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
- 2017/04 제27호
퇴진 촛불에서 사회운동을 되돌아본다
사회운동의 평가와 과제
촛불에서 퇴진행동의 역할
11월 9일, 노동·정당·종교·농민·시민사회단체 2300여 개가 뜻을 모아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이하 퇴진행동)을 발족했다. 박근혜 정권을 퇴진시킬 국민적 투쟁을 이끌어가기 위한 연대기구였다. 2014년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소속단체 수가 800여 개였다는 사실에 비춰볼 때 얼마나 광범위한 참여가 이뤄졌는지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사회운동의 입장에서 퇴진행동의 역할은 무엇이었나.
첫째, 퇴진행동은 광장을 열어 촛불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일종의 ‘컨소시엄’이었다. 상상을 초월한 역대 최대 규모의 퇴진운동을 이끌기 위해 소속단체들은 총 백여 명의 활동가를 퇴진행동 상황실로 파견했다. 5개월간 진행되었던 대규모 집회와 거리행진에서부터, 시민토론회, 국민투표와 서명운동, 캠페인 등 그 모든 활동에는 퇴진행동의 이름표가 달렸다. 촛불이 퇴진행동을 탄생시켰지만, 퇴진행동 없는 촛불은 상상할 수 없다.
둘째, 퇴진행동은 요지부동이던 청와대·새누리당, 갈팡질팡하던 야당을 촛불민심의 이름으로 압박했다. 10월 29일 2만 명으로 시작한 촛불집회는 참가인원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민중총궐기가 있었던 11월 12일에는 서울에만 106만 명, 11월 26일에는 150만 명(전국 190만 명), 12월 3일에는 170만 명(전국 232만 명)으로 폭증했다. 야당들이 탄핵안 의결을 머뭇거리며 ‘질서 있는 퇴진’을 운운할 때, 사법부가 물주 이재용 구속 영장을 기각하며 뒷걸음질칠 때, 촛불은 더 활활 타오르며 ‘주권자의 명령’을 내렸다.
셋째, 퇴진행동은 “이게 나라냐”라고 외치는 대중의 요구와 우리 사회의 개혁 과제들을 결합시켰다. 발족 기자회견에서 퇴진행동은 박근혜 퇴진과 함께 ▲세월호 진상규명 ▲백남기 사망 책임자 처벌 ▲노동개악과 성과퇴출제 저지 ▲사드 배치와 위안부합의 폐기 ▲한일군사정보협정 분쇄 ▲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 ▲원전중단과 가습기살균제 사태 해결 ▲농업 살리기 ▲노점탄압과 여성·소수자 차별 중단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 ▲중소상인 살리기 ▲물·전기·가스·교육·의료 민영화와 기업규제완화 저지 등 정권의 적폐청산을 호소하였다. 주요 의제를 부각시키거나 시민참여를 촉진하기 위해 재벌구속특위, 시민참여특위, 적폐청산특위 등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기도 했다.
한편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사회운동의 과제를 10대 분야 100대 개혁과제로 체계화시키면서 3월 11일 '1600만 촛불의 열망, 100대 촛불개혁과제'를 발표했다. 박근혜 퇴진에 그치지 말고 '박근혜 체제'를 해체하자는 운동방향을 촛불시민들에게 제안한 것이다.
촛불의 성과와 한계
성과는 컸다. 첫째, 촛불은 수백만 대중에게 ‘거리로 나가 투쟁하면 승리할 수 있다’는 기억과 자신감을 남겼다. 불가능할 거라 여겨왔던 대통령 탄핵을 이뤄냈다. 대중투쟁의 힘으로 강력한 힘을 발휘하던 지배세력 일부를 끌어내린 것은 87년 6월 항쟁 이후, 30년 배신의 역사를 뒤집는 중대한 계기점이다. 경제대통령 삼성 이재용 부회장, 유성기업 유시영 회장 구속은 그간 억압받아왔던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의 기세를 드높였다.
둘째, 수백만 명이 “재벌총수 구속”, “적폐청산” 구호를 거리낌 없이 외치게 만들었다. 한국사회의 적폐라 지칭했던 문제가 온오프라인 광장(대규모 집회와 SNS)에서 공론화되었다. 스스로 보수라고 여기던 시민들도 촛불광장에서 변했다. “맨날 부스를 보니 유성기업 한광호 열사가 정말 억울하게 죽었더라"며, "유시영이 구속됐을 때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는 이도 있었다.(“변하지 않는 것을 변하게 하라”, 《한겨레21》)
셋째,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으로 갈라진 구 새누리당 세력에 대한 지지가 합계 20퍼센트가 채 되지 않는다. 국민들은 ‘적어도 저들만큼은 용서할 수 없다’는 뼈저린 교훈을 얻었다. 이 역시 전국에서 끈질기게 이어져온 촛불의 성과다.
아쉬운 점도 없지 않다. 여전히 ‘박근혜 없는 박근혜 체제’가 유지되고 있다. 박근혜·우병우 등 범죄자들은 아직 구속되지 않았고, 이재용은 자신의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재벌 체제는 여전하며, 빈곤을 심화시키는 빈익빈부익부, 때만 되면 ‘북풍’을 소환하는 평화 위협 행태도 여전하다. 탄핵 정부의 황교안 권한대행은 외교적 노력은커녕 사드를 졸속으로 추진하며 국민을 전쟁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임금 체불액은 최고조에 이르렀고, 비정규직 차별은 난무하며, 가계부채와 실업난은 사상 최악이다.
또한 퇴진행동은 박근혜 체제가 해체된 ‘대안사회의 상과 경로’에 대한 합의가 미약한 사회운동의 현실을 보여줬다. 2300여 개라는 단체의 숫자만큼, 수백 만이라는 촛불 숫자만큼 정치적 스펙트럼이 넓었다. 따라서 정세인식, 야당과 관계, 탄핵과 향후 진로 등에 합의수준이 높지 않아 공통분모 중심으로 활동했다. 주요 슬로건은 ‘반(反) 박근혜-새누리당’이었고, 각 부문별 요구도 ‘박근혜 정책 폐기’라는 반정립에 가까웠다.
따지고 보면 촛불시민과 퇴진행동의 요구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퇴진운동을 주도하는 이들로 존중받았지만, 그렇다고 스페인의 포데모스, 그리스의 시리자처럼 정치적 대안 세력이라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다.
촛불에서 노동자운동의 역할
민주노총 같은 조직된 노동자들도 촛불에서 한 축을 담당해왔다. 민주노총은 10월 29일 1차 촛불집회, 11월 12일 전국노동자대회와 민중총궐기, 11월 30일 시민불복종과 연계한 총파업으로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박근혜 즉각 퇴진’을 내걸고 촛불의 흐름에 동참했다. 촛불이 소강기에 접어든 1월 이후에도 민중총궐기 형식으로 촛불집회를 조직적으로 뒷받침했다.
한국GM지부 부평공장 노동자들의 퇴근 후 거리행진, 현대중공업노조의 파업과 거리행진, 인천공항지역지부의 공항촛불, 서울남부 노동자조직화사업단 ‘노동자의미래’의 공단촛불은 광장의 촛불을 일터의 촛불로 확대하기 위한 시도 중 하나였다. 성과연봉제 도입에 맞서 정권과 싸웠던 철도 등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파업기간이라는 이점을 활용해 촛불정국 초기에 집회와 거리진출을 뒷받침했다.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경영세습을 위해 6천억 원의 국민연금을 날려먹은 주범인 이재용의 구속을 요구하며 반(反)재벌 투쟁의 기반을 다졌다.
한편 서울을 제외한 대다수의 지역은 대규모 집회를 주최할 역량이 부족했기에 노동조합들이 주도해 촛불집회를 운영하고 분위기 띄우는 역할까지 담당했다. 하지만 ‘노조 없는 노동자들’과 시민들에게 민주노총의 존재감을 남기지 못했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깃발’로 상징되는 민주노총을 대하는 시민들의 태도가 2008년과 현격히 다른 상황은 좋은 조건이었다. 동료시민으로서 노동조합 인식 개선만이 아니라, 동시대의 노동자로서 노동조합의 사회적 의미, 가입의 필요성 등 ‘노조 할 권리’를 선전하고 조직화하는 적극적인 기획이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민주노총 스스로 평가하듯이 “민주노총 대오가 광장의 대중투쟁의 요구와 결의 수준을 아직은 온전히 따라잡고 있지 못했으며, 현 정세와 정세적 요구에 대한 대중적 인식으로부터 결의된 자발적 성격보다는 조직적 지침에 따른 동원적 성격이 상대적으로 강했던(2017년 정기대의원대회 〈2016년 사업평가›)” 탓일 수도 있다. 그러나 수백 만이 모이는 공간에서 노조가 집회 동원력으로 승부를 본다는 것은 승산 없는 게임이다.
오히려 온 국민이 뉴스에 관심을 기울이던 비상한 국면에는 공단과 일터, 광장을 가리지 않고 곳곳에서 미조직 노동자를 만나고, 노동자 밀집지역에서 공간을 열어 노동자들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기획했어야 했다. 일례로 알바노조는 편의점 등 일터에서 박근혜 퇴진과 노동강도, 감정노동 등의 메시지를 담은 인증샷을 찍어 전송하면 토요일 촛불집회 시간에 알바노조가 찾아가는 식의 ‘우리는 매장에서 퇴진을 외친다’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99퍼센트 이상이 노동조합이 없는 아르바이트 현장의 미조직 노동자들과 만나는 계기로 삼겠다는 구상이었다.
사회운동의 과제
박근혜 파면 이튿날, 퇴진행동은 “우리의 민주주의가 다시는 땅바닥에 떨어지지 않도록, 추위 속에서도 광장을 지켜왔던 그 뜻으로 삶의 현장과 일터를 바꿀 것이며, 아래로부터 민주주의의 역량을 성장시킬 것”이라며, “그리하여 어느 누구도 가보지 못한 새로운 민주주의의 길로 나아가자”(2017 촛불권리선언)고 선언했다.
문제는 일상으로 돌아간 시민들이 5개월간의 ‘저항의 경험’을 일터·학교·가정에서의 억압에 대한 저항, 사회운동 의제들에 대한 관심으로 어떻게 이어나갈 수 있는지 뚜렷하지 않다는 점이다. 밖으로는 대중과 호흡하는 데 어설프고, 안에선 진보정당의 분열과 노동자 내부의 분할과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는 게 현재 사회운동의 냉정한 현실이다. 반면 오늘날 세계 자본주의의 객관적 조건은 체제의 정치적 불안정성을 극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위태로우며, 자본가와 정치권력이 내놓는 어떤 대안도 불충분하다.
차기 정권 이후 다시 비상한 정국이 찾아온다면 사회운동은 어떤 역할을 자임해야 하는가? 미래를 향한 질문의 답은 과거와 현재에서 간접적으로 찾을 수밖에 없다. 촛불의 경험에서 교훈을 도출하고, 사회운동의 주체적 상태에 대해 진지하게 진단해보자. 그래야 세상을 바꿀 발걸음을 지체 없이 내딛을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