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1.11.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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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지희.HWP

그들이 여의도로 간 까닭은?

손지희 | 편집위원, 진보교육연구소
26일 밤 8시. 여의도 문화마당은 서울 경인지역 교사들로 북새통을 이루기 시작했다. 지부, 지회, 분회 깃발들이 여의도의 밤하늘에 나부끼고 있었다. 열심히 자신의 지회 깃발을 찾는 선생님들. 25일 한완상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은 연가투쟁 참석자에 대한 강경 대응 방침을 담은 담화문을 각 학교로 전달했다. 그래 너네들이 즐겨 쓰는 수법이지. 근무 상황부에 적은 연가 사유는 “전교조 집회 참석”. 관리자들은 결재를 거부했다. 공문 하나에도 벌벌 떠는 교육부의 충성스런 개나 다름없는 그들이 장관의 엄명이 떨어진 마당에 결재 해줄 리 만무. 이를 모를 전교조 교사들이 아니다. 노조원이 노조 활동을 하는데 사용자가 허락하고 말고가 어디 있는가? 결코 적지 않은 수의 교사들이 징계 위협에 굴하지 않고 집단적으로 연가를 내고 여의도로 모여들었다. 근무시간 중 노조활동 금지라는 명목과 학습권 침해를 들먹이며 교사들의 집단행동을 막으려 했던 교육부의 시도는 박살났다. 물론, 집회장에서 힘차게 구호를 외치고 하늘을 향해 주먹을 내지르고 율동을 따라하고 노래부르며 즐거워하는 교사들의 마음 한 구석은 어둡다. 하루에 불과하지만, 아이들을 ‘뒤로하고’ 집회참여를 결심한 교사들의 마음이 어디 ‘하루 논다는 기분’일 수 있겠는가! 교실에서 수업해야 할 교사가 감히 학생(고객인)의 학습권을 내팽개친 채 거리로 뛰쳐나왔다는 비난이 신문지면을 장식할 것이 뻔한 마당에 마음 편할 교사가 어디 있겠는가. 보수 언론의 뻔한 작태는 그렇다 치더라도 오늘 하루 미뤄둔 일이 집회장에서도 마음 쓰이는 교사들. 그래도 그들은 한 자리에 모였다. 모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모여서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절박한 상황이 소심한 쁘띠 부르주아로 살아온 교사들을 학교 밖으로 나오게 만들었다.

장내가 어느 정도 정리되고 지회 단위로 자리를 잡고 난 8시 30분 경부터 수도권 교사 결의마당이 시작되었다. 힘차고 흥겨운 선동과 문화공연이 이어졌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자리에서 일어나 선동대의 율동을 따라하고 노래하며 즐거워했다. “와- 이렇게 재미있는 집회는 처음이야!”라며 좋아하는 선생님들 집회 상황이 궁금하신 분들은 오마이뉴스에 들어가 보시라.
. 무거운 마음도 이 순간만큼은 동지애와 전교조의 힘을 새삼스럽게 느끼며 벅차 오른다. 같이 오지 못한 사람들에게 자랑해야지. 이렇게 좋은 걸. 자정 무렵부터는 제주지부를 시작으로 각 시도지부 소속 조합원들도 여의도 집회에 결합하기 시작. 노동에 지쳐 솜처럼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밤늦게 서울까지 올라온 지방 동지들을 “반갑습니다”(이미 열심히 연습해두었다)라는 노래와 율동으로 열렬히 맞이한다. 1만 5000여의 교사들이 “교육 시장화 저지”라는 슬로건 아래 하나가 되었다.

교육시장화 저지, 교육평등권 확보

전교조가 이번 연가투쟁에서 내건 요구사항은 크게 다음의 네 가지이다.
첫째, 7차 교육과정 중단
둘째, 자립형 사립고 시범운영 계획 철회
셋째, 성과급․계약제 폐지
넷째, 중등교사 자격자 초등임용 방안 철회 2003년까지 부족한 초등교사를 확보하기 위해 중등교사 자격증 소지자 약 4000명을 교대에서 1년간 70학점을 이수한 뒤 초등교사로 임용하는 ‘교대학점제’가 발표되면서 교대생과 교원단체들의 반발은 시작됐다. 교원 부족현상은 지난 7월 20일 교육부가 발표한 ‘교육여건개선 추진계획’에 따라 2003년까지 학급당 인원수 35명 감축에서는 나타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교육부는 거센 반발에 부딪히면서 교대학점제 적용대상을 3000여명으로 당초 계획보다 축소하고 적용 지역도 서울 등 대도시를 제외한 경기, 강원 등 7개 도 지역에서만 실시하고 70학점 이수기간을 20개월로 연장한다는 등의 ‘보완책’을 내놓았을 뿐 전혀 후퇴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교대생들은 이에 대한 전면 철폐를 주장하며 전국 11개 교대 4학년생들의 80.6%가 11월 25일 실시되는 임용고사를 거부하기로 결의했으며 ‘무기한 동맹휴업’에 80%이상이 찬성하여 동맹휴업에 돌입했다. (내일 신문 10월 26일자 참조)

교육부는 위의 정책들에 대해서 약간 주춤거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결코 철회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이를 보완하는 정책을 내놓거나 새로운 무리수를 두어 현장을 어지럽게 만들고 있다. 7차 교육과정의 경우 교육부에서도 현재 수능형태로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는 탓에 거기에 맞는 새로운 수능안을 내놓은 상태이나, 선택형 교육과정을 철회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자립형 사립고는 서울시 교육감의 ‘반란’으로 약간 미뤄지고는 있지만, 이 역시 그대로 두고 보았다간 몇 년 내에 현실화될 기세다. 성과급의 경우, 교사들의 공분을 자아내며 가장 힘있게 투쟁이 전개되었으나 교육부는 ‘수당으로 전환할 지도 모른다’는 기대감만 부추기며 반납을 억제하려 했을 뿐 아직 폐지 답변은 속 시원히 내놓지 않고 있다. 차등 성과급 반납은 서울의 경우 54 억 여 원(26일 오후 현재) 전국적으로는 350여 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중초 교사 임용 역시 99년 정년단축으로 대규모 퇴직자를 양산한 상태에서 임시방편으로 이번뿐이라는 약속을 해놓고는 다시 딴소리를 하고 있다. 중등교사 자격증 소지자의 초등교사 임용은 대선을 의식하여 학급당 인원수 감축을 무리하게 추진하느라 빚어낸 일이다. 학급당 인원수는 당연히 줄어들어야 하지만, 지금의 감축 정책은 정치적 계산이 앞서는 것으로 더 큰 원칙을 훼손하고 있다. 무리한 교원수급정책도 문제지만, 교실 증축계획도 역시 조만간 거액의 예산만 낭비했다는 결론이 날 것인데도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학생수가 전반적으로 감소하는 마당에 교실만 잔뜩 지어놓고 무리하게 중등교사를 초등에 임용하려는 것이다.

7차 교육과정, 자립형 사립고, 성과급․계약제, 중초임용 정책은 하나같이 ‘교육시장화’를 위해 추진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성격의 교육정책들이다. 이런 정책들이 관철된다는 것은 교육이 시장판으로 된다는 뜻이며, 그 순간 공교육은 그야말로 쑥대밭이 되고 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요 슬로건이 “교육시장화 저지”로 모아졌다.

다음날 아침 9시부터 1시간 가량 진행된 교육주체 결의 대회에서 김은형 전교조 수석부위원장은 "학급당 학생 수를 감축하자니까 교실과 환경을 마구 파괴하며 학교를 쑥밭으로 만들고, 교원수급 하라니까 기간제․계약제 교사 확대하고, 사립학교법 개정하라니까 귀족형 사립고 만들고, 교사 처우 개선하라니까 마구잡이로 교사 등급을 매긴 성과급 지급을 강행했다"며 정부 정책을 비판했다. 결의 대회를 마치고 나서는 50여 명씩 나뉘어 종각역, 동대문역, 을지로 입구 등 18개 지역으로 분산되어 거리 선전전을 가졌다. 유인물 겉장엔 '빈부격차도 갈수록 심해지는데… 평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마저 빼앗기고 있다'고 적혀 있었다. 다양성과 선택이라는 명분으로 호도하고 있는 7차 교육과정과 자립형 사립고는 사실, 교육평등권을 깨기 위한 지능화된 방안이며, 성과급과 교원 계약제 등 교원구조조정 방안 역시 교육을 휘청거리게 만드는 시장판 교육정책이라는 이야기다. 밤을 거의 새다시피 한 탓에 피곤한 몸과 허름한 모습이었지만 시민들에게 현정부 교육정책의 본질을 알리고 전교조 투쟁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에 거리에서도 열심이었다.
거리선전전을 마치고 다시 여의도는 노란색과 빨간색의 투쟁 조끼를 걸친 교사들로 넘실거렸다. 점심 식사를 도시락으로 해결하고 2시 30분부터 “교육시장화 저지와 교육재정 확보를 위한 국민행동대회”가 시작되었다. 대회사에서 전교조 이수호 위원장은 “국가는 ‘모두에게 질 높은 공교육’을 제공해야 합니다. 학교는 교육주체들의 합의에 따라 ‘민주적 공동체’로 운영해야 합니다. 정부와 교육부는 ‘교육시장화의 길’이 아닌 ‘공교육 정상화의 길’로 교육정책을 바꾸어야 합니다”고 역설하고, 정부가 시장화 정책을 중단하지 않을 경우 ‘파업을 불사한 총력투쟁’을 11월 4일 대의원대회에서 결정하고 실천할 뜻을 밝혔다. 이 시간, 교대생 1만 명은 상경하여 교육부 앞에서 중초임용을 반대하는 농성을 하고 있었다.

5시가 훌쩍 넘은 시간, “많이 모일까? 썰렁하지는 않을까?”라는 우려를 말끔히 씻어내며 1박 2일 간의 강행군은 끝이 났다. 연가 투쟁은 비교적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지만, 그것은 이제 더욱 힘든 전면전의 시작일 뿐이라는 생각을 조합원들은 갖고 떠났을 것이다.

아쉬움 - 어렵사리 투쟁에 나선 조합원들에게 구체적인 목표를 던져주지 못했다!

이번 연가 투쟁이 모두 다 좋았다고는 볼 수 없다. 중요한 아쉬움은 싸움의 대상에게 던질 “이거 반드시 이렇게 해”라는 협박의 카드 혹은 싸움에 나선 조합원들에게 “우리는 이것이 관철되지 않은 한 싸움을 멈추지 말자”라는 확실한 목표를 제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적어도 대회장 정면에 걸린 플랭카드에라도 “7차 전면중단” 등 구체적 요구사항을 썼어야 한다. “교육시장화 저지, 교육평등권 확보”라는 다소 추상적인 구호만이 걸렸을 뿐이다. 전교조 홈페이지에서 이런 아쉬움을 표현한 글(“27일 집회를 진지하게 되돌아보자.” 정은교)을 조금 길지만 옮겨본다.

“(…) 본격적으로 이상해진 것은 2차 대회 때다. 귀에 들리는 이야기가 하나도 없었다. 같은 말의 되풀이... 위원장이 마지막으로 나와, '우리, 앞으로 나갈 목표는 이것이다! 어떻게 싸우자!'하는 이야기를 참가자들 뇌리에 박히게 말해줬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 얘기, 저 얘기 간추리면 머릿속에 남는 것은 '우리, 그동안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열심히 싸우자'는 막연한 말뿐. 교육 시장화를 저지하고 교육재정을 확보하기 위해 싸우자? 장기적인 과제로서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올 가을 교육부에 들이댈 말은 못된다. '7차 중단 약속'보다도 더 힘든 과제인데 아무리 우리 힘에 밀린들 교육부가 어떻게 그것을 약속해? '자립고' 계획이 뒤로 많이 물러서고(물러섰을 뿐이다), 성과급도 다소 주춤하고, 여기서 저들의 '후퇴'를 확실히 보장받으려면 '7차 중단'을 약속케 해야 한다. 그것이 지금의 우리 구호로 내걸려야 한다. 어떻게 싸우는가? '파업'이라는 무기를 갖고 싸운다! '우리는 파업 벌일 용의가 있다'고 대의원대회가 결의하고, 조합원 찬반투표에서도 다시 확인한다. 이렇게 기세를 올림으로써 저들에게서 최종적으로는 '7차 중단'의 굴복까지 받는 것이다. ('교육재정 확보'라는, 교육부로서는 책임지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약속받는 게 아니다)-- 속이야기 털어놓자면, 나는 전교조가 '파업 결행'까지는 못 가더라도, '우린 파업 벌일 용의 있어. 그러니까 정부는 정신차리는 게 좋을 거야'하고 협박하는 단계, 조합원투표에서 찬성을 끌어내는 단계까지라도 갔으면 좋겠다. 본부가 그 단계까지라도 끌어준다면, 나는 이수호 선생을 찾아가, 아니면 본부의 아무나 붙잡고 키스라도 해줄 마음이다.
그런데 위원장 연설에서 그런 '청사진 제시'가 없었다. 그저 열심히 싸우자는 말이었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대회장에서 이처럼 한가로운 연설내용들만 되풀이하는 것이 현 집행부의 '무기력'의 표현이 아닌가 싶다. 다음 싸움으로 끌어갈 자신감이 없고, 복안이 없다는 말! 다음 대의원대회에서 무엇을 제시해야할지 모르겠다는 무기력! 그럴 때 본부 집행부에찾아드는 심리적 유혹이 무엇일까? 교육부 쪽에서 약간이라도 후퇴하는 기미가 보일 때, '이쯤으로 타협하자'고 성급하게 손 내밀려는 유혹! 나는 교육부의 '잠정타협안'이 무엇인지 자세히 외우지 못한다. '보나마나 뻔한 속임수!'라는 생각에서 들여다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귀동냥으로 듣기에 '7차 도입을 위해 계약제를 들여온다'는 구절에서 '7차 도입을 위해'를 빼는 식으로 저들이 양보하겠다는 것이다. 이거, '눈 가리고 아웅'하는 짓 아닌가? 물론 우리가 싸움의 파고를 높일 복안/실력이 없을 때, 우리는 이쯤이라도 감지덕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그 결과는, 우리가 앞으로도 저들에게 계속 질질 끌려간다는 것!). 그러나 그 유혹에 빠지기 전에, 우리는 '과연 우리가 최선을 다해 왔는가? 다할 생각인가?'부터 되물어야 한다. '밤샘'과 '거리 선전전'으로 대회 참가자들을 고생시킨 것은 결코 '큰 허물'이 아니다. 때로는 더 힘들게 고생시킬 수도 있다. 위원장이 '앞으로 이어질 싸움에 대한 청사진'만 강렬하게 제시해 줬더라면 그런 고생은 금세 잊어버린다. 전국에서 열렬한 동지들이 모여든 이 귀중한 선전선동의 장에서, '그저 열심히 싸우자'는 두리 뭉실한 이야기만 나돌았을 때의 그 맥빠짐이 문제였던 것이다. 자, 애써 실망감을 누르고, '다음 갈 길'에 대한 궁리에 접어들 때다.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갖고 싸울 것인지, 본부는 우리에게 제시해 주지 못했지만, 그 방안이 15개 시도지부에서 올라올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본부'에 오래 있다 보면 활동가들이 지치게 마련이다. 15개 시도지부의 '덜 지친 활동가들'이 더 앞으로 나서서 전교조를 끌어갈 수도 있으리라, 나는 믿는다.”

교육부는 아직 백기를 들지 않았다. 한 번의 연가 투쟁으로 교육부가 순순히 굴복하리라고 예상하는 순진파는 별로 없을 것이다. 위의 글처럼 한 번의 싸움으로 자족하고서 교육부가 내미는 카드 같지도 않은 카드를 덥석 물면, 아니 시작한 만 못하다. ‘교육 시장화’는 “교육 시장화 저지”를 구호를 외친다고 저지되지 않는다. 교육 시장화를 위해 차근차근 추진되는 정책들의 본질을 꿰고 하나하나 막아내고 대안을 제출할 때 그것은 저지되며, 교육의 주도권이 교육주체에게 돌아온다. 교육 시장화 정책 중 가장 중요한 7차 교육과정을 막는 것이 이번 싸움에서 거머쥐어야 할 성과이다.
전교조는 11월 4일 그야말로 역사적인 임시 대의원대회를 연다. 사상초유의 교사파업이 이 땅에서 일어날까? 파업은 연가보다도 훨씬더 강력한 ‘학습권 침해’ 이데올로기 공세와 강력한 징계 협박으로 시달릴 것이다. 전교조는 이를 어떻게 뚫고 나갈 수 있을 것인가?
주제어
교육
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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