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 노조 할 권리
  • 2017/03 제26호

노동자가 주인공인 광주 만들기

공공운수노조 광주전남지부 이소형 부지부장 인터뷰

  • 편집실 조사국장 배일훈
©공공운수노조 광전지부
 
“아까 공무원 앞에서 하지 못한 말이 너무 많아요. 우리 목소리를 내는 게 이렇게 속 시원한 거였군요. 이런 거 아직 모르는 사람들 많은데!”

간접고용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권리가 전혀 허락되지 않았던 이들. 담당부서와 공무원의 게으름과 무지로 피해를 받던 이들. 무슨 요구를 하더라도 ‘그래서 임금 더 올려달라는 얘기 아니냐’고 오해받던 이들. 이들이 이제 현장의 목소리로 보다 합리적인 광주시 정책을 제안하고, 스스로 대안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그 변화의 중심에 전국공공운수노조 광주전남지부(이하 광전지부)가 있다.
 

비정규직 해고 투쟁에서 지자체 비정규직 대표노조로

광전지부는 광주지역에서 상징적인 비정규직 투쟁을 만들어온 노동조합이다. 2003년 광주시장애인복지관을 위탁받아 운영하던 법인에서 비리문제가 발생했다. 광주서구청에서는 재활용·대형폐기물 처리업무를 위탁받은 업체가 임금을 착복했다. 노동조합은 ‘민간위탁 철회’와 ‘비정규직 철폐’를 구호로 내걸고 싸웠다. 2007년에는 언론에서도 많은 이슈가 되었던 광주시청 청소노동자들의 ‘알몸투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제 십여 년간의 끈질긴 활동이 결실을 맺고 있다. 2013년 광주서구청 악덕업체를 퇴출시켰고, 2016년에는 광주시청에서 직접고용 및 공무직 전환이라는 성취를 이끌어낸 것이다. 

이소형 부지부장은 광전지부의 역할이 조합원과 지자체 비정규직의 노동조건 개선에만 그치지 않는다고 말한다. 광전지부는 다음과 같은 전략적 목표 역시 가지고 있다. 첫째, 지역사회라는 행정구역상의 소속감을 매개로 공공부문 내부의 다양한 차이(고용형태, 직종, 성별)를 넘어 노동자의 단결과 연대를 확대한다. 둘째, 지방정부의 사용자 책임성을 강제하여 지역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권 신장과 노동기준의 지역적 표준을 만든다. 셋째, 지역의 사회 공공적 정책의제를 노조가 선도하여 공공부문 지역운동의 정형을 창출한다. 

성과는 조합원 수로 확인된다. 2005년 ‘광주전남공공서비스노동조합’이라는 이름으로 출범할 당시 5개의 지회에 조합원 80명이던 조직은 2017년 광주시, 전남도청 및 전남 시·군 소속 직·간접노동자 25개 지회에 약 800여명으로 크게 성장했다. 이제는 광주전남지역에서 명실상부 ‘지방자치단체 비정규직’의 대표성을 갖는 노조가 됐다. 
 

여전히 비정규직의 희망

노동조합이라고 하면 ‘때려 부수는 곳’, ‘가입하면 임금 올려주는 곳’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이소형 부지부장이 지자체 비정규직들에게서 보고 들은 얘기는 달랐다. 노동조합은 “여전히 비정규직의 절실한 희망”이었다.

“영락공원이라는 화장터의 미화·안내 노동자와 처음 만났는데 대뜸 이러시는 거예요. ‘왜 이제야 왔어요? 우리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그리고 광주시 CCTV관제센터 노동자 한 분이 계셨어요. 1년 넘게 캠페인도 하고 연락하고 설득한 끝에 그 분의 노조 가입서를 받았는데, 그걸 6개월간 품고 다녔대요. 그러면서 ‘너무 늦었지요? 미안합니다’하시는 거죠. 여전히 고용불안의 공포를 느끼는 사람들이 많지만 노동조합에 대한 거리감, 두려움도 그만큼 커요.”

그렇다면 비정규직 신분을 벗어난 이들은 어떨지 궁금했다. ‘시민시장’을 표방하는 민선 6기 광주시장이 당선되면서 간접고용 비정규직이 직접고용 공무직으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을 많이 직접고용으로 전환시키고 있는데, 그게 고용형태만 바뀌는 게 아니라 그 일이 시 공무원의 담당 업무가 되는 거거든요. 근데 공무원들은 청소, 시설관리 이런 게 어떻게 되는지 알기 귀찮아해요. 그러니까 노동조건을 개선한다는 정책방향이 있더라도 엉뚱한 방안을 짜내는 거죠. 예를 들면 시청 시설관리 시스템은 24시간 365일 한순간도 안 멈추고 굴러가거든요. 그래서 6일에 한 번씩 돌아가며 야간노동을 해야 해요. 근데 담당 공무원은 무작정 야간노동을 하지 말라는 거예요. 이것 때문에 엄청 싸우면서 조합원들이 느낀 게 있어요. ‘우리가 어떻게 노동하는지,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공무원들은 전혀 모르는구나. 우리 스스로 목소리를 내야 알게 되는 거구나!’”

그들에게 노동조합은 “노동현장의 문제와 해법을 아주 구체적으로 짚어주는 곳”이었다. 우리 회사의 사장이 착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고용불안에 시달리지 않는 정규직이 되었다 하더라도 노동자들은 두렵고 위축되어 있다. 자신의 사용자 앞에서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그들 인생에서 큰 일일 수밖에 없다. 그게 가능하도록 자리를 만들고, 교육을 시키는 곳이 바로 노동조합인 것이다. 결국 노동조합이 나서지 않으면 일터의 문제를 제대로 바꿔내지 못하더라는 얘기다.
 

노동조합의 도전

2014년 서울에서 박원순, 광주에서 윤장현이 시장으로 당선되고, 전국 16개 중 14개 시도에서 진보교육감이 당선되었다. 그러면서 민관 거버넌스, 진보교육, 이중권력과 같은 문제들이 여전히 논쟁이 되고 있다. 이들의 당선에 진보운동 세력이 직·간접적으로 기여를 했고, 따라서 이들은 그만큼 노동조합에 대해서도 대체로 우호적이라 평가받는다. 특히 광주시의 경우 전통적인 민주당 주류 세력이 아닌,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에 동참했던 윤장현 시장이 ‘시민시장’이라는 상징을 얻고 당선되었다. 윤장현 시장은 현재 ‘광주형 일자리’라는 이름으로 투자유치와 일자리 창출이라는 국책사업을 실행중이다. 이 사업의 의미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노동조합과의 소통과 상생이 중요한 프레임으로 작동하고 있다.

“윤장현 시장은 일자리 창출과 노조의 경영참여 같은 것을 핵심정책으로 내세우고 있어요. 이걸 우리에게 유리하게 활용하고 있기는 합니다. 공공기관 비정규직들이 노조에 대해 경계심을 낮추고 두려움을 줄이려면, 지방정부가 노조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 알리는 게 유용하거든요. 게다가 노조에 대한 존중을 대놓고 요구하기도 하기도 하구요.”

많은 이들이 지자체 및 시도교육청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반면 광전지부는 ‘취약성’에 주목했던 걸로 보인다.

“지자체는 중앙정부 정책과 지침에 대해 자율성을 가지고 있지 않아요. 행정에 대한 주도성이나 관장력 면에서 취약한 거죠. 중앙정부의 행정이 모호하고 모순적이어서 문제가 발생하면 지자체는 어떻게 할까요? 매뉴얼이 없어 늘 혼선이 있고 상황이 악화돼요. 그러다보니 사회공공정책도 주먹구구식이거나, 연고나 인맥으로 얽혀 부당한 관행이나 비리가 뿌리 깊이 박혀있어요.”

이소형 부지부장은, 지난 십여 년 간 광전지부에서 “노동자의 눈으로 문제를 바라보고, 일터와 삶터의 권리를 개선하는 일에 노동조합이 적극적으로 나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유지되어 왔다는 점을 인터뷰 내내 강조했다. 이러한 점이 지자체 행정 및 노무관리의 공백을 찾아 뚫고 들어가는 전략과 어떻게 맞닿아있을지가 궁금했다.

“광전지부는 공공운수노조의 지역운동에 대한 문제의식을 충실히 반영하고 그것을 실험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지자체 소속의 노동자들은 지자체장과 임노동관계에 있는 노동자이자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시민이기도 하잖아요. 지방정부의 다양한 정책영역들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 노동자의 임금이 올라가고 노동조건이 개선되는 것이 곧 지역사회의 공공성 확대와 직결되는 거죠. 노동조합이 지역사회의 공공적 정책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스스로의 노동의 권리를 쟁취해나가는 과정이 바로 지역사회에서 노동자들이 시민권을 얻어가는 길이라 생각해요.”

이후 광전지부는 지자체 비정규직의 노동조건 개선 사업과 대대적인 조직 확대 사업, 광주시와의 교섭을 통한 정책적 개입을 동시에 추진한다.
 

“우리 시장부터 ‘모범 사장’으로!”

고용승계 투쟁 중인 광주시청 청소노동자들
ⓒ참세상
 
그 결실 중 하나는 윤장현 광주시장의 비정규직 고용 개선정책으로 이어졌다. 광전지부는 2014년 6.4지방선거 시기, 후보 정책 질의와 답변서를 공론화시켰다. 당시 윤장현 후보는 상시지속업무 및 시민안전업무 비정규직 정규직화, 시 산하 위탁기관의 책임성 있는 운영을 약속했다. 당선 직후 인수위원회 기간에도 정책 제안과 면담을 진행했다. 그해 10월 ‘광주광역시 공공부문 고용 및 처우개선 TF’가 구성되고 광전지부는 여기에 결합하며 ‘광주광역시 간접고용 근절지침 및 비정규직 노동기본권 가이드라인’을 공개 제안했다.

“우리 광주 시민이기도 한 지자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이렇게 열악한 처우에서 일하고 있어요. 이 사람들의 사장이 시장인데 이대로 둘 거냐? 우리 지역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대우가 어때야 하는지 기준을 만들고 그 수준도 높여야 하지 않겠냐? 시장이 모범을 안 보이는데 그 어떤 놈의 사장들이 비정규직들한테 제대로 된 대우를 해주겠냐? 그러면서 시를 만나고 싸우고 설득했어요.”

그 결과 광주시는 시 본청 및 공사·공단, 출자출연기관에 있는 간접고용 698명 전원을 각 기관의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기로 하였다. 또한 전환 과정에서 여전히 고용불안과 차별을 야기하여 비판을 받고 있는 중앙정부 행자부의 예산 및 인사지침에 대해 광주시는 노조의 요구를 적극 반영했다. 행자부가 기준인건비와 전환평가지침까지 바꾸도록 한 성과를 낸 것이다. 또한 광주시는 현직 임기 지자체장으로는 최초로 전국공공운수노조와 ‘사회공공협약’을 체결했다. 이로써 비정규직 투쟁의 표상이었던 광주시청의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공무직이 되었고, 130명에 가까운 조직 확대도 이뤄냈다.

“사회공공협약에는 대정부교섭을 예비한 의미 있는 내용들이 담겨있어요. 광주지역에서 비정규직을 모두 근절한다, 문화예술노동자의 조직운영 참여를 보장한다, 사회복지 노동자 처우를 개선하고 민간위탁을 근절한다, 사회서비스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확대한다, 이런 구체적인 분야를 명시하고 있어 해당 직종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데 활용할 수 있거든요. 

그리고 2015년 협약을 체결하고 나서 이행을 위한 운영규칙을 제정하고, 연말에는 이행협약도 별도로 체결했어요. 이러한 이행조치를 강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봐요. 시장의 치적을 포장하는 데 들러리를 설 수는 없잖아요. 실질적인 노동환경의 변화를 후속사업으로 이어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어요. 광전지부는 앞으로 이걸 노정간의 집단적 교섭 틀로 발전시킬 거예요. 현재로서는 노조의 임단협으로는 풀리지 않는 다양한 노동현안 문제를 광주시 정책으로 입안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 놓은 셈이죠.”
 

“노동조합은 시민의 호민관이다!”

‘사회공공협약’은 비정규직·인권, 문화예술, 사회복지, 공공서비스 등 5개 분야를 다룬다. ‘공공부문 간접고용 근절과 비정규직 고용·처우개선을 위한 사회공공협약’도 별도로 체결했다. 노동조합은 협약 이행을 촉구하면서 지역사회의 이슈를 주도하고, 미조직 노동자들에게 노조의 계획을 설파하고 다녔다. 지자체의 노동·사회공공정책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활용한 것이다.

“협약을 체결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노동자로서, 시민으로서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낸 구체적 사례도 되게 많아요. 광주장애인복지관은 시립이지만 수십 년간 광주장애인총연합회라는 사단법인에 의해서 위탁운영 되었거든요. 그러다보니 비리가 끊이질 않고 시설도 많이 낙후되었다는 평이 많았어요. 여기에 노조가 제동을 걸었죠. 그래서 광주시 출연기관인 광주복지재단으로 이관되었어요. 어느 정도 민간위탁이 철회된 거라 볼 수 있죠. 

또 하나는 광주시립예술단에 오케스트라 지휘자, 합창단 지휘자는 시장이 임명하는 낙하산 인사였어요. 공공문화예술을 담당하는 자리인데 그러면, KBS•MBC 사장을 대통령이 임명하는 거랑 다를 게 없잖아요. 그래서 청빙위원회를 구성해 노조가 추천한 후보자 중 단원·전문가·관객에 의한 평가를 거쳐 최종적으로 시장이 위촉하게 만들었어요.”

지역사회에서 종종 벌어지는 인사비리, 예산낭비, 불법부당행정 등은 핫이슈가 되기에 충분했다. 노조는 이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시와의 정책 협의, 언론 홍보 작업을 병행하였다. 제도 개선 과정은 아직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않은 이들을 만나고 그들의 불만과 요구를 모아내는 과정이기도 했다.

이처럼 지자체의 정책생산과 대응능력이 취약하고, 지역 사회운동이 침체된 조건에서 사회공공성을 지향하는 광전지부는 노동의 권리와 대안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세력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정권교체기, 노동조합의 미래

이소형 공공운수노조 광주전남지부 부지부장 [사진 중앙]
 
투쟁으로 성장해온 노동조합이 정체되면서 또 다른 기득권 세력으로 인식되지는 않을까? 이에 대한 이소형 부지부장의 고민은 깊었다.

“공무직 노조치고 건강하고 운동적인 조직으로 인정받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중앙정부에서 내려오는 예산 범위 내에서 딱 공무원만큼 임금 인상하고, 싸우지 않아도 고용이 안정되거든요. 그래서 현재 광주시청의 전환 공무직들이 주도하고 있는 조직을, 어떤 정체성을 가진 민주노조로 성장시켜 나갈지 많은 고민과 노력이 필요해요. 아직도 대다수이며 고통 받고 있는 지역 지자체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조직화와 투쟁을 정규직지회 간부와 조합원들이 모두 자신의 일처럼 여겨 헌신하고 투쟁해야 해요. 그래야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공존하는 지부가 될 수 있죠. 이건 끊임없이 기획하고 기풍을 만들면서 동의지반을 넓혀나가야 하는 문제라 생각해요. 

우리는 이 지역에서 사회공공적 정책 개입, 사회적 발언, 비정규직 투쟁과 조직화를 계속하는 조직이라는 정체성을 만드는 데 힘쓰고 있어요. 희망연대노조가 ‘나눔과 연대’라는 가치를 임단협 등 노조 투쟁과 사업에 연결시키는 것처럼 말이에요.”

올해 대통령선거와 내년 지방선거, 교육감선거라는 굵직한 정치 일정이 다가오고 있다. 정권교체에 대한 기대감 이상으로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실제 많은 지역과 조직에서 진보 성향 사용자와의 관계설정, 노동조합의 존재 의의를 명확히 밝히지 못하고 흔들리기 때문이다. 지자체장과 교육감이 진보적 정책을 추진하고 ‘진보’의 상징이 되면서, 역설적이게도 노동자가 왜 노조에 가입해야 하는지, 노동조합이 어떻게 투쟁해야 하는지에 관한 고민은 줄어들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아직 우리에게 명확한 정답은 없어 보인다. 한동안 좌충우돌의 시기를 거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권교체기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것 만큼이나 중요한 건 노동조합의 독자적 발전전망을 갖추는 것이다. 변화하는 국면에서 노동조합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노조할권리를 확대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지 고민을 하는 데 공공운수노조 광주전남지부의 활동이 중요한 참고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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