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 건강과 사회
  • 2017/06 제29호

병원에 가면 오히려 병에 더 걸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건강한 육아를 위해 필요한 것

  • 보건의료팀 김진현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이하 '안아키')는 ‘자연주의 치유’를 표방하는 '다음 카페'(커뮤니티)다. 이들은 "병원이 병을 만든다"고 주장한다. 아이가 아플 때 병원을 보내지 말고 부모가 집에서 직접 치료해야 하며, 병원에 가면 오히려 병에 더 걸린다는 것이다.
 
5월 16일, 시민단체 ‘아동학대방지 시민모임’이 인터넷 카페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이하 안아키)’ 운영자를 의료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경찰청에 고발했다. 경찰이 수사를 시작하면서 까페는 폐쇄됐지만 운영진은 청와대에 탄원서를 제출하겠다고 맞서면서 논란은 점점 더 확산되고 있다.
 
현재 인터넷상에서는 안아키 치료법의 극단적인 사례만이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보다 눈여겨 봐야할 점은 "왜 부모들이 안아키 치료법을 받아들이는가?"이다. 안아키 운영자인 한의사 김효진이 쓴 책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를 살펴보면 저자의 주장이 부모들을 설득할 수 있었던 이유를 추측할 수 있다.
 
 

 

아이들이 건강하지 못한 건 모두 현대의학의 탓?

저자는 육아의 책임을 혼자서 떠안게 되는 엄마의 고충에 공감을 표하며 책을 시작한다. 특히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이른바 ‘워킹맘’의 어려움에 대해 자세히 서술한다. 워킹맘은 아이가 아플 때도 출근을 해야만 하고, 많은 시간을 들여 돌봐주지 못하기 때문에 죄책감을 느낀다. 만약 아이가 자주 아프고, 잘 낫지 않는다면 죄책감과 무력감은 더욱 심화된다. 이후에 병원의 상업화된 현실을 비판한다. 감기를 치료할 때 항생제를 쓰는 사례나 과잉치료로 인해 부작용이 발생하는 몇몇 사례들을 든다.
 
저자는 여기서 소아 건강 문제의 원인으로 현대의학을 지목한다. 아이가 자주 아픈 이유는 엄마가 잘 돌보지 못해서가 아니라, 현대의학에 의존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그래서 해결책으로 《오늘보다》처럼 페미니즘 운동이나 공공의료 확충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현대의학을 믿지 말고 병원에 가지 말라'고 말한다. 아이는 누구나 건강하게 태어났으며, 병원에 가지 않고도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주장은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수행한 연구에 의하면 의료보험이 없어 병원에 가지 못하는 사람은 보험이 있는 사람보다 사망률이 더 높았다. 소득 격차로 인한 건강 불평등을 보정한 이후에도 결과는 동일했다. 현대의학이 건강을 악화시키기만 한다면 이런 연구 결과는 나올 수가 없다.
 
역사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도 마찬가지다. 현대의학은 자본주의의 모순으로 인해 발생하는 건강 문제를 관리하는 과정에서 발달했다. 만약 효과가 없었다면 모순을 관리하지 못했을 것이고, 폐기되었을 것이다.
 

자본주의를 위한 구원투수, 공중보건과 예방접종

자본주의가 태동하던 시절, 기계제 대공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많은 수의 노동력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농촌에 흩어져 살던 인구들이 반강제적으로 도시로 이주해야 했으며, 이 과정에서 국가와 자본은 농민들을 궁핍화시키고 농촌에서 쫓아냈다.
 
도시는 갑자기 증가한 노동자들을 수용할 기반시설이 없었다. 가난한 노동자들은 상하수도 시설도 갖춰지지 않은 빈민가의 좁고 더러운 집에서 생활해야만 했다. 결핵, 콜레라, 장티푸스 같은 감염성 질환이 창궐해 매년 많은 수가 사망했다. 1848년 9월부터 1년 동안 런던에서만 1천5백 명이 콜레라로 사망했다. 19세기 초 영국 전체 사망자의 3분의 1이 결핵으로 죽었다.
 
그러자 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밝히려는 사회의학이 등장했고, 질병의 책임을 지배계급에게 묻는 사회운동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었다. 지배계급은 전염병으로 노동력이 손실을 입을뿐더러 정치적 정당성마저 위협받는 상황이었다.
 
그때 존 스노우가 식수 오염이 콜레라의 원인이라는 걸 밝혀냈고, 뒤이어 파스퇴르가 세균을 발견했다. 록펠러, 카네기 등 미국의 자본가들은 막대한 돈을 투자해 미생물학과 약리학을 발전시켰다. 미생물학적 지식을 근거로 상하수도 시설 등 공중보건 시설을 건설하고 약리학을 바탕으로 항생제를 개발했다. 그 결과 전염병의 원인은 세균, 바이러스와 같은 병원체에 국한 되었으며, 사회의학은 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사라졌다.
 
이처럼 현대의학은 자본주의의 모순으로 발생한 질병의 책임을 오로지 병원체에게만 돌리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대의학이 쓸모가 없다거나 허구적인 것은 아니다. 미생물학과 약리학에 근거한 치료가 효과가 없었다면 사회의학을 누르고 현대의학에서 헤게모니를 차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르게 생각해보면, 자본주의 사회가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현대의학의 힘을 빌려야만 한다. 오늘날과 같이 인구밀도가 높은 대도시는 전염병의 유행에 매우 취약하다. 이를 위해 상하수도 시설 등 공중보건에 필요한 기반시설을 건설했지만, 호흡기를 통해 전염되는 감염성 질환은 그것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호흡기 전염병의 대유행을 막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예방접종이다.
 
예방접종은 집단면역이라는 개념에 기초한다. 특정 감염성 질환에 대한 항체가 있는 사람이 전체 인구의 일정 비율 이상이면 그 감염성 질환은 유행하지 않는다. 그 비율은 질병에 따라 다르지만 100%인 것은 없다. 따라서 소수가 예방접종을 맞지 않는다 하더라도 문제가 없다. 간혹 예방접종을 하지 않았는데도 병에 걸리지 않았다면서 예방접종의 무효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 사람이 병에 걸리지 않은 이유는 다른 사람들이 모두 예방접종을 맞았기 때문이다.
 
안아키에서는 예방접종을 맞지 말고 차라리 그 병에 걸려서 항체를 발생시키자는 주장을 한다. 하지만 인구집단 대부분이 항체를 가지고 있어 병이 유행하지 않는 상황에서 그런 주장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그리고 소수지만 치명적인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전자본주의 사회, 모든 인구집단이 농촌에 거주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예방접종을 하지 말자는 주장이 좀 더 설득력을 가질 순 있다. 인구밀도가 매우 낮아 전염병의 대유행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시화된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이상, 현대의학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 살아남을 수 없다. 애초에 현대의학이 그런 목적으로 발달해왔고 지금도 그런 기능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의학이 알러지 질환을 치료하지 못하는 이유

현대의학은 감염성 질환을 관리하는 데는 대체로 성공했다. 허나 아직까지도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질환들이 있다. 알러지 질환이나 만성 질환과 같은 비감염성 질환이 바로 그것이다. 안아키 까페의 회원 중에도 아토피 피부염, 천식과 같은 알러지 질환을 가진 아이의 부모가 많았다. 현대의학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아토피 피부염이나 천식과 같은 알러지 질환은 오히려 크게 증가했다. 예컨대 천식의 경우, 1985년과 2001년 사이에 세계적 천식 유병률이 100퍼센트 이상 증가했다.
 
최근의 급격한 증가세를 보면 알러지 질환이 환경적 요인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고 짐작할 수 있다. 특히 태아의 발달 과정에서 큰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알러지 질환에 걸린 아이들은 이미 출생 당시 폐와 피부, 면역 기능에 이상이 있다는 연구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연구된 바에 의하면 임산부가 노출되는 화학물질과 음식이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태아 면역기능 이상발달과 상관관계가 밝혀진 화학물질에는 담배연기, 미세먼지, 경유차 배기가스, 살충제 등이 있다. 식생활에 있어서는 정제곡물로 구성된 저식이섬유 식단이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저식이섬유 식단을 섭취하는 임산부의 경우 장내세균총의 항상성과 다양성에 문제가 생긴다. 그런데 임산부의 장내세균 또는 장내세균의 부산물이 혈액을 통해 태아에게 전달되고, 그것이 태아의 면역기능 발달에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출생 이후에도 마찬가지인데, 신생아의 면역기능 발달에 장내세균총이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그리고 태아일 때 면역기능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한 아이는 장 점막도 미숙해 장내세균총을 형성시키는 기능이 떨어진다는 보고도 있다.
 
알러지 질환을 감소시키기 위해 환경을 변화시키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그 중 화학물질 배출을 줄이고 정제되지 않은 통곡물을 섭취하는 방법을 생각해보자.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어려운 일임을 알 수 있다.
 
 
 
먼저 화학물질은 대부분 상품 생산과 유통 과정에서 발생한다. 따라서 화학물질을 감소시키기 위해서는 이윤을 감소시켜야만 한다. 그리고 어떤 종류의 화학물질이 어떤 곳에서 얼마만큼 배출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이 과정 역시 특정 기업의 이윤을 감소시킨다. 그래서 삼성전자는 반도체 공장에서 사용하는 화학물질 리스트를 공개하지 않았다. 옥시는 가습기 살균제 안전성 보고서를 조작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기업들의 화학물질 배출과 은폐에 대해서 국가는 제대로 된 처벌을 내리지 않는다. 사유 재산에 대한 보호가 건강 증진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현대의학 역시 이 사실을 폭로하기는커녕 기업의 편에 서는 경우가 많다. 현대의학은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관리하기 위해 발달했기 때문에 이윤에 타격을 주면서까지 건강을 증진시키지 않는다. 대신 사람들에게 개인적 해결책을 제시한다. 마스크와 유기농 식품을 사게 하고, 운동과 금연을 권한다.
 
한편 통곡물은 자본주의 사회에 적합하지 않은 먹거리다. 20세기 초, 흰밀가루가 통밀가루를 대체하고 백미가 현미를 대체했다. 이유는 보관과 운송에 있어 비용이 훨씬 덜 들었기 때문이다. 통곡물은 지방을 함유해 정제곡물에 비해 쉬이 부패한다. 식이섬유와 영양소가 들어있는 겨와 배아를 모두 제거한 정제곡물은 무역 상품과 전쟁 식량으로 이용되었다. 아시아에서 백미 섭취가 대개 식민 지배를 받던 시절부터 시작되었다는 역사적 사실로도 증명 된다. 한국에서는 일본이, 필리핀에서는 미국이 도정기를 들여와 백미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통곡물은 껍질 때문에 오래 씹어야만 소화가 된다. 이에 비해 정제곡물은 식사시간이 훨씬 적게 필요했기 때문에 노동시간을 늘리는 데도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건강한 육아, 혼자서 해결할 수는 없다

안아키를 믿고 따르는 부모들의 하소연을 들어보면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지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여성에게 일과 육아를 모두 강요하는 이중부담의 현실. 알러지 질환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고 대증치료만 하는 현대의학. 주변에 어떤 유해 화학물질이 존재하는지 알 수 없는 불안감. 여기에서 비롯하는 무력감이 부모들로 하여금 안아키 치료법을 맹신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의학의 폐기가 대안이 될 순 없다. 현대의학의 과학적 성과들은 오히려 사회운동에 활용해야 한다. 우리 아이만 화학물질에 노출되지 않게 하는 개인적 실천보다는 화학물질에 대한 알 권리와 배출 감소를 요구하는 사회운동을 해야 한다. 부모들이 집에서 아이에게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한다고 문제가 다 해결되지 않는다. 아이도 자라서 학교에 가고 직장에 다닐 것이다. 학생과 노동자들이 학교와 직장에서 건강한 먹거리를 충분한 시간을 들여 먹을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제대로 된 ‘건강하게 아이 키우기 운동’이다. ●
 

참고 문헌

비센트 나바로 외. 보건의료: 사회․생태적 분석을 위하여. 공감. 2006.
홍윤철. 질병의 탄생. 사이. 2014.
김효진.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 에디터. 2016.
John W. Holloway et al., "Chapter 2: The Origins of Allergic Disease," in Middleton's Allergy Essentials, Elsevier, 2017. 
Thomas A.E. Platts-Mills, The Allergy Epidemics: 1870-2010, J Allergy Clin Immunol., 2015 July; 136(1).
Andrew Wilper, Health Insurance and Mortality in US Adults, Am J Public Health, 2009 December; 99(12): 2289–2295.
 
필자 소개

김진현 | 의사. 사회진보연대 보건의료팀에서 활동하며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건강권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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