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강과 사회
- 2017/09 제32호
문재인케어 최대 수혜주는 줄기세포주?
의료산업 규제 없이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없다
8월 9일 청와대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을 발표했다. ‘문재인케어’로 불리는 이 대책은 의학적 비급여 완전 해소, 의료비 상한액 적정관리, 긴급 위기 상황 지원 강화를 3대 추진방향으로 삼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핵심적이고 논란이 많은 부분이 ‘비급여 해소’다. 문재인 대통령은 “복지는 성장 전략의 하나”라며 문재인케어에 대한 굳은 의지를 보였다.
‘복지가 성장’이란 말은 정부가 보건의료를 복지 증진 수단뿐만 아니라 ‘신성장’을 이끌어낼 산업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7월 발표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서 4차 산업혁명을 통한 산업 발전 전략을 제시한 바 있다. 사실 이런 관점은 노무현 정부 때 시작되어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 이르기까지 한국 보건복지 정책의 일관된 기조였다.
보건의료산업의 4차 산업혁명?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신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는 ‘보건의료산업의 4차 산업혁명’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뿐만 아니라 막대한 건강보험 재정을 낭비하게 될 것이다. 보수언론은 문재인케어가 시행되면 도덕적 해이에 빠진 환자들이 건강보험 재정을 낭비할 거라 주장하지만, 실제 건강보험 재정을 낭비할 주체는 환자가 아니라 의료기기 기업과 제약 기업들이다. 건강증진 효과는 떨어지고 비용만 비싼 신의료기기와 신약을 4차 산업혁명이라는 명분으로 팔아치울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 기업들에게 유통 경로를 열어줄 정책이 바로 이번 문재인케어에 포함된 예비급여다. 대책 발표 후 증권가에선 제약업계에 호재라는 반응과 악재라는 반응이 엇갈렸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지적되는 것은 세포치료제 같은 신의료기술이 가장 많은 수혜를 받을 거란 사실이다. 미래에셋대우의 한 분석가는 2014년 7월부터 2년에 걸친 임플란트 급여 단계별 시행 후 국내 임플란트 시장이 빠르게 성장한 사실을 지적하며, 예비급여도 비슷한 효과를 가질 거라고 예측했다. 특히 세포치료제와 유전자치료제를 개발하는 국내 바이오업체에 유리하게 작용할 거라고 봤다.
신의료기술, 특히 세포치료제가 수혜를 받을 거라는 예측은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높은 기대를 근거로 한다. 보건의료부문 4차 산업혁명 기술로 인정받고 있는 게 정밀의료(유전체의학), 재생의료(줄기세포), ICT의료(원격의료)이기 때문이다.
정밀·재생·ICT의료, 효과 있을까?
정부의 기대와 달리 아직까지 정밀의료·재생의료·ICT의료는 건강증진 효과가 미미하다. 효과가 없는 의료기술은 시장성 역시 담보할 수 없다. 4차 산업혁명을 촉발시킬 거라 기대를 걸기엔 시기상조인 셈이다.
정밀의료는 개인의 유전자를 분석해 맞춤형 질병 진단·치료법을 개발하는 치료법이다. 현대의학의 당면 과제인 만성질환 치료에 정밀의료가 효과를 발휘할까?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캠퍼스 라파포트 교수의 2016년 연구에 의하면, 유전적 요인이 전체 사망에 기여한 바는 16.4퍼센트에 불과했다(2000년 기준). 노동조건, 생활양식과 환경 등 구조적 요인들을 바꾸지 않은 채 유전자만 분석·조작하는 정밀의학은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
재생의료는 줄기세포 치료가 대표적이다. 줄기세포 치료는 병이나 사고로 손상된 부위에 줄기세포를 넣어 분화하도록 하여 본래 기능을 회복하는 치료법이다. 하지만 줄기세포는 특성상 부작용 위험이 크고 임상 적용이 어렵다. 아직까지 미국 FDA 승인을 받은 줄기세포 치료제는 단 한 개도 없다. 그만큼 개발이 어렵고 상용화가 요원하다는 뜻이다.
ICT의료 역시 마찬가지다. IT기술을 의료에 접목한 ICT의료의 대표주자는 바로 원격의료인데, 원격의료기기에 건강증진 효과가 없다는 사실이 최근 연구들에 의해 속속 밝혀져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의사-환자간 원격의료’라는 제도 자체는 추진하지 않을 것을 밝히면서도, 정작 원격의료기기를 이용한 ‘만성질환 관리사업’과 ‘모바일 헬스케어 시범사업’은 그대로 진행하고 있다. 원격의료는 버리고, 원격의료기기는 살리는 전략이다.
예비급여는 진정 필요한가
문재인케어에서 비급여의 급여화 정책의 핵심은 바로 예비급여다. 예비급여는 안전성, 유효성은 입증됐으나 비용효과성이 입증되지 않은 의료기술에 대해 50·70·90퍼센트의 본인부담률을 적용해 부분적으로 급여화하는 것이다. 3~5년간 평가한 후 지속여부를 결정한다.
신의료기술이 환자의 몸에 시행되려면 세 가지 절차를 거쳐 두 가지 효능을 입증받아야 한다. 먼저 식약처에서 물리·화학적 안전성과 유효성(건강증진 효과가 있는지)을 검증하고 품목허가를 내 준다. 이 과정에서 임상시험 환경이나 실험실 환경에서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평가한다. 이후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하 NECA)에서 임상적 안전성과 유효성을 평가한다. ‘임상적’이란 실제 의료현장에서 시행될 경우에 나타날 장·단기적 효과를 평가하고 부작용이 없는지 검증한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에서 건강보험 적용 여부를 판단해 급여와 비급여로 구분한다.
신의료기술 중엔 안전하고 효과가 있지만 기존 의료기술에 비교해선 효과가 낮고 비용은 높은 것들이 있다. 이 경우 ‘비용효과성이 떨어진다’고 한다. 대표적 사례가 로봇수술이다. 대부분의 질환에서 복강경수술보다 효과가 떨어지는데 비용은 훨씬 높다.
현재 한국에서는 신의료기술에 대한 비용효과성 평가는 급여 적용 여부 결정 시 심평원에서 진행한다. 제대로 된 평가 없이 자의적으로 결정한다는 비판도 많다. 더욱이 박근혜 정부는 작년 말 심평원의 급여 결정 판단 기간을 기존 150일에서 100일로 단축시켰다.
충분한 시간 동안 제대로 된 비용효과성 검증을 실시하고, 그 결과를 환자들이 알 수 있게 공시한다면 예비급여는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비용효과성이 떨어지는 기술에 대해 3~5년간 예비급여 적용으로 인해 발생할 건강보험 재정 낭비도 사라진다. 만약 비용효과성이 뛰어나다면 예비급여 적용 없이 바로 급여화하면 된다. 영국의 경우에도 급여 결정시 비용효과성 평가 자료를 반드시 참고하게 되어 있다.
의료자본 이윤 위한 건강보험 재정 낭비
충분한 비용효과성 검증 과정과 사회적 토론을 거친 후에 비급여를 급여화한다면, 예비급여란 명목으로 건강보험 재정을 낭비하지 않아도 된다. 굳이 예비급여란 선택지를 꺼내든 이유는 보건의료산업의 발전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모든 비급여의 급여화를 선언하면서도 지난 십여 년 동안 진행된 보건의료부문 규제 완화 정책은 하나도 되돌리지 않았다. 보건의료를 수익 창출의 수단으로 이용할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원격의료기기나 정밀의료에 필요한 의료기기를 제대로 된 신의료기술평가나 비용효과성 평가 없이 일단 시장에 출시시킨 다음 예비급여를 적용할 계획인 것이다. 예비급여가 적용되면 시장이 넓어져 매출을 증가시키고, 예비급여가 적용되는 3~5년 간 환자들로부터 충분한 임상 데이터도 얻게 된다.
하지만 원격의료나 정밀의료는 효과나 비용효과성이 기존 기술에 비해 낮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경우 몇 년 간 건강보험 재정으로 의료기기 업체들의 임상시험을 도와주는 게 된다. 성공할 경우의 수익은 기업이 가져가지만, 실패할 때의 비용은 건강보험이 지원하는 꼴이다.
문재인케어는 의료기기 외에 약제에 대한 선별급여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고가 항암제를 예시로 들었지만, ‘4차 산업혁명’을 위해 줄기세포 치료제에도 선별급여를 적용할 확률이 높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셀트리온 등이 주력하는 의약품인 바이오시밀러의 경우 이미 특혜를 적용받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임상시험을 수행한 바이오시밀러의 경우 약가협상 없이 높은 가격을 책정해 주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줄기세포 치료제가 문재인케어의 진정한 수혜자라는 증권가의 예측은 타당하다.
보건의료를 4차 산업혁명 도구로 보면, 문재인케어는 실패한다
건강보험 흑자 20조원은 보수언론의 예측과는 다르게 ‘도덕적 해이에 빠진 환자들’이 아니라, 의료기기 기업과 제약 기업에게 갈 것으로 보인다. 재정을 쓰고도 보장성이 개선되지 못한 사실이 드러나면, 보수세력의 거센 역풍을 맞을 것이다. 이후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은 자취를 감추게 될 지도 모른다.
문재인 정부가 진정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하려면, 의료기기와 제약 부문에 대한 규제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 먼저 의료기기에 대해서는 신의료기술평가와 비용효과성 평가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 기존 등재비급여 의료기술을 급여화할 때는 비용효과성 평가가 선행되어야 한다. 제약 부문의 선별급여 도입 결정을 철회하고 줄기세포에 대한 온갖 특혜 정책과 법안을 모두 폐기해야 한다. 만성질환 관리사업에서 원격의료기기를 사용하지 않아야 하며, 모바일 헬스케어 시범사업은 당장 중단해야 한다. 규제 완화라는 적폐 청산 없이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도 없다. ●
- 필자 소개
김진현 | 의사. 사회진보연대 보건의료팀에서 활동해왔고, 이번 가을부터 정책교육국장으로도 활동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