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평화
- 2017/11 제34호
일본 평화헌법, 이대로 사라질 것인가
일본 중의원 선거 결과를 바라보며
지난 10월 22일, 일본에서 중의원(하원) 총선거가 치러졌다. 아베 신조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이 압승을 거뒀다. 자민당은 전체 의석 465석 중 284석을 차지하여 과반수를 가볍게 넘었다. 연립여당인 공명당(29석)과 합치면 개헌 정족수인 3분의 2(310석)을 넘는 313석을 획득했다. 아베는 참의원(상원)에서도 지난 2016년 보궐선거를 통해 개헌 정족수를 획득한 바 있다. 일본의 평화헌법은 이대로 사라질 것인가.
10월 22일에 이르기까지
사실 올해 여름은 아베와 자민당에게는 끔찍한 시기였다. ‘모리토모·가케학원 비리 사건’과 공모죄 통과 등으로 지지율은 36퍼센트까지 떨어져 아베 정권 출범 이래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정치 향방의 시금석인 7월 도쿄 도의회 선거에서도 과거 자민당 출신인 고이케 유리코 도쿄 도지사의 ‘도민퍼스트회’에게 참패했다. 자민당 내에서도 ‘더 이상 아베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이 모든 불리한 국면을 단박에 뒤엎을 사건이 벌어졌다. 8월에 북한이 발사한 중거리 탄도미사일이 일본 상공을 두 번이나 통과한 것이다. 일본 사회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보수적인 산케이신문은 ‘이전의 대전(태평양전쟁)이나 한국전쟁 이래 심각한 사태’이며 ‘독재자(북한 김정은)에게 징벌적·보복적 억지력’을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쟁하는 나라’를 추진하는 아베 정부에 대한 지지율도 40퍼센트대를 회복했다.
아베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9월 28일 임시국회가 개최되자마자 기습 해산을 발표했다. ‘지금 선거하면 50석을 잃을 수도 있다’는 예측도 있었지만, 연이은 악재를 잠재우고 국정을 장악하려는 속셈이었다.
선거에 돌입하자 아베에게 또 호재가 쏟아졌다. 야당이 분열된 것이다. 2015년 전쟁법 통과 이후 야당은 선거 때마다 ‘야당공투野堂共鬪’, 우리로 치면 야권 단일화로 대응해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제1야당인 민진당이 쪼개졌다. 고이케 지사가 새로 창당한 희망의당이 민진당의 반쪽을 떼어갔다. 이 과정에서 고이케는 ‘안보관’과 ‘안보정책’이 다르면 입당할 수 없다며 ‘진보적 인사’들을 배제했다. 극우 정치세력 ‘일본회의’에도 가담한 바 있는 고이케는 일본의 핵무장을 주장하기도 했던 외교적 강경파로 분류된다.
배제된 구 민진당 계열은 부랴부랴 ‘입헌민주당’을 창당했다. 입헌민주당과 공산당, 사회민주당은 야당공투에 합의했지만, 희망의당은 단독으로 선거에 출마했다. 당초 야당과 시민사회는 ‘개헌 세력을 3분의 2이하로 줄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결국 중의원 총선거는 아베와 개헌 세력의 압승으로 끝났다.
아베의 개헌, 성공할 것인가
자민당의 선거 슬로건은 ‘나라를 지켜나간다’였다. 동시에 헌법 개정을 명시했다. 그 내용을 살펴보자. 우선, 교전권 부인, 전력 보유 금지를 명시한 기존 헌법 9조에 ‘자위대’ 항목을 신설한다. 자위대는 창설부터 헌법 위반 논란에 휩싸였었다. 전쟁 수단을 보유하지 않는 나라가 어떻게 군대를 가질 수 있냐는 것이다. 이에 역대 일본 정부는 ‘해석 개헌’, 즉 헌법 조문 해석을 바꾸면서 자위대의 존재를 ‘억지로’ 인정해왔다. 이제 이런 거추장스러운 일을 집어치우고 ‘정식 군대’로 헌법에 그 존재를 명기하겠다는 의도다.
다음으로 ‘긴급사태대응’ 항목도 추가했다. 긴급사태대응이란 전쟁, 내란, 테러, 대지진 등 국가재난 시기 총리에게 헌법을 일시적으로 정지시킬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부여하는 조항이다. 박정희 시대의 ‘긴급조치’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헌법 개정을 명시한 공약을 들고 압승을 거둔 자민당. 그러나 아베의 태도는 다소 조심스럽다. 개표 다음 날인 10월 23일, 아베는 기자회견에서 몸을 낮추는 태도로 개헌에 대해 “스케줄은 정해진 것이 없다 … 이번 선거로 개헌에 대한 민의를 얻었다거나, 얻지 못했다고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헌법을 개정할 계획을 대놓고 말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어정쩡한 태도에는 이유가 있다. 비록 선거는 이겼지만 시민들이 아베를 전폭적으로 지지했다고 말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10월 24일 아사히신문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아베가 총리를 계속했으면 한다는 답변은 34퍼센트에 불과했다. 반대는 51퍼센트에 달했다. 자민당만이 강한 세력을 가진 지금의 국회 상황에 대해서는 ‘좋지 않다’가 73퍼센트로 ‘괜찮다’ 15퍼센트를 크게 앞질렀다. 개헌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자민당이 공약한 ‘9조 자위대 명기’에 대해 여론은 찬성 37퍼센트, 반대 40퍼센트로 팽팽하게 맞섰다. 이대로 개헌안이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국민투표에서 좌절될 가능성도 열려있다.
야당의 성적표도 아베로서는 다소 찝찝했을 법하다. 야당 중 개헌에 찬성, 또는 중립적인 입장을 가진 당은 희망의당과 일본유신회다. 희망의당이 진보인사 배제 스캔들에 휘말리는 사이 입헌민주당에 야당 표가 몰린 점을 일본 언론도 중요하게 평가하고 있다. 입헌민주당이 추구하는 가치 자체가 ‘평화헌법 수호’인만큼 아베의 개헌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결집했음을 보여주는 수치가 아니냐는 것이다.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연대
물론 개헌을 저지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여전히 자민당은 의석수로도, 자본과 인맥으로도 일본 사회를 말 그대로 ‘휘어잡고’ 있다. 아베 정권도 지금 상황으로만 본다면 앞으로도 몇 년 간은 계속될 전망이다. 이번 중의원 선거 결과는 그들에게 날개를 달아주었다. 그러나 동시에 야당과 시민사회에게 한 줄기의 희망도 보여주었다. 이제 한동안 일본 사회운동은 ‘평화헌법 개헌 저지’라는 사활적인 과제에 명운을 걸 것이다.
최근 몇 달간 ‘한반도 전쟁 시나리오’가 지겹게도 오르내렸다. 일본 사회의 움직임은 북한과 미국의 갈등 못지않게 동아시아 지역 평화에 암운을 드리우고 있다. 동아시아 지역의 평화를 위해서, 한국의 사회운동 역시 아베의 개헌 저지에 연대의 힘을 보태야 한다. ●
제48회 중의원 의원 선거에 관한 견해
안보법제의 폐지와 입헌주의의 회복을 요구하는 시민연합
번역 l 이준혁
10월 22일에 투표가 진행된 제48회 중의원 의원선거에서 자민당, 공명당 여당이 3분의 2의 의석을 확보하였습니다. 시민연합은 아베정권이 이 다수기반 위에서 헌법의 기본정신을 파괴하는 방향으로 개정을 구체화하는 것을 매우 큰 위협으로 보고 있습니다.
선거 도중에 진행된 몇 번의 여론조사에서는 내각지지율이 하락하여 불지지율을 밑돌았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국민이 아베정권을 신뢰하거나 좋게 평가하고 있지는 않다는 점은 명백합니다. 투표율도 전후 최저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여당의 거대한 의석은 승자에 보너스를 주는 소선거구 제도가 가져온, 민의로부터의 괴리라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야당 측 민진당의 분열이 여당의 대승을 초래한 것도 사실입니다. 총선거에서 입헌세력의 전진을 위해 시민과 야당의 협력체제 준비를 진전시켜 왔음에도, 이를 무시하며 마에하라 세이지 대표가 희망의당으로 합류를 강제로 추진하여 민진당을 분열시키고, 야당협력의 태세를 붕괴시킨 것은 강력히 비판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입헌민주당이 선거 직전에 발족하여 야당협력의 태세를 재구축하여 아베정치를 걱정하는 시민에게 선택지가 되었기에 야당 제1당이 되어, 입헌주의를 지키는 당장의 거점이 형성된 것은 일정한 성과로 볼 수 있겠습니다. 이 결과에 대해서는 자기 당의 이익을 넘어 대국적 시야로 야당협력을 진전시킨 일본공산당의 노력을 높이 평가합니다. 사회민주당도 야당협력의 중추로서 그 역할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입헌야당의 전진을 실현하기 위해 분투해온 전국의 시민 분들의 에너지 없이, 이러한 결과는 없었을 것입니다. 작년 가을 참의원 선거에 이어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입헌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야당공투의 구축에 끈질기게 매진해온 시민 분들께 마음으로부터 응원을 보냅니다.
여당 대승이라는 결과는 유감입니다만, 아베정치에 대항해야만 하는 시민과 야당의 공투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 이번 선거를 통해 명확해졌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습니다. 위헌 아베법제를 전제로 한 헌법 9조 개악 반대와 입헌주의의 회복 등을 공통의 토대로 한 이번 시민과 야당의 공투 성과를 기반으로, 입헌야당이 무소속 및 그 외에 뜻이 맞는 정치인과 함께 강력한 대항세력을 재구축할 것을 마음으로부터 기대하며, 시민연합도 가능한 한 응원을 해나갈 것입니다.
중의원에서 여당이 3분의 2를 확보하였기 때문에 아베정권과 자민당은 가까운 장래에 헌법개정 발의를 계획할 것입니다. 물론, 현재의 국민투표법은 운동에 관한 규제가 애매하여, 자금이 풍부한 진영이 TV 광고 등을 통해 민의를 움직이도록 허용되는 등 큰 결함이 있습니다. 시민연합은 현행제도 그대로의 개헌발의에 반대합니다. 하지만 만약 여당이 수의 힘으로 개헌발의를 진행할 경우, 시민연합은 국민투표에서 아베정권이 노리는 헌법개정에 반대하기 위한 거대한 운동을 만들기 위해 입헌야당과 함께 더 큰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