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17/06 제29호
‘달빛정책’ 성공할 수 있으려면
문재인 정부 앞에 놓인 세 가지 장벽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는 ‘제재를 통해 북한 정권의 숨통을 조이자’로 요약할 수 있다. 2010년 천안함 사건 이후 이명박 정부가 시행한 5.24조치로 모든 민간 교류도 정부의 승인이 있어야만 가능하게 되었다. 남북 교역은 사실상 중단되었다. 2016년 1월, 4차 핵실험 이후 현재까지 약 1년 6개월 가량 거의 모든 민간 교류 신청은 불허되었다.
하지만 지난 5월 26일, 통일부는 한 민간단체의 ‘말라리아 남국 공동방역사업’을 승인했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실험이 불과 5일 전(5월 21일)에 진행된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조치라 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새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 식의 햇볕정책, ‘달빛정책’이 본격화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향후 문재인 정부의 대외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큰 장벽을 넘어야 한다. 문제는 그 어느 것도 쉽지 않다는 데 있다.
북핵 문제
첫 번째 장벽은 북핵 문제다. 지난 4월 미국과 중국의 정상회담 직후 ‘한반도 4월 전쟁위기설’이 대두된 바 있다. 당시 미국이 시리아에 가한 폭격이 북한을 향한 모종의 경고라는 해석이 나왔다. 곧이어 연례 한미연합훈련을 끝내고 호주로 향하던 칼빈슨 핵 항공모함이 한반도로 오고 있다는 기사가 쏟아졌다. 다행히 상황은 더 악화되지 않았다. 그러나 트럼프의 즉흥적 외교 스타일은 계속해서 우려를 낳고 있다. 미중 정상회담을 통해 트럼프 행정부는 ‘외교적 해결’과 ‘선제타격’ 카드 모두를 준비해 놓고 있음을 시사했다. 중국이 협조하지 않으면 “독자적으로 방도를 마련하겠다”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이처럼 트럼프의 외교정책은 현재까지 이슈 중심적인 측면이 강해 미국의 아시아 전략의 방향이 어디를 향할지 뚜렷하게 알기 어렵다. 그러나 중국을 압박하고 그 행동을 지켜보면서 계속적인 긴장상태를 유발하는 방식은 강도의 차이를 두고 이어질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전략적 인내’에 반대하고 있으나, 스스로 ‘전략적 인내’를 행사할 의지를 보이고 있는 역설적 상황이다.
반면 미중 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실험 속도는 빨라지고 있다. 북한은 올해 2월 고체연료 엔진을 사용한 북극성-2형 시험발사 성공에 이어, 지난 21일 한 차례 더 미사일을 발사했다. 신형 중거리탄도미사일의 대기권 재진입기술을 과시한 것이다. 물론 미국 본토까지 갈 수 있는 진입기술을 확보했는지는 불확실하다. 사거리가 길어질수록 속도가 빨라야하고, 대기권 진입 시 훨씬 높은 마찰열을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미사일 기술 개선에 비해 핵탄두의 소형화·경량화 개발은 상대적으로 느리게 진행되고 있다.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북한 핵 미사일의 실전배치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실질적으로 핵보유국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핵과 미사일 실험을 포기할 의사가 없다는 점은 분명해지고 있다. 틸러슨 국무장관은 미국이 “(북한의) 정권교체나 통일을 추구하지 않으며, 북한에 안전보장을 제공할 수 있다”고 언급했지만, 북한은 어떠한 반응도 하지 않고 미사일 실험을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가 민간 교류를 정치 상황과 별개로 진행한다 하더라도, 북한 핵 문제가 전향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대북 유화 조치에서 큰 성과를 내기 어려울 것이다.
대북제재
두 번째는 대북제재 문제다. 문재인 정부는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을 역전시키려 할 것이다. 문 대통령은 후보시절 이미 인도적 지원·남북교류·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 등을 언급했다. 5월 26일 통일부는 인도지원 단체의 대북접촉을 승인하기도 했다. 그러나 복잡하게 꼬인 문제가 눈앞에 놓여 있다. 북한을 체제변형시켜 남한의 경제적 하위파트너로 포섭하려 했던 햇볕정책에 대한 비판적 평가는 논외로 하더라도, 국민의 정부·참여정부를 계승하겠다는 문재인 정부가 과거 햇볕정책 시대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일까.
우선 북한에 대한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 결의가 존재한다. 이는 유엔 대북제재위원회의 승인이 없는 한 북한 내 어느 곳과도 은행거래를 할 수 없도록 한다.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와 관련해 부딪히게 될 문제이다. 이에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은 제재를 우회하는 방식의 거래를 찾겠다고 했다. 더 큰 문제는 남한이 제재를 무력화시킬 경우 중국의 제재이행 의사도 줄어들 가능성이 크고, 이에 미국이 크게 반발할 수 있다는 점이다. 국제 제재를 우회하는 것도 쉽지 않은 것이다.
또 하나는 더불어민주당이 합의하여 국회에서 통과된 ‘북한인권법’ 내용과 관련한 쟁점이다. 법안에 따라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은 국제적으로 수용되는 표준에 맞춰 진행되어야 한다. 즉, 임신 중인 여성, 유아, 취약층에 대한 지원을 우선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원의 투명성이 확보되어야 하고 기본적인 북한 내 모니터링 등이 동반될 수밖에 없다. 이를 북한이 수용할 것인지 여부도 문재인 정부를 곤란하게 할 것이다.
미 · 중 충돌 시나리오
마지막으로, 미·중 충돌 가능성이 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한반도를 넘어 더 넓은 바다로 향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 수십 년 간 해군력에서 막대한 우위를 점해왔다. 그러나 중국의 군사력이 강화되면서 이러한 지위는 위협받을 것으로 보인다. 대국굴기(大國屈起)를 선포한 중국은 태평양, 인도양에서 군사적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한다. 그 핵심에는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중국의 해군력과 미사일 능력이 있다. 중국은 이러한 반접근·지역거부(A2/AD) 능력을 강화시켜 미 해군이 아시아, 태평양에서 자유롭게 기동하려는 것을 막고자 할 것이다.
한편 ‘미군의 위대한 재건’을 부르짖는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27일 군사력 증강을 위한 대통령 각서에 서명한 바 있다. 대선 기간 중에는 현재 277척인 해군 함정 수를 350척으로 늘리겠다는 공약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만의 생각은 아니다. 민주당 계열로 평가받는 싱크탱크 미국신안보센터(CNAS)가 지난 5월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의 해군력 확장에 맞서기 위해서는 2030년까지 군함 350척을 확보해야 한다.
물론 테러, 해적 등의 문제에서는 양국이 협력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인도양-아시아의 영향력 확보라는 측면에서는 장기적으로 서로의 이익이 충돌한다. 미국은 이미 중국이 남중국해에 건설하고 있는 인공섬에 대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고, 중국은 인공섬 건설이 자신들의 주권적인 행동이라며 미국이 개입하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다. 앞으로 남중국해 문제로 양국이 군사적·외교적으로 충돌할 가능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미국이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에게 ‘특정한 역할’을 요구하게 될 경우다. 미국과 중국이 충돌할 때, 미국이 전통적인 동맹과 안보를 강조하며 한국의 역할을 주문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중국 역시 북한과의 관계 개선이나 이웃 국가 간의 관계를 강조하며 한국에게 접근할 것이다. 이미 우리는 사드를 둘러싼 논쟁에서 어떠한 역할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경제제재와 사드 배치라는 덤터기를 써버린 박근혜 정부의 외교참사를 목도한 바 있다. 문재인 정부는 주변 4개국(미, 중, 일, 러)에 특사까지 보내면서 외교관계를 잘 풀어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미·중 충돌이 현실화될 경우, 이를 돌파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5년을 돌파할 지혜가 필요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은 상대적으로 남북 관계를 안정시켰다고 평가받는다. 이를 계승했다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에 기대감을 갖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정작 햇볕정책은 아시아에서 미국의 군사적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까지 저지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북한이 결국 체제 위협을 느끼고 핵무기 개발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가지게 되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더욱 큰 문제는 앞선 세 가지 장벽이 문재인 정부만이 아닌 한국의 반전평화운동에게도 큰 장벽이라는 점이다. 과거 반전평화운동은 북한 핵 문제에 대해 다소 모호한 입장을 취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시기 반전평화운동은 반핵의 문제의식을 적극적으로 제기하는 한편, 미·중 갈등에 있어서도 평화를 깨뜨리지 말아야한다는 분명한 주장을 제기해야 한다. ●
- 필자 소개
이준혁 | 사회진보연대 반전팀에서 활동 중. 하루가 다르게 악화되는 한반도 시국에 섭취 알콜량만 하염없이 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