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 노동보다
  • 2017/07 제30호

'쎈' 수리기사들의 재기발랄 상경 투쟁

삼성서비스 수리기사들이 ‘원청 직접 교섭’을 요구하는 이유

  • 안민지
“삼성~ 교섭에 나서라~ 삼성~ 교섭에 나서라~” 요즘 삼성전자서비스 수리기사들이 즐겨부르는 노래다. 응원가 가사를 바꾼 것이라 중독성도 강하다. 현장에서 하도 불러대니 비조합원 동료들도 흥얼거린다고 한다. 이 노래가 지난 5월 27일 서울구치소 앞에서 크게 울려 퍼졌다. 이곳에는 최순실 게이트 주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4개월 넘게 수감 중이다.

전국 곳곳의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 600여 명이 모였다. 노동자들은 “180만 노동자의 사용자인 이재용 부회장은 진짜 사장으로서 원청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다할 것을 촉구한다”고 외쳤다.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원청인 삼성전자에게 직접 교섭을 요구한다는 의미다.
 
 

왜 직접 교섭인가?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은 왜 직접 교섭을 이야기하고 있는 걸까? 원청 사용자와 교섭할 권리가 하청 노동자의 ‘노조 할 권리’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서비스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96퍼센트가 간접고용된 비정규직이다. 삼성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면 하청 협력업체를 폐업시켰다. 파업 시 투입되는 원청 대체인력은 아무 법적 제재도 받지 않았다. 교섭에 나오는 협력사 사장 역시 “나는 아무 결정 권한이 없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이 온전히 보장되려면 실질적 권한을 가진 상대가 책임감을 보여야 한다. 원청 사용자가 직접 교섭에 나서야 실질적인 변화가 만들어진다.

2017년 임금교섭에 나선 삼성전자서비스 하청센터들은 현재 138만 원인 기본급을 ‘4만 원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최저임금 1만 원’을 논하는 시대에 턱없이 낮은 액수다. 협력사 사측은 “원청이 지급한 수수료로는 이게 최선”이라며, 노동조합이 원청을 압박해 알아서 따내라고 말한다. 반면 삼성은 “우리는 아무런 관련도, 책임도 없다”며 사용자로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간접고용 비정규직이라는 기형적 고용형태에 야기한 이중착취다. 그러면서 사용자로서 책임은 원·하청 누구도 지지 않는다.

재벌사 하청노동자가 생각하는 개혁의 핵심은 재벌대기업의 사용자성을 확장하는 데 있다. 재벌은 지난 수십 년간 노동자와 국민의 희생 덕에 막대한 부를 쌓았지만 그 이윤은 총수일가가 사유화했다. 경영 실패로 인한 손실은 노동자와 국민에게 떠넘기기 일쑤였다.

그럼 개혁은 어떤 방향으로 이뤄져야 할까? 성과 독식에는 재분배, 손실 전가에는 책임 확장이 답이다. 간접고용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노동자 피땀을 갈취해온 재벌 총수가 ‘하청노동자를 포함한 관련 노동자’에 대해 사용자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
 

재벌개혁 실천단 ‘쎈’의 활약상

지난 6월 13일,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재벌 개혁과 노조 할 권리를 요구하며 무기한 파업을 선언했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솔선수범 투쟁하여 사회 변화를 촉진시키겠다는 포부를 갖고 시작한 일이다. 이름은 ‘재벌개혁 실천단 쎈(이하 ‘쎈’)’이다. ‘쎈(SSEN; Samsung Servicecenter ENgineer)’은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의 기술-노동자로서 자부심이 깃든 호칭이기도 하다. 매주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3박 4일 동안 30여 명을 한 팀으로 구성해서 다양한 실천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소주 한 잔 합시다’ 프로젝트 
 

이렇게 재기발랄해도 되는 거야?

상경 투쟁 첫 주 ‘쎈’의 일정은 6월 13일부터 16일까지 진행됐다. 서울, 충청, 부산지역 조합원 30명이 서울 곳곳을 누볐다. 미키마우스의 귀를 닮은 머리띠엔 이런 문구가 적혀있다. ‘재벌 개혁’, ‘직접 교섭’. 쨍쨍 내리쬐는 햇빛을 반사하는 형광색 조끼에는 “180만 노동자의 사용자 이재용은 교섭에 나서라!”라고 적혀 있다.

수리기사들은 따릉이(서울시 공공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자신의 요구를 알리고, 문재인 정부가 설치한 ‘광화문 1번가’ 발언대에도 올랐다. 국가인수위원회 사무실과 서울역 앞에서 플래시몹을 펼치기도 했다. 호기심을 보이는 시민들도 종종 보인다. “삼성에도 노동조합이 있었어요?”, “촛불 이후에 재벌 개혁은 어떤 걸 말하는 거예요?” 묻는다.

노동자들은 “문재인 대통령님, 소주 한잔 합시다! 매주 수요일 저녁 6시에 청와대 100미터 앞에 나와 있겠습니다”라고 호소하고 있다.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와 재벌 개혁을 주제로 진솔한 생각을 나눠보자고 했다. 이런 계획으로 ‘쎈’은 수요일 저녁마다 효자동 치안센터 앞에서 토크콘서트를 이어가고 있다. 90년대 인기곡 ‘그녀를 만나는 곳 100미터 전’을 개사한 노래를 부르고 율동도 한다.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의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노력의 일환이다. 목요일 저녁에는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과 서초동 삼성본관 앞에서 촛불문화제를 연다. 빌딩 풍경을 이불 삼아 해가 뜰 때까지 한뎃잠을 잔다.
 

즐겁게 싸우면 이긴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은 “요즘 노동조합 하는 게 너무 재밌다”고 말한다. 한마음으로 노래를 부르거나 광장에서 단체 율동을 하고, 시내를 활보하며 시민들을 만나다 보면 절로 유쾌해진다. 그러다 보니 종횡무진 활약상을 페이스북에 신나게 올린다. 지회장과 수석 등 임원들부터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주변에서 뭐가 그리 즐겁냐고 물어본다. 삼성에서 노동조합 하는데 미치지 않고서야, 즐기지 않고서야 이길 수 있겠냐?”며 활달한 분위기를 이끌고 있다.

무엇보다 이런 실천은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중앙의 일방적 기획이 아니라, 조합원의 제안으로 만든 사업이란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의견을 주고받을수록 활동이 풍성해진다.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는다. 두 배, 세 배의 시너지 효과가 일어난다. 세상을 바꾼다는 자부심으로 재벌개혁 투쟁을 힘차게 벌이고 있는 삼성전자 수리기사들의 투쟁이 어떻게 나아갈지 더욱 기대된다. ●
 
 
필자 소개

안민지 | 모자 모으는 게 취미인 20대 노동운동가.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교육선전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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