은 2012년 오바마가 획득한 투표 비율보다 낮은 비율을 확보했다. 러스트 벨트의 연봉 5만 달러 이하의 유권자 중 이번 대선에서 2012년 대선보다 33만 5000명 더 많은 사람들이 공화당 후보에 투표했지만 민주당 후보를 선택한 사람은 2012년보다 117만 명이나 적었다.

클린턴과 민주당은 심각해진 사회 양극화에 납득될 수 있는 대책을 제시하거나, 좋은 일자리에 대한 희망을 잃은 미국인들에게 진지한 관심을 보여 주지 않은 엘리트로 간주되어 외면을 당한 것이다.
 
뉴욕 중심가에서 "내 대통령이 아니다" 구호를 외치는 시민들
 

트럼프 당선 후 증폭되는 갈등

트럼프의 당선은 세계 경제위기와 미국 패권의 불안정성으로 인한 미국 사회의 내부적 분열의 신호이며, 그 분열을 심화시키는 사건이다.

대선 직후 유색인과 이민자, 무슬림, 성소수자, 여성 등 사회 소수자에 대한 폭언과 폭력 사건들이 급증했다. 극우와 백인 우월주의 단체를 감시하는 한 비영리단체는 11월 8일과 11일 사이에 선거와 직접적으로 관계 있는 증오발언이나 폭력 사건 201건을 집계했다. 이민자나 흑인을 겨냥하는 폭력이 대다수였다. 그중에는 백인 학생이 12살 흑인 학생에게 “트럼프가 대통령이 됐으니 너를 비롯해 내가 찾을 수 있는 모든 흑인들을 쏴 죽이겠다”고 위협한 일도 있었다.

반면, 같은 시기 트럼프 당선에 대한 미국인의 분노도 대대적으로 표출됐다. 대선 직후 주요 도시와 대학교 캠퍼스에서 수십 만명이 ‘내 대통령은 아니다(Not my president)!’라는 슬로건으로 모여 트럼프 반대 시위를 전개했고, 웹사이트(www.disruptj20.org)를 통해 1월 20일 예정된 취임식과 관련 행사를 규탄하기 위해 행사장 주변을 물리적이고 상징적으로 봉쇄하는 동시다발 직접 행동이 조직되고 있다.

나아가 이번 대선에서 선거인단 투표는 투쟁의 대상이 되면서 언론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투표가 진행되는 각 지역에서 공화당 선거인의 이탈투표를 촉구하는 집회들이 열렸기 때문이다. 결국 공화당 선거인 중 2명이 트럼프에 투표하지 않았다. (클린턴에 대한 실망이나 버니 샌더스에 대한 지지를 표하는 민주당 선거인단 이탈 투표는 총 4명이었다.)
 
2016년 9월 트럼프의 인종차별적 입장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트럼프 타워 앞에서
KKK단 복장으로 시위를 하고 있다,
 

노동조합의 대응전략 

대선 패배 후 미국의 일부 노동조합 활동가들은 민주당 후보를 실용적으로 지지하는 노조의 일반적 선거 전략을 깊이 고민, 반성하고 있다. 노조 내에서 공식적인 평가는 쉽지 않지만, “노동운동이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대응을 주요 공약으로 내건 버니 샌더스 후보를 확실히 지지하고 지원했으면 다른 결과가 가능하지 않았을까”를 자문하는 활동가들이 많다. 민주당 안에서의 진보적 개혁, 제3당 건설 등 새로운 정치 전략에 대한 온·오프라인 토론도 비공식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주요 노동조합이 대선 결과에 대해 발표한 공식 입장들은 더 신중하다. 많은 노조들은 트럼프가 선거기간 동안 보인 인종차별·성차별적 태도를 비판하며 당선 연설에서 언급한 ‘사회통합’을 위한 진지한 노력을 촉구했다. 비판과 함께 일부 노조 지도부들은 일자리 창출에 트럼프와 협조할 의사를 표하고 있다. 대선 후 미국노총(AFL-CIO) 리처드 트룸카 위원장은 언론보도를 통해 “선거기간 나타난 인종주의, 여성혐오주의와 반이민자 발언”의 폐해를 규탄한 후, “무역과 제조업의 부활, 지역사회의 재건에 대한 공약”에 대해 “트럼프가 우리의 가치관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협조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우리도 그와 협조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작년 11월 국제노동조합 회의에 참석한 미국화물노동조합(Teamsters)의 짐 호파 위원장은 트럼프의 NAFTA 재협상과 투자 확대를 통한 일자리 창출 공약에 “신났다(I’m excited)”고 말하기도 했다. 

보다 공세적인 저항의 흐름도 형성되고 있다. 많은 지역노동조합들이 트럼프 반대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가하고 있으며, ‘오바마 케어(오바마 대통령이 주도한 의료보험제도 개혁)’의 폐지나 미등록이민자 추방 정책의 집행을 막기 위한 투쟁에 나서고 있다. 북미서비스노조(SEIU)는 대선 전부터 계획된 11월 29일 최저임금 15달러 하루 파업투쟁을 ‘행동과 연대의 날’로 지정해 의제를 확대하도록 노력했다. 파업 하루 전, 메리 케이 헨리 위원장은 조합원들에게 보낸 메시지를 통해 “시민권 보장, 저렴한 의료보험, 드림 청년(미등록 이주민의 자녀)에 대한 추방 조치 정지를 비롯한 우리가 함께 쟁취한 모든 것의 파괴를 저지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FightFor15 미국의 최저임금 15달러 캠페인
 

노동자 삶 파괴하는 트럼프 정책   

선거 기간 “(백인)노동자의 벗이 되겠다”던 트럼프는 당선 후 인종과 상관없이 모든 노동자를 배신하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보이고 있다. 이는 특히 12월 8일 노동부 장관으로 패스트푸드 체인 기업 사장 앤드류 푸즈더를 임명한 것에서 드러난다. 

노동부 장관으로서 푸즈더는 노동법 위반 사업장에 대한 조사를 담당하는 연방 근로감독관 제도를 총괄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경영자로서 그는 임금과 산업안전보건 관련 규칙을 명백히 위반하고 있다. 노동법 위반 건으로 푸즈더의 패스트푸드 식당들에 부과된 과태료는 캘리포니아주에서만 2000만 달러에 달한다. 푸즈더는 잔업수당 적용 범위의 확대, 연방 최저임금 인상, 오바마 케어 등 오바마 정권의 주요 노동과 복지정책에 적극적인 반대 입장을 표한 바가 있다. 유급병가 제도와 저소득층에 대한 정부의 지원제도들이 “독립심과 자존감을 독려하기커녕 일할 동기를 약화시킨다”며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다.

트럼프의 대법관과 연방노동관계위원회 위원 지명은 작년 8월 하청과 프랜차이즈 노동자에 대한 원청 기업의 공동책임을 규정한 브라우닝 대 페리스를 비롯한 최근의 노동자에 유리한 판결의 번복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분명히 트럼프의 실제 행보는 선거 기간 표명한 경제적 인민주의를 거스르고 있다.

12월 18일 트럼프의 상무장관 지명자가 발표한 인프라 개발 계획도 노동자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세금 혜택을 통해 사모펀드 투자의 유치, 민간 투자자에게 사업 선택권 및 12퍼센트의 수익 보장 등의 내용을 담고 있어 사회 공공성을 강화하거나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일부 노동조합이 호의적으로 받아들이는 무역 관련 공약들이 노동자에게 실제 미칠 영향을 예상하기는 더 어렵다. 그러나 무역협정이 체결되기 전에 그 협정이 야기할 폐해를 예상하고 반대하는 것과 협정 체결 후에 초래된 양국 경제구조의 변화를 되돌리는 것은 분명히 다른 문제다. 현재 저개발국과 미국의 노동비용 격차가 너무 크고, 세계의 생산과 공급체계는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때문에 자유무역협정의 재협상, 또는 선거기간 동안 트럼프가 제안한 멕시코나 중국 수입품에 대한 높은 관세로 지난 수십 년의 제조업 고용 감소를 반전시킬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또한 트럼프가 주장하는 보호 관세의 부과는 무역국과의 갈등을 심화시키고 보복적인 관세를 불러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미국의 경기 침체와 일자리 감소를 야기할 수도 있다. 자유무역협정의 재협상은 해외 수입품을 막는 것보다는 당사국 노동자의 노동기준을 상향 표준화하고 초국적기업에 적절한 책임을 부여한다는 목표로 진행되어야 그 폐해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외교·안보 정책의 측면에서, 선거 초기에 세계무대에서의 철수를 암시한 트럼프는 현재 중국을 지속적으로 자극하여 미중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또, 국방예산에 대한 자동삭감 제도 폐기 및 예산 확대, 육군과 해병대의 확충, 해군의 전함과 잠수함 증대 등을 계획하고 있다. 연방정부의 적자와 지출을 줄이겠다고 약속한 상황에서 이와 같은 정책 방향은 세계 평화를 위협할 뿐만 아니라 사회 정책에 대한 예산 삭감을 의미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시대의 과제

공식 취임 전이지만, 내각 지명과 지금까지 공개된 정책 방향만 봐도 트럼프의 집권은 이민자와 유색인뿐 아니라 미국 전체 노동계급에 치명적인 피해를 초래할 게 분명하다. 따라서 미국 노동운동과 진보운동은 시급히 트럼프 정권에 대한 전면적인 투쟁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이는 미국 노동조합만이 아니라, 트럼프의 당선과 함께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투표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세계 노동운동 모두가 직면한 과제이기도 하다. 그 방향에 대한 몇 가지 제안으로 글을 마치고자 한다.  

첫째, 미국을 비롯한 세계 노동조합들은 트럼프의 당선은 미국에 특화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미국의 대통령이 누구인지가 다른 나라 국민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트럼프의 당선은 전 세계 노동자·민중의 문제다. 또한 신자유주의·자본주의의 몰락은 유럽을 비롯해 각 지역에서의 극우 인민주의적 민족주의의 부상과 정치적 위기를 야기하고 있다. 결국 현재 미국 상황에 대한 진단은 세계 경제와 지정학적 질서의 변화에 대한 진단과 함께 가야 한다. 

둘째, 미국 내 노동운동은 트럼프와 같은 극우 인민주의 세력을 지지하게 된 조합원과 비조합원의 신뢰를 다시 얻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노동조합이 ‘(미국)국민’에 대한 배타적인 개념과 고립주의·일방주의에 기반을 둔 세계관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극우 인민주의의 배타적인 이념에 대비되는 포용적인 사회의 상, 보편적인 노동계급 개념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셋째, 트럼프 정권에서 가장 큰 피해를 받을 사회집단과의 연대를 분명히 표하고 이민자의 권리, 인종차별 철폐, 성 평등, 성소수자의 권리, 기후정의를 촉구하는 운동들과 폭넓은 연대 기구를 구축하고 노조의 자원을 집중 투여해야 한다.

넷째, 당면 투쟁 전략과 함께 새로운 정치 전략의 수립의 필요성이 미국 노동운동 내에서 공식적으로 제기되어야 한다. 민주당 개혁과 제3당 건설 방안들이 구체적인 근거와 함께 노동조합 내에서 제안되고 중앙과 지역 지도부, 일반 조합원들까지 폭넓은 토론을 조직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노동운동이 고립주의와 민족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노동조합의 국제적인 교류 강화가 시급하다. 이 교류는 경제위기와 극우 민족주의의 부상에 대한 포괄적 대응 전략에 대한 토론부터 트럼프의 구체적인 무역과 외교안보정책에 대한 토론까지 다양한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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