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 오늘사회운동
  • 2018/05 제40호

죽지 않고 일하고 싶은 새 카나리아 이야기

얘도 아프고, 쟤도 아프고, 다 아픈 공단노동자들

  • 손현규
2월 마지막 주, 새 직장으로 첫 출근을 했다. 생산직인 건 이전 회사와 같았다. 하지만 여기는 첫 출근부터 작업복도 주고, 현장에 들어가기 전 에어샤워도 있었다. 더 넓고 깨끗한 것이 제대로 된 회사 같았다. 언니들은 에어샤워 칸 안에 세 줄로 빽빽하게 서서 앞사람 어깨에 팔을 올렸다. ‘쏴~’하고 찬바람이 쏟아졌다. 눈감고 견디며 앞사람 어깨를 열심히 주물렀다. 싸한 파스 냄새가 좁은 공간에 가득 찼다.

매달 말일이 출하날이었다. 제일 바쁠 때 취업한 것이다. 지원을 온 언니들과 신입 언니들에게 조장언니가 일하는 방법을 알려줬다. 조장언니는 내가 손놀림을 유심히 보면서 얼굴을 찌푸렸다. 그리고 라인을 둘러보며 기차 화통을 삶아먹은 소리로 언니들에게 손을 빨리 놀리라고 외쳤다. 라인에 딱 붙어 서서 고개를 숙이고 화장품 포장 작업을 반복했다. 힘쓰는 일도 아닌데 어깨가 점점 아팠다. 날갯죽지가 타들어갈 것처럼 아파올 때쯤 쉬는 시간 벨이 울렸다. 십 분을 쉬니 또 할 만했지만, 다음 타임이 되니 더 빨리 어깨가 아파졌다. 얼굴을 찡그리며 아픈 것을 참았다. ‘다니다보면 요령이 생기겠지.’ 옛날에 다녔던 곳에서는 손이 느리다고 잘렸다. 이번 회사는 오래 다니고 퇴직금도 받고 싶었다.

다들 손 아프다고 꺼리는 공정에 배치됐다. 언니가 세 개씩 끼라며 쟁여둔 장갑을 챙겨줬다. 안 그러면 손가락이 다 까지고 손목도 아프다고 했다. 딸각거리는 손가락을 보여주면서 이런데 오래 있어봐야 골병만 든다고 했다. 다른 언니는 병원 갔더니 관절염이라고 했다. “아니 내가 상자를 하루에 몇 천 개씩 접어서 아픈 거라니까요?”, “관절염이 왔네요”,  “그런 거 원래 없었다니까?” 언니가 성내는 목소리에 다들 같이 맞장구쳤다. “의사가 너무 했네.”, “우린 일해서 아픈 건데”, “그렇지만 어딜 가든 이런 일 할 거면 똑같아.” 끝나는 말은 늘 같았다. “어딜 가든 똑같다고 생각하고 참고 다니면 오래 다니는 거야.” 
 
(YTN news 캡쳐)

점심을 먹고 나서 휴게실에 옹기종기 모여 핸드폰을 확인했다. 근로시간 단축법이 국회에서 통과됐다고 해서, 다들 그 내용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언니들은 바빴던 지난주에는 월화수목금금금 7일을 전부 일했다(평일엔 잔업이 매일매일 있었다). 이번 주도 매일 잔업을 하고 있었다. “이거 우리 해당되는 거 맞아?” 우리 회사 사람들은 몇 명일까. 사람은 몇 백 명 될 것 같았지만 우리는 전부 아웃소싱이다. “우린 언제부터 단축이야?” 300인 이상이 올해 여름부터라는데, 회사 인원에 아웃소싱이 포함인지 아닌지 아는 언니는 아무도 없었다. “수요일엔 잔업 확실하게 없었으면 좋겠어. 안 그럼 일주일이 너무 힘들어” “잔업 안 하고 그냥 토요일에 특근하면 차라리 나은데” 잔업, 특근을 자주 빠졌다는 언니는 아웃소싱 담당자가 따로 면담하더니 다음날부터 보이지 않았다.

같이 사는 친구네 회사도 말일이 출하라고 했다. 매일매일 10시, 11시 넘어 퇴근이고 심할 땐 밤을 새기도 했다. 하루는 밤새 친구가 뒤척였다. 팔이랑 배를 벅벅 긁는데 빨갛게 두드러기가 나 있었다. “회사 식당에서 뭐 잘못 나왔나봐” 너무 심하면 조퇴하겠다던 친구는 같은 공정에서 작업했던 친구가 두드러기와 열이 같이 나서 밤사이에 응급실에 다녀왔다는 말을 듣고 사색이 됐다. 엘시디(LCD) 닦는 공정에 같이 들어갔었는데 출하 직전이라 바쁘니 이전보다 빠르게 잘 닦이는 약품으로 바뀐 것 같다고 했다.

택시비를 받아 자기는 병원에 다녀왔는데, 다음날 그 공정에 들어간 다른 사람들이 또 두드러기가 났다고 했다. 친구네 회사는 비상이었다. 평소보다 빠르게 많이 작업하다가 쇳가루가 눈에 튀어 병원에 다녀온 언니도 있었다. 출하 날짜가 다가오자 두드러기가 난 사람을 병원에 보내주지도 않았다. “아니 고무장갑 끼고 그냥 하라는 거야. 일단 두드러기 나면 일하다가 긁지도 못하는데” 두드러기가 얼마나 괴로운지 안 나 본 사람은 모른다. 너무 가렵고 괴로워서 작업을 더 할 수가 없다. 매일매일 다른 사람들을 그 공정에 넣고 있어서 다들 자기도 두드러기가 날까봐 겁낸다고 했다. 친구는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점심시간에 과장님한테 따졌다. “여기 좀 보세요. 이렇게 두드러기가 나서 도저히 작업 할 수가 없어요.” 과장님,  주임님은 자기들을 벌레 보듯 쳐다봤다고 했다. 왜? 자기네 회사에서 일하다 그런 건데.

따지고 나서는 팔토시와 장갑을 더 지급하고, 두드러기가 난 사람들은 병원에 보내줬다. 과장은 “회사에서 이렇게까지 해줬는데 물량은 맞춰야 하지 않겠냐”고 분위기를 잡았단다. 팀원들은 물량을 못 맞춰 자책하기도 했다. 친구는 다른 라인으로 넘겨졌고 점심시간도 어긋나서 어울리던 친구들과 같이 다닐 수 없었다. 라인 친구들과 점심시간에 “연두, 연두, 연두!!!” 외치며 컬링 하는 게 낙이었는데. 아웃소싱에서는 갑자기 새로운 일자리로 가라고 매일매일 연락 온다고 했다.

그때 썼던 약품은 이제 안 쓴다고 과장님이 말했다는데, 두드러기 났을 때 뭘 썼었는지 지금은 뭘 쓰는지 당최 알 수가 없다. “메탄올 아니야?” “몰라 자기들은 에탄올이라는데” 다른 검사공정의 친구네 회사에서는 손끝이 허옇게 되도록 메탄올로 제품을 닦는다고 했다. 우리 또래가 실명한 사건은 다들 알고 있었지만 물량을 빼려면 쓸 수밖에 없었다. 라인에서 기름때 닦는 작업했던 언니들이 그랬다. 그거 헥산 마사지인데 잘못하면 앉은뱅이 되니까 조심하라고. 조심하라니 뭘 어떻게 조심할 수 있나. 마스크는 일회용을 계속 쓰고, 장갑은 기름때에 찌들어도 새 거 안 주는데.
 

옛날에 광산에 갈 때는 카나리아를 데리고 갔다는 말을 본 적이 있다. 카나리아를 데리고 막장에 가면, 독가스가 찼을 때 예민한 카나리아는 죽어버린다. 광부들은 카나리아가 노래하는 동안 일하다가, 노래가 뚝 끊기면 바로 탈출했다고 한다. 우리가 카나리아일까? 우리 몸에 두드러기가 나고, 실명하고, 팔다리를 못 쓰게 되고, 백혈병에 걸리면 위험하구나, 몽땅 골병이 들면 회사가 너무 위험하구나 하고 안다. 아니, 알기라도 하면 좋겠다. 

출하 직전 손 아프니까 자리를 바꿔달라고 울상이던 언니에게 라인장 언니는, “지금 다들 바빠, 얘도 아프고 나도 아프고 쟤는 목에 파스 붙였잖아! 다들 아프면서 일해!”라고 소리쳤다. 조장 언니가 사람을 더 급한 쪽으로 빼가서 다들 한계를 넘어서까지 일하던 참이었다. 아프면서 일 안 하면 안 되나? 물량 좀 덜 빼면 안 되나? 진작 우리의 노래는 끊긴 것 같은데, 일할 만한 상황이 아니면 일하지 말아야 하는데. 막장에 새 카나리아만 밀어 넣지 말고 작업장을 바꾸는 노래가 이어지면 좋겠다. 죽지 않고 병들지 않고, 그렇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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