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 여는글
  • 2018/12 제47호

민주노조의 중심, 자동차산업 노동조합을 돌아보다

  • 이준혁
80년대 서슬퍼런 군사독재의 국민 통제는 작업장에서도 큰 힘을 발휘했습니다. 하지만 그 엄습한 분위기를 뚫고 시작된 것이 바로 민주노조의 역사입니다. 많은 이들은 노동자계급이 한국사회에서 독자적인 세력으로 전면 등장하게 된 시점을 87년 ‘노동자 대투쟁’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번 호는 그 노동자 대투쟁의 포문을 열고 민주노조의 중심이 된 자동차산업 노동조합의 이야기입니다. 여기서는 그 가운데서도 가장 크고 활발히 활동했던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의 이야기를 다뤄볼까 합니다. 현대차노조의 지난 30년이 민주노조의 30년 역사를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죠.
 
 

노동자들의 인간 선언! 87년 노동자 대투쟁과 현대차

‘군대 다음 현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80년대 현대차의 군대식 규율 관행은 유명했습니다. 두발 규정도 있어서, 공장 경비들이 입구에 서서 출근하는 노동자들의 머리 길이를 쟀다고 합니다. 규정보다 길면 그 자리에서 가위로 머리를 잘라버렸습니다. 생산직 노동자들은 퇴근할 때마다 몸수색을 당하곤 했습니다.

결국 터질 게 터졌습니다. 전두환 정부가 6.29 선언을 발표하고 2주가 채 지나지 않아 전국적으로 작업 중단, 파업, 시위 등의 격렬한 노동쟁의가 발생했습니다. 7~9월 간 총 3341건의 노동쟁의가 있었는데, 이는 산업화가 시작된 1960년대부터 1987년까지의 노동쟁의 총수(2893건)를 능가하는 것이었습니다.

6월 민주항쟁의 중심지가 서울이었다면, 노동자 대투쟁은 울산에서 가장 치열하게 전개됐습니다. 현대의 창업자 정주영 회장의 유명한 말이 있죠.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노동조합을 인정할 수 없다”라고요. 덕분에 현대그룹 사에서 노동조합을 만드는 건 비밀작전이었습니다. 7월 5일 현대엔진 노동자들은 울산의 디스코텍에 몰래 모여 노동조합을 만들었습니다.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은 7월 25일 결성됐습니다.

파업이 시작되자 노동자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은 경비실을 때려 부순 일이랍니다. 파업 요구안에는 25~30퍼센트의 임금 인상과 더불어 두발 규제 폐지, 강제 아침 체조 중단, 점심 식사 개선 등 군대식 통제에 대한 불만이 매우 크게 반영되었습니다. 노동자들이 스스로 ‘인간’임을 선언한 셈이었죠.

어떤 면에서 우리들은 모두 ‘87년의 자식들’입니다. 노동자 대투쟁의 힘으로 노동운동은 비로소 독자적인 하나의 세력으로 등장했습니다. 노조 창립 이후 10년 동안 현대차 노동자들의 월급은 4배나 늘어났습니다. 노동자들이 드디어 내 차와 내 아파트를 살 수 있게 됐습니다. 노동조합의 인간 선언과 권리를 향한 투쟁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겠죠.
 

98년, 정리해고 투쟁의 안타까운 기억

10년이 지난 1998년, ‘IMF 시대’로 대표되는 외환위기가 닥쳤습니다. 한보, 대우 등 거대한 재벌사조차 부도 위기에 처했죠. 국가가 파산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현대차에서도 정리해고의 불운한 기운이 엄습합니다. 98년 4월 말 ‘1만 명 감원설’이 돌았고 회사는 5월 8189명의 정리해고 계획을 발표합니다. 현대차노조는 즉각 공장점거 농성에 돌입합니다. 

온 세상이 이 투쟁을 주목했습니다. 안 그래도 98년 초, 민주노총이 참여한 노사정 합의를 통해 정리해고가 법으로 제도화되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 뒤 대량 정리해고가 발생할 수 있는 첫 번째 사례였죠.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인 현대차와 노동운동의 핵심 세력인 현대차노조의 대결이라는 점에서도 주목을 받았습니다. 자본과 노동의 총력전이었던 셈이죠.

36일간의 밀고 당기는 교섭과 투쟁 끝에 현대차노조는 1261명의 1년 유급휴직과 277명 정리해고를 받아들입니다. 문제는 그 277명 중 144명이 공장 구내식당의 여성 노동자였다는 겁니다. 같은 조합원이었던 이들은 구조조정 투쟁에도 선두에 섰습니다. ‘밥주걱 부대’로 불리며 파업에 참여하면서도 사수대의 밥을 짓기 위해 방앗간을 오가고 시장에서 배춧잎을 주워 국을 끓였습니다. 이 ‘밥하는 아줌마들’은 그야말로 ‘투쟁의 꽃’으로 불렸습니다. 
그런 그녀들을 노사는 ‘정리해고를 막기 위한 정리해고 카드’로 활용했습니다. 몇몇 조합원들은 “약한 자들 돕는 거가 인간 도리 아입니꺼? 노동운동 그러는 거 아입니더.”, “식당 아줌마들 한 명도 내보낼 수 없습니더.”라며 울부짖었습니다. 하지만 집행부는 노사 합의안을 강행했습니다. 그녀들은 정리해고의 ‘희생양’이 되었습니다. 

당시 그녀들은 대부분 극빈 가정의 실질적인 가장이었습니다. 연대의 가치를 최고로 생각한다는 민주노총의 대표 노조가 자신보다 아래에 있는 이들을 버린 셈입니다. 이듬해 현대차가 4000억의 순이익을 내자 남성 노동자들은 복직했지만 이 여성 노동자들은 끝내 공장으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모든 노동자의 이야기

그 이후 20년의 노동운동의 역사는 어찌 보면 이때의 정리해고 투쟁과 비슷하게 흘러갔습니다. 많은 이들은 민주노총을 ‘귀족노조’라 생각합니다. 하청업체나 비정규직에 대한 연대, 나눔에 인색하다는 평가도 많습니다.

다소 억울한 평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많은 조합원과 활동가들이 노동운동의 쇄신을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들의 노력이 없다면 지금의 민주노총은 유지조차 될 수 없겠지요. 현대차노조를 비롯한 많은 자동차산업의 노조는 임금 격차 해소와 노동자 차별 시정을 위해 수많은 고민과 실천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많은 이들의 생각보다 민주노총은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한번은 곱씹어봐야 할 쓴소리인 것 같습니다. 지금 노동운동은 ‘노동자의 대표’, ‘민중의 대표’로 자리 잡고 있는 걸까요. 모든 노동자, 특히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대변하고 있는 걸까요. 문재인 정부는 얄밉게도 자기들이 그 대표라며 민주노총을 때리기 바쁜데 말이죠.

더 치열한 고민과 전략이 필요한 때입니다. 더 많은 노동자의 권익을 대표하고, 나아가 위기의 시대에 스스로 대안이 될 수 있는 노동운동을 만들기 위해서 말이죠. 그 방안을 같이 고민해보자는 게 이번 특집을 낸 이유입니다. 그래서 이번 호는 자동차산업과 그 노동조합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모든 노조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많은 의견과 비판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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