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 오늘경제
  • 2017/12 제35호

어디까지 왔나 문재인표 재벌개혁

문재인 정부의 재벌개혁 평가

  • 김태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이재용은 “세기의 재판”이라 불렸던 지난 8월 1심 재판에서 징역 5년 형을 선고받았다. 정유라의 말 구매 등 승마 관련 지원, 최순실의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에 관해서는 모두 뇌물죄가 성립되었다. 그 뇌물이 무엇을 대가로 한 것인지는 모든 국민이 알고 있다. 바로 국민연금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지지하도록 하는 결정이었다. 이는 이재용의 경영권 승계, 즉 3대 세습을 위한 절차였다. 그 사이 정작 국민연금은 손해를 보았다. 문형표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당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2심에서도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특검은 일부 무죄 선고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다.  

곤란한 상황에 처한 재벌 총수는 이재용 말고도 있다. 롯데 신동빈 회장은 지난 10월 검찰로부터 징역 10년과 벌금 1000억 원을 구형받았다. 신동주 역시 징역 5년을 구형받았는데, 형제간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너무도 많은 경영 비리를 저지르면서 기업을 사유화했고 기업에 손해를 끼쳤기 때문이다. 여기에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뇌물죄, 최근 전병현 전 정무수석에 대한 뇌물죄까지 끼어있는 상황이다. 사실 재벌그룹 회장 중 전과자가 아닌 인물을 찾기가 더 어렵다. 과거 노태우에 대한 뇌물 제공 혐의로 이건희를 포함 8명의 재벌총수가 징역 혹은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고, 한화 김승연, SK 최태원, 현대차 정몽구, CJ 이재현 등이 횡령·배임 등으로 기소되어 실형을 받은 바 있다. 

헌법 위에 있다는 삼성의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은 분명 정권교체의 결과이지만, 무엇보다도 촛불 항쟁이 만든 성과다. 앞으로 이재용의 2심 재판과 롯데 재판도 주목해보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재벌 회장을 기소 또는 구속하거나, 설령 구속하지 못하더라도 사회적 이미지에 타격을 주고 대가를 치르게 했던 일은 지금까지도 많았다. 그러나 재벌체제는 변함이 없다.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은 이제 이런 일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재벌체제의 근본적인 변화를 바란다. 재벌총수에 대한 엄벌뿐만 아니라 경제구조 자체의 변화를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재벌체제 못 바꾸는 문재인표 개혁의 방향

 
 
물론 한국 경제의 적폐인 재벌체제를 바꾸기란 쉽지 않다. 그 해법을 뚜렷하게 제시하는 세력도 없다. 문재인 정부의 해법 또한 진정한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
 
문재인 정부 재벌개혁 방향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첫째, 순환출자를 해소하고 지주회사로의 전환을 유도하되, 주주의 권한을 강화해 총수 일가를 견제한다. 둘째, 국민연금에 스튜어드십 코드(연기금이나 자산운용사 등 주요 기관투자자들이 위탁받은 재산을 성실하게 관리하기 위해 준수해야 하는 기관투자자의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를 도입한다. 셋째,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를 규제한다.

그러나 지주회사 전환은 경영 투명성을 강화하고 구조조정을 보다 쉽게 할 뿐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재벌총수들의 경영권 세습을 보다 세련된 형태로 바꿀 뿐이다. 오히려 재벌 총수는 이른바 ‘자사주의 마법’을 통해 그룹 지배력을 더욱 강화할 수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나 일감 몰아주기 규제는 그 실효성부터가 의문이다. (이에 대한 설명과 자세한 비판은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혁의 복잡한 함수”, 《오늘보다》 2017년 4월호 참조)

정책 방향도 문제지만 실제 추진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평가가 많다. 자사주의 마법을 무력화하기 위한 상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되어 있지만, 여전히 계류 중이다. 실제 법안을 통과시키기보다는 재벌들이 서둘러 지주회사로 전환하게 만드는 카드로 활용되는 꼴이다. 이른바 ‘막차 타기’로, 롯데가 대표적이다. 롯데는 롯데제과·롯데쇼핑·롯데칠성음료·롯데푸드 등 4개 상장 계열사를 투자부문과 사업부문으로 인적 분할한 뒤, 롯데제과의 투자부문이 나머지 3개 회사의 투자부문을 합병해 (주)롯데지주를 출범시키면서 신동빈의 지배구조를 확립했다.

 

삼성의 기민한 대응

 
 
삼성은 이재용 구속 중에도 사장단을 전면 교체하면서 새로운 체계를 만들고 있다. 미래전략실을 해체하고 자율경영 체제를 표방하고 있으나, 실상은 삼성전자·삼성생명·삼성물산이 전자·금융·제조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면서 3각 소그룹 체계로 가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특히 이번 사장단 인사교체를 보면 권오현 부회장 등 이건희 회장 세대의 인물들이 뒤로 물러나고 ‘이재용의 사람’들이 전면 배치되고 있다. 이상훈 삼성전자 사장이 대표적이다. 그는 미래전략실 전략1팀장으로 이재용 부회장의 신뢰가 두텁고 현재 삼성전자 관련 계열사의 주요 의사결정 업무를 맡고 있다. 이번 공정위와 5대 그룹 전문경영인 간담회에도 삼성을 대표해 참석했다. 

삼성전자는 올해 4월 지주회사 전환을 포기하고 대신 엘리엇이 요구한 자사주 매각과 적극적 배당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총 50조에 가까운 자사주를 4회 차로 분할해 매입, 소각하고 있으며 내년부터 배당을 올해의 2배 수준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도 이사회를 통해 승인했다. 삼성이 내년에 자사주 매입과 배당에 투입할 20조 원은 문재인 정부가 5년간 81만 개의 공공 일자리를 만드는 비용과 맞먹는다. 자사주 소각은 실제 재벌 가족의 지배력을 높이는 효과도 가져온다. 지난 1년간 자사주 매입·소각으로 이건희 회장 등 특수관계인의 삼성전자 지분은 20퍼센트로 1.5퍼센트포인트 높아졌다. 

정리하면, 삼성전자는 이재용이 구속된 상태에서 지주회사 전환은 재판에 부담을 많이 끼치기에 포기하고, 그 대신 자사주 매입과 소각을 통해 외국인·기관투자자의 이해를 충족해주면서 현재의 재벌체제를 온존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이재용은 감옥에 있지만, 삼성은 이재용 석방을 위해 다방면으로 분투하면서 동시에 이재용의 지배력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봤자 주주 자본주의 강화 

문재인 정부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 기업 범위를 자산총액 10조 원 기준에서 5조 원 기준으로 확대했다. 그러나 이는 지난해 ‘상호출자 제한 기업집단 지정 기준’을 완화한 것에 대한 보완책일 뿐이다. 또한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회피하는 새로운 사례도 늘어났다. 최근에는 현대차가 ‘사돈’ 기업인 삼표에 일감 몰아주기를 한 것이 드러나기도 했다. 

지난 11월 2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5대 그룹 전문경영인 간담회를 개최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초기에는 “몰아치기식 규제는 하지 않겠다”면서, 선제적 변화를 주문해 비교적 온건한 출발을 보였다. 그러다 최근에는 “내년에는 정부가 직접 개입할 수 있다”며 압박을 높이고 있다. 이번 5대 그룹 간담회에서는 9월 신설된 기업집단국을 통해 대기업 집단 소속 공익재단의 운영실태 전수조사, 지주회사 수익구조에 대해 실태조사를 할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이 실태조사도 재벌 총수의 전횡을 실질적으로 근절하기보다는 주주 권리를 일정 강화하고 해외투자자와 기관투자자의 배당수익을 높이자는 방향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 공정위에서 문제가 없는지 조사해보겠다고 말하는 지주회사의 수익구조란 브랜드 로열티나 컨설팅 수수료, 건물 임대료 등이다. 자회사의 지분 20퍼센트만 소유해도 지주회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지주회사가 자회사의 지분을 많이 확보하지 못한 경우 배당성향을 높이면 다른 주주에게 수익이 분산될 수 있다. 때문에 지주회사 입장에서는 브랜드로열티 거래를 통해 안정적 수익원을 만드는 것이 더 유리하다. 결국 지주회사는 브랜드 로열티로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창출하는 동시에 자회사 지분율을 높이려고 할 것이다. 여기에 지주회사의 지분율이 높은 자회사는 배당성향을 높이면서 지주회사 지분을 소유한 재벌 총수와 자회사에 투자한 외국인 투자자의 이해를 동시에 만족시키고자 할 것이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쉽 코드 도입 또한 배당성향(당기순이익 중 현금으로 지급된 배당금 총액의 비율)을 높일 것으로 기대받고 있다. 
 

재벌 적폐의 청산을 위해

문재인 정부의 재벌개혁 정책은 공약으로 제시될 때부터 재벌 경영 승계를 막으려는 계획도 의지도 없었다. 이재용을 구속하고 신동빈을 기소하면서 재벌을 압박하고 있지만, 실제 재벌체제를 변화시키기보다는 재벌을 어르고 달래면서 현 정부에 협조를 요구하는 성격이 크다. 모든 산업 분야를 대상으로 ‘갑질’을 조사한다고 하지만 정작 근본 원인인 갑을 관계, 재벌의 원하청 관계 자체를 바꾸는 것은 아니다. 자영업자의 분노를 잠시 달랠 수 있고, 시장에 대한 불신도 얼마간 회복할 수는 있겠지만 재벌체제가 온존하는 한 노동자 민중의 팍팍한 살림살이는 더 악화될 것이다. 

재벌체제에 맞서는 것은 자본주의 자체가 문제임을 인식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더 나아가 재벌총수의 경영세습을 막고, 그들의 제왕적 지배를 약화시켜야 한다. 동시에 해외 금융자본의 지배하에서 단기 수익만 추구하는 방향으로 흐르지 않도록 재벌집단을 바꿔나갈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우선은 재벌체제 내 모든 원하청 노동자들의 단결과 재벌의 초민족자본화에 대응하는 전 사회적, 국제적 연대를 통해 재벌에 대항하는 힘을 만들어가는 것이 그 시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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