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보다
- 2017/07 제30호
점심시간도 없는 공장, 구미 최초 비정규직 노조 이야기
서평 : 벼랑 끝 몰린 노동자들의 작은 역사, 《들꽃, 공단에 피다》
주류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브레히트가 말했듯, 인류는 알렉산더나 시저, 진시황만을 기억한다. 라마의 건축노동자, 만리장성의 미장이, 비잔틴의 노예, 스페인 함대의 침몰에 슬퍼했던 이들은 기억하지 않는다. 문명과 한없이 이질적이고, 자신의 언로를 갖지 못한 피억압 대중은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첨단화된 미디어를 통해 ‘무엇이든 말할 수 있’는 사회에 살고 있다. 오늘밤 인터넷을 통해 내일 뉴스를 읽고, 댓글 창에 ‘자유롭게’ 생각을 적을 수 있다. 화젯거리에 대해 소셜미디어네트워크에서 제법 영향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물론 통치 권력에 의해 ‘허락된 한도 안’에서 말이다. 매스미디어와 뭇 지식인들은 퇴진 촛불 이후 우리 사회의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의'가 진전하고 있다고 평한다. 인기 팟캐스트 진행자들은 ‘위대한 승리’의 행동대장이고, ‘촛불’은 저항과 축제로 승리를 이룬 ‘완벽한 서사’로 마무리됐다고 말한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겐 열리지 않은 청와대
6월 26일부터 청와대 앞 도로가 24시간 내내 개방됐다. 50년만의 전면 개방이다. ‘열린 청와대’를 구현하고, ‘시민 편의를 확대’하기 위한 조치라고 한다. 검문소와 바리케이드도 사라진다. 5개월의 촛불 이후 비로소 통치 권력은 ‘열리’고, ‘민주화’된 걸까?
헌데 어떤 이들은 쫓겨나고 있다. 수십 명의 비정규직, 하청, 해고 노동자들은 정부종합청사 앞 농성장에서 천막을 빼앗기고, 쫓겨나야 했다. 바로 아사히글라스 사내하청 노동자들이다.
《들꽃, 공단에 피다》(아사히비정규직지회 지음, 한티재)는 노조를 만들자마자 해고된 후 2년 넘게 거리에서 싸우고 있는 스물두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피눈물로 쓴 ‘기록’이다. 아사히글라스 구미공장에서 일하던 이들은 동료 16명이 권고사직을 강요받은 사건을 계기로 노조를 만들었다. 박정희 시대 섬유산업의 메카이자 2000년대 이후 전자부품 공장을 대거 유치했던 구미공단에 세워진 최초의 비정규직 노조였다.
2015년 5월 29일 노조가 만들어진 후, 2주 만에 138명이 가입했다. 얼마 후 170명의 노동자들이 무더기 해고됐다. 노조를 설립한 지 불과 한 달만이었다.
이 책은 지극히 사소한 행복을 꿈꿔온 노동자들의 인생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풀어놓은 이야기다. 이들은 고교 시절 현장실습을 통해 처음 공장에서 일했다. 다른 공장에서 어용노조를 경험하며 ‘노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가져봤거나, 민주노총 사업장에서 정리해고에 맞서 극렬 투쟁을 경험해본 적도 있고, 법은 악법이라도 지켜야 한다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샌가 같은 공장에서 만났다. 노조를 만들기 전엔 서로 얼굴도 이름도 몰랐지만, 노조 결성 후엔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동지’가 됐다.
22명 하청노동자들의 스물두 가지 사연
필자들은 저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아사히글라스 사내하청 투쟁’을 말한다.
사업 실패로 아사히 공장에서 일하게 된 오수일은 대선 열기가 한창 뜨거웠던 지난 봄 광화문 광고탑에 올랐다. 여섯 개 투쟁 사업장 노동자들이 수십 미터 광고탑 위에서 27일을 굶었다.
남기웅은 엘지 공장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로서 냉장고를 만들던 시절을 떠올린다. 아침 조회에 무표정한 얼굴로 나타나 해고를 통보했던 사장의 얼굴, 그렇게 동료들이 해고된 날에도 기계처럼 일해야 했던 자신을 온몸으로 기억해낸다. 몇 년 후 그가 아사히글라스 공장에서 깨달은 진실이 하나 있다면, “하청 노동자는 어느 공장엘 가나 똑같은 현실을 마주한다”는 것이다.
최진석은 공장에서 먹던 배달 도시락을 떠올린다. 밥이 되고, 국은 짜거나 싱거우며, 김치나 단무지, 멸치 정도로 채워진 도시락은 단가 2500원 짜리였다. “사람 밥인지 개밥인지 구분이 안 갈 때도 많았”지만, “배가 고프니까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했”다. 인간답게 살아보자는 생각으로 노조에 가입한 이영민은 노래패 멤버가 됐다. 뭐든 해야 할 것 같아 시작했다.
글을 쓴 노동자들은 하나같은 고백한다. 노조를 만들기 전 가졌던 강한 편견과 과거의 노조 경험이 남긴 깊은 상처를. 이러한 편견은 믿음직하고 든든한 지회장을 만나면서 깨졌고, 상처는 동료들과 나눈 우애로 아물었다. 물론 이들의 투쟁은 쉽지 않았다. 가족들과의 불화, 생계에 대한 위협, 새벽 3시에 일어나 투잡을 뛰어야 하는 현실, 자본의 편만 들어온 구미시와 노동부, 경찰의 철저한 무관심과 탄압. 이런 어려움 속에, 사업장과 국경을 뛰어넘는 연대단체의 지지와 각자 역할을 찾아 묵묵하고 굳건하게 버티는 조합원들의 헌신이 있었다. 그것이 아사히글라스비정규직지회가 지금껏 버틸 수 있었던 이유였다. 이런 한 땀 한 땀의 애정과 땀방울이 책의 행간 곳곳에 스며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김대중 정권은 ‘고통분담’ 이데올로기를 유포하며 정리해고제를 도입하고, 노동조합을 공격했다. 구미시에 집중되었던 섬유산업은 점차 쇠퇴하고, 대신 전자산업이 늘어난다. 2000년대 들어 섬유, 디스플레이 산업이 구미를 떠나고, 구미공단의 공장들은 ‘비정규직 노동시장’으로 재편된다. 산업구조가 바뀌고 고용형태가 변화하니 노동자들의 구체적인 삶 하나하나가 급변했다. 꿈이 무너지고, 희망이 사라졌다. 바닥을 향한 경쟁이 일상화되고, 냉소와 체념이 삶을 지배했다. 그것이 노조를 만들기 전 아사히글라스 공장의 공기였다.
2017년의 군함도, 아사히글라스
한국 사회 왼편과 아랫물에서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이들에 대한 시선은 ‘배제’가 아니라, 단연코 ‘연대’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보이지 않는 권력에 맞서 노동자들의 힘을 만들 수 있다. 노조 만들었다는 이유로 대량 해고된 아사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조를 인정받고, 일터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 수 있다.
아사히글라스는 일제 시절, ‘군함도’를 만들어 조선 노동자들을 무자비하게 착취한 미쓰비시그룹이 만들었다. 오늘날 진짜 ‘군함도’는 영화관이 아닌 구미공단에, 정부종합청사 앞 농성장에 있다. 노동자들이 처한 삶의 진실은 보수언론이 쓰는 승자의 기록이 아니라 싸우는 노동자들의 절규와 기록에 있다.
“누가 일곱의 성문이 있는 테베를 건설했던가? 누가 몇 차례 파괴된 바빌론을 일으켜 세웠던가? 만리장성이 완공된 날 밤 벽돌공들은 어디로 갔던가?” 브레히트의 질문에 우리는 여전히 답할 수 없다. 훗날 이 질문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노동자들의 ‘말’을 듣고, 또 그들이 ‘말’하게 해야 한다.
묻자.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왜 싸움을 포기하지 않는가? 왜 울부짖는가? 그들은 어디로 가는가? 《들꽃, 공단에 피다》에 담긴 작은 역사에 답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