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 오늘여성
  • 2018/06 제41호

노동자운동은 미투와 어떻게 만날까

  • 김유미
지난 5월 8일, 한 여성이 미투 운동을 보고 용기를 얻었다며 5.18 당시 성폭력 피해를 증언했다. 이후 다른 추가 증언도 이어졌다. 계엄군의 성폭력이 있었다는 소문은 무성했지만 피해 여성들이 스스로의 경험을 말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서지현 검사의 검찰 내 성폭력 폭로로 한국에서 미투 운동이 시작되고 대략 4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많은 사람들이 성폭력을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말하고 해결해야 하는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게 되었다.

지난 4월, 미투 운동에 관한 인식 조사에 1013명이 답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여성의 76.2퍼센트, 남성의 66.5퍼센트가 ‘미투 이후 성희롱이나 성폭력, 성차별 이슈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다’고 답했다. ‘미투를 지지한다’는 응답은 이보다 높은 비율로 여성의 83.8퍼센트, 남성의 75.8퍼센트에 달했다.
 

우려스런 전망

그러나 같은 조사에서 ‘미투로 인해 펜스룰이나 성별 갈등이 심화될 것’이라는 의견은 응답자의 절반에 가까웠다. (여성 44.3퍼센트, 남성 49.2퍼센트) 긍정적 평가와는 별개로 이후 전망에 대한 우려는 상당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온라인 커뮤니티를 살펴보면 개별 사건이 ‘진정한(?)’ 미투인지 아닌지를 가늠하거나, 페미니즘의 위상이 높아지는 것에 불편한 심경을 토로하는 반응이 다수로 보이기까지 한다. 여성 직원 채용이나 공동 업무·회식이 부담스럽다는 이른바 ‘펜스룰’ 역시 만연하다. 이는 한국 사회에 미투 운동에 대한 ‘백래시(반격)’ 위험이 높고 이미 진행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고 무엇을 할 것인가.
 

이 글에서는 페미니즘을 향한 백래시를 막고 여성의 삶을 변화시키는 데에 노동자운동의 역할이 매우 중요함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는 여성들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것을 넘어, 미투 운동 이후 어떤 방향의 운동을 기획해야 할지를 제안하는 것이기도 하다.
 

노동조합이 미투에 응답해야

미투 운동에 분명한 지향이나 조직이 있는 것은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 크고 작은 폭로전과 연대의 흐름은 있었으나 그것은 에스엔에스(SNS)라는 느슨한 연결망과 #MeToo, #WithYou 해시태그 등, 산발적이고 개별적으로 이루어졌다. 미투 운동은 정확히 말해 ‘특정한 유형의 성폭력 피해 경험을 공론화하는 연속적 움직임’에 가깝다.

특정한 유형이란 무엇인가? 그동안 미투 운동을 통해 공론화된 성폭력 사건들은 ‘일터의 성폭력’, ‘조직과 집단 내 성폭력’, ‘권력형 성폭력’ 등으로 호명되어왔다. 성폭력이 비정상적 인물이나 낯선 범죄자에 의해 발생한다는 통념과는 확연히 다른 양상이다.

가해자는 피해자와 지속적으로 마주치는 관계이며, 집단 내에서 피해자보다 많은 권력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조건에서 피해자는 성폭력이 발생하자마자 강하게 저항하기 어렵다. 가해자와의 관계가 틀어지거나 소문이 날 경우 본인이 집단에서 쫓겨나거나 괴롭힘을 당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소속된 사람들의 꿈이나 생계에 직결되는 집단일수록, 공적인 시스템이 미비하고 인맥에 의해 좌우되는 업계일수록, 가해자의 행위에는 거리낌이 없고 피해자는 대응이 불가능하다고 느낀다. 따라서 피해자는 성폭력 발생 이후 오랜 시간 침묵하거나, 비슷한 일이 반복되더라도 적극 대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미투 운동을 통해 공론화된 성폭력은 여성이 공적 사회에서 ‘살아남고’, ‘성장하는’ 일련의 과정을 심각하게 훼손한다. 따라서 각각의 사후적 처벌만이 아니라 여성의 시민권, 노동권이라는 관점에서 살펴야 제대로 이해될 수 있다. 여성의 공적 진출이 당연시되는 시대지만 일터에서 여성은 성적 대상, 연애 대상, 또는 결혼 후에 떠날 존재로 취급받는다. 이러한 조건에서 성폭력은 드물지 않게 발생한다.

노동조합은 여성노동자의 노동권을 보장하며 ‘일터의 성폭력’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주체다. 권력자의 입장이 아니라 노동자의 입장에서 접근하고, 외부 기관이 아니라 조직 내부에서 노동자들 스스로 변화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함께 대응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 동료·집단이 조직 내에 있다고 믿었다면, 애초에 여성이 일터와 사회에서 중요한 구성원으로 존중받았다면 어땠을까? 이토록 많은 여성들이 성폭력 경험을 뒤늦게, 그것도 폭로라는 방식으로 제기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운동은 미투 운동에 적극 응답하고 미투 이후 일터와 사회의 변화를 주도해야 한다.
 

근본적인 변화를

2018년 한국에서 미투 운동이 유난히 폭발적인 반향을 불러온 이유는 무엇일까. ‘촛불 이후’라는 특수한 조건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JTBC 뉴스라는 공론장을 통해 권력자의 횡포를 폭로하고 사법적 절차가 진행되는 것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서지현-김지은의 미투 폭로, 대한항공 회장 일가의 ‘갑질’ 고발 등에서 비슷하게 반복된다. 폭로에 나선 이들은 이것이 잘못된 일임을 사회가 인정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부당한 일에 침묵하지 않고 문제라 말하는 것은 그 자체로 중요한 일이다. 노동자운동은 이러한 정세에 적극 개입해서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하지만 폭로 또는 청원 방식이 갖는 난점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지속적·집단적 운동이 되기보다 누군가를 강력히 처벌하는 것만으로 귀결되기가 쉽다는 점이다.

지속적인 운동을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의문을 던져야 한다. “왜,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나?”, “우리 사회의 무엇을 바꾸어야 하나?” 《페미니즘을 팝니다》의 저자 앤디 자이슬러는 ‘개인들을 위한 상업적이고 문화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인간의 권리에 관한 이념 또는 체제를 바꾸는 운동’으로서의 페미니즘을 복원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개별 사안에 관한 끝없는 폭로와 분노, 응징을 넘은 사회변혁의 전략이다.
 

여성 스스로의 역량 강화가 우선

지난 5월 16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등이 주최한 ‘미투 입법 과제’ 국회토론회에 따르면 서지현 검사의 성폭력 피해 폭로 다음날인 1월 30일부터 4월 30일까지, 3개월 동안 국회에서 발의된 ‘미투 대응 법안’은 96개에 달한다. 발제문은 미투 대응 법안을 △성폭력범죄자에 대한 처벌 강화, △성폭력 피해자의 2차 피해 예방, △성폭력 예방 및 피해자 보호, △성희롱 방지 및 사용자 책임 강화, △공직사회 및 문화예술계 등 성범죄 엄정 대처, △성차별·성희롱 및 여성폭력방지를 위한 법제정 등 여섯 가지 범주로 구분하고 있다. 

법안이 많이 발의되었다고 덮어놓고 환영할 일은 아니다. 가해자의 처벌 수위나 가벌성을 강화하는 법 개정이 여성의 권리 확대로 바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페미니즘 운동의 관점에서 볼 때, 성폭력 문제에 대한 법적 접근은 한계적이고, 그렇기 때문에 논쟁적이다. 첫째, 법은 남성과 여성의 성적 차이를 인식하지 못한다. 성폭력 관련법에서 성폭력이란 ‘개인 대 개인’의 문제로만 상정된다. 둘째, 성폭력이 이성애적 관계와 연속선상에 있다면 ‘어디까지가 성폭력이냐’는 문제는 해소되기 어려운 질문이다. 배은경은 <성폭력 문제를 통해 본 여성의 시민권>(1997, 여성과사회)이라는 논문에서 이 문제에 관해 “성폭력은 매우 넓은 스펙트럼에 걸친 행동들의 연속적 총체이기 때문에, 일정한 조건을 정해놓고 그 충족 여부만을 따지는 법의 양분법적 인식은 처음부터 성폭력 문제를 다루기에 적합하지 않은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셋째, 사법 시스템 안에서 성폭력임을 인정받기 위해 여성은 피해의 심각성·치명성을 강조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여성이 성적 주체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사라질 우려가 있다.

미투 관련 입법안 중 가장 논쟁적인 부분은 ‘비동의 간음죄’의 신설이다. 법률상 성폭력 개념을 상대방의 ‘저항’이 아니라 ‘동의’를 기준으로 정의하자는 것이다. 법률계에서도 찬반 논의가 거센데, 특히 반대 의견 중 과잉처벌 및 과잉보호의 위험성으로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 실현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지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법제도의 변화가 아니다. 여성들 스스로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자각하고 표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페미니즘 운동은 이를 위한 학습과 정치적 실천에 우선해서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페미니즘 교육의 필요성

현재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라 사업주는 연 1회, 60분 이상 성희롱 예방교육을 실시할 의무가 있다. 이러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3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하지만 신고가 들어오지 않는 한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다. 2012년 공공기관의 예방교육 실시 비율은 99.6퍼센트에 달했으나, 민간기업은 그 비율이 매우 낮다. 2011년 민주노총이 여성조합원 171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3.5퍼센트만이 소속 회사에서 예방교육을 실시한다고 답했다. 또한 많은 사업장이 성희롱 예방교육을 대면 교육이 아닌 동영상 교육으로 대체하는데, 실효성이 매우 떨어질 수밖에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교육의 내용이다. 현행 성희롱 예방교육은 직장 내 성희롱의 개념과 법령을 소개하고, 성희롱 발생 시 처리 절차 등을 소개하고, 성폭력이 될 수 있는 사례를 나열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러한 교육은 참가자들이 여성의 권리에 대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들지 못한다. 특히 남성노동자들이 성폭력을 기준과 맥락을 알 수 없는 주관적인 사례들로 인지하고, 조심하며 침묵하게 한다. 성희롱 예방을 위해 정말 필요한 것은 개념·사례·절차를 소개하는 교육이 아니라, 제대로 된 페미니즘 교육이다. 노동자운동은 사업장 현실이 구체적으로 반영되고,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구성된 성폭력 예방교육 교안을 직접 만들고 노동조합 간의 교류 및 교육 실행을 통해 이를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앞으로의 과제

일반적으로 미투 운동은 ‘성폭력 사건에 대한 폭로’ 자체를 지칭하는 말로 쓰인다. 미투로 공론화된 성폭력 사건들은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스캔들이자 관련 법제도의 개선이 필요한 문제로 다뤄진다.

그러나 미투를 통해 드러난 성폭력 유형은 한국 사회, 특히 ‘일터’에 여성 시민권이 부재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따라서 일회성 실천이나 개별 사건에 대한 처벌보다 직장 등 내가 속한 집단에서부터 변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관점이다.

미투 운동 이후 노동조합이 해야 할 바는 명확하다. 여성조합원들 뿐만 아니라 남성조합원들까지 여성의 권리를 이해하고 함께 싸울 수 있도록 교육과 실천을 기획해야 한다. 여성노동자들이 처한 현실과 요구를 구체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그 내용을 노동조합의 단체협약에 반영하고, 미조직노동자들도 적용받을 수 있도록 정부와 사용자 집단에게 요구해야 한다. 

이러한 실천으로 노동자운동은 노동조합이야말로 ‘일터에서 여성들이 겪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확실한 경로’라는 표상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미투 운동은 훨씬 더 강력하고 지속적인 영향력을 얻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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