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 필름X정치
  • 2017/08 제31호

핵발전의 위험과 절멸 드러낸 영화들

<클라우드>, <판도라>, <실크우드>, <두더지>

  • 홍명교

<클라우드 Die Wolke>, 2006, 독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교외의 조용한 마을. 고등학생 한나와 엘마는 첫 키스와 함께 사랑을 확인한다. 곧이어 근처 핵발전소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폭발 사고가 발생한다. 구름이 다가오고 마을은 아수라장이 된다. 낙진 전에 다른 도시로 피난을 가야 하는 절체절명의 상황. 엘마는 한나와 함께 떠나려 하지만, 한나는 어린 동생을 챙겨야 한다. 아이들은 방사능으로 가득한 죽음의 구름을 피해 병원에서 재회한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배경으로 하는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사람들이 떠나고 검은 구름이 휩쓸고 난 후의 마을은 폐허에 가깝다. 긴박한 상황에서 도시를 탈출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방사능의 공포가 내 곁에 와있는 것처럼 생생히 보여준다.

문제는 방사능 유출 경보와 함께 시작된 한나와 엘마의 러브스토리다. 절멸의 위기는 둘의 감정을 부풀리지만, 좀체 둘의 사랑이 왜 그토록 격렬해졌는지 알기 어렵다. 방사능 재난이라는 메인 스토리에 대한 기계적이고 도구적인 대쌍처럼 느껴질 뿐이다.

 

 

<판도라 Pandora>, 2016, 한국

 

지난해 말 개봉해 핵발전소의 위험성을 폭넓게 알린 이 영화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드러낸 진실을 가장 현재적이고 ‘한국적’으로 풀어낸다. 소재만 바뀌었을 뿐 <해운대>나 <타워> 같은 재난 영화들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역대 최대 규모의 강진에 이어 핵발전소 폭발 사고라는 초유의 재난을 맞이한 상황에서 발전소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인근 주민들이 어떻게 싸우는가가 영화 설정의 전부다. 컨트롤타워는 보이지 않고, 정치인들은 계산기를 두드리기에 여념이 없다. 대통령은 ‘리더’이기보단 중2병 환자에 가까워 보인다. 재난으로부터 사회를 구하려는 사람은 일군의 평범한 노동자들밖에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영화는 소시민들의 기적에 가까운 대처와 영웅적인 헌신으로 절멸적 상황을 저지하는 것으로 끝난다. 여기엔 지독한 신파가 밑바탕으로 깔려있다. 

신파 드라마의 완성을 위해 몇 분 안에 치명적 피폭을 당할 정도로 방사능 수치가 높은 현장으로 방제복도 갖추지 않은 소방관들과 노동자들을 뛰어들게 하는 설정은 경악스럽기 짝이 없다. 노동자들이 더 큰 재앙을 막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장면이 정점인데, 후쿠시마 원전에서 마지막까지 남은 이들을 ‘결사대’라 칭하며 영웅시했던 일본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가장 한국적이면서 세계적인 장면인 셈이다.

하지만 영화 내내 핵발전소가 왜, 어떻게 위험에 직면할 수 있는지 설명해준다는 점에서 교양의 효과가 있다. 특히 컨트롤타워 부재와 비민주적 운용, 정보의 편중 등 한국 사회의 특이성이 어떻게 위험을 부추기는지 주인공들의 ‘입’을 통해 보여준다는 점이 흥미롭다. 핵발전 문제에 있어서 우리에겐 여전히 ‘교양’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실크우드 Silkwood>, 1983, 미국

 

영화 <실크우드>는 실존 인물인 캐런 실크우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미국 오클라호마 주의 플루토늄 가공처리 공장 커맥기(Kerr-McGee) 사에서 엔지니어이자 기업노조의 교섭위원으로 일했던 실크우드는 교섭 도중 몇몇 석연치 않은 사건을 접한다. 동료 노동자들이 겪는 빈번한 방사능 사고와 그를 둘러싼 미심쩍은 정황을 알게 된 것이다. 워싱턴D.C의 상급노조 활동가 마조치와 접촉한 실크우드는 본격적으로 공장의 안전 문제를 조사하게 된다.
 

회사는 노조를 깨려고 하고, 노동자들에게 하루 12시간 2교대를 강요하며 막대한 이윤을 얻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실크우드와 활동가들은 안전 문제를 폭로할 결정적 단서를 쥐고 <뉴욕타임즈>와 접촉하려 한다. 그즈음 실크우드는 의문의 피폭을 당하는 등 여러 난관에 봉착하는데, 그녀가 대의를 포기하지 않고 싸워가는 과정의 심적 고통은 무척이나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영화는 실크우드가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끝난다. 실제로 실크우드는 그렇게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고, 동료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진실은 규명되지 못했다. 이 갑작스러운 엔딩은 ‘뉴아메리카 시네마’라 불렸던 당대의 여느 사회적 리얼리즘 영화들이 그렇듯 어떤 스펙터클도 없다. 영화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어메이징 그레이스>가 용기 있는 활동가이자 평범한 여성 노동자, 세 아이를 두고도 따로 살아야 했던 외로운 이혼녀 실크우드의 삶과 투쟁을 위로한다. 34년 전의 젊은 메릴 스트립이 실크우드의 개성 넘치는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다.

공장 내의 갈등은 핵발전과 유관한 일터의 노동자들이 겪는 아이러니를 상기시킨다. 이들은 자기들을 치명적인 재해로 내몰 수도 있는 플루토늄 노출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진실을 파헤쳐 폭로하고자 하는 실크우드의 활동을 불편해한다. 진실에 접근하면 공장이 폐업하고 자신들의 일터가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수원 노조의 저항에서 보듯, 오늘날 탈핵과 에너지 전환이 핵발전소 노동자들이 겪는 고용 불안을 사회적으로 해소하는 과정 없이는 쉽게 이뤄질 수 없음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두더지 ヒミズ>, 2011, 일본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재앙 이후 모든 것이 파괴된 땅이 이 영화의 출발이다. 주인공 스미다는 재난으로 부모를 잃은 고등학생이다. 아무도 남지 않은 집에 살며, 학교에도 다니지만, 어떤 희망도 품지 않는다. “너희는 꽃이야”, “꿈을 가져!”라고 말하는 담임 선생님의 말은 그에게 어떤 감흥도 주지 못한다.
 
감독인 소노 시온이 보기에 일본 사회는 장기 불황의 늪이 끝날 줄 모르는 가운데 “일본엔 희망이 없다”는 명제가 지배하고 있다. 팬시영화와 기획영화가 지배하는 그곳에서 그는 ‘희망 없음’을 다른 작가들처럼 다루지 않는다. <두더지>는 ‘재난 이후’ 평범하게 사는 게 유일한 목표인 스미다의 삶에 원전 폭발 이후 모든 것을 잃은 홈리스들, “네가 죽어주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하던 아버지, 스미다를 버리고 사라진 어머니, 스미다를 짝사랑하는 차자와가 개입하며 이야기를 이룬다.

궁극적으로 이야기를 이끄는 힘은 폐허 위의 폭력이자, 자신에 대한 무지가 이끌어낸 출구 없는 분노다. 영화 속 누군가는 “자신이 도대체 누구인지” 알려달라며 절규하는데, 절멸에 가까운 재앙 이후 국가가 어떻게 무너지고 변이되는지 말하는 듯하다. 대안사회의 길은 보이지 않고, 자본과 폭력이 가득한 악무한. 어른들이 스미다에게 남긴 건 아버지의 부채와 사채업자가 준 권총뿐이다. 어쩌면 이곳이 절멸 이후 절망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는 그가 찾아야 하는 출구인지도 모른다.
 
 
후루야 미노루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하기로 한 소노 시온은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이미 써두었던 시나리오를 폐기했다. 대신 대지진 이후의 폐허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로 고쳤다. 원작과 달리 영화는 스미다에게 절룩대고 비틀거리더라도 ‘살아남아 버틸 것’을 요구한다. 이는 감독이 동시대의 일본 민중, 좁게는 청년들을 향해 던지는 외침이기도 하다. “스미다 간바레!” “뭔가 말해!” “포기하지 마!” “꿈을 가져!” “너는 꽃이야!” 스미다와 차자와가 폐허 위를 달리며 외치는 절규가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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