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사회운동
- 2017/01 제24호
인종주의 이민정책으로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는 트럼프 정부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직후 연이은 반(反)이민, 반(反)무슬림 행정명령에 서명해서 격렬한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난 25일에는 반이민 장벽을 멕시코 국경에 건설한다는 명령과 미등록 이민자 체포에 관하여 협조하지 않는 ‘이민자 보호 도시’(연방이민법 위반에 대해 기소하지 않는 것, 연방경찰이나 출입국과 협조하지 않는 것, 지역 경찰이나 공무원이 이민자의 체류자격에 대해 묻지 못하도록 규정하는 것 등의 적극적인 보호를 하는 곳)에 재정지원을 중단한다는 두 가지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연이어 27일에는 무슬림 국가인 시리아, 이라크, 이란, 리비아, 예멘, 수단, 소말리아 등 7개국 국민의 입국을 90일 금지하고 난민입국 프로그램도 120일 중단하며 난민심사를 강화하며 시리아 난민 수용을 무기한 중단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트럼프는 미국과 미국인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이민자와 무슬림에 대한 차별을 강화하고 인종과 종교를 내세워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갈등으로 몰아넣는 비열한 반역사적인 조치들이며 이는 결코 용납되어서는 안된다.
우선 멕시코 국경의 반이민 장벽 건설 문제를 보면, 3천 킬로가 넘는 국경선 가운데 이미 설치되어 있는 곳을 제외하고 1천6백 킬로를 새로 건설하고 100억~400억 달러에 달하는 비용을 멕시코가 부담하게 한다는 내용이다. 멕시코는 한 푼도 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멕시코 등 중남미에서 미국으로의 불법이민이 증가해 온 주된 이유는 1994년에 시작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때문이다. 이로 인해 값싼 미국농산물이 밀려들어오면서 멕시코 농업이 붕괴하고 멕시코가 미국의 하청기지가 되면서 먹고 살기 어려워진 멕시코인들이 미국으로 건너간 것이다. 한 해에 대략 40만 명이 미국으로 갔다.
그런데도 자유무역협정으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초래한 이민 물결의 증가에 대한 책임을 지기는커녕 장벽을 설치해 이를 막겠다는 것은 이익만 취하고 부작용은 떠넘기겠다는 추악한 발상이다. 국경통제를 강화한다고 해서 이민 시도는 별로 줄어들지 않을 것이고, 입국이 어렵고 위험해지면 이민을 위한 비용만 증가하여 이민브로커들의 배만 불릴 것이다.
둘째, 이민자 보호도시에 대한 연방재정지원 중단은 트럼프정부가 재정을 무기로 해서 미등록체류자 단속추방이라는 전쟁을 벌이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재정지원 중단은 사회적 약자에게 커다란 타격이 될 것이다. 미주중앙일보에 따르면 뉴욕, 로스앤젤레스, 워싱턴디시 등 대도시 39곳과 카운티 364곳이 보호 도시를 표방하고 있는데, 뉴욕의 경우 시 예산의 8.5%가 연방정부지원금이고 주로 저소득층과 노인, 장애인 등에 대한 주거비 보조금과 교육지원금 등이라고 한다. 즉 미등록체류자 단속에 소극적이라는 이유로 연방재정지원을 중단하게 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저소득계층과 사회적 약자들이 입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그러나 미국 내 미등록 이민자들은 1천1백만 명에 달하고 이들을 다 쫓아낼 수도 없거니와 벌써 해당 도시들과 이민자커뮤니티 및 운동단체들에서 반발하며 항의행동을 벌이고 있다.
셋째, 7개국 무슬림 국민 입국과 난민입국 프로그램을 일시 금지하겠다는 것은 테러위협을 빌미로 반(反)무슬림 정책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며 무슬림 전체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이미 국제적 및 국내적으로 엄청난 항의사태에 직면하고 있다. 해당 국가들의 반발과 프랑스, 독일 정부 등의 반대 입장에서부터 구글과 페이스북 같은 IT 기업의 항의, 미국 내 주요 국제공항에서 벌어진 대규모 항의시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반발을 초래했다. 이에 백악관이 영주권자는 입국금지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한발 물러섰지만 항의는 지속되고 있고 더욱 커질 것이다. 더욱이 이 정책은 근거도 없는데, 미국 내에서 벌어진 테러가 대부분 미국 출신의 국민에 의한 자생적 행위였기 때문이다. 또한 시리아나 이라크 등 지목된 국가 대부분은 미국이 과거와 현재에 군사적으로 개입해서 상황을 악화시키고 군사갈등을 조장하여 극단주의 세력을 키웠고 난민을 발생시킨 나라들인데 그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뻔뻔하기 그지없을 뿐이다. 예컨대 시리아의 대규모 난민사태에 대해 미국은 2015년 회계연도에 고작 1천5백 명을 받아들이다가 국제적 압력이 커지자 2016년에야 1만2천5백 명 정도를 받아들였다. 그런데 트럼프는 이러한 시리아 난민조차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미국과 세계 자본주의체제가 겪고 있는 경제불황과 이민과 난민 증가, 미국과 유럽의 잘못된 군사정책으로 인한 테러리즘의 확산 등에 대해 미등록 이민자와 무슬림을 적으로 설정하여 대중의 불만을 왜곡된 방향으로 선동해 나가는 우익 포퓰리즘 정책의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그러나 이는 유색인, 이민자, 무슬림에 대한 인종차별이며 사회적 적대를 확대하는 극히 위험한 방향이다. 이는 한국에서도 정부가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단속추방을 확대하고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다. 국내적으로 그리고 국제적으로 연대를 강화해서 반이민, 반무슬림 인종주의 정책에 대해 반드시 제동을 걸자. 적대와 차별이 아니라 연대와 권리로 나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