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세계
- 2017/04 제27호
삼성 베트남 공장 짓던 노동자들이 분노한 이유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새기 마련?
지난 2월 28일 밤 JTBC 손석희 앵커는 베트남발 속보를 전했다. 하노이에서 차로 1시간 거리의 엔퐁공단 삼성디스플레이 공장 건설현장에서 한국인 보안요원이 베트남 건설노동자를 폭행하는 일이 벌어졌고, 이를 목격한 수천 명이 “대규모 폭동”(아쉽게도 JTBC는 노동자들의 항의 행동을 ‘난동’이라고 표현했다)을 벌였다는 소식이었다.
이날 밤부터 다음날인 3.1절 낮까지 ‘폭동’이란 꼬리표를 붙인 기사가 이어졌다. 대부분이 베트남발 뉴스나 유튜브 영상, JTBC 속보를 인용한 보도였고 자세한 내용이 실리진 않았다. 그리고 여지없이, ‘폭동’ 또는 ‘난동’이라는 표현은 빠지지 않았다.
2017년 2월 28일 2000명
현지 언론 보도를 종합해보면 이렇다. 디스플레이 공장을 짓고 있던 베트남 건설노동자들은 점심식사를 마치고 현장 출입구에서 지문기록을 위해 줄을 서 있었다. 이때 한 40대 노동자가 갑자기 줄에서 사라졌다. 보안요원들이 경비실 쪽으로 끌고 간 것이다. 그 안에서 폭행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동료 노동자들은 분노하여 보안요원들을 쫓아갔고, 2000명이 운집해 함성과 구호를 외치는 등 큰 혼란이 발생했다.
삼성물산은 해당 보안요원이 베트남인이고, “지문인식기가 고장 나 일부 근로자들이 항의하면서 생긴 일”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반대로 베트남과 몇몇 해외 언론은 보안요원이 ‘한국인’이라고 지목하는데, 이상의 진위를 파악하기는 어려웠다. 베트남 노동쟁의는 자료가 극히 제한적이고 언어적 한계가 크며, 노동조합과 시민사회가 정부에 종속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베트남 노동자를 폭행한 보안요원 혹은 관리자의 국적이 한국이냐 베트남이냐는 핵심이 아니다. 문제는 최근 베트남에 막대한 자본을 투자하는 한국 자본이 ‘현지 노동자들을 대하는 방식’에 있다.
베트남 한국기업에서 파업이 빈발하는 이유
베트남은 노동조합이 당과 정부의 지도를 받고 있어 노동자에 대한 대표성을 갖고 있지 못하다. 베트남노동총연맹(VGCL)은 헌법이 규정한 정부기관에 가깝고, 그 때문에 노동자들의 파업 역시 노조에 조직되지 않은 하층 노동자들에 의해 발생하는 돌발적인 파업(wildcat strike)이 대부분이다. 2007년부터 2014년까지 발생한 총 1998건의 파업은 모두 불법이었다. 파업의 요건과 절차가 복잡해 합법 파업의 실행 자체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현재 삼성 베트남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20만 명이 넘는다. 삼성은 “가장 일하고 싶은 기업”인 동시에, 이직률이 높고 대규모 파업과 분쟁도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곳이다. 가장 많이 알려진 사건은 2014년 베트남북부 삼성전자 공장 건설현장에서 벌어진 대규모 파업이다.
1월 9일 아침 건설노동자와 삼성 보안서비스회사 프로젝트 담당자 사이에서 발생한 충돌이 발단이었다. 작업시간에 늦은 한 노동자가 출입구를 뛰어넘어 작업장으로 들어가려 하자, 보안요원들이 전자충격봉으로 그를 기절시켰다. 이에 분노한 4000여 명의 노동자들은 경비와 경찰에 돌을 던지고, 컨테이너에 불을 지르며 격렬히 항의했다. 이 정도 수준은 베트남에서 대단히 이례적이다.
베트남노총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4년까지 베트남 진출 한국기업에서 일어난 파업은 약 800여 건으로 전체의 26퍼센트에 달한다. 2014년 박닌 시에서만 28건의 파업이 발생했는데, 이 중 절반이 넘는 16건이 한국 기업이었다. 한국 기업들의 노동법 위반, 과도한 노동강도와 장시간 노동, 관리자들의 강압적인 태도가 원인으로 지적된다.
2010년 12월 동나이성에 위치한 태광실업 베트남공장에선 무려 2만 명의 노동자들이 낮은 임금에 항의해 이틀 간 파업했다. 경영진이 설날 상여금을 약속해놓고 지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4년 A공장에선 한 생산라인에 소위 ‘화장실 카드’를 1개만 비치해놓고 여러 사람이 동시에 화장실에 가지 못하도록 해 파업이 일어나기도 했고, B공장에선 노동자 1명에게 화장실에 갈 수 있는 티켓 2개씩을 지급해 출입을 제한하기도 했다. C기업은 화장실을 가게 해달라고 울며 애원하는 여성 노동자들에게 ‘옐로카드’를 부여해 임금 3달러를 삭감시키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처럼 더 많은 이윤을 위해 베트남으로 건너간 한국 자본의 행태는 노예제도가 살아있던 시절에 뒤지지 않는다. 한국인 관리자들의 노골적인 인격 모욕도 상상을 초월한다. 모국에서 하던 짓을 나라 밖에서라고 안 할 리 없는 것이다.
저임금 역시 갈등의 진원이다. 베트남 최저임금은 물가상승률 등을 고려했을 때 노동자들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이 못 된다. 2014~2016년 베트남 최저임금 상승률은 매년 약 12~15퍼센트였고, 올해는 7.3퍼센트로 예정돼 있지만, 최저생활임금에 비해 30~40퍼센트 정도나 낮다. 여전히 임금 상승이 필요한 상황에서, 한국 기업들은 볼멘소리를 높이고 있다.
독립적인 노동자운동, 가능할까?
베트남노총은 조직되지 않은 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한 노력을 등한시해왔다. 그러다보니 노동조합의 대표성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았고, 혁신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베트남 정부는 지난해까지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이하 TPP) 체결을 위해 당시 미국 정부와 노동·인권 부문의 법 개정을 약속했다. 협약 내용에 따르면 기존에는 노총을 통해서만 노조 가입이 가능했지만 개정되는 법에 따르면 복수노조 및 초기업단위 노조의 설립이 보장된다. 실질적 파업권에 대한 항목도 포함하고 있어 현재 법원의 조정과 승인을 얻어야 하는 것에서 노동자 과반수 찬성 시 파업 실행과, 타 단위노조와의 연대 파업도 가능해진다.
노조가 당의 주요한 기구여야 한다고 여겼던 베트남 정부와 공산당은 고심 끝에 이를 수용했다. 그만큼 베트남 정부는 TPP가 가져올 ‘달콤한’(?) 미래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노동조합 문제 역시 베트남노총이 노동자 대표성을 획득하고, 베트남공산당으로부터 노총을 분리한다는 전제 하에 복수노조 개정을 수용해 대대적인 변화를 꾀하겠다고 결심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얼마 전 트럼프가 일방적으로 탈퇴를 선언하면서 TPP의 전망은 불투명해졌다. 베트남 정부가 미국과 맺었던 협약을 지킬 책임 역시 모호해진 게 사실이다. 가뜩이나 베트남 노동법 상 해고가 어렵다는 게 불만스러운 삼성 등 한국 기업들은 노조 설립과 파업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법이 개정되는 걸 바라지 않는다. 이 상황에서 노조법 개정은 다시 불투명해졌다. 기나긴 논쟁의 과정이 있었던 만큼 명분은 여전히 남아 있다. 석 달 전 베트남 노동보훈사회부가 발표한 노동법 개정안에서도 특이사항은 발견되지 않는다.
베트남 국제연대 사업의 어려움
베트남에서 벌어지는 이런 상황에 대해 ‘씁쓸한 일이지만 우리와는 무관한 일’로 치부하거나, ‘당장 국내 문제가 더 시급하지 않냐’는 반응도 존재한다. 한국 기업의 베트남 진출과 베트남 노동자들의 한국 이주로 인해 우리 일자리만 줄어든 것 아니냐는 불만도 있다. 하지만 자본의 분업구조와 공급사슬은 한국·일본·중국·베트남 등 동아시아 전체를 아우르고 있고, 그 규모도 해가 갈수록 증대되고 있다. 때문에 초국적 자본에 맞선 노동자운동의 전략으로서 아시아 각국 노동자운동과 연대를 구축하는 것은 중차대한 과제다.
삼성만 해도 비약적인 비용절감을 위해 노동집약적 공정을 동남아시아에 집중시키고, 베트남에서 저임금·장시간·고강도 착취 시스템을 수립해왔다. 이는 자연스럽게 원청에서 하청업체로 이어지고, 이런 착취 전략은 오직 물량과 공장 이전을 무기로 작동된다. 자본에게 국적은 없다. 그렇다면 노동자들 역시 국경을 넘은 단결이 필요하지 않을까?
민주노총과 베트남노총의 연대는 미미한 수준이다. 보건의료노조는 2007년부터 베트남병원노조(VNUHW)와 격년제로 상호 방문하는 등 관계를 맺고 있다. 건설산업연맹은 베트남 내 한국 건설사들의 불법행위에 대한 대응 전략을 공유하기 위해 2010년 베트남건설노동조합(VNUBW)과 교류한 바 있지만 얼마 안 가 중단됐다.
한편 해외 NGO들이 베트남에서 활동을 넓히고 있는데, 이것이 베트남 노동자계급의 자기 조직화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최근 캄보디아의 경우, 봉제 노동자들의 폭발적 투쟁에 대한 NGO들의 지원이 노조 활성화뿐 아니라 노조 간 분열도 심화시켰음을 유념해야 한다.
민주노총의 경우, 방글라데시의 영원무역 의류생산공장에 대한 감시를 통해 현지 노동자들을 간접적으로 지원해왔지만, 실제 변화를 만드는 것엔 실패했다. 현지 노동자의 세력화 없는 국제연대만으론 역부족이었기 때문이다.
노동자운동이 실질적인 국제연대관계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현지 노동자운동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갖고 공동 지향, 전망을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자금 지원에 의존적이지 않은 동등한 연대를 구축해야 진정한 국제연대의 미래도 있다.
무엇을 할 것인가
민주노총은 2007년부터 ‘아시아 노조활동가 교육교류 프로그램’을 개최하고 있다. 민주노조운동 역량을 강화하고 이들 간의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홍콩,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필리핀 등 아시아 젊은 활동가들을 초청하는 자리로, 오는 7월에도 개최할 예정이다. 여기서 경험을 공유하고, 아시아 노조운동이 공통으로 처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함께 모색하는 취지다. 동아시아 국제연대의 발판이 될 중요한 사업이지만, 아직 베트남과는 연결고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베트남 노동자운동과의 국제연대는 어려운 과제로 남아 있다. 베트남의 한국 기업에 80만이 넘는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지만, 이들과의 교류관계를 형성하고 노동조합 조직화까지 도모해보자는 아이디어는 여전히 걸음마 수준이다. 노조할권리에 대한 베트남 내 법제도가 개선되어야 하고, 현지 상황을 고려해 활동가와 공식·비공식을 아우르는 네트워킹을 모색해야 한다. 이를 기반으로 민주적이고 조직적인 노동자운동이 활성화되어야, 베트남과 한국 노동자 모두의 노동권 향상과 노동자운동의 혁신 역시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