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
- 2017/04 제27호
한·중 갈등 악용한 사드 알박기
2월 27일 롯데 이사회, 28일 국방부-롯데 부지교환계약, 3월 6일 사드 포대 일부 평택 오산미군기지 도착.
지켜보는 국민들이 정신없을 정도로 속전속결이다. 대선 전에 배치를 완료하여 이르면 4월 안에 작전 운용할 예정이라 한다. 작년 11월 초까지만 해도 빈센트 브룩스 한미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은 ‘8~10개월 내 전개’될 것이라 말했었다. 그러니 지금 상황은 조기 대선과 정권 교체 가능성에 다급해져 사드 ‘알박기’를 하려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사드 배치를 되돌릴 수 없게 하려는 수작이다.
대선 전 ‘알박기’
사드 배치를 추진하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한민구 국방부 장관,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한일군사정보협정과 ‘위안부’ 합의 같은 박근혜 정책을 추진하던 부역자들이었다. 이들이 아직도 우리의 생명과 평화가 걸린 중차대한 사안을 결정하겠다고 뻔뻔하게 버티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심각한데,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추진하려다보니 온갖 꼼수를 동원한다.
사드 배치는 이미 여론과 정치권, 주변국들과의 관계에서 큰 논란이 되는 중대 사안이다. 그 때문에 법적 절차와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이마저 깡그리 무시한 채 날치기로 진행되고 있다.
국방부는 사드 배치 사업계획 자체의 적정성, 입지 타당성을 따지는 과정(전략환경영향평가)을 아예 건너뛰었다. 주민의견 수렴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되고 기간도 짧은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만 강행하고 있다.
배치 부지 확보 과정도 수상한 점이 많다. 사드 배치는 당연히 국방·군사시설 사업임에도 관련법에 따라 토지를 수용하고 현금으로 보상하는 대신 롯데와 부지 맞교환 방식을 취했다. 전례가 없는 일이다. 국회 동의 절차를 피하려는 꼼수다. 롯데가 자신들에게 불리한 교환 조건과 중국으로부터의 압박을 감수하면서 부지를 내준 배경도 석연치 않다. 신동빈 롯데 회장의 불구속 기소와 서울 면세점 사업권을 골프장과 맞바꾼 게 아닌지 뒷거래가 의심된다.
그럼에도 정부 당국과 여야의 주요 대선 주자들은 “사드 배치는 국가 간 합의라 어쩔 수 없다” 고 말한다. 하지만 한미 간 정식 합의문 같은 것은 애당초 없다. 한미 소장급이 서명하고 양국 국방장관이 승인한 ‘한미 공동 실무단 운용결과 보고서’뿐이다. 국가 간 법적 권리와 의무를 창출하는 조약이 아니고, 정치적 합의에 머무르는 기관 간 약정도 아니다. 강행할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을뿐더러 얼마든지 물릴 수 있는 근본 없는 일인 것이다.
조기 대선을 앞두고 이렇게 사드가 졸속으로 추진되고 있는데 정치권의 반응은 우려스러울 뿐이다. 자유한국당·바른정당이 환영의 박수를 치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야권 대선 후보들까지 수수방관이다. ‘전략적 모호성’을 주장하는가 하면, 차기 정권에서 해결하겠다고 한다. 적극적인 반대 행동이 없으니 속전속결 사드 배치를 방치하고 있는 셈이다.
사실 이들은 단 한 번도 사드 배치를 원칙적으로 반대한 적 없다. “나한테 맡겨주면 잘 해보겠다”고 할 뿐이지, 사드가 평화 위협 사안이라는 근본적인 인식은 없다. ‘우리 안보’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반중감정 이용한 사드 배치 정당화?
사드 배치 속도가 높아지자, 중국 내 롯데마트 영업 제재·한국 단체관광 금지 등 중국의 경제제재와 반한감정 고조에 대한 보도가 연일 쏟아진다. 보수정치인과 언론은 절대 중국에게 굽히지 말자고 한다. “우리 안보에 중국이 간섭할 일이 아니”라며, 조기 배치를 환영하고 있다. “아직도 우리를 속국으로 아느냐”, “독자적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중국의 경제제재와 민족감정 부추기기는 분명 도가 지나치다. 그렇다고 사드 배치가 우리에게 선(善)일 수는 없다. 오히려 실익 없는 사드 배치가 가져온 갈등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막대한 불편과 평화 위협에 대해 책임져야 할 자는 바로 박근혜·황교안과 그 일당들, 보수정당과 보수언론 등 사드 배치를 추진해온 이들이다.
중국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임은 당연했다. 그런데 마치 상상도 못한 일이 일어난 양 중국의 제재조치를 선정적으로 보도하면서, 자신들은 결백한 척 떠들고 있다. 날치기 배치를 정당화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사드 배치 주장은 상식이 아니라 무책임한 기만일 뿐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중국을 이기고 ‘속국 과거’를 앙갚음하는 것인가? 기어코 미사일들이 우리의 삶터로 날아올 때까지 상황을 밀어붙이고, 그때 가서 어떻게든 미사일 하나라도 더 요격했음을 자랑스러워 할 것인가? 그러자고 주변국들과의 긴장을 감내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가.
위험한 세계, 현명한 대처를
사드 배치 철회는 방어적 투쟁과 현상유지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북한을 빌미로 우리의 목소리를 탄압하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군사경쟁과 긴장을 우리는 이미 지겹게 겪었다. 분단 이후 지난 70년 간 남한 체제를 유지한 근간이 이것이다. 우리는 평화가 무엇인지 알려고 조차 하지 않는 사회, 노조를 해도 ‘빨갱이’가 되고 평화를 이야기해도 ‘빨갱이’가 되는 세상에서 살아왔다. 중국이 ‘내정간섭’하는 것에는 펄펄 뛰지만, 70년 동안이나 미국이 시키는 것은 죄다 하면서 잘도 살았다.
이제 달라져야 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사드 배치는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평화를 생각하고 요구할 기회다. 사드 철회는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이 꼽은 적폐 청산 6대 긴급현안이다. 우리 사회를 지배하던 자들의 실상이 낱낱이 드러나면서 사드 반대 여론이 늘어나고 있다.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는 성조기를 펼치지만 촛불집회에는 사드를 반대하는 푸른 평화의 깃발이 함께 한다.
세계는 점점 위험해지고 있다. 각국이 군비를 경쟁적으로 확충하고 있고, 외국인을 혐오하는 세력들이 정치적 영향력을 얻고 있다. 사드가 배치가 완료되고 나면, 이미 사드 때문에 동아시아에 싹트고 있는 혐오 감정과 군비 경쟁이 격화될 수 있다.
미국의 동아시아 패권 전략에 휩쓸려 민중의 생명이 위협받는 세계, 북한 핑계로 민중의 권리를 억제하고 탄압하는 체제를 거부하자. 사드를 거부하는 것이 그 시작이다. 성주·김천·원불교와 함께 사드 철회가 평화이고 민주주의임을 외치자. 지난 3월 25일 광화문 촛불 집회에서 김천에서 온 어린이들이 외쳤듯, “촛불이 성주 소성리로 달려가” 사드를 막아야 할 때다. ●
- 덧붙이는 말
김진영 | 평화로운 세상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어서 사회진보연대 반전팀에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