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 노동보다
  • 2018/09 제44호

신입 간호사의 죽음, 서울아산병원은 응답하라!

故박선욱간호사사망사건공동대책위의 활동과 의미

  • 유지인
간호사는 요즘 같은 경제 위기에도 취업이 잘 되는 직업으로 인식되고 있다. 실제로 많은 학생이 부모님 등 주변의 권유로 간호학과에 입학한다. 그러나 동시에 간호사라는 직업은 사직을 많이 하는 직업이다. 대학을 막 졸업한 신규 간호사들은 입사 후 1년 이내에 3분의 1 정도가 사직한다. 사직을 결심하기까지 각자가 겪는 경험은 다양하겠지만, 한 줄로 요약할 수 있다. ‘내가 죽거나 환자를 죽이게 될까봐.’ 그리고 올해 2월, 실제로 죽음으로 내몰린 신규 간호사가 세상에 알려졌다. 


“아직도 해결 안 되었어요?”

서울아산병원 신규 간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은 웬만큼 알려진 것 같다. 병원 주변에서 유인물을 나눠주면 대부분 알고 있다는 반응이다. 6월, 선전전을 막 시작했을 때는 한 마디가 더 따라붙었다. “올해 초에 있었던 일 아니에요? 아직도 해결이 안 되었어요?” 

이 사건은 발생 며칠 후, 고인의 남자 친구가 SNS에 글을 올리며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졌고, 3월 3일 추모 집회에 400명이 넘는 사람이 모이면서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그러나 병원과 정부의 응답이 없는 상황에서 언론이 잠잠해지자 사건이 묻혀버릴 우려가 있었다. 그즈음에 두 간호사 단체의 제안으로 ‘故박선욱간호사사망사건진상규명과산재인정및재발방지를위한공동대책위원회’가 꾸려지게 되었다. 이 긴 이름은 유족의 요구를 받아 안은 공동대책위의 목표가 반영된 것이다.

공동대책위는 간호 노동의 현실을 알리는 국회 토론회(4월), 사건의 해결과 간호계의 고질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집회 ‘간호사, 침묵을 깨다’(5월), 서울아산병원 고용노동부 고발(7월) 등을 진행했다. 6월부터는 서울아산병원 앞에서 매주 1인 시위와 유인물 배포도 이어가고 있다.  
 

공동대책위에는 다양한 시민사회단체들이 함께 하고 있는데, 이는 고인의 죽음에 여러 가지 문제들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태움’이라는 직장 내 괴롭힘 문제가 있고, “하루 세네 시간의 잠과 매번 거르게되는 끼니”라는 고인의 마지막 메모의 문구처럼 과로 노동의 문제가 있으며, 사선을 넘나드는 환자를 간호하는 중환자실 간호사로서 제대로 교육받지 못해 겪었던 극심한 압박감의 문제가 있다. 그리고 이 모든 문제의 배후에는 근본적인 원인인 간호 인력 부족 문제가 버티고 있다. 환자 안전의 문제도 뒤따라왔다.

고인의 죽음에 얽힌 위와 같은 문제들은 많은 사람이 함께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해결이 쉽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은 서울아산병원을 포함하여 병원계의 고질적인 문제들을 뜯어고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병원이 수익보다 노동자와 환자안전을 중요시하는 것으로 가치의 무게 중심을 이동시켜야 하는 문제다. 병원이 고인의 죽음에 사과하는 순간 간호 노동 문제에 책임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고 변화가 강제된다. 정부 역시 간호 인력 등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도록 강제될 것이다.
 

“그럼 본인은 어떤 방법으로 버틸 거죠?”

그래서 병원은 공식적으로 사과하지 않고 이 사건의 원인을 개인적인 문제로 축소하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병원은 사건이 알려지자마자 고인이 ‘예민한 성격’이었다고 언론에 퍼뜨렸다. 성격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쾌활하고 적극적이었던 고인이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13킬로그램이나 체중이 줄고 말수가 적어지는 과정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경찰 내사가 종료된 후에 자료를 받게 되면서 알게 된 사실에 따르면, 병원은 이미 원인을 파악하고 있었다. 병원은 사건 직후 작성한 내부 감사팀 보고서에 “병원의 교육 방식이 표준화되지 못하고 프리셉터 간호사(신규 간호사의 교육을 담당하는 선배 간호사)에 따라 상이한 방식으로 시행되어, 故 박선욱 간호사가 본인에게 적용된 교육방식에 대해 불만을 토로함(공통 진술)”, “본원 교육과정 상 중환자실 간호라는 복잡하고 어려운 간호 업무를 일률적으로 3개월 프리셉터 교육을 마친 후 곧바로 중환자를 담당하게 하여 故 박선욱 간호사에게 심한 업무 압박을 줌”이라고 명시했다.

또한 병원 내부 감사나 경찰 조사에서 고인과 함께 일했던 중환자실 간호사들은 3명의 환자를 담당하는 것이 너무 과중하며 인력 충원이 시급함을 호소했다. 신규 간호사들은 매일 수 시간씩의 초과 노동이 일상적이며 시간 외 수당을 청구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한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결국 병원은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을 알았음에도 적극적으로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려고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병원의 태도는 최근 ‘면접갑질’ 사건에서 극단적으로 드러났다. 서울아산병원의 면접관은 2019년 신입 간호사 공개채용 면접에 참여한 예비 간호사들에게 故 박선욱 간호사 사망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질문하며, ‘신입 생활을 어떻게 버틸 것인지’ 물었다. 예비 간호사들에게 고인의 죽음이 개인의 탓이라는 생각을 강요하고,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아무리 힘들어도 죽지 않을 것을 각오해야 채용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셈이다. 

그래서 공동대책위는 병원이 밝히지 않는 사실들을 드러내면서, 고인의 명예 회복과 간호사 전체 노동 조건 개선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병원이 공동대책위의 증거보전신청에 대응하면서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를 선임했다는 사실은, 아직도 밝혀내야 할 진실이 많다는 것을 방증한다. 
 

 

“다른 신입 간호사 역시 하루를 겨우 견디고 있는 것뿐이라고
장례식장에서 함께 울던 간호사들도 생각납니다”

8월 17일, 유족과 공동대책위는 사건이 발생한지 반년 만에 산업 재해 신청을 했다. 차마 고인의 사망 신고를 할 수 없었던 유족들은 7월에서야 사망 신고를 하였는데, 여전히 그 고통은 가늠할 수 없다. 산재가 인정되면, 이번 사건이 사회적인 문제라는 것을 알려내고 병원계에 재발 방지 대책을 강제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산재 신청 기자 회견에서 고인의 막내 이모가 발언했던 내용 일부를 아래에 실으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적극적이고 배우기를 좋아하던 선욱이에게 병원관계자들은 아이가 내성적이다는 말을 하고 일을 잘 못했다고도 했습니다. 저는 산재를 신청하면서 이런 질문을 해봅니다. 혹시 내성적인 사람은 일하면 안 되는 사회인가? 중증도가 가장 높은 3차 병원 중환자실에서 짧은 기간 동안 교육받고 환자를 맡고 있는 신입 간호사에게 일을 잘한다는 건 가능한 일인가? 다른 신입 간호사 역시 하루를 겨우 견디고 있는 것뿐이라고 장례식장에서 함께 울던 간호사들도 생각납니다. 무엇보다도 저는 선욱이의 마지막 메모에처럼 ‘부족한 잠과 거르게 되는 끼니, 선생님의 눈초리’, 저는 이 말 자체가 지금 병원의 현실이고 재해라 생각합니다. 저는 이곳에서 잘 판단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제는 보고 싶은 우리 선욱이게게 찾아가서 제가 ‘너 정말 힘들었지, 편히 쉬어’라고 말할 수 있게, 그냥 말만이 아니라 ‘이것 봐 사회도 니 잘못이 아니라고 하지’라고 근로복지공단의 판단을 보여 줄 수 있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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