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1.12.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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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이 죽어가고 있다.- 자본의 세계화가 민중건강에 미친 영향

김범수 | 민중의료인연합
7초마다 1명의 어린이가 굶주림과 영양실조로 사망합니다.
지난 10년 간 전쟁으로 2백만 명의 어린이가 목숨을 잃었고, 8백만 명의 어린이가 부상을 당했습니다.
전세계 21억 명의 어린이 중
• 3명 중 1명이 영양실조 상태입니다.
• 4명 중 1명이 하루 생활비 1달러도 안 되는 가난한 가정의 어린이입니다.
• 5명 중 1명이 초등학교에 다니지 못합니다.
• 12명 중 1명이 5살이 되기도 전에 질병으로 사망합니다.
지구상에는 세계인구 전체가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식량과 기본 질병들을 치료할 수 있는 의약품이 있습니다.
모자라는 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아직은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합니다.
-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사랑의 선물 보내기” 홍보자료 중에서


비참의 세계화 : 과연 ‘사랑’의 부족 때문인가?
개발도상국의 경우, 어린이가 2초마다 1명씩 굶주림으로 사망하고 있다. 매년 굶주림으로 사망하는 어린이의 수는 무려 1,400만 명에 이르는데, 이것은 히로시마 원자폭탄이 매년 60개씩 터지는 위력에 버금간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약 8억 명의 인구가 장기적인 영양결핍 상태에 처해 있다. 이 뿐 아니다. 극빈 국가의 경우에는 출생 시 기대수명이 20년 전에 비해 오히려 줄어들어서 40세에 불과한 반면, 부유한 국가의 경우에는 출생 시 예상 수명이 80세를 넘고 있다 World Health Organization. The World Health Report 1999. WHO, 2000
. 개별 국가 단위로 볼 때도 계층 간 건강수준의 격차는 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미국의 경우 흑인과 백인간의 저 체중아 출생률과 영아사망률의 격차가 해를 거듭할수록 커지고 있으며 Millman M(ed). Access to health care in America. National Academy Press, 1993
, 소득 수준에 따른 사망률의 격차도 계속 벌어지고 있다 미국에서 이루어진 1967년과 1986년 사이의 소득수준에 따른 사망률 차이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1960년대 이후 사망률의 감소가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이 같은 건강수준의 향상은 모든 인구집단에게 동일한 혜택으로 돌아간 것은 아니다. 사망률을 소득수준에 따라 구분해서 살펴보면, 저소득계층의 사망률은 이 기간 동안 오히려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이 같은 경향은 1990년대 이후 더욱 심화되었다(Schalick LM., et al. The widening gap in death rates among income groups in the United States from 1967 to 1986. International Journal of Health Service, 2000;30(1):13-26).
. 1989년 의료보험 미가입자의 수는 8백3십만 명이었는데, 7년 후인 1996년에는 의료보험 미가입자의 수가 무려 4천1백7십만 명으로 급증하였다 Carrasquillo O., et al., Going bare: Trends in health insurance coverage, 1989 through 1996. American Journal of Public Health, 1999;89(1):36-42
. 특히,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이 같은 건강에서 불형평성의 심화가 특정 국가에 한해서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인류 역사상 유래 없는 경제적 부의 축적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집이나 일자리, 그리고 먹을 것이 없는 사람의 숫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질병에 걸려도 병원 방문은 고사하고 약 한 봉지 변변하게 써보지 못하고 죽어 가는 사람의 숫자도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제약회사 창고에는 의약품이 지천으로 쌓여 있음에도, 매 3초마다 1명씩 돈이 없다는 이유로 약을 먹지 못해서 죽어나가고 있다.
UNDP(United Nations Development Programme), WHO(World Health Organization) 같이 인도주의적 입장을 견지하는 국제기구 UNDP는 ‘세계화가 인류 진보를 위한 엄청난 기회를 제공할 것(Globalization offers great opportunities for human advance)’이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으며, 세계보건기구(WHO) 역시 ‘세계화에 저항하는 국가는 세계 공동체와 경제체제에서 뒤쳐질 수밖에 없다’면서 세계화에 저항하는 민중들의 투쟁을 ‘고립주의’, ‘국수주의’, ‘민족주의’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는 이 같은 문제를 야기하는 주요한 갈등을 남․북의 문제로 바라보고 있다. 이들은 북반구에 사는 사람이 풍요로움의 일부를 떼어주면, 남반구에 사는 사람이 인간적인 삶을 함께 할 수 있는 것인 양, 가진 자의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촉구하고 있다. 실제로 이들의 활동은 감동의 물결로 밀려오기도 한다. 아수라 같은 저개발국 난민촌에서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사랑을 실천하는 이들의 모습을 TV로 보면서 진한 감동을 느끼지 않을 강심장은 그리 흔치 않다. 고상한 인도주의와 탈정치주의로 특징지어지는 이러한 시각은, 인도주의적인 국제기구들 뿐 아니라, 서구 선진국이 건강의 불평등 문제를 접근하는 주류적 관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과연 유니세프의 홍보 문안에 나오는 것처럼, 인류가 심오한 ‘사랑’을 회복하고, 부유한 국가나 부자가 가난한 국가나 빈자에게 ‘나눔’을 실천하면, 인류가 ‘비극’과 ‘질병’, 그리고 ‘사망’의 구렁텅이에서 빠져 나올 수 있을까?

비참의 세계화 : ‘자본의 세계화’의 직접적 결과
현재 세계 곳곳에서 거의 동일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는 ‘비참’과 ‘질병’과 ‘사망’의 고통은 ‘남․북 갈등’이 문제의 본질이 아닐 뿐 아니라, 부유한 자나 국가의 자선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이 같은 시각은 북반구에서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고 있는 사람의 일종의 죄의식을 반영하고 있는 동시에, 각 국가의 계급관계, 지배계급의 국제적 동맹 문제를 은폐하는 것이다. 또한, 제3세계의 고통이 개별 국가의 정치적, 사회적 후진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파악하게 한다.
건강 문제를 포함하여 민중의 삶을 둘러싼 제반 조건이 시간이 갈수록 형평성을 잃어 가는 것은 자본의 세계화에 기인한다. 즉, 자본의 세계화에 의해 사상 유래 없는 부의 증대, 경제적 부의 양극화, 복지국가의 재분배 기능의 해체, 공적 하부구조의 급격한 와해로부터 직접적으로 야기된 결과이다 Navarro V. Whose globalization?. American Journal of Public Health, 1998;88(5):742-743
.
오늘날의 세계화 자본, 노동, 그리고 지식의 흐름 자체가 원래 악하거나 선한 것은 아니다. 문제는 누가 그 흐름을 관리하고, 누구에 의해 결정되는지? 그리고 이로 인해 누가 이득을 보는지에 달려 있다.
는 ‘무제한적이고, 무절제한 이윤 추구를 특징으로 하는 자본, 노동, 지식의 국제화의 특수한 형태’이자, ‘각 사회의 계급관계를 공고히 만들고자 하는 특정한 경제적 이해에 부응하는 국제화의 특수한 형태’이다. 그런고로 작금의 세계화는 계급 지배의 정치적, 이념적 수단에 다름 아니다 Navarro V. Health and equity in the world in the era of "globalization". International Journal of Health Service, 1999;29(2):215-226
.
그러면 이런 자본의 세계화가 민중으로부터 어떻게 건강을 박탈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민중을 질병과 사망의 구렁텅이로 빠뜨리는지 살펴보자.
첫째, 자본의 세계화에 기인한 경제적 부의 양극화 자체가 압도적 다수 민중을 질병과 사망으로 밀어 넣는다. 계층 간 소득 격차의 확대는 모든 국가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현상이다 최근 발간된 세계은행의 보고서 “세계발전 2000/2001, 빈곤과의 투쟁”에서는 가장 부유한 나라 20개국의 평균 소득은 가장 가난한 국가 20개국의 평균 소득보다 37배가 높으며, 이런 격차는 지난 40년 동안 배가 증가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세계 인구의 46%에 달하는 28억 명이 하루에 2달러 이하로 살고 있다. 약 70개국의 국민일인당 평균 소득이 20년 전에 비해 줄어들었다(Ramonet I. The politics of hungry. Le Monde Diplomatique, November, 1998). 미국의 경우 1973년에서 1994년 사이에 미국민의 1인당 총국민소득은 3분의 1이 올랐지만 전 노동인구의 4분의 3에 해당하는 모든 노동자의 평균총액임금은 오히려 19%나 떨어졌다(강수돌 역. 세계화의 덫. 영림카디널, 1997). 우리나라의 경우도 1979년이래 소득 불형평성이 매년 증가하고 있다. 최근 신문기사(한겨레신문 2001년 12월 3일자)에 따르면, 2001년 현재 근로자 가구의 하위 60%가 1997년에 비해 실질 소득이 줄어든 반면, 최상위 10%는 실질 소득이 14.02%가 늘어났으며, 계층간 소득격차를 보여주는 10분위 소득배율(=최상위 10% 소득/최하위 10% 소득)이 최근 4년 사이 7.59배에서 9.12배로 늘어났다. 즉, 경제가 성장하고 부가 증가하면 할수록 계층간 경제적 불평등은 더욱 커져 가는 것이다.
. 그런데 경제적 부의 불형평성이 건강 악화를 야기한다는 것은 보건의료정책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는 상식에 속한다. 기존 연구결과에 따르면, 한 국가의 경제적 부가 일정 수준 이하인 경우(예를 들면 저개발국가)에는 경제적 부의 절대적 수준이 건강수준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국가의 경제적 부가 일정 수준 이상인 경우에는 평균 소득이 아니라 소득 분배의 형평성이 인구집단의 건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경제적 불평등이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기전은 크게 다음과 같다. ① Under-investment in human capital : 인적 자본 투자가 하락하여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 ② Loss of social cohesion and disinvestment in social capital : 사회자본의 침해, 사회조직의 파괴, 사회적 결합력의 감소로 인한 범죄 증가, 건강유지 기능 약화. ③ Income inequality and the theory of social comparision : 소득 불평등으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 사회적 스트레스가 직접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
. 즉, 경제적 부가 몇몇 사람에게 집중된다면 평균 소득이 아무리 상승하더라도 인구집단의 건강수준은 하락한다 Wilkinson RG. Socioeconomic determinants of health. Health inequalities: relative or absolute material standards?. BMJ, 1997;314:591-595
. 가까운 대만에서 이루어진 연구에서도, 국가 전체적인 경제적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소득 불균형과 사망과의 관련성이 매우 강력하게 나타났다 Chiang TL. Economic transition and changing relation between income inequality and mortality in Taiwan: regression analysis. BMJ, 1999;319:1162-1165
국내에서 이루어진 연구에서도 소득수준과 사망률간의 관련성이 입증되고 있다. 조홍준의 연구에 따르면, 성, 연령과 같은 인구학적 변수와 흡연력, 음주력, 수축기혈압 등 건강상태별 지표를 보정한 후에도 소득수준이 가장 높은 군에 비해 소득수준이 가장 낮은 군의 사망률이 2.2배 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조홍준. 공교 의료보험 피보험자의 사회계층별 사망률 차이에 관한 연구.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1997).
. 그런데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자본의 세계화는 가난한 국가를 더욱 가난하게 만들 뿐 아니라, 저개발국과 선진국을 막론하고 계층 간 부의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있기 때문에 건강의 형평성과는 정확하게 반대되는 방향이다.
두 번째, 세계화는 민중건강에 악영향을 끼치는 새로운 ‘위험’을 발생시켰다. 이윤 창출 조건을 극대화하기 위한 ‘탈규제화’는 노동조건의 악화로 직결되었으며, 이는 노동자 건강의 악화로 이어진다. 노동과정에서 발생하는 손상과 건강 악화는 열악한 노동환경과 산업위생, 안전대책 부재의 결과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최근에는 여기에 ‘탈규제화’로 인한 노동조직과 구조의 변화가 추가되었는데, 이 범주에는 노동강도 강화, 반복작업, 불규칙한 노동시간, 자율성의 저하와 고객 중심 경영의 영향, 새로운 경영모형이 요구하는 노동유연성 증대, 고용단위의 분절화, 불안정 노동의 증가 등이 포함된다 Walters D. Health and safety strategies in a change Europe. International Journal of Health Service, 1998;28(2):305-331
. 그 결과, 산업재해의 증가와 함께 새로운 유형의 건강 악화와 손상이 발생하고 있다 매년 발표하는 노동부의 산업재해 발생 자료를 보면, 산업재해자 수의 경우에는 1991년 12만8천여 명에서 1999년 5만5천여 명으로 감소하였지만, 같은 기간 동안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자 수는 큰 변화없이 2,300여 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산재 사망자 1인당 산업재해자의 비율은 약 8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공식을 적용하면 1999년의 전체 산업재해 발생건수는 적어도 1991년 수준보다 적지 않으며, 발생한 산업재해의 상당수가 은폐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노동현장에서는 고용 불안정성이 심화됨에 따라서 산업재해 발생 사실을 은폐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산업재해나 직업성 질환 발생 사실이 알려지면 정리해고 일순위가 되기 때문에 참고 참다가 노동을 도저히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러서야 산업재해나 직업성 질환 발생 사실을 알리게 되는 것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노동부의 발표 자료는 산업재해로 인정된 건수만을 포함한다는 사실이다. 최근 노동형태의 변화에 따라 신경성 질환, 근골격계질환이 급격히 증가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질환들이 산업재해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외국에서는 산업재해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피부질환도 산업재해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만약 이런 질환들이 산업재해로 인정받게 된다면 전체 산업재해 발생 건수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으로 증가했을 것이다.
. 더군다나 ‘탈규제화’라는 명목으로 노동자 건강에 대한 자본과 국가의 책임을 약화시키면서 건강하게 노동할 권리는 더욱 위축되었다. 노동자 건강에 대한 공격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산업재해에 대한 보상제도를 엄격하게 적용함으로써 산재보험으로의 진입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상황을 정리해 보면, ‘탈규제화’로 인해 노동자는 위험한 노동환경에 노출되고, 그 결과 건강이 악화되고 있음에도, 노동자 건강에 대한 국가나 자본의 책임은 더 가벼워지고 있으며, 산업재해와 직업성 질환에 대한 경제적 보상도 줄어들고 있다. 그리고 노동자는 해고의 위험 때문에 산업재해와 직업성 질환 발생 사실을 스스로 드러내지 않는다. 노동자 건강과 삶을 훼손하고, 노동자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쥐어짜기에 이보다 더 완벽한 조건이 갖춰질 수 있을까? 우리나라는 여기에 한 술 더 뜬다. 산재의료원은 산재노동자를 적극적으로 치유하기보다는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건강검진이나 특수검진 등에 더 주력하는 경향이 있다. 수익성 논리에 휘둘리기는 근로복지공단도 마찬가지이다. 도대체 노동자의 건강은 어디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가?

세 번째, 자본의 세계화는 각 국가의 공공의료체계, 공적 의료보장체계, 즉 공적 하부구조를 해체함으로써 민중건강을 직접적으로 훼손한다. 자본의 세계화 물결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그 동안 민중건강을 최소한의 수준으로나마 보장해주었던 공적 하부구조의 참담한 시체만이 남아있다. 이런 상황은 남미, 동남아, 동유럽, 아프리카 등과 같은 저개발, 제3세계 국가에서 더욱 분명하고 폭력적으로 드러났다. 건강 유지를 위한 공적 하부구조가 해체됨으로써 저개발, 제3세계 민중은 의료이용의 기회를 원천적으로 봉쇄당했다.
네 번째,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해체된 공적 하부구조의 자리를 ‘시장’이 차지하게 되었다. 이전까지 암묵적으로나마 공적 영역으로 인정되던 보건의료 영역이 적극적인 이윤 창출의 장으로 변모하였다. 특히, 자국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른 미국의 민간의료보험 자본이 미국 정부와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IMF) 등의 지원(이른바 ‘서비스시장 개방 압력’과 ‘차관 지원의 대가로 요구한 민간 부문의 활성화’) 하에 제3세계 국가를 집중 공략하였다. ‘시장’은 단순히 공적 하부구조를 '대체'한 것이 아니라 공적 하부구조를 '해체'하는 주요한 힘으로 작용했으며, 세계 민중은 경제적 능력에 따라 자신의 건강을 보장받는 냉혹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상의 내용 중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자본의 세계화’ 그 자체가 민중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세 번째와 네 번째는 ‘자본의 세계화’가 보건의료 구조 전반을 재조직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민중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는 개념 파악의 용이성을 위해 ‘공적 하부구조의 해체’와 ‘보건의료 영역의 사유화․시장화’를 구분해서 설명했지만 사실 이 둘은 동전의 양면처럼 동시에 적용되면서 개별 국가의 보건의료재원 조달구조, 보건의료서비스 제공체계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공적 하부구조의 해체’와 ‘보건의료 영역의 사유화․시장화’는 탈규제화, 자유화, 민영화를 강령으로 하는 ‘자본의 세계화’가 개별 국가 차원의 보건의료 영역에서 발현되는 구체적 양식이다.
. 그러면 이제 세 번째와 네 번째에서 살펴본 ‘공적 하부구조의 해체’와 ‘보건의료 영역의 사유화․시장화’를 중심으로 ‘자본의 세계화’가 민중건강을 놓고 저지른 일, 그리고 저지르려 하는 일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공적 보건의료체계의 붕괴를 불러온 ‘세계화’
각 국가는 ‘생산적’ 경제 활동의 활성화를 위해 공공 및 사회서비스 예산을 줄이고 있으며, 이로 인해 사회적 지출과 공공 소비(public consumption)가 급격하게 위축되었다 국가간의 경제적 불형평성이 심화되면서 제3세계 국가들의 부채는 날로 늘어나고 있는데, 이것 역시 사회적 지출 축소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파키스탄을 예로 들면, 국가 전체 세입의 1/3을 차관이자 지급에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제3세계 민중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과도한 채무 탕감과 미국이 적대국가에게 행사하고 있는 경제제재 완화, 그리고 국제적인 지원이 필수적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Akhter MN. & Pappas G. Health, Pakistan, and Globalization. American Journal of Public Health, 2001;91(1):13-14).
. 그 결과, 기존의 사회보장체계는 잔여적이고 제한적인 형태로 전환되었다. 신자유주의의 시각에서 볼 때, 사회보장체계는 개인을 나태하고 부도덕하게 만들며, 생산적 경제활동을 저해하는, 따라서 축소되거나 생산적 경제활동에 조응하는 형태로 전환되어야 할 비생산적인 영역이다. 보건의료 영역에서 이 같은 자본의 의지는 ‘공적 보건의료체계의 붕괴’로 나타났다.
80년대 중반 이후 베트남은 국제통화기금(IMF) 통치체제 하에 들어가게 되면서 사회 각 분야에서 큰 변화를 겪게 되었다. 그 중 보건의료부문에서 나타난 신자유주의적 개편의 첫 번째 결과는 농촌보건소와 지방병원의 몰락이었다. 1989년까지 보건의료기관은 모든 민중에게 무상으로 진료와 기초 의약품을 제공해 왔다. 그러나, 보건의료부문 구조조정 이후 본인부담제가 도입되고, 비용현실화와 의약품의 자유 시장 판매가 허용되었다. 그 결과 공공분배를 통해 이루어지던 기초 의약품의 소비가 89%나 감소했고, 이로 인해 베트남의 제약 및 의료기기 생산산업은 파산을 맞았다. 그리고 제약산업에 대한 규제가 완전히 철폐되면서 다국적 제약회사의 수입의약품이 엄청나게 높은 가격으로 거의 독점적으로 팔리고 있다. 의료장비 구입과 유지에 필요한 예산지원이 중단되면서 전체 보건의료제도는 마비상태에 이르렀고, 보건의료인의 실질임금과 노동조건 역시 악화되었다. 그리고 사적 의료활동이 허용되자 수 만 명에 달하는 의사와 보건의료 종사자가 공공보건의료기관을 떠나가면서 공공보건의료체계가 거의 붕괴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미셀 초스도프스키. 이대훈 역. 빈곤의 세계화. 당대, 1998

공공보건의료체계의 붕괴는 베트남 민중의 건강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미쳤다. 말라리아, 결핵, 설사 등과 같은 전염병이 베트남에서 다시 발생하고 있다. 보건의료체계의 신자유주의적 개편이 실시된 이후 질병 치료활동이 위축되고 말라리아 치료제의 가격이 폭등하면서 말라리아에 의한 사망자 수가 3배나 증가했다. 베트남 민중은 “이전에는 각종 보건의료서비스를 국가로부터 제공받을 수 있었는데 이제는 돈이 없어 의료서비스를 도무지 이용할 수 수 없다”고 불평을 터뜨리고 있다. 세계은행은 과거 베트남의 공공보건의료정책이 성공적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문제 해결책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은 공중보건의 민영화, 의사와 보건의료인력의 감축이다. 다른 동남아 국가와 남미, 아프리카 국가의 경우도 베트남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의 요구로 추진한 신자유주의 개편 이후 콜레라, 말라리아, 황열, 뎅기열병 등이 다시 창궐하기 시작했다. 전염성 질병의 창궐은 최소한의 보건의료서비스를 제공하던 공공의료체계가 붕괴되면서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1994년 인도에 창궐한 임파선 질병과 폐렴은 ‘1991년부터 시작된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에 따른 중앙 및 지방정부의 예산 감축 때문에 도시지역의 공공 보건위생 하부구조가 약화된 데서 생긴 직접적인 결과’라고 알려져 있다 Madrid Declaration of Alternative Forum, The Other Voices of the Planet, Madrid, October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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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 보건의료체계의 붕괴 현상은 동유럽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나고 있다. 사회주의 몰락 이후 동유럽의 국가 주도형 보건의료체계는 급격한 해체를 경험하게 되었다. 유고연방에서 분리독립한 크로아티아는 국가의료체계를 운영하고 있던 다른 동유럽 국가와는 달리 공적으로 관리되는 의료보험제도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보건의료서비스에 대해 포괄적 급여를 제공하고 있었기 때문에 의료이용의 접근성 측면에서는 다른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와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1990년대 초반 사회주의 정권이 붕괴되면서 의료보험의 급여 범위가 엄격하게 제한되기 시작했다. 의료서비스 제공량과 유형이 제한되었고 과거에는 의사와 간호사의 방문진료가 중요한 진료활동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현행 의료보험체계에서는 방문진료를 급여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 결과 1990년대 이후 방문진료 건수는 과거의 1/3 수준으로 감소하였다. 각종 예방진료도 급여 대상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에 예방진료 건수 역시 1/2 이상 감소하였다. 의료기관들은 예방진료 대신 고비용의 각종 치료의학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리고 일차진료를 담당하는 일반의가 전문의로 의뢰할 수 있는 환자의 수를 제한하였다. 이에 따라 일반의는 환자가 전문진료 영역에 진입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는 ‘문지기(Gatekeeper)'로 작용하게 되었다.
, 거의 대부분의 의료서비스와 의약품에 대해 본인부담금이 부과되었다. 과거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이용하려면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해야만 하는데, 전체 국민 중에서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사람의 수는 최상위 1%에 불과한 실정이다. 그 결과, 전체 국민의 7%만이 최근 이루어진 의료보험체계 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전체 국민의 절반 이상이 본인부담금의 급증을 의료이용에 있어 큰 장벽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Chen MS. & Mastilica M. Health care reform in Croatia: For better or for worse?. American Journal of Public Health, 1998;88(8):1156-1160
. 이 같은 현상은 다른 동유럽 국가에서도 유사한 양상으로 벌어지고 있다. 체코의 경우, 국가가 재원을 부담하는 사회주의 의료체계에서 보험료와 본인부담금을 부과하는 보험 방식으로 전환되었다. 이와 함께 외래진료 분야가 민영화되었으며, 의약품 무상제공을 위해 국가가 부담하던 보조금이 대폭 삭감되었다. 결국, 70% 이상 수준으로 유지되던 전체 보건의료지출 중 공공부문이 차지하는 비율이 불과 몇 년 사이에 36% 수준으로 하락했다 Massaro TA., et al.. Health system reform in the Czech Republic: Policy lessons from the initial experience of the General Health Insurance Company. JAMA, 1994;271:1970-1974
. 헝가리의 경우도 국가의료체계가 보험 방식으로 전환되었고, 일차진료의 민영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러시아 역시 ‘기본 진료를 보장하는 강제보험’과 ‘추가적인 진료를 보장하는 민간보험’을 혼합하는 형태로 국가의료체계를 전환했다 Schieber GJ. Health care financing reform in Russia and Ukraine. Health Affair, 1993;(suppl):295-299
. 결과적으로 1990년대 이후 동유럽 국가에서 이루어진 ‘시장지향적’ 의료보험제도 개편은 기존의 공적 보건의료체계의 장점을 폐기하면서 대다수 민중의 의료서비스 접근성을 하락시키고, 의료이용의 계층 간 불형평성을 심화시켰다.

건강을 이윤 창출 수단으로 전락시킨 ‘자본의 세계화’
‘자본의 세계화’가 진행됨에 따라 보건의료를 공적 영역으로 받아들이던 과거의 사회적 동의 지반은 현저히 약화되었다. 보건의료 부문도 다른 경제 부문과 다름없이 이윤을 쫓는 일반적인 통상 분야로 인식되면서 이윤 축적의 또 다른 장으로 변모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공공 및 사회서비스의 민영화가 진행되고, 재원 조달 구조에서 민간 역할의 증대(민간의료보험, 본인부담제 등)가 세계적인 차원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보건의료를 움직이는 힘은 ‘시장’이 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보건의료에서 기업형 이윤 논리가 확장될수록 보건의료자원 분포의 불형평성이 증가하고, 다수 민중의 건강조건은 악화된다 Whiteis DG. Unhealthy cities: Corporate medicine, community economic underdevelopment, and public health. International Journal of Health Services, 1997;27(2):227-242
. 또한 사회보장의 확대와 자본주의 기업의 지역적 확대 사이에는 강한 긴장 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Marone JA. & Goggin JM. Health policies in Europe: Welfare states in a Market era. Journal of Health Politics, Policy and Law, 1995;20(3):557-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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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의 경험을 보면, 민간 부문 확대는 형평성, 비용, 의료의 질 측면에서 뿐 아니라 보건의료체계 전반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간위탁된 3개 지방공사의료원을 대상으로 한 국내 연구결과에 따르면, 민간위탁 이후 환자의 진료비 부담이 급증하였으며, 저소득계층에 대한 보호 기능이 훼손되었고, 의료원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평등사회를위한민중의료연합. 지방공사의료원의 구조조정․민간위탁․민간매각과 노동조합의 대응. 2001).
. 말레이시아에서는 정부의 정책적 지원 하에 1990년대 이후 민간병원이 급속하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이후 빈곤층을 진료하는 자선병원에 대한 재정 지원이 중단되었는데, 그 이유는 자선병원에 대한 재정 지원이 민간병원에 불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었다. 도시 지역으로 민간병원이 집중되었으며, 공공병원 의사는 민간병원으로 대거 빠져나갔다. 민간병원은 건강증진이나 예방활동을 통해 의료수요를 감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생산하는 의료서비스를 보다 많이 판매하는데 자원을 투입하였으며, 수익을 올리기 위해 복잡하고 비싼 의료기술을 계속 도입하였다. 그 결과 일부 부유층을 제외한 대부분의 의료 접근성이 악화되었다. 게다가 공공부문 지출을 엄격히 통제함에도 불구하고 통제할 수 없는 민간부문의 지출이 급격히 증가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국가 전체의 보건의료비 지출이 급증하는 결과를 빚고 있다 Barraclough S. The growth of corporate private hospitals in malaysia: Policy contradiction in Health system Pluralism. International Journal of Health Services, 1997;27(4):643-659
. 즉, 더 많은 사회적 지출을 하면서도 의료서비스를 이용하기는 더욱 힘들어졌다. 결국 이익을 보는 것은 ‘건강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의료’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돈이 되는 의료’를 판매하는 의료자본 뿐이다.
미국과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등의 신자유주의 국제기구는 담배나 무기처럼 민간의료보험 보건의료재원을 조세(특히, 직접세)로 충당하는 국가들은 누진적이다. 사회보험의 경우에는 전반적으로 역진적인데, 그 이유는 사회보험료에는 최대상한치가 있고, 일부 국가의 경우 수입 증가에 따라 보험료 증가율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민간의료보험은 가입자의 위험도에 따라 보험료가 부과되기 때문에 사회보험에 비해 더 역진적이며, 본인부담은 사회보험, 민간보험보다 더 역진적이다(Doorslaer EV. & Wagstaff A. Equity in the finance of health care: Methods and findings. Equity in the finance and delivery of health care. Doorslaer EV., et al.(ed). Oxford Medical Publications, 1993). 서구 선진국을 대상으로 한 국제비교 연구 결과에 따르면, 민간의료보험과 '시장‘ 기전에 의존하고 있는 국가에서 의료이용의 불형평성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특히 민간의료보험과 본인부담금에 대한 의존성은 전체 보건의료체계를 분절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Schoen C., et al. Health insurance markets and income inequality: findings from an international health policy survey. Health Policy, 2000;51:67-85).
을 제3세계에 팔아먹는데 혈안이다. 미국은 국내 민간의료보험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자국의 상업형 민간의료보험체계인 매니지드케어(Managed care)를 동유럽, 남미, 동남아 등으로 수출하고 있다 1997년 미국병원협회에서 실시한 조사보고서에는 민간의료보험에 대한 미국 국민들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제한된 접근성과 질 하락, 그리고 비용 절감을 통한 이윤극대화에 몰두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계획적인 체계나 수요자 중심적인 조직을 본 적이 없다. 미국인들은 보험회사들의 이윤 추구 행태를 비난하고 있으며, 보험회사들이 너무나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의료이용을 지나치게 제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민간의료보험에 대한 대중적 불만은 공급자조직인 병원협회조차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인 것이다. 자국민에게조차도 인기가 없고, 민중의 건강과 삶에 위해한 것 팔아먹기로 치자면, 담배, 무기, 민간의료보험이 다를 바 하나 없다.
. 특히 남미에서는 세계은행 세계은행은 의료저축제도(Medical Saving Accounts)라고 불리는 민간의료보험을 ‘21세기형 의료보장제도’로 강력 추천하고 있다. 의료저축제도는 각 금융기관에 개인별로 구좌를 개설해서 매달 일정액을 입금하고, 질병이 발생했을 때 그 구좌에서 인출하여 진료비를 지불하는 제도로서, 일정 연령 이상이 되면 적립되어 있는 돈을 의료이용의 목적 외에도 개인이 인출하여 소유할 수 있다. 의료저축제도는 ‘개인의 건강은 개인이 돌본다’는 철학에 기반한 제도로서 사회보장제도가 가지는 연대성의 원리는 깡그리 부정된다. 세계은행이 이 제도를 강력 추천하는 중요한 이유는 기존 사회보험과는 달리 의료저축제도 하에서는 생산활동에 바로 전용할 수 있는 천문학적인 재원이 금융기관에 적립되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의료저축제도는 자본의 이해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우리나라도 1998년 제2차 구조조정차관(structural adjustment loan II) 제공의 조건으로 세계은행으로부터 의료저축제도 도입을 요구받았으며, 향후 민간의료보험 도입의 유력한 유형 중의 하나로 검토되고 있는 중이다.
, 미국국제개발기구(USAID)의 주도 각종 투자협정에서의 서비스 시장 개방 압력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나라도 한미투자협정에서 미국 의료자본의 국내 진출을 원활하게 만들기 위한 법적, 제도적 정비를 요구받았다.
, 세계보건기구(WHO)의 지원 하에 미국식 의료체계의 이식이 급속도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남미 국가에서 상업적 민간의료보험의 확산은 공적 의료보장체계를 약화 혹은 해체시켰으며, ‘이윤’을 보건의료정책 결정의 주요한 동기로 자리잡게 만들었다. 제3세계 국가에서의 상업적 의료체계 확산을 연구한 웨이츠킨(Waitzkin)은 상업적 민간의료보험의 침투로 인해 공적 의료보장체계가 와해되고 민영화되면, 다국적 기업은 여기에 진출해 거대한 이윤을 챙기고서 수 년 안에 철수할 것이다. 따라서 제3세계 국가는 공적 의료보장체계를 다시 건설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Waitzkin H. & Iriart C. How the United States Exports Managed Care to Third World Countries. Monthly Review, 2000;52(1)(http://www.monthlyreview.org/500waitz.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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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경고가 현실화된 대표적인 국가가 칠레인데, 역설적으로 보건의료체계 상업화 지지자에 의해 다른 나라가 따라야 할 모델로 가장 빈번하게 언급되고 있는 국가 또한 칠레이다. 1973년 쿠데타 이후 칠레의 새 정부는 공공예산을 축소하고 민영화를 추진하는 긴축경제개혁을 시행하였다. 이에 따라 예방 치료서비스와 특정한 기본서비스만 국가가 비용을 부담하고, 나머지는 대부분 민영화하는 매우 포괄적인 민영화가 시행되었다. 그 중 가장 큰 사건은 실업보호기금을 의료보험기금에서 분리하고, 양 기금의 관리를 민간부문에게 맡긴 것이었는데, 그 결과 보건의료재정은 ISAPRE라는 민간의료보험, 국민의료보험기금(FONASA), 보건부가 각각 맡게 되었다. 원칙적으로 모든 노동자는 이 중 하나를 선택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부유층만이 민간의료보험의 보험료를 감당할 수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는 경제적 능력에 따라 접근할 수 있는 기금이 이미 정해지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경기후퇴로 인해 실질 소득이 떨어지게 되면서 일반 민중은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민간의료보험이 도입된 지 7년 후에도 가입자 수는 전체 인구의 14%에 불과했으며, 가난한 사람만이 보건부 시설을 이용하게 되면서, 보건부의 보건의료재정은 계속적인 압박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만큼 보건의료서비스의 질이 떨어지는 악순환을 그리게 되었다. 칠레를 민영화의 모범사례로 칭송하는 것은 이중적 의료체계(Two-tiered health system)를 고착화한 대가이다. 민간의료보험회사는 고소득층이 흥미를 느끼는 보험상품을 개발하였고, 엄격한 가입조건을 적용하였다. 결국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한 부유하고 건강한 사람과 공적 의료보험에 가입한 가난하고 병약한 사람으로 인구집단이 계층화되었고, 사회적 연대의식은 철저히 파괴되었다 WHO.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료관리학교실 역. 의료비의 최근 추세와 전망. 한울, 1995
Hsiao WC. Marketization; The Illusory Magic Pill. Health Economics, 1994;3:35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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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재원을 공적 영역(public sector)에서 사적 영역(private sector)으로 전환시키는 또 다른 기전은 본인부담제 최근에는 ‘본인부담’(Cost sharing)이라는 용어 대신 ‘이용자 부담’(User charge 혹은 User fee, 이 용어도 세계은행에서 개발한 것이다. 본인부담제 도입도 의료저축제도와 마찬가지로 세계은행의 단골 메뉴다)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90년대 이후 공적 의료보험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철학적 전제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Cost sharing'이라는 용어에는 공적 의료보험에서 모든 의료서비스를 보장해 주어야 하지만, 공적 의료보험이 가지는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의료서비스를 이용하는 개인에게 비용을 일부 부담케 한다는 함의가 포함되어 있다. 즉 비용 부담의 기본적인 책임 소재를 공적 의료보험에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User charge'라는 용어에는 비용 부담의 책임은 기본적으로 의료서비스를 이용하는 당사자에게 있다는 함의가 포함되어 있다. 이 같은 용어상의 변화는 개인의 책임과 선택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와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이진석. 본인부담제의 개념과 각 국가의 적용 현황. 건강보장동향, 2000년 11월호).
이다. 본인부담제 확산은 자본의 세계화 과정에서 각 국가가 직면해 있는 예산 감축 압력, 그리고 건강 문제에 대한 개인 책임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이념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있다. 자본의 세계화가 본격화된 1990년대 이후 서구 선진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본인부담제를 도입하거나 본인부담체계 조정을 통해 본인부담금을 인상했다.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본인부담제 역시 민중건강에 악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본인부담제가 야기할 수 있는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위험이 큰 질병은 가격 비탄력적이므로 본인부담의 효과가 미흡할 것이며, 특히 저소득층에 대한 의료접근의 기회를 제약하게 된다. 둘째, 본인부담의 과잉수요 억제효과는 단기적인 것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수요감소에 따른 의사 소득감소를 보전하기 위한 필요 이상의 과잉진료를 유발할 수 있다. 셋째, 본인부담은 소득계층에 따라 부담이 역진적이므로 의료접근 기회의 형평성에 문제를 야기한다. 넷째, 질병의 조기진단 및 치료를 주저하게 되어 장기적으로 치료비를 증가시키고 국민건강증진에 부정적인 효과를 초래할 것이다(최병호, 노인철, 신종각, 이상영. 의료보험 본인부담 실태와 급여체계 개편방안. 한국보건사회연구원, 1997).
. 본인부담제를 강화한 대부분의 국가(특히 저개발 제3세계국가)에서 의료이용률이 큰 폭으로 하락하거나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특히, 의료이용의 필요성이 높은 특정 집단, 즉 전염성 질환이나 예방접종으로 예방가능 한 질환에 걸려있는 저소득층은 본인부담제 도입이나 인상으로 인해 의료의 접근성이 낮아져 이들의 필요가 충족되지 못한다는 증거가 다수 제시되고 있다 WHO.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료관리학교실 역. 보건의료개혁에 대한 최근의 논의. 한울, 1998
Mossialos E. & Grand JL. Health care and cost containment in the European Union. Ashgate, 1998
. 가나의 경우 1984년 외래 방문수가 450만 건이었는데, 본인부담이 크게 오른 1985년의 외래 방문 수는 160만 건으로 줄어들었다 Waddington CJ. & Enyuimayew KA. A Price to Pay, Part 2: The impact of user charges in the Volta region of Ghana. International Journal of Health Planning and Management, 1990;594:287-312
. 1989년 본인부담제의 변화가 있었던 케냐의 경우에도 외래 방문수가 37% 떨어졌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50% 이상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고 WHO/National Health Systems and Policies, Report of an Intercountry meeting on Public/Private Collaboration for Health. WHO, 1994
, 레소토의 경우에도 본인부담이 인상된 1988년 이후 의료 이용율이 40-51%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본인부담제의 의료이용 억제효과는 제3세계국가 뿐 아니라 선진국에서도 유사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Solanki G. & Schauffler HH. Cost sharing and the utilization of clinical preventive service. Am J Prev Med, 1999;17(2):127-133
Soumerai SB., et al., Effects of Medicaid drug-payment limits on admission to hospitals and nursing home. NEJM, 1991;325:1072-1077
. 또한 본인부담을 통해 확보할 수 있는 추가 재원이 예상보다 훨씬 적을 뿐 아니라 세계은행은 본인부담을 통해 약 10-20%의 추가적인 보건의료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그러나 본인부담제 운영에 필요한 구조와 인력을 마련하는데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실제로 확보할 수 있는 추가 재원 비율은 큰 폭으로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나 본인부담제는 형평성을 하락시킬 뿐 아니라 효율성 측면에서도 문제가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 그나마 추가로 확보된 재원도 취약계층의 접근성을 향상시키는데 사용하기보다는 일반 의료에 투자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론
자본의 세계화로 인한 소리 없는 학살에 비하면, 군사적 패권주의로 인한 학살(이를테면 걸프전쟁에서 10만 여명의 어린이들을 희생시킨 미국의 첨단 미사일이나 미국 대사관 폭발사건에 대한 보복 공격으로 수많은 아프가니스탄 민중을 질병의 나락으로 밀어 넣은 아프가니스탄 제약공장 폭격 등)은 가시적이고 그래서 오히려 솔직한 편이다. 자본의 세계화로 인한 학살은 일상적이고, 합법적이며, 대규모로 자행된다는 점에서 무력 행사를 통한 학살보다 훨씬 잔혹하고 끔찍하다. 그런 점에서 세계화는 총알이 아닌 기근과 질병으로 사람을 살상하는 경제적 집단학살에 다름 아니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민중은 ‘자본의 세계화’로 인해 형성된 구조와 질서를 통해 ‘비참’과 ‘질병’과 ‘사망’의 구렁텅이로 내몰리고 있다.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시시각각 다가오는 굶주린 자본의 이빨만이 보일 뿐이다. 이런 고통이 사랑과 나눔의 실천을 통해 해결될 수 있을까?
민중이 건강한 삶을 영위하는데 부족한 것은 부유한 국가의 적선이나 고상하고 알량한 인도주의가 아니다. 부족한 것은 ‘자본의 세계화’로 인해 국경과 민족을 초월해서 동일한 고통을 경험하고 있는 피착취 민중의 연대이다. 또한, 사회구조 전반에 대한 변혁과 계급지배 질서에 대한 투쟁을 통해 ‘자본의 세계화’를 끊어낼 피착취 민중의 실천이다.
사회의학의 선구자격인 비르효(Virchow R.)는 "의학은 사회과학이자 넓은 의미에서의 정치학에 다름 아니다“라는 말로 의학의 사회학적 성격을 설명했다. 오늘날 비르효의 언명은 ”민중건강 쟁취의 과정은 자본의 세계화에 대한 피착취 민중의 연대투쟁이자 넓은 의미에서의 계급지배 질서의 전복 과정에 다름 아니다“라는 말로 재해석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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