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경제
- 2017/11 제34호
한미FTA 재협상 쟁점과 사회운동의 과제
추석이었던 지난 10월 4일 한미통상당국은 제2차 한미FTA 공동위원회에서 한미FTA 개정협상에 착수하기로 합의하였다. 연휴 직전까지도 문재인 정부는 영향 평가를 위한 공동 연구가 우선이라며 큰소리를 쳤지만 결국 개정 협상에 합의했다. 다음 날 미국 뉴스위크지는 “트럼프가 ‘끔찍한’ 한미FTA에 1승을 거뒀다”는 기사를 냈다.
무능 혹은 기만
트럼프는 러스트 벨트(Rust belt)라는 쇠락한 중부 제조업 지역의 중하위층 백인의 지지를 바탕으로 당선되었다. 미국의 자유무역 정책은 대선의 핵심 쟁점이었고 힐러리 클린턴도 조건부로 TPP반대 입장을 냈다. 트럼프는 당선 이후 TPP에서 탈퇴했고, NAFTA(미국,캐나다,멕시코 간 자유무역협정) 재협상도 시작했다. 한미FTA 개정 협상도 예정된 수순이었다.
한국은 분명 대미 무역 흑자국이다. 하지만 미국의 입장에서 크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미국의 무역적자 비중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작기 때문이다. 2016년 기준 미국의 대중국 무역 적자는 3090억 달러이고 독일, 멕시코, 일본과의 무역에서도 670억에서 570억 달러의 적자를 보고 있는데, 한국과의 무역 적자는 170억 달러 수준이다. 그러나 미국이 가장 중요시하는 NAFTA협상은 내년 하원 중간선거 이전에 가시적 성과를 얻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따라서 중간선거 전까지 가시적 성과를 얻는데 한미FTA 재협상이 적절하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그동안 한미FTA 평가를 둘러싼 토론을 회피하다, 11월 10일 한미FTA 공청회를 열기로 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우리 국익에 크게 도움이 된 한미FTA를 극렬하게 반대한 민주당과 문대통령이 이번에는 거꾸로 국익 시험대에 올랐다”고 비꼬았다. 애초 노무현 때 추진한 한미FTA를 이명박 때 반대하면서 전면 재협상을 주장했던 민주당은 지금 어떤 의미 있는 해명도 못하고 있다.
급속히 한미FTA 개정 논의로 끌려가게 된 지금의 상황을 대부분의 언론은 외교적 무능으로 표현한다. 하지만 이를 한미FTA의 본질에 대한 평가와 대안 논의를 회피하려는 문재인 정부의 대국민 기만으로 볼 수도 있다. 사실 한미FTA의 대안을 사고할 수 없는 그들에게 무능을 감추려는 대국민 기만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일지도 모른다. 결국 지금의 한미FTA 개정 논의는 외교적 무능 혹은 정치적 기만 양자 모두라고 보는 것이 적당하지 않을까.
한미FTA 개정협상의 본질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인식하지 못하는, 인식하더라도 은폐하려는 한미FTA 개정 협상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것은 군사적·경제적 한미동맹에 더 많은 비용이 들고 그 비용이 한국과 미국의 노동자에게 전가될 것이라는 점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는 전후 최대의 침체에 빠졌다. 초민족적 자본이 주도한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는 세계를 중심부와 주변부로 분할했고, 국가 내에서도 세계화에 포섭된 부문과 배제된 부문 간의 불평등이 심화되었다. 대중의 불만은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그 원인과 대책을 호도하는 우익 포퓰리즘이 부상하고 있다. 트럼프는 ‘미치광이 전략’을 통해 대중적 지지를 확보하는 한편 실제 정책에서는 기존의 신자유주의 질서, 워싱턴 컨센서스 하에서 미국의 국익을 제고하는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재균형 전략은 동아시아 경제와의 무역수지 적자 감축, 즉 미국의 수출증진을 의미했다. 한미FTA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경제통합에 개입하는 것을 사활적 과제로 인식하는 미국에게 주요한 준거점이 되었다. 2000년대 경쟁적 자유화 전략 속에서 미국, 중국, 일본 등 지역 내 중심부 국가들은 개별적 자유무역협정을 통합된 지역적 협정으로 공고화하려 시도했다. 이 때 각국은 ‘지역’의 범위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어느 부문을 얼마나 자유화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서로 다른 표준을 가지고 경쟁해 왔다.
TPP 탈퇴 이후 미국은 일본과 양자FTA를 추진하려고 한다. 일본은 미국과의 무역은 상대적으로 감소하고 중국과 아세안 등 가까운 나라들과의 무역이 비약적으로 증가하는 상황으로, TPP를 통해 외자규제 완화 등 일본 기업이 동아시아에 유리하게 진출할 수 있는 조건을 확보하는 것을 추구할 것이다. 또한 RCEP(아세안 국가와 동아시아3국, 인도, 호주 등 16개 국가가 참여하는 다자간 무역협정)에서 한국과 함께 보다 포괄적인 개방 수준을 요구하며 중국을 견제하고 미국을 TPP로 복귀시키는 전략도 고려하고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한미FTA 재협상을 바탕으로 보다 더 유리한 조건에서 NAFTA 재협상과 TPP 복귀를 시도할 수 있다.
이렇게 대외적인 경제 관계 조정을 통해 경제 회복을 달성하려는 미국의 균형 회복 전략은 지역의 경제적 통합성을 강화하기보다 지정학적 긴장을 강화시킨다. 일본의 평화헌법 수정과 재무장, 중국의 군비 증강, 북한의 핵·미사일 시험 등 군사적 갈등의 고조도 동반될 것이다. 한미FTA 개정협상은 현재의 한미FTA가 보장하는 자본의 소유권과 지대 추구를 더욱 공고화하고 전쟁 위기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사회운동의 과제
한미FTA 개정 협상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알려진 것은 없으나 다양한 예측이 나오고 있다. 게리 허프바우어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선임연구원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NAFTA에 관심이 집중된 상황에서 당장의 협상은 없겠으나 돼지고기 시장 개방과 자동차 배기가스 및 안전기준 완화 등이 제기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러한 예상을 참고하여 산업 부문별 개방 속도나 폭을 두고 국익이나 무역수지에 미칠 영향을 평가하고 대응하는 것이 중요할까? 이미 한미FTA가 발효되어 있고, 한국이 52개국과 FTA를 체결하고 있는 상황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게다가 삼성과 현대는 이미 미국 본토에 대대적인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이를 감안하면 한·미 FTA 개정 협상이 미칠 경제적 영향 자체에 대해 과도하게 고민하기보다는 한·미 FTA 개정 협상을 추동하는 우익 포퓰리즘과 보호주의(미국 우선주의)에 대한 정치적 대응이 중요하다. 그런 차원에서 한국과 미국의 노동자운동이 국제연대의 모범을 창출하려는 노력 역시 필요할 것이다.
물론 길이 잘 보이지는 않는 것도 사실이다. 브렉시트가 중도 우파와 중도 좌파가 구상했던 신자유주의적 유럽통합 기획의 실패이면서 대안유럽 운동의 실패이기도 하다는 점을 떠올렸을 때 더욱 그렇다. 유럽 통합에 일관된 관점을 갖지 못했던 영국노동당은 분열됐고, 노동당 내외의 좌파 또한 대안유럽 구상을 가지지 못한 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데, 한국도 이와 비슷한 곤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안을 위한 노력도 분명히 있다. 미국 일부 노조 활동가는 캐나다·멕시코의 사회운동 활동가와 함께 국내 산업 보호가 아닌 보편적 노동자의 권리와 초국적 자본 규제라는 원칙을 기반으로 NAFTA 재협상에 대한 공동 입장을 논의하기 위해 대륙적 연대를 호소하고 있다. 이와 같은 민중적 관점에서 한미FTA 또한 평화를 위협하고 기본권을 파괴한다는 사실을 알려나가야 할 것이다.
금호타이어 미국 조지아공장에서 사측은 노조 설립을 주도한 마리오 스미스를 해고하고 우회적으로 노조 설립 반대 캠페인을 하며 “일자리가 없어질 수 있다”는 식의 공포 분위기를 조장했다. 또한 “한국 노조는 금호타이어 조지아 공장의 성공을 바라지 않는다”같은 문구로 이간질을 했다. 캐나다는 미국의 right-to-work 법(입사하면 노조에 가입이 되는 유니온샵을 폐지하는 친기업법)을 비판하고 있다. 미국이 비판하는 무역흑자국의 소셜덤핑(social dumping: 생산국의 노동임금이 국제수준보다 현저하게 싼 경우 비록 자기나라에서 파는 가격보다 높아도 해외 수입국에 싸게 수입되어 그 나라의 생산자에 미치는 영향은 덤핑과 같다는 논리)은 미국에서도 예외가 아닌 것이다. 노동권을 중심으로 노동조합의 국제연대를 모색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