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태보다
- 2017/04 제27호
‘소송’과 ‘시장’으로 미세먼지를 해결하자고?
환경재단과 기후솔루션의 무책임한 제안을 비판한다
미세먼지 해법으로 제안된 배출권 거래제도
4월 20일 서울의 대한상공회의소에서 환경재단이 주최한 <미세먼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긴급 토론회>가 열렸다. 이기영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가 ‘대기오염과 건강영향’에 대해서 발표하고, 이어서 사단법인 기후솔루션의 이소영 변호사가 ‘국내 대기오염물질 총량제한거래제 도입과 한중일 연계 가능성’이라는 제목의 발표를 진행했다. 이기영 교수의 발표가 다소 일반적인 내용이었던 것에 반해, 이소영 변호사의 발표는 대기오염물질 배출권 거래제를 도입하자는 새로운 제안이었기 때문에 주목을 끌었다.
대기오염물질 배출권을 거래하자는 주장은 생소하지만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박시원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4월 12일 <조선일보>에 기고한 칼럼 "中의 미세먼지 감축, 배출권 매매로 유인해야"에서 “협력 강화와 강력한 환경협약으로 신속한 감축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협약이 강력할수록 중국이 외면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중국이 동참하게 하려면 발상을 전환해 경제적인 유인책 중심의 제도를 고안해야 한다”며, ‘한·중·일을 연계한 미세먼지 총량제한 배출권 거래제’를 제안했다. 덧붙여, 미국이 1990년대에 도입한 ‘산성비 프로그램(US Acid Rain Program)’을 모범적인 사례로 들고 있다.
21일 토론회에서 이소영 변호사의 논리도 같았다. 이소영 변호사는 현재의 농도규제 방식이 배출총량을 줄이지는 못한다며 총량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배출권 거래를 하게 되면, 한계감축비용이 낮은 감축기회에 접근이 가능”하다며, 이를 통해 정부의 더 강력한 감축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았다. 나아가 “중국 등 주변국에서의 감축활동을 국내 감축으로 인정하거나, 한중일 3국의 총량거래제 시장을 연계하게 되면, 3국 모두 보다 강력한 감축이 가능하고 중국에서의 감축활동으로 인해 우리나라도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미국의 산성비 프로그램이 좋은 사례로 소개되었다.
미국의 ‘산성비 프로그램’은 모범 사례인가?
배출권 거래제도를 옹호하는 논리에는 어김없이 ‘산성비 프로그램’이 언급된다. 1990년 청정대기법이 통과되면서 미국에서는 1995년부터 이산화황(SO2)에 대해 총량제한 거래제를 도입한 바 있다. 2003년부터는 질소산화물(NOx)에 대해서도 적용됐다.
이 정책은 일군의 학자들과 미국 환경청으로부터 “미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환경 제도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적은 비용으로 이산화황과 질소산화물은 성공적으로 줄였다는 것이다. 1990년 대비 2001년의 미국의 이산화황 배출총량은 31.6퍼센트 감소되었고, 질소산화물은 12.5퍼센트 감소됐다. 특히 산성비 프로그램의 주 타깃인 에너지 산업부문에서의 배출총량 감축은 이산화황이 32.0퍼센트, 질소산화물이 26.6퍼센트로 더 높았다.
물론 1980년대는 산성비가 주요 환경 이슈였다. 미국을 제외한 유럽과 일본도 산성비를 줄이기 위해 대기오염물질을 규제했고,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다. 이들 국가는 모두 배출권 거래제도가 아닌 전통적인 환경규제 방식을 도입했다. 특히 유럽의 경우에는 전통적인 환경규제 방식으로 미국보다 훨씬 나은 성과를 얻었다. 같은 기간 동안 유럽연합의 이산화황 배출량은 64.0퍼센트, 질소산화물은 26.0퍼센트 감소했다. 에너지 산업부문 배출총량에서는 이산화황이 64.2퍼센트, 질소산화물이 40.6퍼센트 감소했다. 미국보다 두 배 정도의 성과였다. 대기오염물질 감축에 있어 배출권 거래제도를 활용한 미국보다 전통적인 직접규제 방식을 택한 유럽에서의 성과가 훨씬 앞선 것이다.
미국의 대기오염물질 감소는 온전히 배출권 거래제도의 덕택인 것도 아니다. 미국은 배출권 거래제도 외에도 전통적인 직접규제 방식도 동시에 도입했다. 미국 서부산 저황탄의 가격이 급락한 것도 이산화황 배출 감소에 큰 역할을 했다.
미세먼지의 정치학
3~4년 전부터 봄철 미세먼지가 급격하게 심각해졌다. 미세먼지가 주요 문제로 부상하자 환경당국은 중국 탓을 하기에 급급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대기 정체 현상의 증가, 디젤 자동차의 급증, PM2.5라는 새로운 미세먼지 기준에 대한 무대응 등이 결합된 자신의 잘못을 감추고 어쩔 수 없는 외부적 요인에 의한 결과인 것처럼 문제를 호도한 것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연구 결과에서 밝혀졌듯이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치는 미세먼지의 중국발 요인은 평균 30퍼센트 수준에 머문다. 도심 지역의 자동차 배기가스가 주요 원인이고, 공단과 화력발전소의 오염물질 배출도 미세먼지의 거대한 배출원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와 언론은 ‘중국발’ 미세먼지라는 선정적인 용어를 만들어 중국의 산업화와 도시화를 탓하는 데에 매몰되었다. 이런 태도는 중국에 대한 인종주의적 비난 여론과도 결합되어 더 널리 퍼졌다.
이런 가운데 환경재단은 미세먼지 소송단을 모집해 중국 정부와 한국 정부를 대상으로 1인당 300만원을 배상하라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먼저 환경재단 최열 대표 등 7명이 배상을 청구했다. 4월 21일 열린 토론회의 주관 단체도 ‘미세먼지 소송모임’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이벤트는 미세먼지 문제의 원인을 중국으로 돌리는 여론에 힘을 실을 뿐으로 보인다. 이미 국내의 심각한 미세먼지 발생원은 알려져 있다. 대형 산업체, 석탄화력 발전소, 자동차가 그것이다. 이들을 어떻게 규제하고 저오염 배출원으로 대체할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 없이 법률 소송을 통해 문제를 환기하겠다는 발상은 매우 편의주의적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대안은 무엇인가?
환경운동연합은 “2022년까지 미세먼지 오염 수준을 절반으로”라는 기치 아래 다음과 같은 7가지 대책을 발표했다. 첫째, 미세먼지의 관리 기준을 선진국 수준으로 대폭 강화해야 한다. 둘째, 수도권에만 적용되는 강화된 대기오염기준을 전국으로 확대해야 한다. 셋째, 9기의 신규 석탄발전소 계획을 취소하고, 노후 석탄발전소는 조기 폐지해야 한다. 넷째, 자동차 교통 수요를 관리하고 대중교통을 강화해야 한다. 다섯째, 어린이, 노인 등 취약계층을 특별 관리해야 한다. 여섯째, 산업 부문의 에너지 수요를 줄이고 재생에너지를 확대해야 한다. 일곱째, 동북아 공동연구를 통해 대기오염의 상호영향을 규명해야 한다. (자세한 내용은 링크 참고.)
이러한 제안들은 소송이나 배출권 거래시장 도입보다 훨씬 직접적이고 바람직한 효과를 낼 수 있는 정책들이다. 물론 이런 변화는 기술적인 것만이 아니다. 변화가 진정으로 가능하려면 돈과 권력만 쫓는 신자유주의 사회를 환경과 사람이 우선되는 사회로 바꾸어내야 할 것이다. 그 과정의 주체는 기업과 관료가 아니라 각 지역에서, 또 전국에서 조직된 시민들이 되어야 한다. 기업의 이해관계에 종속되고 금융이나 회계·법률 시장을 키우는 방식으로는 미세먼지 없는 사회를 만들기 어렵다.
우리가 영향을 받는 미세먼지는 매우 지역적인 문제이기도 하고, 국가적인 문제이기도 하고, 세계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지역 차원에서의 에너지 민주주의와 주민들의 감시와 권력 강화가 필요하고, 국가와 동아시아·전 세계 차원에서도 실현돼야 한다. 기업, 금융, 기술관료 엘리트들이 주도하는 미세먼지 대책이 아니라, 시민들과 노동자의 권한을 키우는 미세먼지 대책이 필요하다. ●
- 덧붙이는 말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사회공공연구원, 사회진보연대 반빈곤팀 등에서 활동 중이다. 온갖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