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 특집
  • 2018/02 제37호

불안정한 노동개혁, 노동운동은 어떻게 대응할까?

2018년, 단기적 쟁점과 장기적 과제

  • 박준형
1월 19일, 민주노총 김명환 위원장 등 지도부는 문재인 대통령과 첫 만남을 가졌다. 민주노총은 대통령 면담 전 한국노총 지도부, 민주당 원내대표, 청와대 일자리수석 등과도 잇따라 접촉했다. 비록 노사정위원회가 일방적으로 제안한 ‘노사정대표자회의’ 일정에는 응하지 않았으나, 새 지도부가 ‘진정성 있는 사회적 대화 의지’를 수차례 강조한 만큼 앞으로 새로운 사회적 대화기구 구성을 전제로 노사정대표자회의에 참가할 것이다. 민주노총 위원장과 대통령 면담이 진행된 같은 날, 한국노총 지도부도 대통령을 만났다. 양대노총이 제기한 쟁점 중 노동시간 단축입법, 최저임금 산입범위 등 핵심 쟁점은 이후 노사정대화 과정에서도 가장 먼저 부각될 것들이다. 1월 초중순의 이러한 장면들은 올해 노조운동이 대응해야 할 쟁점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문재인 정부의 노동개혁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당시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와 민간부문 50만개 등 일자리 131만개를 창출할 것을 공약하며, 이를 “정부 주도 일자리 늘리기와 이를 마중물로 한 민간일자리 늘리기인 21세기형 한국형 일자리 뉴딜”로 제안한 바 있다. 이 정책은 집권 이후 공공부문부터 정부 주도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과 노동시간 단축(법정 노동시간 준수, 휴가 사용 촉진 등)으로 추진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섣부르게 자유주의 정당과 노동조합이 연대하는 20세기 초반 미국의 뉴딜연합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 노동시간 단축 입법이나 최저임금 산입범위, 인상속도를 둘러싼 쟁점에서 정부 여당은 “속도조절”에 나서는 모양새다. 얼마 전 양대노총 위원장과의 면담에서는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에 밀려 상당 기간 언급되지 않았던 노동시장의 ‘유연안정성(Flexicurity)’을 다시 강조하기도 했다. 참여정부 시절부터 정부의 노동시장 정책 방향으로 제시되었던 유연안정성 모델은 고용과 노사관계의 유연성을 증진하되, 이를 보완하기 위해 노동시장 취약계층의 안정성(고용안정성 및 사회보장)을 동시에 제고하자는 정책이다. 문재인 정부의 ‘유연안정성’ 언급은 ‘고용불안정이 높은 한국 노동시장에서 우선 과제로 고용안정성을 증진해야 한다’는 기존의 정책방향에 대한 조정을 의미한다. 앞으로 기업수준의 고용유연화를 유지하거나 확대하고 이를 사회보장으로 보완하겠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노사관계 쟁점에서도 민주노총 한상균 전 위원장 석방이나 전교조·공무원노조 인정은 각각 민주노총의 노사정대표자회의와 사회적 합의기구 참여와 연계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공짜 선물은 없다는 것이다. 민주노총 새 집행부는 이들 사회적 대화에 응하겠지만 논의 과제 하나 하나가 쉽지 않은 쟁점이 될 것이다. 
 

‘개혁 정책’의 후퇴인가?

문재인 정부의 개혁정책이 후퇴하는 것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이라는 경제정책의 실행수단으로서 정부의 고용·노동 정책이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로 정부는 정책 실현의 정치적 조건 형성을 위해 자본 측 입장을 반영하고 보수진영의 불만을 관리한다는 측면에서 시기별 대응을 달리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고용·노동 정책 자체가 현 정부 내의 갈등적인 쟁점이기도 하다.

소득주도성장론은 수요혁신으로 성장을 촉진한다는 입장으로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홍장표 경제수석 등의 입장으로 알려져 있다. 노동자의 소득이 늘어나면 소비 여력이 늘어나 생산이 증가하는 식으로 경제가 선순환한다는 것인데, ILO가 제시한 ‘임금주도성장론’의 변형이다. 한편 혁신성장론은 공급혁신으로 성장정책을 추진하자는 입장으로 김동연 기획재정부장관과 변양균 참여정부 청와대 정책실장 등의 입장으로 알려진다. 규제 개혁과 신산업 발굴 등 공급 혁신으로 일자리를 만들고 소득을 늘려 구매력을 키우자는 전략이다. 이 상반된 두 가지 전략은 모두 올해 정부 경제정책방향에 절충적으로 반영되었다. 그런데 이 두 전략은 정책 수행을 위해서는 조직노동의 일정한 양보가 필요하며, 이를 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데 이들 양 정책 어느 쪽도 노동운동이 수용하기는 곤란하다. 소득주도성장론은 노동소득 증가를 포함하기는 하지만, 자본가 이윤의 저축과 투자가 아니라 오히려 노동자 임금의 소비가 경제성장의 원천이라는 주장으로 경제학적 근거가 취약하다. 한편 혁신성장론은 신자유주의적 규제완화론(노동, 토지, 투자, 왕래의 자유)을 여전히 주장한다. ‘슘페터식 공급 혁신’을 주장하지만 실체가 불분명한 ‘4차 산업혁명’ 지원 정책 이상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경제정책의 핵심전략 중 일자리·소득 정책은 양자를 병합하여 제시된다. 최저임금 인상과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과 함께 노동유연화(변양균의 《경제철학의 전환》에 따르면 ‘노동의 자유’ 과제)를 실행하기 위한 조건으로서 노동자의 기본수요(주택·교육·보육·의료·안전 등 공공서비스)를 국가가 보장하는 방향이다.
 

문재인 정부가 대선 노동 공약을 포기했다고 보기는 섣부르지만 적어도 노동계에 대한 일방적 양보는 없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정부는 올해 보다 구체적으로 고용·노동 정책에서 노동 측에 양보와 교환을 요구할 것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사회적 협의기구가 강조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 민주노총과 정부의 협의도 본격화될 전망이다. 노동운동 안에서는 사회적 협의의 필요성과 협의 내용에 대한 입장 차이가 큰 쟁점으로 부각될 것이다. 
 

자본의 대안, 노동의 대안

지난 대선에서 여러 후보들이 상대적으로 전향적인 경제, 노동정책을 제시한 것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이 실패한 것에 대한 반작용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은 한편으로는 지난 정부의 적폐 청산이고 노동자의 저항을 불러온 정책 폐기이기도 하지만, 자본이 살아남기 위한 대안이기도 하다. 

따라서 노동개혁은 양면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노동조합의 대응이 단순할 수만은 없는 대목이다. 노동조합은 당면 노동정책에 대해서는 사안에 따라 개혁을 촉구하거나 개악을 저지하는 입장을 가질 수 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문재인 정부 개혁정책의 성패’가 아니라 노동자계급 입장에서의 접근이다. 이 입장은 중장기적이고 거시적인 시각에서 마련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이제까지 단기적 대응에 급급했던) 노동조합의 대응이 혁신될 필요가 있다. 정부는 시간적으로는 중장기, 정책 대상으로는 국민경제를 대상으로 정책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적폐청산 투쟁과 신규조직화

당장은 민주노총부터 산별노조, 단위노조까지 각급 노동조합에서 지난 10여 년 이상 지속된 적폐를 청산하고 후퇴를 거듭해온 노동기본권, 단체협약을 복구하는 것이 시급하다.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최근 몇 년간보다 다소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공세적인 요구를 쟁취할 수 있는 적기다. 이를 통해 현장 조합원의 자신감을 회복하고, 공세적인 정치·사회운동으로 노조 할 권리 쟁취와 최저임금 인상 등 노동자가 주도하는 노동개혁으로 나아가야 한다.

또한 조직 확대에도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한다. 이미 지난해부터 공공운수노조, 금속노조 등에서 미조직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가입이 상당히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노동조합은 아니지만 ‘직장갑질119’와 같은 새로운 시도에도 노동자들의 관심이 확대되고 있다. 공공부문부터 시작된 비정규직 정규직화 흐름, 파리바게뜨에서와 같은 정부의 전향적인 근로감독도 영향을 주었다. 노동조합의 보다 적극적인 노력을 통해 노동조합이 더욱 확대될 수 있는 호기임이 분명하다. 기존 노동조합들이 더 과감하게 조직화에 기여해야한다.
 
 

중장기 대안을 만들어갈 때

한편, 단기적인 대응 이상이 필요하다. 정부가 중장기 국민경제를 대상으로 하는 경제정책의 일환으로 노동정책을 제시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신자유주의 정책의 실패가 드러난 이후, 지금 한국 사회는 새로운 사회·경제 체제 대안을 찾아가는 과정을 겪고 있다. 이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대안이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이라고 할 수 있다. 

노동자 계급의 대안도 이들과 같을 수 있을까? 당장의 몇몇 정책은 올바르게만 추진된다면 노동조합도 동의하고 추진에 힘을 실을 수도 있을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 노조 할 권리 개혁 입법과 ILO협약비준과 같은 정책은 적극적으로 지지할 수 있다. 그러나 일부 정책을 넘어서 본다면 문재인 정부의 개혁 성공을 위해 민주노총도 함께 하라는 일각의 주장대로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민주노총이 요구하는 노동개혁 정책이 수용되기 힘들다면 그것은 정부의 개혁의지가 불충분해서라기보다 애초 경제정책이 스스로의 한계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은 지난 이명박·박근혜 보수 정부의 신자유주의 규제완화와 노조 배제, 감세와 재벌에 대한 특혜를 중심으로 한 재정정책을 비판한다는 점에서 자유주의 정부의 대안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기존의 노동유연화 정책을 포기하지 않는 ‘자본을 위한 대안’이기도 하다.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엄청난 실패 덕분에 자유주의 정권은 상당 기간 집권할 가능성을 열었다. 한편 지난해와 올해까지 단기적으로는 양호한 거시경제 상황은 더 오래가기 힘들 수 있다. 정권 초반의 개혁드라이브도 남은 기간이 길지 않다. 따라서 올해를 거치면서 노동조합과 활동가들은 보다 길고, 넓은 안목으로 경제정책, 정부가 제시한 노동정책 옵션들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노동계급의 독자적인 입장을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해야한다. 이것은 정치적·정책적 과제이자 조직적 과제이기도 하다.

지난 정부 시기 민주노총은 정권의 반노동 정책에 대한 저지와 강력한 대정부 투쟁으로 정권 퇴진의 흐름에도 큰 역할을 해왔다. 문재인 정부 하에서 민주노조운동은 새로운 실천을 통해 민주노조운동의 사회세력화, 구호가 아닌 실질로서 “모든 노동자의 민주노총”을 만들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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