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 특집
  • 2018/03 제38호

"원래 세상이 다 그런 거야"에 맞서온 사람들

[좌담] 일하는 여성들의 오래된 싸움, 새로운 선언

  • 정리 박상은
지난 1월 29일, 서지현 검사의 검찰 내 성폭력 폭로 이후 직장 내·업계 내의 성폭력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여성들이 오랫동안 참고 숨겨왔던 자신의 피해를 드러내고 있는 지금, 이들의 용기와 더불어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이 만연한 작업장과 사회를 바꿔야 할 때다. 

직장 내 성폭력은 왜 발생하며, 해결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지 노동조합에서 활동하는 여성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참석 
권수정 | 공공운수노조 아시아나항공지부
배민희 | 금속노조 인천지부
우지영 |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 서울대병원분회
정인용 | 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
 
[오늘보다] 참석하신 분들 각자 소개 부탁드립니다. 
 
[배민희] 부평공단 전기전자 사업장에서 일했어요. 지금은 회사가 없어진 상황이라 실업 상태고요.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관리자 제외한 생산직은 거의 다 여성이었고요. 여러 공장에 다녔는데 인원은 많은 데는 500~800명에서 적게는 10명 규모까지 다녔습니다. 공장에서 라인 타는 작업을 했습니다.
 
[정인용] 학교 도서관에서 비정규직 사서로 10년 정도 일하다가 전임으로 나오게 됐어요. 고등학교는 직원이 70명 중학교는 40명 규모의 학교였고요, 여성이 70퍼센트정도였습니다.
 
[우지영] 저는 서울대병원 간호사입니다. 지금은 육아휴직 중이고요. 병원 직원이 6000명 정도 되는데 여성이 4000명으로 66퍼센트 정도예요. 간호사 직군은 90퍼센트가 여성이고요.
 
[권수정] 아시아나항공에서 승무직으로 일하고 있어요. 전체 직원은 1만 명이 넘고 여성비율은 절반 정도인데요, 직종별로 성비 구성이 완전히 달라요. 정비파트는 여성이 15퍼센트 밖에 되지 않고, 조종사는 1000명 중 2명만이 여성이고, 승무직은 4000명 중에서 남성이 10퍼센트 미만이에요.
 
[오늘보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직장 내 성폭력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닙니다. 왜 발생하고, 해결을 위해 노력했음에도 계속 반복되는 것일까요?
 
[우지영] 제 생각에 직장 내 성폭력은 “그래도 된다”, “그래도 괜찮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고, 여기에 직장 내 권력관계가 결부되어서 발생하는 것 같아요. 그 권력이 대단하지 않아도 발생하더라고요. 아주 티끌만한 권력 차이라도 그걸 이용해요. 간호사들 사이에서도 3년 일찍 온 남성 간호사에 의한 성폭력 사건이 있었는데요. 압도적으로 여성이 많은데도 그런 일이 발생하더라고요.
 
[정인용] 2009년,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기 전에 학교에서 있던 일인데요. 학교장이 특별실을 돌아다니면서 음담패설을 하는 사람이었어요. 다른 교사들은 그냥 듣고 흘렸는데, 초임 발령 받은 선생님이 성희롱으로 고발하겠다고 해서 학교가 난리가 났어요. 그 교장은 ‘재밌으라고 하는 얘기’라면서 꼭 끝에 ‘내가 이 지역 부장들 다 승진발령 시켜줬고 지금도 찾아온다’는 식의 말을 덧붙였는데, 자기가 권력 있는 사람이니 문제제기하지 말라는 뜻이었죠. 성희롱으로 고소할 마음을 먹은 그 교사가 상담하러 왔는데, 대처방안을 잘 모르겠더라고요. 일단 교육청에다 진정하려고 했는데 여성 교감부터 다른 모든 여선생들이 앞으로 학교생활 어떻게 하려냐며 말렸고, 결국 문제제기를 하지 못했어요. 저도 그때 같이 해주지 못했는데 그 점이 계속 미안함으로 남아 있습니다.
 
[배민희] 관리자가 현장에서 힘이 있기 때문에 접촉이나 음담패설을 하더라도 관두고 싶지 않으면 감내해야 합니다. 저희 같은 경우는 관리자들이 하루아침에 해고를 할 수 있거든요. 다들 파견직이라 고용이 불안한데, 성희롱 문제는 일자리를 지키려면 참고 가야하는 여러 어려움 중에 하나죠.

관리자 중에서 회식 끝나고 노래방에서 부르스를 추는 사람이 있었어요. 제가 퇴사하고 나서 결국 문제가 되었더라고요. 48세 관리자가 20대 초반 여성들을 추행했는데, 부르스를 추면서 키스하고 가슴을 만졌다더라고요. 그런데 문제를 제기하니까 ‘증인있냐’, ‘회사 그만두고 싶냐’며 협박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여성들이 우리는 다른 공장가면 그만이다, 관둬도 된다고 하면서 경찰서에 갔다고 하더라고요.

권력관계, 즉 인사권을 누가 가지고 있느냐가 결국 문제입니다. 그런데 여성은 생계부양자가 아니라 보조적인 일을 한다는 인식, 실제로도 비정규직 저임금 일자리에 있다 보니 그런 상황에 순응하게 되는 것 같아요. 나이 든 언니들이 참아야 한다고 하는 경우가 많아 더 안타까워요.
 
[권수정] 그래도 어느 정도 성희롱 근절을 위한 노력에 성공한 사업장은 문제제기를 하면 눈치라도 보는 것 같아요. 아시아나항공은 성희롱 문제가 직원들 사이에서 발생했을 때 처분이 빠릅니다. 하지만 박삼구 회장, 최고 권력에 대해서는 건드리지 못한 거죠. 저는 아시아나에 입사한지 20년이 넘었는데 박삼구는 그때나 지금이나 회장이고, 신입직원들이라며 안아주고, 육아휴직에서 돌아왔다고 안아주고, 초유로 만든 비누를 회장님한테 선물한 경우도 있어요. 왜 성폭력 문제가 발생하느냐 생각할 때 우리 사회 권력구조 전체를 볼 수밖에 없는데, 재벌 대표를 못 건드리는 구조적 문제가 있고, 또 군대문화나 가부장문화도 뿌리 깊다고 봐요.
 
 
[오늘보다] 작업장 내에서 권력관계를 역전시킬 수 있는 유일한 조직은 노동조합일 텐데요, 노동조합에서 성폭력 문제를 해결해 본 경험이 있으신지요? 노동조합은 성폭력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나요?
 
[정인용] 그렇죠. 조합원 중 한 분이 학교에서 성희롱을 당해서 노조에 연락을 한 적이 있습니다. 여기서부터 노조가 힘이 된다고 생각했어요. 아까 노동조합이 없었을 때 경험을 말씀드렸는데, 그땐 어디다 말할 창구도 없었거든요. 지금은 노동조합에 말할 수 있고, 개인이 해결하기 어려운 것을 집단적으로 대응할 수 있죠. 또 노조가 성평등에 대한 문제의식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 보니 풀어가는 과정도 함께 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노동조합 없이 비정규직 노동자가 문제제기하는 것이 가능했을까? 9년 전엔 정규직 여교사가 문제제기하는 것도 뜯어말렸는데…’ 그런 생각을 합니다.
 
[권수정] 노동조합이 다 같진 않지만, 건강한 노조인 경우에는 물론 도움이 됩니다. 아시아나의 경우에도 관련 문제를 해결할 제도를 만들고 교육시킨 것은 노동조합이에요. 노조가 해결한 사례도 있고요. 사람들에게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 누군가 함께해줄 거라는 가능성이 열려있다는 점이 중요한 것 같아요. 가해자 옆에 사람들이 붙는 게 아니라, 피해자에게 지원군이 되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또 노조의 역할이 중요하죠.
 
[우지영] 서울대병원은 조합원이 아닌 간호사들도 많은데, 비조합원 중에서도 투서를 보내거나 상담을 오는 사람들이 많아요. 노동조합이 이 문제에 도움이 된다고 여긴다는 거겠죠. 2010년에 들어왔던 투서는 수술장 간호사들의 ‘섹시 댄스’ 문제였는데요. 노동조합 사무실 문틈으로 편지를 넣어서 제보했어요. 노동조합이 문제제기해서 언론에도 나고, 일파만파 퍼지자 부서 관리자가 간호사들에게 자발적인 행위였다고 게시판에 글을 쓰게 했어요. 그러면 다음날 바로 투서가 또 들어와요. ‘우리 게시판에 글 억지로 썼다’, ‘장기자랑 싫은데도 한 것이 맞다’고. 지금은 이런 관행들은 사라졌습니다.

다른 사례도 있는데, 같은 간호사 관계에서의 성추행이었어요. 남성 간호사가 회식에서 여성 간호사를 만취하게 해서 자기 집으로 유인하는 수법을 상당수 간호사들에게, 몇 년 동안 썼습니다. 여성 간호사들이 마음 속에만 담고 있다가, 어느날 우연히 누군가 이야기를 하자 길게는 8년 전 발생했던 일을 ‘어? 나도 있었다’고 하면서 꺼내놓고 공유하게 된 거죠. 노동조합에 진정이 들어왔고, 이 남성 간호사는 사직 처리됐어요.

그런데 비조합원들이 ‘이런 일은 노조에 가서 얘기해야 된다’고 생각하게 된 이유가 있어요. 보통 처음에는 관리자에게 가서 이야기를 하거든요. 신뢰가 있는 관리자에게 가서 상의를 했는데도 ‘일을 크게 만들지 말아라’, ‘너도 좋아한 거 아니냐’라는 말을 들은 거죠. 그래서 노동조합을 찾아오게 된 것도 있습니다.
 
[오늘보다] 앞선 여러 사례들에서 여성들이 피해 여성에게 ‘일을 크게 만들지 말자’고 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점이 눈에 띕니다.
 
[권수정] 여성들이 남성에 비해 열악하고 불안정한 일을 하고 있다 보니 다른 여성과 연대하기 어려운 조건에 있는 것으로 보여요. 이런 문제제기를 해도 해고의 불안함이 덜하고, 만약 이 직장을 떠나도 생활이 불안정해지지 않을 수 있는, 그런 사회적 시스템이 있다면 사람들이 좀 더 용기낼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해봐요. 여성들은 한국의 사회시스템 내에서 더 불안한 조건에 놓여 있기 때문에 이런 문제들이 발생하는 것 같아요.
 
[배민희] 노동조합이 없는 곳에 비해 확실히 노동조합이 있으면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어요. 하지만 노동조합도 내부에서 바꿔야할 문제가 많은 게 사실이에요. 이해와 공감보다 몸을 사려야 하는 문제로 인식하는 경우들도 종종 봐요. 무엇을, 왜 조심해야하는지만 생각하는데, 실은 공감이 안 되니까 잘 모르는 거겠죠. 노동조합 내부에서 관성적으로 성폭력 사건에 대응하는 게 아니라, 함께 공감대를 형성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오늘보다]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과도 이어지는 것 같은데요. 직장 내 성폭력 문제를 해결할 때의 어려움은 뭐가 있었나요? 
 
[우지영] ‘일을 크게 만들지 말자’는 식의 말들? 당사자 주변에도 있을 수 있고 관리자가 할 수도 있고 노동조합도 그럴 수 있어요. 몰래카메라를 간호사 탈의실에 설치해서 그 영상이 해외사이트에 올라가는 일이 생긴 적이 있어요. 노동조합이 대응하려고 했는데 당사자 여성이 전화해서 일을 크게 만들지 말아달라고 했어요. 자기는 아직 결혼도 안한 20대인데, 문제제기를 해서 소문이 더 크게 나지 않았으면 한다고요. 그래서 일을 더 진행시키지 못했죠.

그런데 6개월 뒤에 그 간호사한테 연락이 왔어요. 관리자가 자기 앞에서 노동조합 번호를 누르고 수화기를 가져다 대서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고요. 그때 관리자가 병원이 조사를 할 테니 믿어달라고 해서 기다렸는데 조치를 취하지 않아 결국 노동조합에 다시 연락한 거죠. 처음 사건을 알았을 때 몰카를 설치한 범인으로 의심되는 의사가 있었는데, 병원은 쉬쉬하면서 덮고, 당사자가 원하지 않으니까 노동조합도 대응을 못하고… 근데 이 의사가 병원에서 수련만 받고 나가는 사람이어서 6개월 뒤엔 저희 병원 직원이 아니었거든요. 일을 키우지 말자는 병원 전체의 생각 때문에 해결할 시기를 놓친 거죠.
 
[배민희] ‘미투 운동’은 평범한 여성노동자가 하기는 어렵고 사회적으로 보장된 직업이나 생계를 위협받지 않을 여성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공장에서는 미투 운동이 불가능해요. 생계가 직결되어 있거든요. 본인 스스로도 성폭력 피해를 당한 게 부끄러운 일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요. 문제제기 후에도 많은 걸 감당해야 하는데, 2차 가해 문제도 있죠. ‘결국 집에까지 끌려가서 잤대’, ‘그 여자도 술을 많이 먹은 게 문제지’, ‘같이 자서라도 회사를 더 다니고 싶었겠지’ 이런 이야기가 나올 게 예상되거든요. 문제를 드러내기 어렵죠.
 
[오늘보다] 그럼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뭐가 필요할까요?
 
[권수정] 우리나라에서 여성의 신체에 대한 또 다른 의미 부여가 여성 스스로 말하지 못하게끔 하는데 크게 작용하는 것 같아요. 서구의 경우, 피해를 당했을 때 당사자는 폭력을 당한 것이지 수치심이나 정조의 파괴로 보지 않는 것 같거든요. 하지만 한국은 여성들 스스로가 그렇게 생각하죠. 이런 생각을 바꾸는 교육도 중요한 것 같아요.
 
[우지영] 저희 병원은 공공기관이라 성희롱·성폭력 의무교육이 배정되어 있는데요, 병원사업장에 맞게 할 수 있는 얘기가 많은데도 동남아시아에 가서 성매매하지 말라거나, 성희롱·성폭력 개념이 어떻게 다른지만 내내 설명하는 내용으로 채워져요. 이런 교육의 개선부터 필요하다고 봐요.
 
[정인용] 직장 내 성폭력은 ‘차별을 당연시’하는 것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해요.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차별이 없는, 여성과 남성이 차별받지 않는 직장 내 평등한 관계 형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적 분위기와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예를 들어 성희롱이 발생하면 기업주까지 책임을 묻는 방안도 모색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럼 그 기업이나 기관의 문화가 바뀌지 않을까요?
 
[우지영] 옆에서 힘을 주는 방법을 제 자신도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몰래카메라 건으로 해외로 떠난다는 사람의 얘길 들었을 때 함께 싸우자고 말하기 어렵더라고요. 그런데 성적인 문제가 아니라 임금 문제였다면 제가 더 적극적으로 나섰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노조 간부도 연습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권수정] 돌봄이나 간호 등 여성이 많이 종사하는 직종을 너무 저평가하는 것도 큰 문제라고 봅니다. 조종사보다 승무직은 임금이 많이 낮은데요, 승무직의 업무 내용을 어떻게 평가하고 가치를 매겨야하는지 고민이에요. 승무직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비상시 승객탈출·보안·응급시 기본적인 처치 등이고, 서비스는 마지막이라고 봐요. 그런데 서비스를 가장 중요시하면서 치마를 입히고 화장을 요구하죠. 이런 문제까지 포괄적으로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출처 허핑턴포스트코리아
 
[오늘보다] 그렇겠네요. 성희롱·성폭력 외에도 여성으로서 일하기 어렵게 하는 직장 내 분위기나 제도 등은 무엇이고, 또 이를 바꾸기 위해서는 무엇이 바뀌어야 할지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배민희] 저희는 법적으로 출산휴가가 있어도 실제로는 쓸 수가 없어요. 저와 함께 일했던 어떤 언니가 7개월 간 임신사실을 숨기고 일한 적이 있어요. 44살에 초산이었고, 어렵게 생긴 아이었지만 일을 꼭 해야 생계가 유지되는 상황이었거든요. 임신 사실을 얘기하면 해고될까봐 숨긴 거죠. 주변 동료들도 임신 사실을 잘 몰랐어요. 작업복을 계속 더 큰 것으로 입어서 배가 부른 줄은 모르고 살이 쪘다고만 생각하고 동료들이 살찌니까 그만 먹으라고 먹을 것을 뺏기도 했는데, 나중에 사실을 알고 그게 미안해서 운 사람도 있었어요. 그렇게 어렵게 숨겨서 계약기간이 많이 남았을 때 임신사실이 드러났죠. 그런데 회사는 출산휴가 주는 것을 꺼려했어요. 직원들이 강하게 제기해서 출산휴가를 받아내긴 했지만, 그 후로 임신한 다른 여성은 결국 재계약이 거부되고 출산휴가도 받지 못했어요.
 
[정인용] 여성이 훨씬 많은 직장에서도 승진은 남성이 하는 문화가 있죠. 이것도 성폭력을 야기하는 구조를 만드는데 기여한다고 봐요. 예전에 대학도서관 사서로 있었을 때 남성 직원이 소수였는데 승진교육을 위한 공문을 남성끼리만 회람하는 일이 있었어요. 승진 대상인 여성이 이를 나중에 알고 항의했죠. 기회를 박탈당해서 승진을 못한 경우도 있었고요.
 
[배민희] 같은 일을 해도 여성이 저평가됩니다. 내가 맡은 공정은 내가 제일 잘 아는데, 특히 기계 만지는 작업 같은 것은 그 공정을 맡은 여성보다 그 공정을 잘 모르는 설비담당 남성에게만 관성적으로 교육을 시켜요. 그걸 보면 분통이 터지죠.
 
[권수정] 제가 기성복 66사이즈를 입는데, 승무복은 88사이즈예요. 승무복은 다른 기성복보다 사이즈를 작게 만들어서 자꾸 압박을 줍니다. 외모를 중시하고 그것을 압박하는 분위기도 문제예요. 
 
[오늘보다] 마지막으로 ‘미투 운동’에 나서는 여성들과, 같이 일하는 남성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지요?
 
[정인용] 용기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왜냐하면 폭로자들이 비난당하니까요. ‘미투’를 보면서 세상이 조금 달라지고 있다는 생각을 했고, 선언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미투 선언을 하는 여성들에게는 자신감을 가지라고, 응원한다고 말하고 싶고, 미투를 외치는 여성들이 자신감을 가지도록 남성들도 응원하고 지지했으면 좋겠습니다.
 
[권수정] 페미니즘 운동이 한동안 침체됐다가 다시 살아나고 있잖아요. 그래서 반발도 큰 것으로 보여요. 하지만 ‘물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 하잖아요. 이를 계기로 다양한 방식과 장소에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신영복 선생님의 ‘입장의 동일함, 그것이 연대의 시작이다’라는 말을 좋아하는데요. 남성은 여성과 다른 위치에 있지만 같은 마음으로 연대해줬으면 합니다.
 
[배민희] 미투 운동이 색다르거나, 갑자기 튀어나온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오래 전부터 있던 일이 지금에야 이슈가 됐고, 다시 시들해질 수도 있겠죠. 하지만 시들해지더라도 계속 목소리를 내고 우리 주변부터 바꾸는 노력을 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남성들은 페미니즘 문제가 어렵고, 조심해야 할 문제라고 여기는 게 아니라, 인간 대 인간의 문제로 생각하면 좋겠어요. 모르면 배우려고 노력하는 자세도 필요하고요. 여성들뿐만 아니라 남성들도 함께해야 바뀐다고 생각합니다.
 
[우지영] 미투 운동이 확대되면 좋겠습니다. 몰카 피해자들도 얘기할 수 있으면 좋겠고요. 저는 남성의 말도 많이 듣고 싶어요. 저와 함께 일하시는 분들도 페미니즘이나 성폭력 이야기가 나오면 겁부터 냅니다. 그게 침묵으로 이어지고, 결국 여성들이 문제를 감당하는 결과를 낳기도 하잖아요. 남성들이 진지하게 성찰하고 솔직하게 고백할 수 있도록, 여성들이 사건 해결을 전담하기보다 공동의 과제로 삼을 수 있는 방법을 저도 같이 고민해나가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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